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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논술(설.문)독서도서詩소설수필연설 2007. 12. 22. 19:2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1>어느 산타의 일기
《“크리스마스가 딱 하루뿐이라고 생각하니? 그렇지 않아. 너는 마음속으로 매일 너만의 크리스마스를 맞이할 수 있어. 왜 그런지 아니? 그건 바로 마법이 곧 사랑이기 때문이란다. 사랑이 크리스마스를 불러오는 거야. 그래서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일 수 있는 거지.”》“사랑하면 매일 매일이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의 유래는 성 니콜라우스다.
그는 많은 어린이에게 자선을 베푼 그리스도교회의 대주교로 사후에 어린이의 수호성인이 됐다.
유럽에서는 12월 5일 성 니콜라우스 축일에 부모들이 그를 대신하여 한 해 동안 선행을 한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풍습이 있다.
이 풍습이 미국의 네덜란드 이민사회로 연결됐다.
여기서 성 니콜라우스는 산타클로스라는 미국식 발음으로 불리기 시작한다.
1930년대 코카콜라 광고에 등장하면서 산타클로스는 전 세계에서 성탄절 상징으로 정착된다.
저자는 매년 12월 한 달을 산타클로스 놀이로 살아간다.
프랑스 사상가 로제 카유아의 분류법을 따르자면 이런 산타클로스 놀이는 ‘미미크리’에 속한다.
미미크리란 놀이 주체가 변장을 통해 구경꾼들에게 모방의 대상이 되는 인물인 것처럼 믿게 만들거나 자기마저도 그렇게 믿게 되는 놀이다.
이 놀이에는 실제 현실과는 다른 세계에 대한 동경이 깃들어 있다.
저자는 평범한 사람이다.
행사장에서 산타클로스 놀이를 한 다음 자신의 그럴듯한 모습에 반한 누군가가 영화 출연 섭외 전화를 걸어오지나 않을까 기대한다.
동시에 저자는 비범한 사람이기도 하다.
몸이 불편한 친구를 위해 전구를 갈아 주는 간단한 손놀림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느끼곤 한다.
책에는 이 평범하면서도 비범한 사람이 전하는 산타클로스로서의 경험이 듬뿍 담겨 있다.
진리는 단순하고 소박하다는 사실, 사랑의 나눔이 있는 곳에 기쁨과 감동이 있다는 사실,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준 사랑이 결국 자신의 삶을 의미와 보람으로 가득 차게 만든다는 사실이 증언된다.
‘어느 산타의 일기’ 안의 크리스마스는 사랑으로 마음을 따뜻하게 만드는 기적의 시기다.
따라서 사랑의 마음만 가득하다면 오뉴월도 칠팔월도 크리스마스일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저자는 산타클로스의 정체성에 대해서도 한마디 건넨다.
그를 산타클로스답게 만드는 건 빨간 옷과 흰 수염이 아니다.
따뜻한 마음이다.
사랑을 나누는 마음.
이것이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를 규정짓는 알맹이다.
그 속엔 진정성이 오롯하다.
산타클로스 놀이를 제대로 하려고, 아니 진짜 산타클로스가 되려고 통신판매 카탈로그를 뒤져 가며 장난감 이름을 외운다.
아이들이 주는 과자를 먹는 데 가짜 수염이 성가셔서 진짜 수염을 기른다.
크리스마스에 받고 싶은 유일한 선물이 아버지가 때리는 걸 멈추는 거라 말하는 아이의 이야기를 술회할 땐 진짜 그가 성 니콜라우스를 빼닮았단 생각이 든다.
‘어느 산타의 일기’는 읽고 나면 따뜻해지는 책이다.
어디선가 저자와 같은 산타클로스를 만나고 싶어진다. “쉿! 여기서 날 봤다는 건 비밀이야”라고 말할 것만 같다. 아주 예쁘고 따사롭게.
안선희 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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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 <2>크리스마스의 악몽《“아이는 세 번째 성냥을 그었다. 이번에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크리스마스트리 밑에 앉아 있었다. 수많은 촛불이 푸른 가지 위에서 너울너울 타고 있었다. 신기한 것들이 여기저기 달려 있었다. 아이는 그중에 가장 예쁘지 않은 것을 잡으려고 손을 뻗었다.”》
12월입니다.
눈이 내린 어느 밤입니다.
거리에서 경적 소리와 확성기 소리에 내내 시달리며 지친 몸.
집으로 들어오니 크리스마스트리처럼 예쁜 책이 책상 위에서 저를 반깁니다.
간만에 책상 귀퉁이에 촛불 하나를 밝힙니다.
