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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테네의 패망과 송양지인...))<칼럼사설수필> 2001. 6. 17. 15:35
((아테네의 패망과 송양지인...))
북한상선이 영해를 침범하는가 하면 계속하여 북방한계선(NLL)을 침범, 정치권이 잡음에 휘말리고 있다...
6.15 공동선언 1주년을 전후해 남한 김대중대통령과 현정부가 바라는 김정일의 답방은 아랑곳 하지 않고 여기저기에서 국민의 심기를 어지럽히는 국지적 도발이 잇따르고 있다...
야당에서는 북한상선의 제주해협 통항의 이면합의설을 제기하면서 영해나 NLL을 침범 당하고도 무기력하게 대처했다는 이유로 국방부 관계자를 질책하기도 했다...
더불어 대통령의 사고와 책임자 문책을 요구하는 등 점입가경을 이루고 있다...
이에 정부여당은 (군함이 아닌 상선에게 발포하여 전쟁도 불사하라는 말이냐)며 (군은 영해와 평화를 지키는 책무를 성실히 수행했다)며 반박했다...
한편에서는 금강산 육로관광을 합의하고 남북간에 6.15 1주년 축하메시지를 교환하며 김대통령은 김위원장 답방과 정상회담 정례화에 대해서 발언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어지럽기만 하다...
마치 햇볕정책이 북한의 옷은 벗기지 못하고 남한의 국군과 국민의 정신적 무장해제만 하지 않았는가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게 일고 있다...
이에 역사상 훨씬 부강하고도 후진국이었던 (스파르타에 패망한 아테네의 역사)를 알아 보고 중국 고사에서 너무 양보하다 일을 그르친 (송양지인)에 대해서 알아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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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와 스파르타)
아테네는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현재 그리스 공화국 수도로서의 의미와 고대 도시국가로서의 아테네가 있다...
마치 로마가 현재 이탈리아 수도로서의 의미와 함께 고대 로마제국의 이름인 것과 같다...
고대 그리스는 도시국가인 약 20개의 폴리스 형태로 이뤄진 나라였는데 대표적인 폴리스가 (아테네와 스파르타)였다...
폴리스(도시국가)는 다양한 유형이 있었으나, 가장 전형적인 예는 아테네이며, 그 민주적인 조직은 다른 폴리스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폴리스는 서로 끊임없는 분열 항쟁과 내부의 당파싸움 등으로 BC 4세기에 쇠퇴하기 시작하였는데, 이에 이어지는 헬레니즘 시대의 지적.문화적 기반은 폴리스의 전통에 뿌리박고 있다...
강대국 아테네가 자만에 빠져 후진국인 스파르타에 패망하는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을 알아 보기 전에 역사적 배경을 알아 보자...
BC 5세기 초 그리스는 페르시아 침략을 자주 받았는데 BC 490년 침공은 아테네군 혼자서 마라톤에서 승리했다...
또한 BC 480-470년 침공시는 스파르타 등 다른 폴리스와 연합하여 대항했으나 살라미스해전에서 아테네의 우수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결정적으로 승리했다...
이 해전에 참여한 일반대중들의 발언이 자연 거세져 참정권 확대로 민주정치가 한층 발전했다...
아테네는 그리스 여러 폴리스를 설득하여 델로스동맹을 체결(BC 478)했고 그 때부터 펠로폰네소스 전쟁 개시(BC 431)까지가 (아테네의 황금시대)였다...
경제적 번영을 구가하고 민주정치를 꽃피웠으며 문화가 비약적으로 발전해 그리스 학문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등의 학자와 소포클레스, 에우리피데스, 아리스토파네스 등 극시인도 배출됐다...
파르테논 등 신전 건축도 활발했고 조각 회화등 미술문화도 활짝 꽃피웠다...
더욱이 아테네는 그리스 제1의 해군국으로 델로스동맹 후에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다른 폴리스에 군림했다...
이 시대를 (아테네의 제국시대)로 불리웠고 이 때 아테네의 독재 권력을 행사한 사람이 페리클레스였기 때문에 (페리클레스 시대)라고도 할 정도였다...
