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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그 많던 습지들은 다 어디로 갔나?
    강원제주탐라표해록 2006. 3. 15. 14:06
    그 많던 습지들은 다 어디로 갔나?
    [환경에세이] 제주 영평마을 젓못 습지관찰기
      김동식(rufdml) 기자   
    제주도는 섬 전체가 습지로 둘러싸여 있다. 연안습지 범주에 조간대(潮間帶)가 포함되기 때문이다. 조간대에 사는 생물들은 정신이 없다. 만조 때는 바닷물에 잠기고 간조 때는 공기에 노출되는 신세이다. 인간이었으면 완전히 스트레스다.

    생물도 다를 바 없다. 혹독한 환경에 신음하는 건 마찬가지다. 육상생물에게는 물에 잠기는 시간이 길어지고 빛으로부터 멀어진다. 해양생물이라면 공기와 접하는 시간이 길어져 비상사태를 만난다. 대개 하루에 두 번 정도 연안습지에 살고 있는 생물들은 그들만의 아우성 시간을 보내야 한다.

    조간대에 살며 연일 몸부림 치는 연안습지 생물과는 달리 내륙습지 생물은 그나마 양반이다. 물론 극심한 가뭄이 논밭을 갈라 놓을 때는 이웃의 연안습지 생물보다 더 끔찍한 재앙을 만나야 하겠지만.

    ▲ 그 옛날 700여개가 넘던 못(池)이 지금은 189개 만이 남아 있다. 제주시 영평하동에 있는 젓못.(11월 13일)
    ⓒ 김동식
    역사의 희생양으로 잊혀져 가는 습지

    제주의 내륙습지 중에는 크고 작은 못(池)이 많다. 마을마다 1~2개는 거느렸을 정도다. 상수도가 없던 시절에는 마을의 소중한 식수원이었고, 소와 말의 물을 먹이는 애환이 서린 추억의 샘터다. 그러나 지금은 개발 바람에 밀려 많이 사라지고 없다. 생태계의 상생과 순환의 원리가 깨진 것이다. 그 옛날 700여 개가 넘던 못이 이제는 189개만이 남아 있다. 명맥을 이어오던 못들도 대부분 방치되거나 농업용수, 가축용으로 간혹 이용될 뿐이다. 습지가 역사의 희생양이 된 게 안타깝기만 하다.

    이번에 발견한 '젓못'은 제주시에 남아 있는 10개의 못 가운데 하나다. 시골에서 나와 도회지로 떠돌아다닌 지 꼭 26년만이다. 그만큼 우리의 기억 속에서도 잊혀진 습지다.

    ▲ 작은 습지도 생물의 생성과 소멸은 끊임없이 반복된다.(11월 13일)
    ⓒ 김동식
    젓못은 제주시 중산간마을 영평하동에 있는 아주 작은 습지다. 경운기 한 대가 지나다닐 수 있는 농로길 한 모퉁이에 오랜 세월을 버티고 있는 게 신기할 정도다. 이 작은 세상에도 생물의 생성과 소멸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는 게 틀림없다.

    그래도 습지는 습지다. 습지의 세계는 경상남도 창녕군 우포늪처럼, 강원도 대왕산 용늪처럼 거대한 세계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다. 작고 가까이 있는 가치를 소중히 여긴다면 작은 습지도 중요한 존재다. 이 습지들도 생태계에서는 자기 역할이 있다. 다양한 생물을 부양하고 있는 것은 큰 습지와 다를 바 없다. 작은 습지가 파괴되면 습지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게 되고 다양한 생명들의 습지 간 이동이 어려워진다. 그만큼 생물집단의 생존 기회가 줄어드는 것이다.

    젓못을 찾아가 관찰하면서 느낀 소회는 자연에 대한 한없는 미안함이다. 도시의 유혹에서 잠시만 벗어나 자연에 시선을 돌렸다면, 초라하지만 생명의 근원을 이루는 아름다운 생태박물관을 만날 수 있었을 텐데.

