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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럼> 전주 중화산동의 추억~
    <칼럼사설수필> 2013. 12. 9. 07:17

     

     

     

     

     

    <칼럼> 전주 중화산동의 추억~

     

     

     

    벌써 겨울의 문턱인 12월이다.

     

     

    ‘황금의 시대’나 ‘지구의 종말’이 오지 않을까 착각했던 21세기 도래를 기념하는 ‘밀레니엄(millennium)’이란 말을 따가울 정도로 들었던 서기 2천년이 엊그제다.

     

     

     


    서울에서 1980년대 말 전주에 내려온 후, 만 22년을 전주 중화산동에서 살게 됐다.

     

     

    전주를 전혀 모르고 내려 왔으나 이제 도내 구석구석 다녀봤다.

     

     

    출향인으로 서울의 삶과 달리 ‘등 굽은 나무 선산 지키듯’ 자부심과 자격지심이 교차한다.

     

     

     

     

     

     


    처음 우아동에 살았다.

     

     

    도심 전주역이 전라선 철도이설로 지금의 전주역에 옮겨졌고, 6지구와 우아동의 택지개발로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버님이 살고 계신 고향, 변산반도에 가려면 우아동에서 전주 도심을 관통하느라 30분이 걸린다.

     

     

    때문에 ‘여우가 고향에 머리를 두듯’ '전북정치 1번지' 완산 갑구 중화산동에 1991년 정착한다.

     

     

     

     

     


    특히 중화요리가 연상되는 중화산동(中華山洞)이란 이름도 맘에 들었다.

     

     

    네 자나 돼 관심을 끌었지만, ‘中華’는 중국인이 자기 나라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말 아닌가?

     

     

    ‘中山’도 신해혁명으로 청황조를 몰락시키고 동아시아 최초 공화정인 중화민국을 건국했던 손문의 별명이 아닌가?

     

     

    자연 “중국 화교(?)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이라고 착각했다.

     

     

    예수병원 옆을 지나다 보니 ‘중국어학원’도 있는 것이 아닌가?

     

     

    훗날 전혀 사실무근임을 알게 됐지만 당시에는 “화교가 많이 산다는 내 판단이 옳았구나(?)”라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선(서원)너머 미나리꽝 한복판에 세워진 아파트로 이사한 지 22년째다.

     

     

    사회부와 경제부, 정치부 및 완주, 정읍, 군산, 서울 등지를 전전하다 전주는 살면서 알게 되니 출퇴근이 가능하고 ‘전북 제2의 도시’인 익산시를 정통해 보자고 결심한다.

     

     

    미륵사지와 왕궁탑 등 마한. 백제문화도 생소했지만 관심을 끌었다.

     

     

    13년째이니 익산이 '제2의 고향'일 정도다.

     

     

     

     

     

     


    전주에서 익산 가는 길은 처음 중화산동 논길을 가로질러 팔달로와 번영로를 이용하다가 서부우회도로가 개통돼 번갈아 이용했다.

     

     

    이후 화산택지개발로 백제로가 연결돼 익산 가는 길이 쉬워졌고, 걸어서 5분 거리에 신도청이 들어서 미나리꽝에는 온갖 문화시설과 음식점 및 편의시설이 총집중된 명실공히 '전북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천변로와 전군산업도로에 전주서부국도대체도로도 준공돼 익산을 오가는 길이 바뀌고, 번영로 벚꽃이나 삼례~금마간 옛날 국도는 남의 일이 됐다.

     

     

    이서교차로를 통해 전주국도대체도로에 진입하면 동익산까지 20여 분에 갈 수 있다.

     

     

     

     

     

    그간 전북과 전주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출퇴근하며 보는 것이 ‘전주. 완주혁신도시’ 조성현장이다.

     

     

    참여정부 시절, 지역균형을 위해 토지공사 등이 입주키로 했으나 토공과 주공이 LH로 통합을 거쳐 진주 일괄배치로 도민의 실망감은 컸다.

     

     

     


    정치인만 내년 지방선거가 추후 총선과 대선에 미칠 영향 때문인지, 안철수 신당 때문인지 신문방송에 얼굴을 자주 내민다.

     

     

    공천 받고도 떨어지는 극소수 정치인이나 오랜 국회의원 생활 후 공천탈락으로 정치를 그만 둔 사람은 어김없이 한양으로 올라간다.

     

     

    대부분 도내 국회의원도 선거철만 되면 공천장과 금배지를 바꿔갈 뿐 야당이나 여당, 다시 야당 시절 해 놓은 일이 없다.

     

     

    몰표 덕분에 자신들만 출세했다.

     

     

    언론플레이만 능수능란하게 잘하는 정치인일수록 지역발전에는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이들도 중화산동에서 잘나가던 어떤 정치인이 공천 받고 낙선 후 발버둥 치다 한양으로 올라간 수순을 밟을 것이다.

     

     

     

     

     

     


    그러나 ‘공천=몰표(?)’ 공식도 깨질 조짐이다.

     

     

    대선 일 년이 되도록 진저리 치게 싸우는 것은 올해뿐이 아니다.

     

     

    한국정치의 일상이다.

     

     

    말로만 국민이요, 민생이지 국민 눈에는 밥그릇 싸움일 뿐이다.

     

     

    도민도 자각하기 시작했다.

     

     

    낙후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는 여론이다.

     

     

     

    ‘미워도 다시 한 번‘과 ’미운 놈에 떡 하나 더 준다‘는 말 대신에 ’미운 놈은 과감히 뺨을 때리겠다’는 의식변화다.

     

     

    지역정치권의 책임이 가장 크다고 아니할 수 없다./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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