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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고향역 노래비를 세우자!<칼럼사설수필> 2003. 9. 11. 18:17
나훈아- 고향역 2005.10.09 00:22 <칼럼> 고향역 노래비를 세우자!
코스모스 피어있는 정든 고향역
이뿐이 곱뿐이 모두 나와 반겨주겠지
달려라 고향열차 설레는 가슴 안고
눈감아도 떠오르는 그리운 나의 고향역
코스모스 반겨주는 정든 고향역
다정히 손잡고 고개 마루 넘어서 갈 때
흰머리 날리면서 달려온 어머님을
얼싸안고 바라보았네 멀어진 나의 고향역
인류의 비석문화는 참으로 오래됐다.
익산의 화강암도 상당 부분 비석으로 활용될 정도로 비석문화의 뿌리는 깊다.
한국의 비석은 광개토왕비가 세워진 것으로 보아 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죽은 사람의 사적(事蹟)을 칭송하고 후세에 전하는 문장을 새긴 돌인데 이 글을 금석문(金石文)이라 하여 귀중한 사료(史料)가 된다.
비석의 종류로는 일반인 무덤 상석 우측에 세우는 묘비를 비롯, 임금이나 왕후 무덤에 세우는 능비 등 다양하다.
왕과 고관 무덤 앞이나 길목에 세워 죽은 이를 기리는 신도비(神道碑)와 과거 일이나 업적을 새긴 기적비(紀蹟碑) 및 기념비도 있다.
왕이 천하를 돌며 민정을 시찰하던 풍습을 순수라 하는데 이를 알리는 순수비(巡狩碑)도 있다.
여기에는 확장한 영토와 신라 국경을 표시했던 진흥왕순수비가 유명하다.
외적을 물리치고 국경을 개척하거나 경계를 정할 때 세운 척경비(拓境碑)와 정계비(定界碑)도 있는데 고려 윤관 정계비와 백두산 정계비가 유명하다.
이밖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기리는 정려비(旌閭碑)와 공덕을 알리는 송덕비, 임금의 백성에 대한 사랑을 적은 애민비도 있다.
가난과 질병을 없애고 선정을 펼친 암행어사나 고을 수령의 공덕, 또는 큰 부자의 자선을 기리는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 등 무수하다.
최근 비석문화 범위는 유명 시인과 가수의 시비 및 노래비는 물론 촬영지임을 알리는 영화비까지 훨씬 넓어졌다.
마산시는 산호공원에 이원수의 '고향의 봄' 시비와 노산 이은상의 '가고파' 노래비 등을 세우고 이 일대를 『시의 거리』로 지정하는 한편 11개의 시비와 노래비를 세워 휴식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한다.
또한 조두남의 '선구자' 노래비를 마산역에 세워 자긍심을 기리는 문화공간과 관광자원이 됐다.
목포시는 유달산 기슭에 일제시대 이난영이 불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목포의 눈물' 노래비를 세우고 노래를 들려줘 등반객의 심금을 울리고 있다.
서울시는 삼각지 일대를 '돌아가는 삼각지'를 부른 것을 기리기 위해 '배호 길(路)'로 정하고 노래비도 세웠다.
가수를 위한 최초 도로가 됐으며 관광객들도 적지 않다.
이밖에 '추풍령' 노래비 등 무수하다.
도내에도 정읍시는 현존 유일한 백제 가요로,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가요 중 가장 오래 된 '정읍사(井邑詞)' 노래비와 백제 여인상을 세워 휴식 및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데 정읍사 공원은 면적만도 5만평에 이른다.
부안군도 '신석정 시비'를 세워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등 도내 전역이 시와 노래 또는 영화 등을 기리는 비석을 세우는 추세이다.
익산시도 시조로 유명한 가람 이병기 선생 생가를 복원하여 학생을 비롯한 관광객들의 탐방로로 활용하는 등 적극 대처하고 있다.
이처럼 문화예술이 산업이 되는 시대가 됐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하는 지자체장이 있다면 남원시의 최진영 시장이다.
엄청난 관광객이 다녀가는 기존 춘향전의 광한루 외에 학자의 고증을 거쳐 '흥부마을'과 '변강쇠. 옹녀 마을'까지 세웠고 동편제 판소리를 관광에 적극 활용한다는 전언이다.
역시 젊고 신선하며 마인드가 열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본보가 최근 '익산시 황등역'이 나훈아가 70년대 초 불러 국민 애창곡이 된 '고향역'의 무대였음을 밝혔다.
우리나라 대표적 작곡가 임종수 선생(61)이 남성중 시절 황등역을 오가며 배고픔과 고향 순창에 대한 향수, 그리고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코스모스에 담아 작사. 작곡한 노래임이 알려졌다.
70년대 산업화의 대열에서 소외된 농민의 무작정 상경과 빚에 내몰린 야반도주는 유명하다.
산업화와 고속성장기에 고향 떠난 이들의 망향의 노래는 당시 대중음악의 중요한 메뉴였는데 '고향역'은 이 가운데 대표적인 노래이다.
여기에는 역사 입구에 소공원과 노래비를 세우고 '황등역의 고향역 지정'과 함께 영화촬영 등 다양한 개발 방안이 모색될 수 있다.
더욱이 일제가 조선총독부를 이곳에서 나온 '황등 돌'로 세웠을 만큼 황등 지역은 국내 최대. 양질의 화강암 생산지이다.
황등 돌을 활용한 '고향역' 노래비와 소공원 건립을 적극 추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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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임......제2사회부장, 고재홍
(제목) '고향역' 노래비를 세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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