자, 이제 19세기 작가들이 쓴 유럽의 겨울 이야기로 가득한 책 속으로 들어가 볼 차례입니다.
책을 펼치니 이젠 거의 사어(死語)가 된 단어 하나가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여인숙. 하지만 ‘규모가 작고 값이 싼 여관’이라는 사전적 설명이 책에서는 꽤나 무색합니다.
여기서 여인숙은 여행하는 자가 잠시 유숙하는 집이란 뜻이 어울립니다.
눈보라에 가야 할 길마저 끊어진 겨울밤을 상상해 봅시다.
주인장이 지펴 놓은 장작불 앞에서 어떤 여행객도 슬슬 이야기꾼이 되는 여인숙 말입니다.
그런데 그 ‘꾼’들이 우리에게 아름다운 소설 ‘마지막 수업’과 ‘별’로 유명한 알퐁스 도데라면 어떨까요?
혹시 ‘보물섬’을 쓴 로버트 스티븐슨은 어떤가요.
아니면 영국의 가장 위대한 작가 찰스 디킨스나 19세기 고딕소설과 근대 심리공포소설을 연결한 작가 셰리단 르 파누라면?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그런 상상을 충족시켜 주는 책입니다.
축복과 풍요를 떠올리게 하는 성탄절을 배경으로 삼고 있지만 책은 그런 선입견을 안팎으로 뒤흔듭니다.
‘어두운 기억의 저편’ 같은 기담들이 두런두런 시작되는 여인숙으로 독자를 안내합니다.
자, 이젠 폭설이 그쳐도 여인숙, 아니 책에서 빠져나오긴 힘듭니다.
이미 도데가 식탐 때문에 죽은 뒤 폐허로 바뀐 성당에서 300년 동안 자정 미사를 올리는 한 신부 이야기를 시작한 탓입니다.
구불구불한 두멧길을 걸어가는 노새의 방울소리와 겨울 밤 ‘추위로 선명해진 별’에 대한 디테일한 묘사가 빛을 발합니다.
디킨스 역시 빠지지 않습니다.
크리스마스트리가 무람없이 펼치는 마법의 환영들 속으로 독자를 이끌어 갑니다.
그리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립니다.
“곧 사라져 갈 크리스마스트리여! 너의 가지들을 통해, 나를 사랑했지만 더는 남아 있지 않은 사람들의 눈빛을 한 번 더 볼 수 있게 해다오!”
너무나 익숙하지만 새로이 다가오는 단편도 있습니다.
‘붉은 뺨에 미소를 머금은 채’ 남의 집 처마 밑에 쓰러져 있는 성냥팔이 소녀. 바로 ‘동화의 왕’ 안데르센의 작품입니다.
“순간 성냥불이 꺼져버렸다.
크리스마스트리는 하늘로 올라가고, 달려 있던 수많은 촛불은 밤하늘의 별이 되어 버린 것 같았다.”
‘크리스마스의 악몽’은 성탄절 동안 잠시나마 온기를 전해 줬을, 소녀가 꼭 쥐고 있던 성냥 한 갑 같은 책입니다.
동그마니 쥐인 성냥갑 같은 이야기들이 당신의 크리스마스 속으로 살며시 다가옵니다.
그 온기를 잠시나마 느껴 보시길. 이야기 여인숙이 그렇게 당신을 초대합니다.
이찬규 시인 성균관대 인문학부 연구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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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3>동자승의 크리스마스
《동자는 쪼르르 작은스님 곁으로 달려갔습니다. “스님 저 크리스마스날 교회 가도 돼요?” “교회? 크리스마스날?” 작은스님의 눈이 휘둥그레졌습니다. “마리가 오라고 그랬어요.” 동자는 얼른 마리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붕어빵에 붕어가 없다.
조국과 민족을 위해 노력한다는 정치인들에게도 조국과 민족이 없다.
사랑밖에 난 모른다는 사람은 사랑을 모른다.
‘동자승의 크리스마스’에서 동자승은 어느 날 단짝 친구 마리에게서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오라는 초대를 받는다.
순수한 동심을 가진 동자승은 내내 고민한다.
아무리 친구가 초대한다고 하지만 교회를 가는 것은 동자승에게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큰스님은 스스럼없이 허락했고, 동자승은 교회에서 목사님을 만나 큰스님에게 안부를 전하라는 말까지 듣는다.
알고 보니 목사님은 옛날부터 큰스님과 잘 알고 지내는 친한 사이.
우리는 언제부터 나와 다름을 못 견디게 되었을까.