    ▲ 시간의 흐름 속에 자연의 변화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 습지이다.(10월 23일)
    ⓒ 김동식
    습지에 가서 무언가 특별한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먼저 욕심을 털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 때나 모든 생물을 관찰할 수는 없는 법이다. 봄에 다르고 여름에 다르고 이 가을에 생태계의 몸짓과 자태가 다를 수밖에 없다. 한 가지 깨달은 사실은 늦가을의 습지는 요란하지 않다는 것 정도다.

    2억만년 전에 우리 혹성에 출현하여 생태계 먹이사슬의 가장 밑층에서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그 흔한 갯지렁이도 늪 속으로 떠난 듯하다. 물 위에서 잘 덤벙거리는 장구애비도 썩어가는 낙엽 밑에 잠복했는지 보이지 않는다.

    ▲ 부레옥잠은 살아있는 수질정화장치이다.(10월 23일)
    ⓒ 김동식
    생명의 근원을 담은 아름다운 생태박물관

    10월23일, 누가 심어 놓았는지 부레옥잠이 습지를 가득 메우고 있다. 소나기가 한차례 지나갔는지 아름답게 핀 자줏빛 꽃과 초록 잎자루가 지천에 널려있다. 이 다년생 귀화식물은 세계 10대 문제잡초 중 하나인데 우리나라에서는 애완견 이상으로 대접받는 관상초다. 번식력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봄에 성숙한 1개체가 752개 개체를 번식시킨다고 한다.

    갈대, 부들, 미나리, 개구리밥 등 대부분의 수생식물이 그렇지만 이 문제잡초는 정수기처럼 물을 정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1헥타르의 부레옥잠으로 5백여 명의 사람들이 흘러 보낸 생활하수를 깨끗한 물로 바꿀 수 있다고 한다. 부레옥잠은 살아있는 수질정화장치이다. 축산폐수를 얼마나 정화시키는지 농업과학기술원이 실험한 결과(1987)에 의하면 질소와 인산은 100% 제거되고, 화학적 산소요구량(COD)은 88%까지 떨어뜨린 것으로 확인 됐다.

    정말 대단하다. 부레옥잠이 어떻게 더러운 물을 깨끗하게 정화시킬 수 있을까? 그 비밀은 부레옥잠의 수염뿌리에 있다. 바로 이 수염뿌리가 물을 더럽게 하는 질소와 인을 흡수하고, 더러운 부유 물질을 걸러 주며 오염 물질을 분해할 수 있는 각종 미생물에게 서식지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 올방개와 부레옥잠이 습지를 지키고 있다.(10월 23일)
    ⓒ 김동식
    부레옥잠과 잘 어울리는 올방개 무리가 꼿꼿이 서 있다. 부레옥잠이 사랑방 손님이라면 올방개는 못을 지키는 주인양반이다. 처음 보는 부레옥잠과는 달리 올방개는 어린 시절 시골연못에서 늘 보던 수생식물이다. 못에 올방개나 고랭이, 골풀, 물꼬챙이골, 줄, 매자기 등이 없었다면 그 정취가 살아 있었을까.

    올방개도 농부들에게는 문제잡초다. 고등식물답게 오랜 세월 인간의 방해와 고살 행위에 노출되면서도 꿋꿋이 살아남은 녀석이다. 그나마 논농사를 짓지 않는 제주에서만 눈총을 받지 않았다.

    ▲ 개펄에 앉아 있는 큰멋쟁이나비와 파리.(10월 23일)
    ⓒ 김동식
    큰멋쟁이나비가 습지에 날아와 앉았다. 못을 덮고 있는 부레옥잠의 파편과 사방에서 흩뿌려 놓은 꽃가루 틈에서 먹이를 움켜쥐고 있는 모습이 여유만만 하다. 이 나비는 아름다운 곳만 찾아 가지 않는 모양이다. 생명이 파닥이는 개펄의 기운을 느낀 것도 같다. 흙반죽이 된 개펄에 찾아와 나른한 오후를 즐길 수 있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나비다. 자세히 보니 파리도 덩달아 자기영역을 확보하고 습지를 더듬고 있다.

