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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
    논술(설.문)독서도서詩소설수필연설 2008. 6. 26. 09:15

     

     

     

    [2008 책읽는 대한민국]배낭 속 한 권의 책, 여행이 풍요로워집니다


     


    ‘2008 책 읽는 대한민국’ 네 번째 시리즈가 23일 즐거운 독서 여행의 닻을 올렸다.
     
     

     

    이번 주제는 휴가철에 어울리는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으로, 인기 있는 여행기()로 이름난 국내 여행작가 10명이 30권을 직접 골랐다.

     

     

     

    추천 작가들은 권삼윤 김남희 김연미 김완준 박준 양영훈 오영욱 유연태 이병률 조창완 씨.

     

    국내외에서 다양한 여행을 체험한 이들은 ‘여행 때 꼭 지니고 다니는 책이나 여행과 연관해 특별한 기억이 있는 책’을 3권씩 추천했다.

     

     

     

    다양한 여행작가들이 참여한 만큼 선정 도서도 골고루 버무려졌다.

     

    여행 관련 책도 여럿이었고 사진이나 자연을 다룬 책도 눈에 띄었다.

     

    문학이나 과학, 경영 분야의 책도 많았다.

     

     

     

    ●유럽으로 아시아로…자신의 체험이 빼곡한 책 추천

     

     

     

    이번 선정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솔직한 여행 체험이 배여 있는 책이 많다는 점이다.

     

     ‘도보여행가’로 유명한 김남희 씨는 3권 모두 지난해 스페인 여행 시절 읽었던 책을 추천했다. 마드리드에서 소매치기당하고 “천애 고아가 된 심정”으로 읽었다는 무라카미 하루키의 ‘먼 북소리’, 바르셀로나에서 들고 다닌 프랑스 철학자의 미국 여행기와 한국에서 스페인으로 보내온 알래스카에 관한 책이다.

     

     

     

    ‘연인들의 달콤한 로맨틱 여행’ 등을 쓴 김연미 씨는 “가이드북과 읽을 만한 책 한 권 말곤 넣고 싶어도 무게가 감당 안 된다”는 솔직함을 보여줬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방법은 여행객들과 책 바꿔 읽기.

     

    태국의 어느 민박집에 한국인이 두고 간 ‘빨강머리 앤’이나 같이 여행하던 선배에게 빌려 읽은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등을 추천했다.

     

     

     

    중국여행 전문가 조창완 씨는 3권 모두 책 속에 등장하는 여행지를 직접 가본 것으로 꼽았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이나 ‘삼국지 경영학’은 저자와 함께 현지답사를 했다.

     

     ‘아리랑,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은 관련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했던 경험을 떠올렸다.

     

     

     

    권삼윤 작가도 비슷한 경우다.

     

    인도를 여행하며 오쇼 라즈니시의 ‘삶의 길 흰 구름의 길’을 읽었고, 그리스 여행 때는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을 배낭에 넣었다.

     

    1980년대 중반 영국문화원에서 알게 된 영국 여성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의 책은 여행 중 만나게 되면 꼭 구입한다.

     

     

     

    ●문학부터 여행기 철학까지 근사 한 책 만찬

     

     

     

    여행작가 느낌이 물씬한 책 선정도 눈에 띈다.

     

    시인이기도 한 김완준 씨는 모두 여행기를 꼽았다.

     

    1만2000km가 넘는 실크로드를 걸어서 횡단한 프랑스 작가 베르나르 올리비에나 ‘서구 최고 여행작가’라 불리는 빌 브라이슨의 미국 애팔래치아 트레일 도전기, 소설가 김훈 씨의 자전거 여행기 등을 추천했다.

     

     

     

    여행사진을 근사하게 남기고픈 이들에게 도움 될 책도 있다.

     

    ‘색다른 여행’ ‘똑똑한 여행 책’ 등을 쓴 양영훈 씨는 ‘뛰어난 자연 사진의 모든 것’을, 유연태 씨는 ‘여행 사진을 잘 만드는 비결’을 추천했다.

     

    둘 다 ‘한국의 야생화’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 여행’ 등을 추천해 자연에 관심 많은 여행가의 면모를 드러냈다.

     

     

     

    여행길 마음에 남을 문학을 소개한 이도 많았다.

     

    베스트셀러 여행 산문집 ‘끌림’의 저자인 이병률 시인은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와 소설 ‘섬’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추천했다.이

     

    시인은 “(이런 책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은 분명 행복이다”라고 말했다.

     

     

     

    건축을 전공해 ‘오기사’란 필명으로 더 알려진 오영욱 씨도 최근 태국 휴가 때 읽은 소설 ‘스타일’ 등을 배낭 친구로 꼽았다.

     

     

    다큐멘터리 감독이기도 한 박준 씨는 “여행길에 손닿는 곳에 놓여만 있어도 기분 좋은 책”이라며 ‘책그림책’과 ‘마음의 여행자’ 등을 추천했다.

     

     

     

     

    정양환 기자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
    순서 책 이름 지은이 순서 책 이름 지은이
    1 여행사진을 잘 만드는 비결 로버트 카푸토 16 허시명의 주당천리 허시명
    2 나를 부르는 숲 빌 브라이슨 17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 여행 고규홍
    3 삶의 길 흰 구름의 길 오쇼 라즈니시 18 스타일 백영옥
    4 먼 북소리 무라카미 하루키 19 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유
    5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 올리버 색스 20 아리랑,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 님 웨일스
    6 마음의 여행자 한스 크루파 21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 호시노 미치오
    7 뛰어난 자연사진의 모든 것 존 쇼 22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8 시오노 나나미의 세 도시 이야기1∼3 시오노 나나미 23 나는 걷는다 베르나르 올리비에
    9 장 그르니에 24 사진가의 여행법 진동선
    10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고미숙 25 한국의 야생화 이유미
    11 영혼의 자서전 니코스 카잔차키스 26 그녀에게 말하다, 김혜리가 만난 사람 김혜리
    12 아메리칸 버티고 베르나르 앙리 레비 27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 케네스 벤디더
    13 빨강머리 앤 루시 모드 몽고메리 28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마종기
    14 자전거 여행 김훈 29 삼국지 경영학 최우석
    15 책그림책 밀란 쿤데라 등 30 정열의 방랑자, 프레야 스타크 제인 플레처 제니스
    게재순서는 사정에 따라 바뀔 수 있습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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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여행사진을 잘…


     


    ◇여행사진을 잘 만드는 비결/로버트 카푸토 지음/청어람 미디어

     

     

     

    《‘호텔방에 틀어박혀서는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늘 기억하라. 인생과 마찬가지로 사진 역시 밖으로 나가서 탐험하는 것이다.’》

     

     

     

     

     

    을 열고 여행지의 속살을 느껴라

     

     

     

    해외여행의 보편화와 디지털 기기의 획기적인 보급으로 여행 사진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늘고 있다.

     

     

     

    하지만 이국의 야경이나 멋들어진 자연 풍경 앞에서 일명 ‘똑딱이 카메라’(소형 디지털 카메라)를 열심히 누르다 상심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여행지에서 느낀 감동을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했을 때의 안타까움을 느껴본 이들이라면 이 책은 반가운 여행 동반자가 되어 줄 것 같다.

     

     

     

    내셔널지오그래픽 사진가로 24년간 전 세계를 돌아다닌 저자는 훌륭한 여행 사진을 찍기 위한 방법을 준비부터 마무리 단계에 이르기까지 세심하게 소개한다.

     

     

     

    베테랑 여행가이기도 한 그의 노하우들을 읽어 가다 보면 사진을 잘 찍는 방법이 여행을 잘하는 방법과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된다.

     

     

     

    좋은 여행사진을 위해선 철저한 사전 조사가 필요하다.

     

    현장에 대한 조사를 통해 그 지역의 특색과 현장감을 극대화한 사진을 연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방문하려는 곳의 문학작품을 읽어 그 장소의 정수를 이해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여행을 하기 전 우리가 일반적으로 거치는 준비 작업이 이와 다르지 않다.

     

     

     

    현장에 도착해서는 모든 세부적인 것을 예민하게 느끼라고 한다. 길을 잃고 헤매도 좋고 어슬렁거리며 골목길도 걸어본다.

     

    가능한 한 혼자 다녀보는 것도 좋다. 오감을 열고 여행 지역의 첫 인상을 기억한다.

     

     

     

    낯선 곳에서 삶의 리듬을 찾아내고 호텔 직원, 경찰, 웨이터 등 현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눠본다.

     

     

     

    그러다 보면 어느 골목길에서 엄청난 ‘행운’을 만나게 될 수 있다.

     

    짜인 관광코스를 벗어나라는 주문은 누구에게나 유효할 것이다.

     

     

     

    피사체를 대할 때 수줍어하지 않는 것, 방문 지역의 문화에 세심해져 그곳을 파고드는 것, 내가 찍고 있는 지역의 특징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사진가뿐 아니라 여행자 모두에게 필요한 태도다.