대립과 갈등, 따돌림, 차별, 그리고 편견 같은 말들은 전부 나와 다름을 드러내는 표현들이다.
어느새 나와 다른 것들은 타도의 대상이고, 무찔러 없애야 할 것들이 되어 버렸다.
나와 같지 않음이야말로 나의 부족함을 채워 주는 것이고, 나를 비춰 주는 거울이며, 또한 이 세상을 신나고 재미나게 하는 다양성이라는 사실을 사람들은 알지 못한다.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기독교에서는 사랑을 부르짖으며 이웃에게 손을 내민다.
불교에서는 대자대비한 부처님의 뜻을 따라 자비를 베풀려 애쓴다.
그러나 실제 그러한 가르침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신앙인들의 행태는 어떠한가.
물론 일부에 불과하겠지만 나와 다르고, 생각이 같지 않음으로 인해 서로 으르렁대며 적대시하는 걸 쉽게 본다.
크리스마스는 바로 그러한 우리들에게 사랑을 가르치려 예수가 이 땅에 온 날이다.
사랑을 하는데 어찌 대상을 고를 것이며, 어찌 종교를 가리겠는가.
이 세상에는 정말 많은 사랑이 필요하고, 정말 많은 관용과 자비가 늘 요구되지만 실제로는 턱없이 부족해 우리들은 슬프고, 외로운 존재가 아닐 수 없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산국제영화제, 대한민국종교예술영화제 등에서 상을 받은 단편 영화 ‘나무아미타불 Christmas’를 동화로 만든 이 작품을 읽고 나는 빙긋 웃음 한 귀퉁이를 베어 물며 상상한다.
크리스마스 날 스님들이 교회에 찾아가 축하해 주고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하는 모습을….
사월 초파일 많은 기독교신자와 목사님이 절에 가서 절밥 얻어먹는 모습을….
만일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 중 해결 못할 일이 무엇이겠는가.
이 겨울 우리 어린이들에게 이 세상에는 수많은 나와 다름이 있음을 말해 주자.
그 다름이 있기 때문에 나의 존재가 개성으로, 독특함으로 자리 잡는 이치를 알려주자.
동자스님이 크리스마스 때 교회에 초대받아 가는 이야기가 현실이 되도록.
앞으로 우리 어린이들이 물려받을 세상은 반드시 그래야 하지 않겠나.
고정욱 소설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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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4>세상의 모든 크리스마스
《산타클로스는 하얀 솜으로 만든 풍성한 턱수염을 옆으로 밀치고 빨간 상의 단추를 풀더니, 갑자기 조용해진 아기 예수에게 풍만한 젖가슴을 내밀었다. ―미셸 투르니에의 단편 ‘엄마 산타클로스’ 중에서》현실이 꿈이 되는 시간, 크리스마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무엇일까.
동방박사 이야기, 아니면 스크루지 영감이 세상과 화해하는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 아니면 머리카락을 잘라 남편의 시곗줄을 산 아내와 시계를 팔아서 아내의 머리핀을 산 남편의 이야기인 오 헨리의 ‘크리스마스 선물’.
너무나 유명하고 낭만적이고 착하고 교훈적인 크리스마스의 기적 같은 이야기 말고 새로운 크리스마스 이야기는 없을까.
‘세상의 모든 크리스마스’는 폴 오스터, 트루먼 카포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존 치버, 미셸 투르니에 등 세계적 작가들의 크리스마스 이야기 19편을 엮은 책이다.
의외의 소득은 내가 좋아하는 나보코프나 투르니에, 오스터의 이야기가 아니라 카포티의 ‘크리스마스의 추억’이었다.
카포티의 비블리오그래피에 항상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있었는데 사실 ‘뭐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거기서 거기지’ 하고 한 번도 찾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가슴 찡하면서도 산뜻한 이 이야기가 정말 좋았다.
이 책에는 어떤 작가의 이야기가 가장 좋았느냐 혹은 어떤 이야기에서 어떤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느냐를 묻고 대답하면서 사람을 알아 갈 수도 있을 것 같은, 다양한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실려 있다.
크리스마스에도 전쟁은 계속되고 살인이 일어나고 부부싸움을 하고 부모와 자식은 소원하고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한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니까 화해를 하고 용서를 하고 선물을 하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기도 한다.
천편일률적인 평화와 화해와 사랑과 축제의 크리스마스가 아니라 비애나 자조, 우울 같은 크리스마스에만은 사양하고 싶은 감정들이 크리스마스라서 더 강하고 위협적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확인시켜 주기도 한다.