교육방법도 개인주의적 민주주의 교육을 중시해 (아테네식 교육)이라고 하며 호전적이고 강력한 군국주의적 교육을 행하던 (스파르타 교육)과 대별되었다...
이에 비해 펠로폰네소스 반도 남부에 위치한 스파르타는 그리스 제1의 육군을 가진 도시국가(폴리스)로서 후진국이었다...
극히 엄격한 국가적 군사교육이 의무화됐던 스파르타는 귀족 평민 노예로 3계급이 있었다...
스파르타인의 모든 교육은 국가적 통제하에 실시됐고 한마디로 출생에서 사망에 이르기까지 국가의 구속을 받았다...
만약 신생아가 허약하면 들판에 버려 죽게 했으며 고통과 결핍을 이긴다는 용맹.인내.애국.복종을 가르쳐 후세에 (스파르타식 교육방법)이라는 칭호까지 얻었다...
마치 지금의 북한식 교육을 연상케 하고 있다...
이에 비해 교육이 민주적이었고 토양이 기름져 문화적 선진국이었던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 후에 스파르타에 대해 물심양면 지원을 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델로스동맹(BC 478)으로 이뤄진 평화체재는 아테네 (페리클레스)의 독재와 아테네의 횡포에 반발한 스타르타 등 다른 도시국가의 반발로 전쟁이 일어났다...
이것이 유명한 펠로폰네소스전쟁(BC 431-404)인데 기존 델로스동맹을 고수하려는 아테네 등 도시국가와 새로운 펠로폰네소스동맹을 내걸은 스파르타 등 도시국가와의 싸움이었다...
이 싸움은 지금부터 2400년 전 아테네와 스파르타간 30년 전쟁인데 (투기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 자세히 기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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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기록된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 자만이 스파르타왕(아르키모다스)의 정교한 시각에 지게 돼 나중에 아테네의 패망과 스파르타의 승리의 근원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먼저 (아테네의 지도자 페리클레스)의 발언을 보자...........
(펠로폰네소스인, 즉 스파르타인은 농민이나 개인도 국가도 가난하고 재정이 궁핍하여 단기전 외에는 장기전이나 해외원정은 해보지 못했다...그들의 최대 약점은 군자금 조달에 있는데 그것을 조달하는데는 시간이 걸리므로 그들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그들의 해군도 요새도 두려워 할 것 없고 우리처럼 해군력이 막강한 나라도 힘든데 해양민족도 아닌 농업국가 스파르타가 무슨 일을 해내겠는가?...)라며 지나친 자만으로 스파르타와의 전쟁을 끌고 간다...
이에 비해 (스파르타왕 아르키모다스)는 다음과 같이 발언했다...
(아테네는 멀리 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해군력이 막강하고 전투경험도 풍부한데다 개인과 국가의 부유함,선박,기병,중무장병 등도 완벽하오...인구도 어느 헬라스보다 많고 많은 속국에서 공세도 많이 거둬 들이고 있소...이런 나라와 어찌 안이하게 전쟁을 할 수 있소...)라며 적인 아테네를 평가하였다...
그러나 지피지기를 잘하여 아테네의 강력함을 갈파했던 스파르타왕 아르키모다스는 (아테네의 토양이 기름진 만큼 그것을 우리가 빼앗으면 손실도 클 것이오...
언제나 적의 과오에 요행을 바라지 말고 적의 계책이 훌륭하다는 가정 아래 준비를 게을리하지 마시오...)라며 스파르타인들에게 개전의 결의를 이끌었다...
아테네의 페리클레스가 지나친 자만심으로 스파르타의 약점만 강조하는데 비해 스파르타왕은 상대의 장점을 잘 알고 그러나 이에 위축되어서는 않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결과는 아테네가 자랑하던 해전에서의 대패로 스파르타의 승리로 끝났다...
아이고스폰타모이 해전에서 스파르타가 대승을 거둔 것이다...