     

     

     

    사진 장비에 대해서 저자는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 장비가 사진을 만들어 주는 것은 아니다’라는 원칙을 고수한다.

     

    자신이 원하는 사진을 찍기 위해 어떤 카메라와 장비가 필요한지 살피고 꼭 필요한 것만 챙기라는 것.

     

    주제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렌즈의 종류와 조리개 값, 셔터 속도, 조명의 종류 역시 상세히 설명한다.

     

     

     

    초보자를 위한 개론서 수준을 넘어서지만 실제 사진을 예로 두고 설명하기 때문에 읽는 재미가 있다.

     

     

     

    사진가들이 찍은 멋진 여행 사진이 가득 실려 있는 것은 빠질 수 없는 장점이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 작가 양영훈 씨는 “좋은 사진에 욕심이 많은 직업의 특성상 사진 촬영 가이드북은 빠짐없이 구입하는데 이 책은 실제 현장을 보는 듯한 사진이 가득하다는 점이 매력”이라며 “저자가 촬영한 풍경사진에 대한 꼼꼼한 설명도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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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나를 부르는 숲


     


    ◇나를 부르는 숲/빌 브라이슨 지음·동아일보사
     
     

     

     

     

    《“애팔래치아 트레일에 있을 때는 숲이야말로 무한한, 그리고 온전한 우주였다. 매일매일 경험하는 것이니까. 실제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것이기도 하다.… 그러나 트레일에서 내려오면, 얼마나 기만을 당했는지 깨닫게 된다. 여기서는, 산과 숲은 단지 배경일 뿐이다. 끔찍한 상업적 세계의 끝도 없이 펼쳐진 현란함만이 존재한다. 제기랄, 흉측하네.”》

     

     

     

    배불뚝이 중년 3400㎞ 애팔래치아 도전기

     

     

     

    빌 브라이슨은 질투 나는 글쟁이다.

     

    어떤 종류건 글 쓰는 이라면 탄성과 시샘이 무심코 우러난다.

     

     유머 넘치고 내용 풍부하고 쫀득한 글맛까지. 이 책을 추천한 김완준 작가의 표현대로 “인생에 대한 자신만의 철학, 사물과 인간에 대한 남다른 직관력, 상황과 풍경을 생생하게 재현해내는 뛰어난 문장력을 지닌 현존하는 최고의 여행 작가 중 한 사람”이다.

     

     

     

    ‘나를 부르는 숲’은 그런 저자의 매력이 활짝 피어오른 대표작.

     

    미국인이지만 수십 년간 영국에 머물렀던 저자가 귀향해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에 나선 여행기다.

     

    여기서 ‘트레일(trail)’은 사전에선 길이란 뜻이지만 산길처럼 포장되지 않은 길을 도보로 이동하는 걸 말한다.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무려 3400km가량의 거리.

     

    중년에 등산초보, 배까지 나온 아저씨가 ‘겁도 없이’ 도전을 감행한다.

     

     

     

    어떤 배낭을 메야 할지도 모르는 저자가 이런 험난한 길에 나선 이유는 뭘까. “게을러 터졌던 수년간의 생활을 바로잡을 기회다.

     

    20년간 외국에서 생활하다 돌아왔으니 조국의 장관에 몰입하는 건 명분도 있지 않은가.

     

    잘 깎은 화강암과 같은 눈매로 지평선을 응시하며 걸걸한 목소리로 ‘그래, 숲 속에서 단숨에 해치웠지’라고 일갈할 뭔가도 필요했다. …

     

    (무엇보다) 풍성한 수종을 자랑하는 위대한 숲은, 지금 위기에 빠져 있다.

     

    이미 나무들은 놀라운 속도로 죽어간다.

     

    애팔래치아 산맥의 아름다움을 경험하려면 지금이 적기다.”

     

     

     

    하지만 트레일은 시작부터 엉망이었다.

     

    저자도 저자지만 동행한 친구 카츠가 더 문제였다. 고등학교 친구지만 25년 넘게 데면데면했던 사이.

     

    게다가 한때 알코올중독이었고, 덩치는 늘어진 곰이다.

     

    아니나 다를까, 카츠는 종주 첫날부터 무겁다며 필수용품은 물론이고 먹을 것까지 숲에다 내던져버리는 용감무쌍함(?)을 보여줬다.

     

     

     

    스포일러 짓을 하자면, 이 두 양반 끝까지 완주하진 못한다.

     

    하지만 며칠 못 갈 것 같던 첫 예상과 달리, 장장 1392km나 되는 엄청난 거리를 걸어갔다.

     

    물론 중간에 히치하이킹도 하고 마을에서 며칠씩 놀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요즘 산을 쳐다볼 때마다 나는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도려낸 화강암 같은 눈을 가늘게 뜨며 천천히 음미하면서 바라본다.

     

    우린 다 걷지 못한 게 사실이지만, 여기에 한 가지 유념해야 할 게 있다.

     

    우린 시도했다.

     

    카츠의 말이 옳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개의치 않는다.

     

    우린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걸었다.”

     

     

    저자의 매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웃음이 터져 나오는 여행기 곳곳에 저자는 미국 자연보호정책의 맹점이나 관광산업에서 드러난 허울을 야무지게 꼬집는다.

     

    그것도 전혀 어색하지 않게.

     

    이는 저자의 멋들어진 장기로 ‘읽어보지 않았으면 말을 마세요’란 얘기가 절로 나온다.

     

    ‘발칙한 유럽 산책’(21세기북스) ‘빌 브라이슨의 재밌는 세상’(추수밭) ‘거의 모든 것의 역사’(까치) 등 그의 다른 책들도 놓치면 아쉽다.

     

    원제 ‘A Walk in the Woods’.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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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3>주말이…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여행/고규홍 지음/터치아트

     

    《“나무에는 사람살이가 깃들어 있게 마련이다. 사람보다 오래, 사람의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까닭이다. 몇백 년 정도 살아온 나무들은 바로 곁에서 일어났던 사람살이의 모든 것을 지켜보았을 게다. 나무 아래에서 옛사람들을 추억하는 것은 그런 뜻에서 새롭다. 달리 이야기하면, 사람들의 삶 안에서는 나무 없이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나무 보러 가자는 이야기다. 나무 중에서도 나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뜻하는 노거수()를 만나 보자는 이야기다.

     

    전국의 노거수는 260그루. 코스마다 다섯 그루씩 나무 여행 52코스를 소개했다.

     

     

     

    방방곡곡에 나무 없는 곳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무의 진짜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은 별로 없음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이 알토란 같은 나무 여행 가이드를 내기까지 9년이 걸렸다.

     

    그동안 저자는 전국의 나무를 찾아다녔다.

     

    나무에 얽힌 역사를 꼼꼼히 기록하고 쉬운 말로 풀어냈다.

     

     

     

    나무 소개와 별도로 나무 찾아가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줘 다음 나무까지 가는 길과 거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집에서 편히 앉아 읽을 책이 아니다.

     

    책을 손에 쥔 독자, 이미 길을 떠나고 있어야 한다.

     

    나무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도 실어 이 책만 있으면 전국 어느 나무라도 쉽게 찾을 듯하다.

     

     

     

    명산 설악산에서 명품 나무 낙산사 소나무(강원 양양군)를 만난다.

     

    의상 대사가 수도했다는 절벽 위에 세워진 의상대. 볼거리는 의상대만이 아니다.

     

    “동해로 펼쳐지는 푸른 기상의 의상대 앞 절벽 쪽에 독야청청 푸름을 자랑하는 소나무 한 그루가 있다.

     

    이른 아침 동해를 붉게 물들이며 떠오른 태양의 기운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이 땅의 푸른 나무다.”

     

     

     

    강원 삼척시에는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1345∼1394)의 최후를 지킨 나무가 꿋꿋이 서 있다.

     

    천연기념물 363호로, 키가 20m에 이르고 둘레가 5.2m에 이르는 마을의 수호신이다.

     

    이 나무가 있는 곳은 공양왕이 죽기 직전 살았던 집이 있던 자리.

     

    공양왕은 나라를 잃은 뒤 강원도 원주로 추방됐는데 위협을 피해 이곳까지 왔다가 살해당했다.

     

    나무는 600년 전 고려 마지막 임금의 최후를 목격했으리라.

     

     

     

    경남 하동군에서는 신라 대학자 최치원이 심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나무를 만난다.

     

     “최치원은 세속 번거로움을 버리고 산으로 들어가면서 자신의 지팡이를 개울가에 꽂아 두고는 이 지팡이가 나무로 살아 자라나면 자신도 어디엔가 살아 있을 것이고 나무가 죽으면 자신도 죽은 것으로 알라고 말했다.”

     

    저자는 “아무리 많이 봐도 400세쯤밖에 안 보이지만 옛사람의 이야기를 빌려 나무를 소중히 지키려는 마을 사람들의 정성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저자가 찾아다닌 건 나무 그 자체가 아니라 나무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이리라.