이를테면 존 치버의 ‘크리스마스는 가난뱅이에게 슬픈 날’이나 크리스마스 폐지협회를 만드는 뮤리엘 스파크의 ‘낙엽 쓰는 사람’, 그리고 산타클로스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야기도 있다.
생각해 보니 진짜 산타클로스도 크리스마스에 우울할지도 모르겠다.
남들 놀 때 놀지도 못하고 밤새워 일해야 하고, 그럼에도 제대로 임무를 완수하지 못해 비난받을 가능성도 있다.
나이가 들면 사랑과 화해와는 다른 크리스마스의 뒷면에 익숙해진다.
명백한 것은 세월이 흐를수록 누군가와 마지막으로 보낸 크리스마스의 기억이 늘어난다는 것이다.
어쩌면 ‘그해 크리스마스에는’ 하고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하나 둘 모으는 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오스터는 ‘오기렌의 크리스마스 이야기’에서 “어떤 이야기를 믿는 사람이 하나라도 있다면, 어떤 이야기도 진실일 수도 있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나는 요정이 나타나 소원을 들어주는 자넷 윈터슨의 ‘오브라이언의 첫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믿고 싶다.
우리의 일상이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시간이라면 크리스마스는 현실을 꿈으로 만드는 시간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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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5>산타클로스 자서전
《“알다시피 어린이들도 철이 들면서 산타라 해도 모든 어린이에게 다 선물을 줄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달을 때가 오기 마련이거든. 그때가 다른 아이들이 그 선물을 받을 수 있도록 어린이들이 자기의 선물을 기꺼이 포기할 때라네. 그런 걸 양보심이라고 하지.”》수없이 많은 영화와 문학이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어라”라고 당부한다.
하지만 현대사회에서 아무도 쉽사리 ‘그분’을 믿지 않는다.
신문사에서 출판을 담당하는 기자 제프 긴도 그랬다.
매년 그렇듯 지면을 메우려(?) 12월 크리스마스와 산타클로스의 유래와 전설을 특집기사로 작성해 신문에 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펠릭스라는 남자가 불쑥 찾아온 뒤 모든 게 달라졌다.
펠릭스의 말인즉 “그분께 기사를 보여 드렸더니 진실을 밝힐 때가 됐다”며 제프를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제프는 반신반의하며 북극으로 가게 됐고, 거기서 ‘진짜’ 산타를 만난다.
그러니까 ‘산타클로스 자서전’은 일종의 전기다.
산타가 자신의 일생을 구술하고 기자인 제프가 그걸 받아 적어 탄생했다.
이렇게까지 설명했는데도 불구하고, “뭐야! 이건 소설이잖아.
산타가 자서전을 어떻게 써”라고 말한다면 그건 독자의 이해력을 탓해 볼 일이다.
책 속에는 산타클로스와 크리스마스에 관한 여러 유래와 역사적 지식이 충실하게 담겨 있다.
당연한 일이다.
당사자 산타클로스가 겪고 본 이야기를 들려주니 수많은 이설과 의혹이 씻은 듯 해결된다.
우선 산타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부터 해보자. 원래 이름은 니콜라스 성자.
서기 280년에 태어났다.
아홉 살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산타가 된 뒤 오랫동안 나눠 준 선물에서 짐작할 수 있듯―천성이 선해서 물려받은 유산을 가난한 이웃에게 아낌없이 나눠 줬다.
이런 선행 때문에 주교가 됐고, 당시 빨간색 옷에 소매 깃과 목둘레가 하얀색인 주교의 복장이 지금 산타클로스 복장의 시작이 됐다.
지금까지 사람들은 니콜라스 성자가 서기 343년 예순세 살로 세상을 떠났다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야 스스로 진실을 밝힌다.
니콜라스 성자는 마법 덕분에 나이가 멈췄다.
그리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가난한 이웃을 돕고 우리에게 선물을 나눠 주는 일을 지금껏 하고 있다.
우리의 산타클로스가 돼서. 할렐루야!
하지만 산타클로스는 자신과 크리스마스에 관한 모든 축복이 자신의 성과는 아니라고 말한다.
산타와 크리스마스의 기적을 믿는 숱한 사람의 힘이 더해진 결과라는 것이다.
산타가 썰매를 끌고 선물을 나눠 주는 방식은 역사학자 클레멘트 무어의 시에서 시작됐다.
공식적인 산타의 모습은 코카콜라의 부탁을 받은 화가 하든 선드블롬의 노력으로 만들어졌다.
산타는 이런 믿음과 관심에 부응해 왔다.
또다시 크리스마스가 찾아왔다.
