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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바다가 있어 꽃향기 더욱 깊어지고
    강원제주탐라표해록 2006. 3. 15. 14:05
    바다가 있어 꽃향기 더욱 깊어지고
    [아름다운동행] 제주 바다와 들꽃들의 동행
      김민수(dach) 기자   
    ▲ 성산일출봉
    ⓒ 김민수
    겨울바다를 그리워해 본 적이 있는지요? 인적 드문 겨울바다, 겨울나무가 자기 본래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듯 겨울바다도 어쩌면 자기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파도 밀려왔다 이내 돌아간 모래에 발자국을 남기면 다시 파도 밀려와 발자국을 지워버리는 바다에 못내 지우지 못한 작은 새의 발자국이 남아 있었습니다.

    어쩌면 작은 새의 발자국, 파도는 차마 그것을 지우지 못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겨울바다는 춥습니다. 바람만큼 높아지는 파도소리가 높고 깊습니다. 내 마음이 추울 때 그 곳에 서면 내 마음보다 더 춥다고 흔들리는 바다의 물결을 보면서 위로를 받습니다.

    겨울바다. 그 추운 바닷바람을 이길 만한 줄기를 내고 꽃을 피우는 들꽃들이 있습니다. 들꽃들은 척박할수록 진한 향기를 간직하고 진한 빛깔로 피어난다고 합니다. 바다가 있어 그 향기 더욱 깊어지는 들꽃들을 보면서 내 삶을 뒤흔드는 것들이 내 삶을 더욱 더 깊게 할 것이라는 희망의 씨앗을 품어봅니다.

    ▲ 갯쑥부쟁이와 성산일출봉
    ⓒ 김민수
    사계절 쉬지 않고 바통을 이어가며 피었다가 지는 꽃들, 자기의 때가 다하면 미련 없이 내년을 기약하고 다른 들꽃들에게 자기의 자리를 내어주는 꽃이 있어 제주바다는 단 하루도 들꽃 없이 바다 홀로 있는 적이 없습니다.

    한 겨울에도 양지바른 곳에서 피어나는 갯쑥부쟁이가 있습니다. 그들은 유채꽃과 어우러져 피어나고 갯쑥부쟁이가 더 이상 필 수 없어 그 삶을 놓을 즘이면 갯무가 그 자리를 채우며 봄을 맞이하죠. 저 산 속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나는 봄꽃들의 행렬이 바다까지 내려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고 깊은 숲 속에 얼음새꽃(복수초) 피어날 무렵이면 반디지치라는 작은 꽃들이 바닷가에서 피어난답니다. 반디지치가 피어나면 이제 완연한 봄이죠.

    겨울바다. 그와 동행하는 것들 중에서 껴안지 못하면서도 이렇게 늘 서로를 그리워하는 것들은 없을 것입니다. 서로 그립다고 사랑한다고 껴안는 그 순간 들꽃들은 그 삶을 마감할 수밖에 없으니 그저 둘은 그렇게 서로를 바라볼 뿐입니다.

    바다와 잘 아울리는 갈매기, 등대, 파도, 작은 돛단배와 외딴섬들은 바다에 흠뻑 젖어보기도 하고, 치는 파도를 온 몸으로 맞이할 때도 있지만 들꽃과 바다는 늘 그렇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동행을 하는 것이죠.

    ▲ 유채와 제주의 오름들
    ⓒ 김민수

    노란 유채와 어머니의 부드러운 젖가슴 같은 곡선을 간직하고 있는 오름과 바다가 어우러지면 봄인 듯 착각을 하기도 하지만 검푸른 바다를 보면 겨울바다임을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이국적인 너무도 이국적인 제주의 겨울바다. 이 곳에서 파도만 보고 돌아선다면 반쪽만 보고 돌아가는 것입니다. 바다로 인해 더욱 깊은 향기를 담고 있는, 더욱 진한 빛깔을 담고 있는 들꽃들과 눈맞춤을 할 때 비로소 제주의 바다를 제대로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울바다는 바람이 많습니다. 때론 서 있기조차 힘들 정도로 찬바람이 불어올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잠시 바다에 등을 돌리고 그들을 마주하고 활짝 피어 있는 사구의 꽃들을 보면 이내 따스함을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외투도 없이 겨울바다에 서서 흔들리면서도 활짝 웃을 수 있는 비결, 그것을 마음에 담고 돌아오는 길이라면 참 행복한 여행길일 것입니다.

    ▲ 유채와 코스모스
    ⓒ 김민수

    겨울바다와 들꽃의 동행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홀로 피어 있는 꽃들 외로울까봐 함께 어우러져 피는 꽃들이 있습니다. 홀로 피어도 아름다운 꽃, 모여 피어도 아름다운 꽃이지만 이렇게 다른 것들과 어우러져 피어 있음으로 서로를 더욱 아름답게 하는 꽃들도 있습니다.

    아름다운 동행이란 무엇일까요? 함께 있어 홀로 있는 것보다 더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 그것이 아름다운 동행일 것입니다.

    사랑하며 평생을 동행하기로 약속을 하고도 서로에게 요구하며 상처받는 것이 우리네 사람들입니다. 물론 지혜롭게 그 상처를 극복해나가는 이들도 많지만 때론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마음 아픈 일이지요. 그저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그런 사람들, 우리 주위에는 참 많습니다.

    ▲ 해안가에 피어난 감국
    ⓒ 김민수

    국화의 향기는 진합니다. 국화는 바닷가에 피지 않았더라도 가을이 완전히 익어갈 무렵에야 피는 꽃이라 그 향기가 진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바다를 바라보면 핀 들국화는 그 향기가 더욱 진합니다.

    지난 해 바닷가에 피어난 감국을 따서 감국차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향이 얼마나 깊은지 새벽에 일어나 찻잔에 그를 한소끔 놓고 뜨거운 물을 부으면 온 집안에 국화향이 가득합니다. 자고 있던 아내도 남편이 감국차를 마시고 있구나 하는 것을 알 정도로 그렇게 진합니다.

    지난 여름에는 바다가 그들을 너무 그리워했는지 종종 높은 파도를 타고 들꽃들에게로 넘어 왔습니다. 바닷물에 적셔진 들꽃들은 시커멓게 말라서 예년에 비해 바다에 핀 꽃들이 적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감국차를 만들지 않기로 했습니다. 바다의 몫으로, 친구로 남겨놓아야 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제주바다와 들꽃의 동행. 서로 껴안고 가지는 못하지만 둘 사이의 경계에 연인들을 걷게 하며 서로를 그리워하며 늘 그 자리를 지키며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그 변함없는 사랑, 그래서 그들의 동행은 아름답습니다.
    2005-11-18 14:45
    ⓒ 2005 OhmyNews

     
    출처 : 블로그 > ☆만물상 | 글쓴이 : 더듬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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