     

     

     

    여행작가 유연태 씨는 이 책을 추천한 이유로 “이 책을 보고 나서야 마을 입구마다 오랜 세월 풍상을 이겨내면서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는 보호수들의 내력과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절집, 돌탑만 우리 문화유산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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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4>아내를 모자로…


     

     

     


    ◇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올리버 색스 지음/이마고
     

     

    《정신(심리)과 물질(육체)은 서로 다른 영역이다. 둘 사이에는 뛰어넘기 어려운 벽이 필연적으로 존재한다. 이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두 영역을 동시적으로 다루고 분리할 수 없도록 결합시켜 실행하는 연구가 가능하다면 범주가 서로 다른 그 두 영역을 접근시키는 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다양한 이웃 인정하고 이해하는 삶

     

     

     

    올리버 색스는 참 고마운 존재다.

     

    신경학 전문의인 그는 흔치 않은 ‘글 잘 쓰는’ 과학자다.

     

    ‘의학의 계관시인(poet laureate)’(뉴욕타임스)이란 별명이 어색하지 않다.

     

    국내 출간된 또 다른 책, ‘화성의 인류학자’(바다출판사) ‘색맹의 섬’(이마고) 등도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자는 단지 필력만 뛰어난 과학자가 아니다. 환자를 인간으로 대하는 훌륭한 의사이다.

     

    그는 환자를 볼 때 질병에만 관심 갖지 않는다.

     

    ‘인간이라는 주체 즉 고뇌하고 고통 받고 병과 맞서 싸우는 주체’를 보려 한다.

     

    병의 치료보다 인간을 돕는 것이 의사의 주된 임무라고 생각한다.

     

     

     

    “고차적인 신경학과 심리학 연구에서는 환자를 인간 자체로서 대단히 중시한다.

     

    환자를 치료하려면 환자의 인간적인 존재 전체를 근본적으로 문제 삼아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분야에서는 병의 연구와 그 사람의 주체성에 대한 연구가 분리될 수 없다.”

     

     

     

    그의 치료 방식은 ‘익살꾼 틱 레이’에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레이는 다큐멘터리나 미국드라마 덕분에 국내에도 꽤 알려진 ‘투렛 증후군’ 환자다.

     

    투렛 증후군은 도파민 과잉 등으로 갑작스러운 발작, 돌발 행동이나 욕설을 무의식적으로 표출하는 병. 레이는 다행히 도파민 대항제 ‘할돌’을 투여하면 투렛 현상이 멈췄다.

     

     

     

    일반 의사라면 이쯤에서 치료가 끝났을 터. 하지만 저자는 외적 질환을 고쳤어도 레이가 마음의 병을 얻었음을 알아봤다.

     

    사실 병은 오래도록 그를 괴롭혔지만 장점도 있었다.

     

    투렛 증상 충동으로 두들기던 드럼은 수준급의 재즈 연주로 발전해 인기를 모았다.

     

    남들보다 매서운 반사신경은 탁구에서 빛을 발했다.

     

    하지만 약물 투여 뒤 레이는 평범해졌다.

     

    무엇보다 병을 앓는 동안 형성됐던 그의 유머와 사나이다움, 강한 정신력이 무뎌졌다.

     

     

     

    그렇다고 회사마다 해고당하는 원인이 된 질병을 내버려둘 수도 없는 일. 저자와 환자의 결론은 ‘주중엔 약물 투여, 주말엔 중지’였다.

     

    레이는 이후 평일엔 ‘진지하고 차분한 시민’으로, 휴일엔 ‘경박하고 열광적이고 영감에 가득 찬 인물’로 이중생활을 한다.

     

     

     

    “(여전히) 레이는 투렛 증후군 환자이며 할돌의 투여로 인공적인 균형을 강요당하고 그로 인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지만, 그러한 상황을 적절하게 극복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향수하는 자연 그대로의 자유라는 생득권을 빼앗겼는데도 그는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다.

     

    그는 자신의 병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고 어떤 의미로는 그것을 극복했다.”

     

     

     

    이 밖에도 책에는 참으로 많은 희한한 환자가 등장한다.

     

    그들의 병은 완치하기도 실패하기도 한다.

     

    표제로 등장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는 ‘시각 인식 불능증’에 걸린 환자로 치료 자체가 어려웠다.

     

    하지만 이 책을 추천한 김연미 작가는 이 책을 통해 “그런 다양한 타자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었다”고 말했다.

     

    여행 역시, 그런 만남을 위해 떠나는 것 아닌가.

     

    ‘아내를 모자로…’가 여행길, 근사한 배낭 속 친구로 어울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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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5>먼 북소리



    ◇먼 북소리/무라카미 하루키 지음·문학사상사

    《“어느 날 아침 눈을 뜨고 귀를 기울여 보니 어디선가 북소리가 들려왔다. 아득히 먼 곳에서, 아득히 먼 시간 속에서 그 북소리는 울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 동안 나는 왠지 긴 여행을 떠나야만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3년의 여행길서 만난 유럽-유럽인

    작가는 어느 날 문득 긴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여행을 떠나기에 이보다 더 설득력 있는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그럴듯한 이유라고 한다면 그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일본에 그대로 있다가는 일상생활에 얽매여서 속절없이 나이만 먹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그래서 그는 키우던 고양이 두 마리를 아는 사람에게 맡기고 아내와 함께 훌쩍 떠났다.
     
    1986년 가을 이탈리아 로마에서 시작한 3년 동안의 여행은 그리스의 아테네와 스페체스 섬, 미코노스 섬을 거쳐 오스트리아로 이어졌다.
     
     


    그의 여행은 우리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여행과는 달랐다.
     
    관광지를 둘러보는 여행이 아니라 한 곳에 몇 달씩 머무르며 현지인처럼 생활하는 것이었다.
     
    작가는 스스로를 “관광객도 아닌, 뿌리를 내리고 사는 사람도 아닌 상주하는 여행자였다”고 규정했다.
     
    그는 낯선 곳에서 맞닥뜨린 이국적 풍경을 특유의 치밀한 시각과 경쾌한 문체로 책에 고스란히 옮겼다.

    그리스의 스페체스 섬으로 가는 배를 놓고 그는 “영화 ‘해저 2만 리’에 나오는 노틸러스호처럼 시대에 뒤떨어진 전위적인 스타일에다, 성깔 있는 수생동물처럼 다리를 삐죽 내밀고 바다 위를 질주하는 광경은 기분 나쁘기까지 하다”고 묘사한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분간할 수 없을 정도로 축 늘어져 있는 개들을 그리스 곳곳에서 만나자 그는 ‘죽은 개 현상’이라는 이름까지 붙여 이런 현상을 미주알고주알 들려준다.

    책은 끝까지 이런 식이다.
     
    여행 정보를 전달하거나 아름다운 풍경을 묘사하는 다른 여행기와는 다르다.
     
    호기심 많은 이방인의 눈에 비친 현지의 일상이 꼼꼼하게 펼쳐질 뿐이다.

    여행작가 김남희 씨는 “환상적으로 재미있거나 짜릿한 이야기는 없지만 일상을 구체적이고 생생하게 풀어내는 하루키의 힘이 느껴진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하루키는 조깅을 하는 와중에도 작가로서의 본능을 잊지 않고 주변을 꼼꼼히 관찰했다.

    “이탈리아의 조깅족은 꽤 특수한 부류에 속하는 것 같다.
     
    그들은 우선 옷부터 멋있게 갖춰 입는다.
     
    두 번째 특징은 몇 명이 어울려 함께 달린다는 것이다.
     
    혼자 뭔가를 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것인지, 혼자서는 떠들 수 없으니 그것을 못 참는 건지 판단하기 어렵다.”

    한적한 섬의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개와 장난을 치거나 낚싯대를 드리워 놓고 하늘을 감상하는 작가의 모습에서 한가로움이 한껏 느껴진다.


    그의 꼼꼼한 성격 덕에 ‘그리스에선 선거일에 전국 어디에서도 술을 팔지 않는다’는 것 같은 색다른 사실을 알게 되는 것도 이 책을 읽는 즐거움 가운데 하나다.
     
    그리스인들은 선거에 관심이 많고 흥분을 잘해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선거일에 술 판매를 법으로 금지한다는 것이다.
     
    긴 여행에서 돌아온 그는 이렇게 말한다.

    “내게는 지금도 간혹 먼 북소리가 들린다. 막무가내로 다시 여행을 떠나고 싶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는 문득 이렇게도 생각한다.
     

    지금 여기에 있는 과도적이고 일시적인 나 자신이, 그리고 나의 행위 자체가 말하자면 여행이라는 행위가 아닐까 하고.”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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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6>마음의 여행자



    마음여행자/한스 크루파 지음·조화로운 삶

    《“자네는 생의 심장부를 향해 가는
    여행길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거야. 그리고 그들로부터 무엇인가를 배울 것이고…그러나 마지막 목적지는 자네 혼자 찾아야 해. 자네의 영혼 말고는 누구도 자네를 목적지로 안내해 줄 수 없기 때문이야. 그렇기 때문에 항상 눈을 뜨고 있어야 해. 그 눈은 육체에만 있는 것은 아니지.”》

    여행지에서 발견한 나의 영혼

    여행은 만남이고 발견이다. 낯선 고장, 낯선 사람, 낯선 문화….
     