올해도 여전히 의심 많은 이들이 산타란 가상의 존재라며 헛소리를 해댈 것이다.
산타는 그것도 이미 짐작했다.
그래서 구태여 ‘산타클로스 자서전’을 남기신 거 아닌가.
그분을 믿는 이들이여, 모두 곤한 잠 누리기를!
한미화 출판평론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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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6>호두까기 인형
《신비로운 요정 나라의 모습은 곱고 감미로운 음악과 함께 달콤한 기억 속에서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모든 감각을 그 기억에 집중하기만 하면 마리는 모든 것을 한 번 더 볼 수 있었다.》크리스마스 쇼핑과 발레극 호두까기 인형. 이즈음이면 사람들이 열광하는 품목입니다.
그 둘의 공통점은 아마도, 그게 크리스마스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와 사실은 별 상관이 없다는 점일 것입니다.
그저 오랜 관습으로 자리 잡은 소비 풍속이 돼 버린 듯합니다.
호두까기 인형 발레극은 그 시간 배경이 성탄 전야이고, 주인공 호두까기 인형이 그날의 선물이라는 것 외에는 크리스마스와의 관계가 뚜렷하지 않습니다.
그걸 제대로 알려면 완역판 ‘호두까기 인형’을 읽는 것이 좋습니다.
아이들이 “예수님이 은혜로운 손길로 그 모습을 하나하나 어루만져 주고 있기에 크리스마스 선물이 그 어떤 선물보다 더없이 큰 기쁨을 가져다준다는 것도 잘 알았다”는 대목이 있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것은 환상과 현실의 결합, 죽음과 부활, 희생과 구원, 굳건한 믿음, 찬란한 광휘 속의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 같은 것들을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원작 ‘호두까기 인형’은 발레극과는 좀 다른,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호두까기 인형의 유래가 이야기 속의 이야기로 들어가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지요.
마법에 걸려 흉측하게 변한 공주를 한 무구한 젊은이가 구해 주고 대신 자신이 우스꽝스러운 호두까기 인형이 된다는 것입니다.
마리는 그 이야기를 철석같이 믿고, 인형들과 사악한 쥐들 사이의 한밤중 전투도 실제 일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마리 편은 아무도 없습니다.
이성적인 어른들은 웃음을 터뜨리고, 놀이친구인 오빠는 믿었다 놀렸다 합니다.
심지어는 그 이야기를 들려준 대부조차 “어리석기 짝이 없는 허튼 소리”라며 일축합니다.
그러나 비웃음과 꾸지람에도 마리는 한결같은 믿음을 보내고, 그것은 결국 그녀의 믿음 혹은 환상을 현실로 이루어냅니다.
신비로운 마지팬 나라를 보여 준 호두까기 인형이 살아 있는 젊은이가 되어 나타나 마리에게 청혼을 하고, 그와 결혼한 “마리는 지금도 그 나라의 왕비”이거든요.
“그런 것을 볼 줄 아는 눈만 있다면 온갖 멋지고 근사한 것들을 찾아볼 수 있는 나라” 말이에요.
크리스마스만이 아니라 온 생애를 통해 우리가 구하는 진실과 아름다움이 집약되어 있다는 것이 호두까기 인형의 매력일 것입니다.
독일의 대표적 낭만주의 작가인 호프만은 그 추상적인 진실과 아름다움을 메마른 관념이 아니라 구체적 감각을 일깨우는 묘사를 통해 생생하게 살려냅니다.
시각뿐 아니라 후각과 청각, 미각과 촉각까지 섬세하게 자극하는 대목들이 튀어나옵니다.
인형의 작은 한숨 소리에 감미롭게 울리는 장식장 유리문을 상상해 보세요.
몸의 감각이 정신의 자유와 만나 활짝 펼쳐지는 세계를 보여 주는 것이 호두까기 인형의 또 다른 매력입니다.
그것이 아마 이 문학 작품이 화려한 발레극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이유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김서정 동화작가 동화평론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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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7>어바웃 어 보이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는가 하는 것은 결국 세상에다 자기 인생이 어디쯤 와 있는가를 공표하는 셈이다.(…) 그래서 그는 크리스마스를 가족의 품 안에서 보내고 싶었다. 자기는 가족이 없으니, 자기 가족은 아니더라도 ‘어떤’ 가족과 함께 보내고 싶었다. 》매년 크리스마스만 되면 다시 찾는 것들이 있다.