전쟁 전 페르시아의 군자금을 받아 해군력을 강화했던 스파르타는 페리클레스가 자만했던 아테네의 해군 함대를 격파하고 제해권을 장악하여 마침내 아테네의 항복을 받아낸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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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양지인(宋襄之仁)은 지나친 어진 마음을 쓰다가 불행을 자초할 때 쓰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송나라 하남성 양공은 패업의 야망을 품고 있었다...
송(宋)나라의 양공(襄公)은 초(楚)나라와 싸울 때 먼저 강 저쪽에 진을 치고 있었고, 초나라 군사는 이를 공격하고자 강을 건너는 중이었다...
이때 장군 공자목이(公子目夷)가 송양공에게 이르기를 (적이 강을 반쯤 건너왔을 때 공격을 하면 이길 수 있습니다)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송양공은 (그건 정정당당한 싸움이 아니다. 정정당당하게 싸워야 참다운 패자가 될 수 있지 않은가)하면서 듣지 않았다...
강을 건너온 초나라 군사가 진용을 가다듬고 있을 때, 또다시 (적이 미처 진용을 가다듬기 전에 치면 적을 지리멸렬(支離滅裂)시킬 수 있습니라 하고 건의하였으나, 송양공은 (군자는 남이 어려운 처지에 있을 때 괴롭히지 않는 법이다)라며 말을 듣지 않았다...
송나라 군사는 초나라 군사가 강을 건너 대오를 정비할 때까지 수수방관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중과부적인 송의 군사는 초나라 대군을 이기지 못하고 대패했으며 양공도 화살을 맞아 본국으로 송환됐다 이 때의 부상으로 사망했다...
죽기 전 목이의 말을 듣지 않아 패배한 것을 크게 후회했음을 말할 것도 없다...
세상 사람들은 이를 비웃어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고 하였다...
《십팔사략(十八史略)》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즉 (지나친 관용과 양보로 일을 그르치는 어리석음)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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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도 다르고 시대도 다르지만 지금의 남북관계와 비교하면 배워야 할 대목이 하나 둘이 아니다...
남쪽에서는 민족의 동질성을 강조하고 우수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비료소에 각종 지원을 하지만 북한에서는 상선이 영해와 NLL을 침범하는 등 도발이 반복되고 있다...
걸핏하면 문전에 발길질을 하면서 이것저것 빼앗아 가는 격이다...
남북화해와 정상회담을 최고의 치적으로 삼고 싶어하는 김대통령과 현정부의 초조함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북한은 전혀 달라지지 않했는데 각종 지원을 계속하고 김정일 답방까지 반복요구하는 모습을 상당히 보기에 좋지 않다...
우리가 지원하는 각종 물자 등이 나중에 무기로 돌아 오지 말라는 법이 없다...
우리가 지난 3년간 바쳤던 온갖 정성에 비해 얻은 것이 과연 무엇인가?...
기백명 이산가족 상호방문과 금강산 가서 달러 지원해 준 것 외에 실질적으로 무엇이 있다는 말인지?...
현정부가 그처럼 저자세 남북외교를 하지 않을 때도 전쟁은 없었다...
(그러면 전쟁을 하라는 말이냐?)라는 말이 우리 당국자 입에서 자주 쏟아지고 있다...
마치 북한 호전주의자들이 남쪽을 협박할 때 사용하는 소리가 남쪽에서 나올 정도로 저자세로 나와야 할 이유가 무엇인가?...
수백만을 아사시키고도 끄떡 않는 체재이다...
오직 그들은 북한 상층부의 기득권이 유지되는 통일만을 바라고 있음이 명백하다...
김정일 답방도 이제는 국민에게 큰 관심사가 아니다...
너무 그들이 하는 짓거리에 식상해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영해를 마구 침범해도 지켜만 보는 현정부 행태에 민심이 급격히 달아나고 있음도 확연하다...
(2400년 전 강대국 아테네가 후진국 스파르타에 패망한 역사와 송양공이 지나친 양보와 관용을 미덕으로 알다가 전쟁에서 패배한 고사를 남의 일로만 생각할 때가 아닌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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