    그 만남의 궁극은 결국 나 자신과의 만남이 아닐까.
     
    여행을 통해 발견하는 새로운 자아, 그것이 바로 여행의 진정한 매력이다.
     
    이 책을 읽는 내내 그 시간은 곧 나와의 만남이다.
     

    헤르만 헤세 이후 독일 최고의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한스 크루파의 단편집. 여행을 주제로 한 단편 11편을 모았다.
     

    다큐멘터리 감독 박준 씨가 말하는 ‘마음의 여행자’ 추천 이유.
     


    “내가 생각하는 마음의 여행자는, 몸은 새로운 곳으로 떠나지만 마음은 자기 자신에게로 향한다.
     
    몸은 낯선 곳으로 떠나지만 마음은 더 나은 내가 되어 돌아온다.
     
    마음의 문제는 길 위에서 먼 산을 멍하니 바라보는 게 아니라 각자의 산을 찾아 그곳에 이르는 길을 찾는 것. 이 책은 그렇게 말해 준다.”
     


    마을로 이사 온 낯선 여인과의 우정을 통해 위대한 작가의 길을 걷게 되는 소년, 지식이 아니라 가슴과 영혼으로 진리를 찾기 위해 대학을 떠나 방랑의 길을 선택하는 청년, 우리 모두의 존재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산에 오르라고 역설하는 성자,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을 발견한 노인….

    소재에서부터 명상적, 구도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작가 특유의 투명하고 서정적인 문체가 이 같은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킨다.

    작가가 여행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것은 우선 삶에서 놓치고 있는 것과 놓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사유다.
     
    여행이 그것을 깨닫게 한다.
     
    소설마다 소재도 다르고 등장인물도 다르지만 여행은 자신을 찾기 위한 것, 존재의 의미를 확인하기 위한 것임을 암시한다.

    ‘나비의 입맞춤’은 낯선 여인 말리나와 소년 페터의 이야기.
     
    여인과의 만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소설가의 꿈을 키워 가는 페터.
     
    더 큰 세상을 향해, 더 낯선 곳을 향해 여행을 떠나도록 페터를 격려하는 말리나.
     
    하나하나 꿈과 용기를 키워 나가는 페터의 이야기를 잔잔하게 묘사했다.
     
    이 소설에서 작가는 자신을 찾기 위한 꿈과 용기를 강조한다.
     


    “그들은 꿈을 추구하며 생을 살아가지 않고 다만 두려움에 이끌려 살고 있지.
     
    인간의 꿈과 희망은 너무나도 중요해.
     
    꿈을 따르지 않고 가슴이 뛰지 않는 사람은 끝내 빈 껍질만 남을 뿐이야.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지.”
     


    여행은 새로운 만남, 새로운 경험을 통한 깨달음이기도 하다.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 배낭 하나만 짊어지고 고향을 떠나는 젊은 금 세공사 골란.
     
    ‘지금 여기 영원으로의 여행’은 골란의 여행을 다룬 단편이다.
     
    삶이라는 긴 여행에서 차분하고 진지한 깨달음을 강조한다.
    “진정한 삶이 그대 안에 있다는 진리를 깨달을 때까지 깨어 있으라.
     
    바로 그곳에 진정한 삶이 있다.”

    자신의 삶을 생각하고 자신의 존재 의미를 되돌아보고 나면 작가는 보이지 않는 산을 올라 보라고 조용히 권한다.
     
    시들지 않는 꽃을 볼 수 있도록 마음을 가라앉히라고 소리 없이 권한다.

    이광표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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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7> 뛰어난 자연…

     



    ◇뛰어난 자연사진의 모든 것/존 쇼 지음/청어람미디어

    《‘좋은 자연사진가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연주의자가 돼라! 자연에 대해 알면 알수록 무엇을 찍어야 할지 더 많이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주변의 세상에 대해 더 깊은 연민을 가져라. 그리고 피사체와 관련하여 윤리적 태도를 지녀라!’》
     


    최상의 사진을 찍기 위한 저자의 충고는 서문부터 매섭다.
     
    그것은 ‘카메라의 기술적인 특성을 숙달했을 때, 비로소 심미적인 부분에 집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진을 잘 찍고 싶지만 배우기는 어렵다고 생각한 이들에겐 저자의 말이 효과가 있을 것이다.
     
    그는 ‘차를 운전할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 있으며, 컴퓨터를 켤 수 있다면, 카메라도 작동할 수 있다’고 말한다.

    ‘기초 단계를 대충 넘어가면 결코 고급 기법을 터득할 수 없다’는 진리는 어느 분야에나 해당되듯 사진 역시 마찬가지다.
     
    저자는 마치 좋은 선생님처럼 사진 촬영의 기술적인 요소와 이론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해 준다.

    사진 촬영의 가장 기본이 되는 ‘노출’에 대해 설명할 때 그는 셔터 속도, 조리개, 필름 감도 등 노출과 관련된 기본 이론에서부터 특수한 상황에 따라 필요한 조작법에 대해서도 조언한다.
     
    동물의 움직임을 잡아내야 할 때, 동이 틀 때나 해가 저물 때, 미세한 감을 살려야 할 때의 적절한 노출 값, 조리개 상태 등을 실례로 든다.

    사진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촬영 장비와 필름, 렌즈 종류 등을 상세히 소개하고 구성, 클로즈업, 야외촬영 방법 등 촬영 기술도 알려 준다.

    설명만 나열된 것이 아니라 직접 찍은 자연사진에 저자의 노하우가 꼼꼼히 정리돼 있기 때문에 이해하기도 쉽고 자신의 사진에 직접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양영훈 씨는 “저자가 찍은 사진을 놓고 어디에서 어떤 조건 아래서 어떻게 촬영했는지 알려 준다.
     
    비록 우리나라 풍경은 아니지만 언젠가 그와 유사한 상황을 만났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추천 이유를 꼽았다.

    실제로 설국에 온 듯 투명하고 눈부신 ‘한겨울 미루나무 위에 낀 서리, 옐로스톤 국립공원’이나 나뭇잎들의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릴 듯한 ‘가을철 흔들리는 미루나무, 콜로라도’는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카메라를 메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때로 똑같은 풍경을 다른 기법으로 찍은 사진을 나란히 실음으로써 독자들의 참여를 끌어내기도 한다.
     
    정답을 유보한 채 질문만 던지기 때문에 책 내용을 바탕으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두 사진 중 어떤 게 좋은가? 그리고 왜 좋은가?’ ‘세로 사진이 덜 작고 덜 위압적으로 보이는가?’ 등의 질문에선 다시 사진을 보며 앞 내용을 되짚어 볼 수밖에 없다.
    자칫 이론으로 무장한 따분한 교육서가 될 수도 있었지만 저자의 필력과 유머 감각 덕에 사진을 잘 몰라도 수월하게 읽을 수 있다.
     
    (피사체를 한 번만 찍고 다 찍었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에 대해) ‘사진가들이 그와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은 유죄다’라거나 (자동 노출모드에 대해 설명하면서) ‘카메라에 노출 조정을 완전히 맡길 이유가 없다.
     
    당신이 뭘 원하는지 카메라가 어떻게 알 수 있겠나?’라고 반문할 땐 웃음이 난다.

    여행지에선 꼭 남기고 싶은 장면을 마주칠 때가 많다.
     
    알찬 강의를 충실히 이수했으니, 이제는 우물쭈물하지 말고 카메라 셔터를 자신 있게 눌러 보자.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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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8>그녀에게 말하다…



    ◇ 그녀에게 말하다-김혜리가 만난 사람/김혜리 지음/씨네21


    《‘분명한 건 예리한 질문을 마련하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집중을 지속하며 듣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입니다. 날카로운 질문은 기자의 이름 아래 표가 나지만 경청의 공은 인터뷰이의 대화 속에 은연중에 드러난다고 믿어요.’》


    대중스타의 삶을 보며 내 삶을 돌아본다

    이 책은 영화주간지 ‘씨네21’의 영화기자인
    저자의 인터뷰 기사 모음집이다.

    저자는 인터뷰의 목적에 대해 미국 시인 앨런 긴즈버그의 일화를 소개한다.
     
     
    인터뷰를 꺼리던 긴즈버그는 대중이 자신의 이름은 알아도 자신의 시를 한 편도 읽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시를 쓰는 것 같은 에너지를 기울여 인터뷰에 응했다.

    저자는 서문에서 ‘인터뷰’에 대해 “기껏해야 서너 번 만난 낯선 사람이 진심을 달라고 요구하다니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입니까?”라고 반문하지만 정작 이 책에는
    여타 인터뷰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던 이야기들이 보석처럼 숨어 있다.
     