빙 크로스비의 목소리, 찰스 디킨스의 단편 ‘크리스마스 캐럴’, TV에 100번은 족히 방영되었을 것 같은 영화 ‘나 홀로 집에’ 시리즈, 때만 되면 백화점에 울려 퍼지는 머라이어 캐리의 들뜬 캐럴, 최근 새로운 강자로 떠오른 영화 ‘러브 액추얼리’.
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참 ‘징하게도’ 우려먹는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신선한 메뉴를 하나 추가하려고 한다.
재능 넘치는 영국 작가 닉 혼비의 장편 ‘어바웃 어 보이’. 많은 영화 애호가의 ‘톱 10’ 목록에 이름을 올린 바 있는, 바로 그 영화의 원작소설이다.
소설은 어른 같은 아이 마커스와 아이 같은 어른 윌의 이야기다.
부모님이 이혼하고 마커스는 엄마와 둘이서 산다.
엄마 피오나는 자신의 고집스러운 취향을 아들에게도 강요한다.
어른들의 세계에서 독특한 취향은 무시당하면 그만이지만 아이들의 세계는 다르다.
놀림과 괴롭힘의 대상이 된다.
윌은 멀쩡한 성인 남자지만 직업도 없이 산다.
크리스마스만 되면 지겹도록 들려오는 캐럴 ‘산타의 슈퍼 썰매’를 작곡한 아버지 덕이다.
아버지가 남긴 캐럴의 저작권료로 편안하게 살지만 그는 자신을 먹여 살리는 ‘크리스마스 시즌’을 혐오한다.
윌과 마커스는 때로는 싸우면서 때로는 한 편이 되어 지낸다.
‘덜 자랐다’는 공통점이 있는 그들이 보기에 이 세상은 이상하기 짝이 없다.
그런데 이 둘은 예상치 못한 기쁨과 위안을 주며 서로를 성장시킨다.
그리고 어느 크리스마스 저녁. 한데 어울리기 난감한 사람들이 모여 앉는다.
마커스와 그의 엄마 피오나. 그녀의 전 남편 클라이브(마커스의 아빠)와 애인 린제이, 그리고 린제이의 어머니.
마커스가 초대한 손님인 윌과 윌이 꼬시려고 했던 이혼녀(그녀는 마커스 엄마의 친구 자격으로 왔다)와 그녀의 딸까지.
그들이 서로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 궁금하지 않은가?
딱딱하게 말하자면 이 소설은 해체된 가족 구성원과 사회 부적응자의 이야기다.
우리 사회에서도 빠른 속도로 이혼율이 늘어나고 있고, 남다른 삶의 방식을 고집하는 이들도 쉽게 볼 수 있다.
1994년 런던이 배경인 이 소설은 2007년의 서울에서도 진정성을 가진다.
진정성은 부담스러울 때가 많지만 이 소설은 전혀 부담스럽지 않다.
교훈적이지도 않다.
자살 기도를 하는 이혼녀 엄마를 책망하지 않고 직업이 없는 성인 남자를 다그치지도 않는다.
작가는 그저 그들과 독자를 크리스마스 저녁 테이블에 초대한다.
그리고 다 함께 친구가 되어 깔깔 웃으면서 맛있는 식사를 하는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다.
닉 혼비의 재치와 여유로움.
그 위에 크리스마스의 따스함이 양념된 메뉴. 이번 크리스마스의 특선 메뉴로 ‘어바웃 어 보이’를 추천한다.
이재익 시나리오 작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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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8>북극에서 온 편지
‘산타’ 톨킨이 자녀 몰래 보낸 성탄카드
‘산타 할아버지’만큼 온 세상 이들에게 친숙한, 그리고 그 상실을 흐뭇하게 아쉬워하게 되는 신화가 있을까.
‘북극에서 온 편지’는 이처럼 지금도 이어지는 산타클로스 신화의 생생한 현재형이다.
책은 아이들이 산타로부터 받은 크리스마스카드를 모아 엮은 것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서 산타 할아버지란 아이들의 아버지이자 걸작 ‘반지의 제왕’의 저자 톨킨이다.
톨킨의 자녀는 모두 3남 1녀. 책의 편지는 큰아들 존이 세 살 때(1920년)부터 막내 프리실라가 열네 살이 될 때(1943년)까지 무려 24년간 이어진다.
처음엔 그저 의례적이었을 뿐이었던 산타의 카드. 하지만 타고난 이야기꾼―실은 톨킨―의 재능을 어찌하랴.
곧 ‘북극 크리스마스 집’에 사는 산타의 무궁무진한 환상이 펼쳐진다.
1925년 카드는 특히 주목된다.
드디어 산타의 동무, 장난꾸러기 북극곰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북극곰은 뭉툭한 글씨로 카드 여백에 자기 의견도 쓰고 산타의 흉도 본다.
