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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12.12 또 다른 사건,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칼럼사설수필> 2023. 12. 18. 09:32
<칼럼> 12.12 또 다른 사건,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1979년 12월 12일’. 서울에서 대학 다닐 때다. 느닷없이 저녁에 버스·택시가 막히고 정체됐다. 다음 날, 정승화 참모총장 체포를 알게 됐다. 총장 체포와 도로 정체 연관성도 모를 때다.
정 총장은 대통령 재가도 없이 총격전 끝에 체포됐다. 국방부·육군본부 무력 점거 등 군사반란은 훗날 알게 됐다. 이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이 1천만 관객을 내다본다. 아군끼리 유혈사태가 벌어졌다. 신군부는 12.12 ‘군권 장악’을 거쳐 5.17 계엄 확대와 광주민주화운동 유혈진압 등 ‘정권 장악‘ 시나리오를 통해 권력을 탈취했다.
‘1993년 12월 12일’. 국민은 12.12. 또 다른 엄청난 사건은 잘 모른다. ‘백제금동대향로 발굴‘이다.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됐다. 1971년 공주 송산리 고분 배수로 정비 중 발견된 ’무령왕릉 발굴’ 및 2009년 ‘익산 미륵사지 서탑 사리장엄 발굴’과 함께 백제 3대 발굴이다.
‘무령왕릉’은 피장자가 사마왕(무령왕)인 것과 축조연대가 파악된 왕릉이다. 중국 남조 영향인 듯 휘황찬란한 벽돌무덤(전축분)이 완벽 발굴됐다. 부장품 다수가 국보로 지정됐다. 국립공주박물관은 2021년, ‘무령왕릉 발굴 50년’ 특별전을 개최하고, 기념 도록도 발간했다.
2009년, “깨끗한 재물을 희사해 가람(미륵사)를 세웠다.”는 사리장엄 봉안(영)기 명문 기록으로 신라 선화공주는 허구였음도 드러났다. “사택왕후가 성은 사택, 이름은 선화인 ‘사택선화’였음과 서동은 경주가 아닌 부여에서 서동요를 유포시킨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수많은 전란으로 사료가 부족해 구전을 기록한 삼국유사가 사리장엄 명문에 설 자리를 잃게 됐다.
공주(웅진) 공산성·무령왕릉 등 송산리고분군, 부여(사비) 부소산성·능산리고분군·정림사지석탑 등으로 ‘국립공주박물관·국립부여박물관’은 오래전 개관됐다. 사택왕후가 남긴 사리장엄 유물로 ‘국립익산박물관’도 탄생했다. 국보 지정 전 단계로 보물 제1991호로 지정됐다.
백제 초·중엽 첫 수도로 21대 개로왕까지 493년 가장 긴 시대 ‘한성백제박물관’만 서울 시립이다. 장수왕은 475년 위례성(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하고 궁궐을 방화·파괴한 후, 한강 유역을 차지한다.
이 때까지 493년 ‘한성 백제‘ 수도가 서울 송파구 일대다. 방화·약탈로 남은 것이 없으니 한성백제박물관만 시립이다. 유물·유적은 박물·전시관에 매우 중요하다.
국립부여박물관은 국보 제287호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을 맞아 내년 2월 12일까지 ‘백제금동대향로 3.0-향을 사르다’ 특별전을 개최한다. 같은 명칭의 기념 도록도 발간했다.
핵심 내용만 발췌하자.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보 중의 국보, 백제 문화의 정수, 동아시아 최고 향로’다. ‘1993년 12월 12일’ 추운 날씨였다. 국립부여박물관 조사단은 능산리 절터에서 엄청난 유물을 마주한다. 사비시대 백제 왕릉군인 부여왕릉원(능산리 고분군) 서쪽 골짜기 능산리 절터에서 발굴됐다. 백제금동대향로다.
부여왕릉원과 모형전시관 관광객 주차장 조성과정에 능산리 절터 존재가 확인됐다. 패망으로 유물·유적이 많지 않은 백제사에 엄청난 사건이다. 이후 11 차례 발굴로 1탑1금당 중심 사역(사찰 영역)과 사역 외곽 공방지 등이 확인됐다. 시주자가 사망한 왕의 명복을 비는 원찰願刹로 추정됐다.
더욱 1995년 4차 조사에서 ‘창왕명 석조사리감昌王銘 石造舍利龕’도 발견됐다. 화강암 감실 양쪽에 예서체 글자가 10자씩 새겨졌다.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 사리감’이란 명칭으로 국보 제288호로 지정됐다. 554년 관산성(충북 옥천) 전투에서 신라군에 살해된 성왕의 딸이자, 위덕왕 누이인 ‘형兄 공주’가 567년 사리(감)를 봉안했다.
백제금동대향로는 국립부여박물관이 1993년 진행한 2차 발굴조사 중 능산리 절터 서쪽 공방지 내 아궁이에서 출토됐다. 금동대향로는 몸통과 뚜껑이 분리돼 발굴됐다. 향로 위에 겹겹이 쌓인 기와 조각은 향로를 고의로 묻은 것으로 파악된다. 위급 상황에 금동대향로를 숨긴 것이 연상된다.
연말을 맞아 1979년 12월 12일을 다룬 ‘서울의 봄’도 관람하자. 주말에는 1993년 12월 12일 대 발굴 사건인 ‘백제금동대향로 발굴 30주년 기념 특별전’을 국립부여박물관에서 관람이 어떨까 싶다. 부소산성과 정림사지(박물관), 능산리고분군 등을 자녀와 함께 돌아보면 양대 12.12 사건을 알아보는데 많은 도움이 될 듯하다./편집국장 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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