    책을 읽고 나면 이 책에 등장한 21명의 인물에 대해 전부터 잘 알고 있었던 듯한 생각을 갖게 할 만큼 인터뷰의 질문과 답변은 구체적이다.
     
    배우 임현식 씨가 ‘한 지붕 세 가족’에서 하차하게 된 뒷이야기, 튀어나온 오른쪽 윗입술과 목소리에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배우 이병헌 씨의 이야기, 외국어와 사투리 등 언어에 강박관념을 느낀다는 배우 김선아 씨의 고민, 연극영화과 실기 시험에서 두 차례 낙방한 송강호 씨의 과거 등 반짝이는 이야기가 많다.

    안성기, 이병헌, 송강호, 나문희, 김혜수 씨 등 배우들과 출연작 캐릭터에 대한 해석부터 감독의 연출력까지 다양하게 나눈 이야기는 영화 마니아에게 큰 선물이 될 것이다.

    “인터뷰 전날은 잠을 자주 설치고 돌아오는 길에는 어렴풋이 짧은 인연이 끝나는 아픔을 느낀다”는 저자는 인터뷰의 준비 과정에 대해 ‘짝사랑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한다.

    “작품이나 인터뷰를 통해 신호를 보내온 인물들을 관찰하며 프러포즈를 할까 말까 고민하다가 프러포즈가 받아들여지면 어떤 것을 보든 그와 연관짓게 되고 오감을 그에게 집중시켜 출연작과 과거 인터뷰를 복기하고 그 행간의 감정에 대해 주제 넘는 추측도 해봅니다.”

    인터뷰 대상이 배우뿐 아니라 건축, 만화, 문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인물들이 선정되었다는 것도 이 책이 가진 장점이다.
     
    인터뷰 대상 중에는 소설가 박민규, 디자이너 정구호, 라디오 DJ 전영혁, 건축가 황두진, 소설가 박완서 씨 등 튀는 영화계 인사는 아니지만 대중적인 인물도 포함돼 있다.
    박민규 씨가 문단이 내린 비평에 대해 한 문학지에 ‘좃까라, 마이싱이다!’라고 반박성 글을 날린 배경, 박완서 씨가 6·25전쟁을 작품 배경으로 자주 고르는 이유처럼 해당 인물에 대해 대중이 갖고 있는 호기심을 시원하게 긁어 주는가 하면, 음악 못지않게 영화를 좋아해 서울 광화문 근처 씨네큐브를 즐겨 찾는다는 전영혁 씨의 취미생활, 헤어스타일과 화장에 얽힌 강금실 씨의 에피소드 등 흥미로운 신변잡기적 이야기도 소개돼 있다.

    여행작가 오영욱 씨는 “21명의 인물이 자신의 삶을 나긋나긋 이야기해 주는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들이 들려주는 삶의 모습이 사뭇 진중해 마음이 뻐근해진다”며 “짧은 인터뷰로 구성돼 있어 여행길에 조금씩 읽어 나가기 좋다”고 추천 사유를 밝혔다.
     
    이들의 삶을 더듬으며 여행하다 보면 문득 자신의 삶도 자연스럽게 돌아볼 순간이 찾아오지 않을까.

    유성운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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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9>섬



    ◇섬/장 그르니에 지음·민음사

    《“인간이 탄생에서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통과해 가야 하는 저 엄청난 고독들 속에는 어떤 각별히 중요한 장소들과 순간들이 있다는 것이 사실이다. 어떤 낯선 도시를 앞에 두고 깜짝 놀랄 때 우리가 바라보게 되는 것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들 자신의 진정한 모습이다.”》

    여행길 풍경 음미하는 법을 배우다

    아름다운 책 한 권이 왔다.
     
    장 그르니에(1898∼1971)의 ‘섬’. 첫 장, ‘저마다의 일생에는, 특히 그 일생이 동터 오르는 여명기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한순간이 있다’는 사려 깊은 첫 문장에 가슴이 내려앉는다.
     
    이것은 시작이다. 이 책은 되풀이해 읽을수록 향기가 나는 문장들로 엮여 있다.

    ‘섬’이 세상에 처음 선보인 것은 1933년, 한국에서 번역 출간된 것은 1980년이다.
     
    느지막이 소개됐지만 영향은 컸다.
     
    철학적인 사유로 가득한 이 에세이는 프랑스 산문을 대중화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알베르 카뮈의 스승으로 유명한 저자 그르니에는 알제대 철학교수로 철학서와 에세이집 등 저서 30여 권을 남겼다.
     
    그중 한 권인 ‘섬’은 남프랑스 지중해에 떠 있는 섬들과 그곳에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떠오른 상념들을 시적인 문장에 담은 작품이다.

    ‘철학’이 ‘여행’과 어울릴까?
     
    이런 의문이 생기는 독자들도 있을 터. 책을 읽다 보면 왜 ‘섬’이 여행가에게 특별하게 꼽혔는지 헤아려진다.
     
    그르니에의 깊은 사색의 출발은 우리가 어디서나 만날 수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가령 투명한 하늘로부터 ‘무심()’의 매혹을, 튀니지의 작은 해변 도시의 꽃 핀 테라스에서 아름다움이 주는 공허함을 읽는다.

    ‘물루’라는 이름의 고양이 한 마리에게서 촉발한 생각의 깊이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세계가 저 혼자서 끝없이 벌이는 싸움에 끼어들면서도 그는 제 행동의 동기가 한갓 환상일 뿐임을 깨달으려 하지 않는다.
     
    놀이를 하되 놀고 있는 제 스스로의 모습을 바라볼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그를 바라보는 것은 나다.
     
    조그만 빈틈도 없이 정확하게 몸을 놀려 제가 맡은 역할을 다하고 있는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황홀해진다.’
     
    고양이를 바라보는 시선의 날카로운 긴장감에 온몸이 쭈뼛한다.
     
    과연, 평범한 것들로부터 이렇게 풍요로운 사색을 끌어낼 수 있는 건 여행이라는 여유의 시간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자신의 존재를 단단히 붙들어 매어주는 책으로 항상 ‘섬’과 함께 걷고 있는 느낌이라며 이 책을 추천한 이병률 시인.
     
    지상 곳곳을 여행해 온 그는 “이 한 권의 책을 맛있게 읽기에 내 여행의 길이는 항상 짧았다”고 겸허하게 말하면서도 “이 책을 통해 굉장한 풍경을 이해하는 법과 아름다운 여행을 기억하는 법들을 배웠다”고 고백한다.

    뛰어난 서문으로 인해 더욱 유명한 책이다.
     
    제자 카뮈가 이 책에 대해서 이와 같은 문학적인 문장으로 찬사를 보냈다.
     
    ‘나는 아무런 회한도 없이, 부러워한다.
     
    오늘 처음으로 이 ‘섬’을 열어보게 되는 저 낯모르는 젊은 사람을 뜨거운 마음으로 부러워한다.’
     
    가슴 뛰는 카뮈의 추천사도 그렇거니와, 에세이를 번역한 김화영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 작품에 부치는 탄식은 ‘섬’의 아름다움을 새롭게 일깨운다.
     
    “전혀 결이 다른 언어로 쓰인 말만이 아니라 그 말들이 더욱 감동적으로 만드는 침묵을 어떻게 옮기면 좋단 말인가?”

    김지영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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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0>열하일기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고미숙 지음/그린비

    《“내가 여행에 대해 냉소적인 이유는 일시적으로 스쳐 지나가는 ‘파노라마식 관계’를 믿지 않기 때문이다. 파노라마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의 퍼레이드다. 거기에는 그 공간을 가로지르는 인간의 얼굴과 액션(action)이 지워져 있다.
     
    또, 그때 풍경은 자연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그것은 생명의 거친 호흡과 약동이 생략된 ‘침묵의 소묘’일 따름이다.
     
    이런 구도에선 오직 주체의 나른한 시선만이 특권적 지위를 확보한다.
     
    시선이 ‘클로즈업’되는 순간, 대상은 전적으로 거기에 종속될 뿐.”》
     

    연암과 떠나는 사유와 탐색의 여행

    1780년 여름, 조선의 선비 연암 박지원의 여행은 어땠을까.
     
    연암은 사촌형을 따라 청나라 황제 고종의 칠순잔치에 가는 사절단과 함께 압록강을 건넌다.
     
    중국으로 가는 여행길은 모험의 연속이었다.

    연암은 이 여행에서 온갖 이질적인 것과 적극적으로 접속한다.
     
    수행원의 감시를 따돌리고 장사치들과 몰래 만나는가 하면, 비밀 지하조직과 접선하듯 팽팽한 긴장 속에서 청의 재야 선비들과 만나 필담을 나눈다.
     
    공식 사절단이 아닌 그는 끊임없이 대열에서 이탈해 금기를 건드리고 낯선 문화의 심층을 탐색한다.
     
    여행 후 연암은 여행기 ‘열하일기’를 썼다.