그리고 산타의 정원사 ‘눈사람’은 크리스마스 때마다 봉투에 주소 적는 일을 도와준다.
뒤를 이어 눈 요정과 붉은 땅의 신령들, 동굴 곰들, 산타의 비서인 요정 일베레스도 선보인다.
이 같은 등장인물들과의 에피소드는 갈수록 신이 난다.
‘북극곰이 거실을 얼려버린 날’을 비롯해 ‘북극곰 실종사건’ ‘도깨비들과의 전쟁’ 등 기상천외한 이야기가 쏟아진다.
물론 이 모든 건 그 바쁜 와중에도 톨킨이 아이들을 위해 공들여 꾸민 아름다운 이야기다.
책 속에 실린 톨킨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아이들에게 보낸 카드 구석구석에 저자가 직접 그려 넣은 것이다.
북극 절벽에 있는 산타 할아버지의 집을 비롯한 환상적인 풍경들은 아이들이 이야기에 더욱 실감나게 빠져들게 만들었으리라.
크리스마스이브를 떠올려 보자.
공들여 꾸민 글씨와 예쁘게 채색한 그림카드를 상상해 보자.
양말 속 선물과 함께 반짝이는 눈으로 편지를 읽는 네 아이들.
그리고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는 ‘아버지’ 톨킨이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 톨킨의 상상세계를 엿본 독자라면 여기서 ‘실마릴리온’과 ‘호빗’의 대목이 생각날지도.
따스한 미소가 자연스레 머금어진다.
유감스러운 것은 책을 넘길수록 첫 편지를 받은 존의 이름이 뒤로 밀리는 점.
세월 따라 머리가 굵어진 큰아들은 천천히 산타 신화를 졸업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경고 한 마디.
이 책은 분명 크리스마스 선물로 제격이다. 하지만 선물의 대상은 세심하게 고려할 것.
끝까지 다 읽을 경우 여전히 산타클로스의 존재를 믿는 아이들의 환상을 깨는 위험한 선물이 될 수 있다.
편지에서 사라져 가는 톨킨의 아이들처럼.
김보원 방송통신대 영문과 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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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9>산타클로스-산타 할아버지의 마법 세계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이브뿐 아니라 다른 때에도 종종 사람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답니다. 사람들이 그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뿐이지요. 눈을 크게 뜨고 보세요. 바로 옆에 그가 있을지도 몰라요!》크리스마스가 되면 종교에 관계없이 가장 인기 있는 인물, 바로 산타클로스이다.
아이들이 1년 내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것은 아마 산타클로스가 주는 선물 때문일 것이다.
초등학생인 딸아이는 작년 크리스마스 때 오전 5시까지 자지 않고 산타를 기다렸다.
“아직도 산타에 대한 진실을 모르느냐”는 친구들의 비웃음에도 딸애는 올해도 자지 않고 산타를 기다릴 것이라고 한다.
큰 아이들이 산타클로스 존재의 유무에 대해 고민을 한다면, 더 어린 아이들은 산타클로스에 대해 더 구체적이고 자세한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산타는 어디서 살까, 어떻게 하룻밤에 전 세계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다 나눠줄까,
우리 집은 굴뚝이 없는데 산타 할아버지가 우리 집 번호 키를 누르고 들어오실까, 산타는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남은 일 년 동안 얼마나 심심할까 등등.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런 질문에 좋은 답을 해주기 힘들다.
왜냐하면 부모들도 산타클로스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유치원 아이가 선물을 들고 밤에 찾아 온 산타클로스(유치원에서 고용한 산타클로스)를 보고 “저 사람은 산타가 아니야.
한국 사람이잖아!” 하는 바람에 부모도 산타도 설명해 줄 말이 없어 무척 당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웃은 적이 있다.
산타클로스에 대한 아이들의 끊임없는 상상력과 호기심에 답해 줄 책이 바로 여기에 있다.
‘산타클로스-산타 할아버지의 마법 세계’는 산타클로스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책이다.
산타의 집과 산타 할머니, 산타를 돕는 수많은 꼬마 요정부터 크리스마스의 선물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루돌프들은 어떻게 교육을 받고, 썰매는 어떤 기능이 있는지….
때로는 풍부한 상상력으로 때로는 체계적이고 과학적으로 설명해 준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한장 한장 넘길 때마다 아이들이 펼쳐 보고 꺼내 보고 쓸 수 있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큰 그림을 펼쳐 보고 책 속의 작은 편지와 카드, 일기를 꺼내 읽다 보면 어느 새 산타 나라에 함께 있다는 느낌을 갖게 된다.