    ▲ 꽃이 지고 월동준비에 들어간 부레옥잠.(11월 13일)
    ⓒ 김동식
    21일이 지난 뒤 다시 젓못으로 가봤다. 11월 13일. 가을햇살이 부서지는 늦은 아침. 놀랍게도 수면을 가득 장식했던 식물의 초록파편들이 모두 사라지고 습지의 바닥이 보일 정도로 못의 투명도가 높다. 물 속에는 햇빛을 빨아들이며 붕어마름이 개펄과 뒤엉켜 있다. 큰멋쟁이나비가 앉아 있던 개펄도 물밑으로 가라 앉아 가을하늘을 담고 있다. 부레옥잠 꽃도 모두 지고 없다. 올방개 무리도 월동 준비에 들어간 것 같다.

    오염된 줄 알았던 젓못이 살아 있다. 습지의 속살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자연의 자정능력일까? 생태계의 순환을 제대로 알지 못한 죄 값을 톡톡히 치르는 기분이다. 그래도 가슴 속은 후련하기만 하다.

    ▲ 수면 위로 올라왔던 개펄은 정화되어 가라앉고, 물 속에 서식하고 있는 붕어마름이 관찰됐다.(11월 13일)
    ⓒ 김동식
    '우리들의 습지'를 찾아간 이유

    습지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흔히 습지는 지구상에서 가장 생산적이며 생명력이 왕성한 터전이라 한다. 각종 곤충이나 어류 및 조류의 산란장이며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는 집이다. 수많은 야생 동·식물이 습지에 의존하며 먹고 자란다. 진화를 거듭하며 미래 환경에 적응해 가는 유전자의 텃밭이이기도 하다. 습지는 수질정화기능을 갖고 있다. 자연의 신장(腎臟)이라 불러도 무방하다.

    습지는 생태계의 보고다. 습지가 사라지면 수많은 식물들이 멸종되거나 희귀종으로 남는다. 이 식물에 의존해서 살거나 특별한 공생관계에 있는 곤충들의 설움도 커진다.

    ▲ 늪지대를 형성했다가(위), 20여일만에 투명도가 높은 습지로 변했다.(아래) 개체가 하나였던 부레옥잠이 떠 내려와 두개로 늘었다.
    ⓒ 김동식
    우리나라 습지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훼손된 자연을 복구하는 일은 대단히 어렵고 시간과 비용이 만만찮다. 인간이 알아차릴 때는 이미 많은 것을 잃어버린 후일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남아있는 습지를 보전하기 위한 국가와 사회의 관심과 노력이 중요하다.

    '지구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이아 학설은 환경의 심각성을 일깨워 주는 일종의 경고다. 이 학설대로라면 지구는 자기를 지키기 위해서 인류를 공격할 지도 모른다. 백악기를 점령했던 거대 공룡이 사라졌듯이 인류가 홀로세(충적세)의 공룡이 되지 말란 법도 없다. 그렇게 된다면 정말 큰일이다.

    자연은 자연 속에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 당연히 이름값도 높다. 지금 신음하는 산과 들, 강과 바다의 모습은 지구가 인류에게 보내는 마지막 경고이다. 늦었지만 사라져 가는 '우리들의 습지'를 반갑게 찾아간 이유이다.
    젓못은 제주시 영평하동 자연마을 가까이 있는 습지다. 젓못의 소중함을 확인해 준 문덕일 마을회장은 마을의 애환과 정취가 묻어 있는 이 아름다운 습지를 보호하기 위해 애정을 많이 쏟고 있다고 밝혔다.
    2005-11-22 15:35
    ⓒ 2005 OhmyNews

     
    출처 : 블로그 > ☆만물상 | 글쓴이 : 더듬이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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