    고전평론가인 저자 고미숙 씨는 ‘열하일기’를 프랑스 현대 철학자인 질 들뢰즈와 펠릭스 가타리의 사상을 바탕으로 다시 읽어냈다.
     
    저자는 ‘열하일기’에 담긴 연암의 여행이 이질적인 사유들이 충돌하는 장쾌한 편력이자 대장정이었다고 본다.
     
    파노라마적 관광도 아니고, 정처 없이 떠도는 유랑도 아닌 머묾과 떠남에 자유로웠던 ‘유목’이었다는 것.

    저자에 따르면 연암이 여행길에서 만나는 대상은 단순히 풍경에 머물지 않는다.
     
    반대로 연암은 중국인의 눈을 통해 조선의 문화나 습속을 바라봄으로써 익숙한 것들을 돌연 ‘낯설게’ 만들어 버린다.
     
    열하일기에는 조선 사신들의 화려한 의관을 보고 청나라 사람들이 ‘저 중은 어디에서 왔을까?’ 하고 궁금해하는 장면이 나온다.
     
    도포, 갓과 띠가 당시 중국의 승복과 흡사했던 것.
     
    연암은 조선의 의관이 신라의 것을 따른 것이 많았고, 불교를 숭상했던 신라는 중국 승복을 본뜬 까닭에 1000 년이 지난 당시까지 변하지 않았다고 분석한다.
     
    유교사상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던 조선의 유학자들이 정작 ‘패션’은 1000 년 전 불교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었던 것.
     
    이처럼 연암에게 여행은 풍경을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었다.

    여행작가 조창완 씨는 “죽어 있는 텍스트가 아닌 살아 있는 고전을 만날 수 있다.
     
    여행을 단순한 소비가 아닌 자기 변화의 시기로 만들려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책”이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저자는 ‘열하일기’ 자체가 담고 있는 연암의 사물에 대한 강한 호기심과 풍부한 유머, 그리고 통렬한 패러독스를 보여주려 한다.
     
    ‘탈주’ ‘재영토화’ ‘재배치’ 등 철학 용어가 낯설다고 해도 책은 쉽게 읽힌다.
     
    저자는 철학적 개념을 구체적인 ‘열하일기’의 구절을 통해 쉽게 풀어냈다.
    저자는 도시인들이 보는 전원, 동양인의 눈에 비친 서구, 서구가 발견한 동양 등은 모두 외부자가 낯선 땅을 ‘흘깃’ 바라보고서 자신의 상상 속에서 만들어낸 허상이라고 본다.
     
    반대로 진정한 여행은 이질적인 대상들과의 ‘찐한’ 접속이고, 침묵하고 있던 사물들이 살아 움직이는 발견의 현장이며, 새로운 담론이 펼쳐지는 경이의 장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조종엽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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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1>영혼의 자서전



    영혼자서전/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열린책들
     

    《“크레타에는 일종의 불꽃이 있는데, 삶이나 죽음보다도 더 강렬한 그것은 차라리 ‘영혼’이라고 불러야 하리라. 자존심과, 고집과, 용기 이외에도 형언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는 무엇이 있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인간임을 기뻐하면서도 전율하게 만든다.”》
     

    내면의 혼란 방향 잡아주는 길라잡이

    산란기가 되면 태생지로 돌아가는 연어처럼 인간에게도 귀소 본능이 있다.
     
    카잔차키스에게 이 본능이 발동한 건 1955년 어느 날. 스위스 루가노의 별장에서 머물던 그는 연필을 들었다.
     
    일흔두 살. 인생이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며 그는 태어날 적 희미한 기억부터 떠올렸다.

    ‘영혼의 자서전’은 ‘그리스인 조르바’로 알려진 그리스 출신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자서전이다.
     
    영혼이라는 수식이 말해주듯 자서전에는 단순히 인생의 이력만이 담기지 않았다.

    세 살 때 맡았던 여인의 체취부터 별과 처음으로 마주한 순간, 1년 내내 말린 포도가 폭우에 휩쓸려 떠내려갔던 일까지….
     
    어릴 적 일들을 재구성하는 그의 기억력은 또렷하고 세세하다.
     
    자서전에 이런 사소한 기억까지 늘어놓는 것은 “꿈에서처럼 언뜻 보기에 하찮은 사건들이 어느 정신 분석가보다도 더 영혼의 참되고 꾸임 없는 얼굴을 잘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두 개의 피가 흐르고 있었다.
     
    해적 출신 아랍인 아버지의 조상이 불이라면, 농민 출신 그리스인 어머니의 조상은 흙이었다.
     
    그는 “타협이 불가능한 요소를 타협시키고, 허리춤에서 조상의 짙은 어둠을 끌어내어 내 능력이 닿는 한 최선을 다해 빛으로 변형시키는 것이 내 의무, 하나뿐인 내 의무라고 느꼈다”고 고백한다.

    그런가 하면 그의 뼛속에는 기독교를 믿는다는 이유로 터키인들의 박해를 받으며 싹튼 증오와 공포가 박혀 있었다.
     
    대낮에 터키인이 기독교인들을 학살하는 걸 지켜봤던 그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이 눈에 보이기도 한다면, 그 시간에 나는 내 영혼이 성숙하는 과정을 틀림없이 보았으리라.
     
    나는 몇 시간 사이 갑자기 아이에서 어른으로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터키인들로부터 자유를 찾으려는 열망은 시간이 흐르며 헛된 사상, 모든 우상과 싸우려는 새로운 투쟁으로 번져나간다.
     
    그리고 죽음조차도 간섭할 수 없는 자유의 극한은 1917년 일꾼으로 고용한 기오르고스 조르바를 만나며 꿈꾸게 된다.
     
    두 권의 책에는 그의 작품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가 담겨 있다.

    두툼한 양장본 두 권짜리에 1500쪽인 자서전은 가뜩이나 가득 찬 여행가방, 여행서적도 아닌 자서전을 챙기려는 명분을 점점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생활과 떨어진 공간에 내던져진 나를 되돌아보는 여행을 하고 싶다면, 이 책은 낯선 길이 아닌 혼잡스러운 내면의 방향을 알려주는 길라잡이가 될 것이다.
    파리, 빈, 베를린, 캅카스 등 세계 곳곳을 여행한 흔적도 비중 있게 다뤄졌다.
     
    카잔차키스의 개인사를 통해 당시 유럽의 역사까지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도 덤.
     
    이 책을 추천한 권삼윤 씨도 “유럽 문화의 뿌리와 자기 영혼의 뿌리에 대해 이야기했으니 그걸 읽다 보면 유럽 전체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을 쓰고 2년 후. 그는 독일의 한 병원에서 독감으로 사망했다.
     
    시신은 크레타에 안치됐고 ‘영혼의 자서전’은 유작이 됐다.
     
    묘비에 새겨진, 생전 준비해뒀던 비명()이 인상 깊다.
     
     
     
    ‘나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염희진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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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2>아메리칸 버티고



    아메리칸 버티고/베르나르 앙리 레비 지음/황금부엉이

    《“
    길이 있어 사람들이 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율리시즈’에서 레오폴드 블룸은 디덜러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어떻든 이 책은 길이 만들었다. 미국의 초상이라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나가는 방법이 되어준 것은 바로 길이었다.”》


    ‘미국의 실체’ 찾아 300일간의 대장정

    “길이 있어 사람들이 다니는 것일까, 아니면 사람들이 다녀서 길이 만들어지는 것일까. ‘율리시즈’에서 레오폴드 블룸은 디덜러스에게 그렇게 물었다.
     
    어떻든 이 책은 길이 만들었다.
     
    미국의 초상이라는 불가능한 작업을 해나가는 방법이 되어준 것은 바로 길이었다.”

    그의 미국 여행은 처음부터 오묘했다.

    철학자이면서 저널리스트, 소설가와 영화감독을 넘나드는 ‘프랑스의 악동’. 좌파와 우파, 서구 제국주의와 제3세계 독재를 모두 비난하는 ‘신철학’의 기수인 저자에게 미국 시사지 ‘애틀랜틱’은 왜 미국 기행 르포를 제시했을까.
     
    자국 체제와 문화에 대한 자부심? 혹은 어디선가 균열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미국을 진심으로 걱정해서?
     
    저자가 내린 결론은 ‘둘 다’였다.

    “자신의 위기와 운명에 대해 이토록 근심스럽게 파고드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이토록 자신의 정체성에 ‘현기증’(버티고·Vertigo)을 느끼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 미국의 철학적 정치적 유산 속에는 이 도전들을 극복하는 데 필요한 모든 소재가 존재하는 나라이기도 하다.”

    일단 그의 여행 테마는 ‘토크빌을 따라서’였다.
     
    저서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미국은 서구 미래를 지배할 운명”이라고 말했던 19세기 프랑스 정치사상가 알렉시스 드 토크빌.
     
    그의 탄생 200주년을 맞은 2005년, 저자는 1831년경 그가 미국 교도소를 시찰했던 길을 쫓는다.
     