이 책은 읽어주는 부모들이 더 재미있어 할지 모른다.
산타클로스와 산타 마을에 대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내용, 크고 작은 마법들에 대한 저자의 상상력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흥미 있어 할 것이기 때문이다.
산타클로스를 기다리는 아이들은 크리스마스가 가져오는 신비함과 순수함을 믿는다.
부모들이 산타클로스를 믿는 아이들의 순수함을 지켜주려고 무던히 애를(!) 쓰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바로 어른들이 마법과 요정, 희망을 믿는 동심을 지녔던 순간이 얼마나 행복했던가를 그리워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과 함께 이 책을 읽으며 산타클로스의 비밀과 마법에 빠져 보자.
산타클로스의 모든 것을 하나씩 손으로 짚어 보고 알아가면서 동심으로 돌아가 아이와 함께 행복해지자.
고수산나 동화작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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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크리스마스 10선]<10>엄마의 크리스마스
《난 알았다. 아이를 내버려둬야 한다는 걸. 매일같이 듣는 소리가 아닌가. 그렇다. 평화롭게 놔두어야 한다. 전쟁터에 보내는 한이 있더라도. 아무런 걱정도 말고,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 귀 기울이는 걸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다.》이 소설은 프랑스 파리에 사는 이혼녀 누크가 아들 으제니오와 단둘이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야기이다.
엄마, 크리스마스는 어디서 보낼 거야,
응? 엄만 그렇게 똑똑하다는 사람이, 내일이 바로 크리스마스인데도 어딜 갈 건지조차 생각을 못해놨단 말야?
누가 우릴 기다려 주는 것도 아니고, 선물도 없고, 불쌍한 나를 위한 벽난로도 없고. 거봐, 엄마, 도대체 이혼은 왜 한 거야?
누크 같은 엄마에게 명절이나 생일, 크리스마스 같은 날은 자기 삶을 X선 촬영처럼 투시당하는 날이다.
‘엄마는 즐거워야 한다’는 강박증에 사로잡혀 외로운 닭처럼 허둥대고 냉소적이고 영악한 아들은 엄마가 감상에 빠질 틈이 없도록 계속해서 다음 계획을 채근하는 모습이 전투를 방불케 한다.
누크는 아들의 격려에 힘입어 선물을 마련하고 트리를 사서 장식하고 물놀이 낙원인 아쿠아 볼르바르까지 가지만 크리스마스이브에 아들과 물놀이 나온 자기 신세를 절감하게 되고 전철 속 같은 공기, 창백한 전등 빛, 소독약 때문에 구토가 나는 인공낙원에 환멸을 느끼며 지쳐 간다.
저녁 식탁에 앉은 아들이 또 묻는다.
언제 와, 손님들은?
엄마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미처 손님 생각을 못한 것이다.
시간을 죽이는 데는 천재인 재기 넘치는 모자에게도 크리스마스는 버겁다.
누크는 아들과의 조용하면서도 맹렬한 삶을 힘겨워하면서도 행복해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누크가 일터와 집만 오가며 아들만 끼고 사는 것을 비정상적이라고 간섭하고 전 남편은 누크가 여리고 비현실적이어서 아이를 키우기엔 부적합하다고 주장하며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누크와 아들이 생활을 예술화하고 세상의 잡동사니를 시로 만들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풍부하게 삶을 경험하는 것을 아무도 모른다.
둘이 얼마나 많이 웃고 자주 삐치고 마음속으로 우는지, 그것이 얼마나 충실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 사회에도 가족 형태가 다양해지면서 최근 몇 년 사이에 영화와 소설들이 색다른 가족 이야기를 많이 다루고 있다.
이런 모색은 우리 사회 속의 새 삶을 발견하고 삶의 새 양식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가치와 건강성과 긍정성을 통찰하고 새 감수성과 감정을 선보여 세계를 더 풍요롭게 변화시키는 힘이 된다.
정상적이라는 기준, 완성적이라는 기준 같은 것은 없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사는 삶이 더 많이 가능한 것이어야 하고 더 깊이 진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언제나, 바로 지금을 살고 있다.
힘겹고도 행복한 크리스마스가 끝나자 아들 으제니오는 아빠의 집으로 떠나간다.
누크는 다시 그림을 그리게 될까?
예민하고 진지하고 성실한 누크는 그 존재조건대로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강하고 평화롭고 자유롭게, 영혼은 하늘처럼 맑고 입술에는 미소를 띠고.
전경린 소설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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