    토크빌의 예찬대로 미국은 여전히 서구 미래를 지배할 운명인가.
     
    2004년부터 300여 일간 미 대륙 40여 개 도시를 돌아보며 얻은 대답이 책에 담겨 있다.

    저자가 보기에 아메리카는 ‘실체가 없는, 본질 혹은 고정된 존재가 없는 나라’였다.
     
    미 제국주의의 흉포한 무기라기엔 순진한 열정으로 가득 찬 사관생도와 유대인을 싫어하면서도 그들의 경제시스템을 차용하는 아랍계 미국인, 국경에서 같은 히스패닉계에게 총을 겨누는 수비대원…. 허상을 좇으면서도 정신은 올곧은.
     
    이긴다고 특별한 보상도 없는 게임에 몰두한 역설적 모습이 허다했다.

    미국을 이끄는 지도층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자는 새뮤얼 헌팅턴 교수에게서 거침없는 인종주의에 대한 무감각을, 혼혈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서는 미래 정치의 희망을 읽는다.
     
    이 모든 것이 공존하는 사회. 미국은 영광과 경계의 신호가 동시에 울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절망해야 한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혼란과 역기능과 불안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묘하게도 내부의 문명 전쟁이나 분리의 위험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만큼 위험한 것으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 그것은 바로 미국이, 토머스 페인이 미국 민족주의 핵심으로 본 그 ‘항구적인 인내’의 원칙을 지금도 계속 충실히 따르고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행작가 김남희 씨는 이 책을 “사고의 깊이나 해석의 광활함, 상상력의 무한성, 그것들을 조립하고 구성하고 해체하는 언어의 경이로운 연금술”이라 칭송했다.
     
    물론 유대인이란 태생적 한계가 드문드문 드러나기도 하지만, 김 씨 표현대로 어느 여행서가 이렇듯 “주변부를 기웃거림으로써 중심을 들여다보고, 사소한 것을 통해 핵심에 도달하는 힘”을 지녔을까.
     
    금세기 최고의 여행서 가운데 하나라 불러도 손색이 없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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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3>빨간 머리 앤



    ◇빨간 머리 앤/루시 모드 몽고메리 지음/아름다운날

    《“정말 아름다운 것을 볼 때 그런 아픔을 느끼지요. 그 길을 그냥 가로수 길로 부르면 안 돼요. 그건 똑같은 길 가운데 하나일 뿐이니까요. 뭐라고 할까…. 그래, ‘가슴 벅찬 하얀 길’이 좋겠어요. 상상이 펼쳐지는 이름이지요? 저는 가끔 마음에 들지 않는 이름을 들을 때면 새 이름으로 바꾸어 부르곤 해요.” 》
     


    나홀로 여행길, 깜찍-유쾌한 동반자

    보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는 책은 흔치 않다.
     
    사람들이 이 수다쟁이 소녀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매혹당하는 것은 이 때문일 것이다.

    기쁨, 놀라움, 감격, 슬픔, 설렘…천진난만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종알대는 모습은 우스꽝스럽지만 무척 사랑스럽다.

    그 말에 귀 기울이다 보면 어느새 잔뜩 몰입해 넋을 놓고 있거나 사춘기 소녀처럼 눈물을 글썽이다 웃음을 터뜨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루시 모드 몽고메리의 ‘빨간 머리 앤’은 소설뿐 아니라 국내에서 1980년대 TV에서 방영된 만화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낭만적인 소설은 양 볼에 주근깨가 가득한 빨간 머리 앤이 에이번리 마을의 초록지붕 집으로 입양 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곳에 사는 매슈와 마릴라 남매는 원래 밭일을 도와줄 사내아이를 원했다.

    보육원에서 앤이 오게 된 건 착오 때문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 아이의 특별함을 금방 알아챈다.
     
    앤은 평범한 일상을 의미 있게 만드는 마법 같은 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앤의 명랑함은 무뚝뚝한 매슈나 엄격한 마릴라마저도 기분 좋게 감염시킨다.

    앤의 가장 큰 매력은 풍부한 상상력이다.
     
    가로수 길은 ‘가슴 벅찬 하얀 길’이라 부르고, 연못은 ‘반짝이는 호수’라고 부른다.
     
    마릴라에게 자신을 (예쁜 이름이라는 이유로) ‘코델리아’라고 불러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하는 장면이나 케이크에 향신료 대신 진통제를 넣은 실수 때문에 ‘난 쓸모없는 아이’라며 자책하는 장면 등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한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김연미 씨는 “혼자 하는 여행에선 큰 소리를 내며 웃을 일이 없다. 소리 나는 웃음은 사람과 있을 때 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빨간 머리 앤을 읽고 있으면 웃음소리가 저절로 커진다”고 말한다.

    앤이 에이번리 마을에서 성장하며 친구 다이애나를 사귀는 장면은 단짝과 우정을 맹세했던 모든 소녀의 귀감이 된다.

    엄숙하게 서로의 ‘영원한 친구’가 되어 주기로 맹세하는 대목은 재미있으면서도 감동적이다.
     
    함께 이곳저곳을 다니며 숲, 호수, 들판에 이름을 붙이는 이들의 우정을 지켜보다 보면 마치 어린 시절로 되돌아간 것처럼 즐거워진다.

    자랄수록 멋있어지는 길버트의 고백과 앤의 설렘을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다.
     
    낯선 여행지에서 사람들은 때때로 외로움을 느낀다.
     
    차 시간을 기다릴 땐 마냥 따분하고 무료할 때도 많다.

    하지만 창밖에 스치는 들판이나 눈부시게 푸른 하늘, 여행객들로 붐비는 명소에 빨간 머리 앤이 그랬듯 나만의 이름을 붙여 보는 건 어떨는지.
     
    여행지의 모든 것이 동화 같은 특별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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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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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5>스타일

     

     

    스타/백영옥 지음/예담

    《체 게바라의 혁명 정신도 스타벅스의 카페라테처럼 테이크아웃할 수 있다고 믿는 이 시대에 혁명이란 몸 사이즈가 66에서 44로 줄어들거나, 키가 160에서 170으로 늘어나는 일뿐이다. 젓가락 같은 스키니진을 입고, 미끈한 다리를 자랑하며 ‘마놀로 블라닉’ 같은 구두를 멋지게 소화하는 것 말이다.》

     

     


    통속적이라고? 세상과 통하잖아!

    여행 작가 오영욱 씨는 “휴가지에서는 역시
    소설”이라고 이 작품을 추천하면서 “다만, 남자라면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고 했다.

     

    맞다.

     

    평범한 커피 대신 ‘더블 샷 에스프레소’나 ‘화이트 초코 프라푸치노’로 마시고, 명품에 열광하는 여자를 ‘된장녀’라고 여기는 남자라면, 이 소설은 알레르기를 유발할 수 있다.

     

     


    이 소설의 인물들은 청담동 커피빈에서 약속을 잡고, ‘외면이야말로 내면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신봉하는 패션계에 종사하며, 지미추의 구두부터 샤넬 캉봉백까지 명품들이 줄줄이 등장하니까.

     

     

    더욱이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 박우진이 잘생긴 외모에 명문대를 수석에 수석을 거듭해 졸업한 외과 의사였다가 갑자기 요리사로 전업해 뉴욕 최고급 레스토랑 주방장을 거쳐 도쿄 파크 하얏트의 제안을 뿌리치고 서울 청담동에 고급 레스토랑을 경영한다는 설정에 이르면 남자들은 피식 어이없는 웃음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상관없다.

     

    어차피 이 작품은 20, 30대 여성을 위한 ‘치크리트(Chick-lit)’ 소설이니까.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나 미국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를 재미있게 봤다면, 여행짐을 꾸릴 때 올 상반기 베스트셀러인 이 소설을 챙기기를 권한다.

    주인공은 프랑스 패션 잡지 ‘A’의 라이선스판인 ‘A매거진 코리아’에 다니는 31세의 미혼 여기자 이서정. 공은 가로채고, 궂은일은 떠넘기는 마녀 같은 여자 상사에게 시달리고, 동료 남자 기자와 쓰는 ‘밤중생활’이라는 섹스 칼럼을 비롯해 영화배우 인터뷰 및 라이프스타일에 관한 기사를 쓴다.

     

     


    실제로 패션잡지 기자로 일했던 저자의 이력 덕분에 패션계 현장이 생생하게 전달되는 전반부는 흥미롭다.

     

    패션잡지에 대해 “‘마크 제이콥스’라는 단어 하나로 11페이지짜리 현대시를 쓸 수 있는 곳”이라고 하거나 여자 상사의 외모를 “이번 시즌 구찌의 하이힐 굽만큼 뾰족한 저 입술”로 묘사하는 등 문체도 감각적이다.

     

     



    소설은 두 축으로 전개된다.

     

    이서정과 박우진의 사랑, 그리고 이서정이 ‘닥터 레스토랑’이라는 ‘얼굴 없는 음식비평가’의 정체를 찾아나서는 이야기다.

     

    남녀 주인공이 서로를 오해하다 화해하는 갈등구조는 약하지만 또 다른 축인 ‘닥터 레스토랑’이 밝혀지는 과정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며 끝까지 긴장을 유지한다.

     

    오영욱 씨는 추천 이유에서 “빠른 전개가 드라마를 내려받아 밤새워가며 보는 느낌과도 흡사해 여행지에서마저 드라마를 본다는 죄의식이 들 수 있기도 하다”고 했다.

     

    올 하반기 TV 드라마로 만들어질 예정인 이 소설의 미덕은 재미다.

     

     ‘깊이’가 없다는 비판을 의식한 걸까?

     

    작가는 주인공의 입을 빌려 말한다.

    “…나는 드라마의 통속성이 좋았다.

     

    통속이란 세상과 통한다는 말 아닌가.

     

    그 좋은 말을 사람들이 한껏 폄하해 쓰는 건 어쩐지 부당하다.

     

    지적 만족을 느끼며 니체나 들뢰즈 지젝을 읽고, 타르코프스키나 데이비드 린치의 영화를 비평하듯 보는 사람만 있는 건 아니다.”

    강수진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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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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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7>자전거 여행

     



    자전거 여행/김훈 지음/생각의 나무

    《“봄의 흙은 헐겁다. 남해안 산비탈 경작지의 붉은 흙은 봄볕 속에서 부풀어 있고, 봄볕 스미는 밭들의 이 붉은색은 남도의 봄이 펼쳐내는 모든 색깔 중에서 가장 깊다.”》

     



    두 바퀴에 담아온 이 땅의 풍경… 삶

     


    작가는 “자전거를 저어간다”고 했다. 노 젓듯 앞으로 나아가며 살고 죽은 것이 몸 안으로 흘러왔다가 몸 밖으로 흘러간다는 그의 표현이 신선하다.

     


    작가는 나아감과 멈춤을 반복한 끝에 몸과 길이 엔진을 매개하지 않은 순결한 아날로그 방식으로 만났고 몸과 자전거 기어가 하나가 됐다.

     



    그렇게 전남 담양군 소쇄원, 전남 순천시 선암사, 경북 안동시 하회마을, 경북 영주시 부석사, 진도대교, 전남 섬진강, 서울을 누볐다.

     

    기나긴 여행 끝에 작가는 “모든 오르막과 모든 내리막은 땅 위 길에서 정확히 비기고 다 가고 나서 돌아보면 길은 결국 평탄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의 과정 동안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보고 봤으되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표현한다.

     


    남해안의 해안선 경작지를 보고 작가는 “둥근 가락지 같고 이지러진 달과 같다”고 했다.

     

     

    “기하학적 선을 따르지 않고 땅에 코를 박고 일하는 사람들의 인체공학 리듬을 따른 구불구불 밭두렁”이 작가의 마음을 따사롭게 한다.

     

    땅속에 언 물기가 서리가 돼 땅 위에 맺힌 광경을 본 작가의 말이 일품이다.

     

    “봄 서리는 초본의 땅 위로 돋아나는 물의 싹이다.”

    이순신의 전라 우수영과 삼별초 항쟁의 대표적 유적지 용정산성이 있는 진도. 무인들의 삶과 죽음이 명멸한 이곳으로 가는 진도대교 아래 바다를 보며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바다는 겨울 들판을 건너가는 눈보라 소리를 내고 흰 갈기를 휘날리는 물살은 출정하는 군마처럼 우우 함성을 지르며 명량해협을 빠져나가 목포 쪽으로 달려간다.”

     


    ‘칼의 노래’가 나온 것이 2001년이고 이 책은 2000년 펴냈으니 이 무렵 ‘칼의 노래’ 구상의 흔적이 보인다.

     

    작가는 충남 아산 현충사 소장 이순신의 칼에 적혀 있는 검명()을 떠올린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한 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산하를 물들이는구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남쪽 바다의 적을 피로 물들이고() 싶은” 삼엄하고도 고독한 무인 이순신의 내면은 소설 ‘칼의 노래’에 그대로 재현된다.

     


    경북 영주시 부석사로 가는 길에서 작가는 고단한 삶을 만났다.

     

    고추 값이 너무 싸 품삯 댈 길 없어 고추를 거두지 못하던 차에 서리가 내렸다.

     

    “더 말라비틀어지면 걷어내서 군불이나 때야겠다”는 농부가 진 지게 짐은 농부 키보다 높다.

     


    작가는 “지쳐서 쓰러지는 사람에게 기운 내라고 말하는 것이 도덕인지 부도덕인지 가늠하기 어려웠다”고 회상한다.

     

     

    기나긴 오르막길 끝에 저녁 무렵 당도한 부석사에서는 절을 세운 의상과 그를 사모한 중국 여인 선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의상이 선묘의 사랑을 거부하자 선묘는 바다에 빠져 죽었고 용이 돼 무량수전 땅속에서 부석사를 지키고 있다는 전설.

     

    작가는 “살아서 밥상을 차리고 아들을 낳고 싶었지만 죽어서 용이 돼 아득히 높은 애인의 절을 지키는 선묘의 넋이 가엾다”며 상념에 잠긴다.

     


    여행 작가 김완준 씨는 “역사의 현장에서부터 보잘것없는 작은 마을에 이르기까지, 이 땅 구석구석을 실핏줄처럼 누비면서 눈에 보이는 것 너머의 풍경까지 포착해내려고 애썼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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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8>책그림책
     
     
     

    그림책/밀란 쿤데라 등 지음/민음사
     

    《“그 순간 나에게는 집의 수도꼭지가 열려 있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졸졸 흐르는 실개천처럼 물이 새고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것은 결국 염려의 대상이 아니며, 근심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의 책들 속에 나는 자신의 비밀스런 생각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넣어놓았기 때문이다.”(오르한 파무크)》
     


    ‘책이란?’ 들에 던진 그림화두
     

    여행 작가 박준 씨가 “손닿는 곳에만 있어도 좋은 책”이라 꼽은 이 책은 독특하다.
     
    사실 이 책의 주인공은 글쓴이들이 아니다.
     
    ‘크빈트 부흐홀츠’라는 삽화가에 무게중심이 기운다.
     
    시작은 1996년쯤. 독일의 한 출판사가 벌인 기획에서 비롯됐다.
     
    수많은 책 표지를 그려온 그의 그림을 세계 여러 작가에게 하나씩 보낸 뒤 떠오르는 단상을 보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모인 46명의 글들을 그림과 함께 묶은 게 ‘책그림책’이다.

    엉뚱한 발상에서 출발했지만 참여한 작가의 면면은 가볍지 않다.
     
    밀란 쿤데라, 수전 손택, 오르한 파무크, 존 버거, 미셸 투르니에, 마르틴 발저….
     
     
    그중 한 명만 참여했어도 화제가 됐을 거물들이 ‘올스타전’처럼 등장한다.
     
    시적이면서도 상상력이 가득 찬 책 그림으로 명성을 쌓은 크빈트 부흐홀츠의 힘이다.
     

    표지부터 예사롭지 않은 그의 그림들은 모두 책―일부는 타자기나 종이―이 소재다.
     
    달빛 아래 들판에 커다란 책을 이불처럼 덮은 소년(수전 손택), 푸른 평원 위에 중절모 신사가 잔뜩 쌓인 책 위에 걸터앉은 풍경(밀란 쿤데라), 사다리를 밟고 책 밖으로 튀어나온 책 속의 사내(헤르타 뮐러)….
     
    환상과 꿈이 뒤범벅된 그림들은 이렇게 묻는 듯하다.
     
    ‘당신에게 책이란, 삶이란 무엇인가.’
     

    대가가 던진 화두에 응한 대가들의 화답 역시 심상찮다.
     
    누구는 시나 소설을, 누구는 찰나의 단상과 송곳처럼 벼린 우화를 보내왔다.
     
    이해하려 들면 점점 미로에 빠진다.
     
    갸우뚱, 애매하고 애매하다.
     
    근데 곱씹다 보면 뭔가 우러난다.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어느새 온몸의 털이 솟구치는.
     
    그 속엔 책과 인생 위에 펼쳐진, 세상과 우주가 있다.
     

    박 씨가 들려주는 수전 손택 편에 대한 감상을 들어보자.
     
    “그의 말대로라면 글을 쓴다는 건 날아다니는 일이다.
     
    그것도 발밑에 책을 타고 우아하게 하늘로 떠오르는. 길 위의 인생에도 책은 빠질 수 없다.
     
    비가 내리면 펼쳐진 책 사이로 들어간다.
     
     
    별이 총총한 하늘도 바라본다.
     
    날이 어둡다 걱정할 필요도 없다.
     
    활자들은 언제나 푸른빛으로 빛날 테니. 계속해서 책이 주는 자유를 누려 보라.
     
    물론 들판의 표범이 책을 물고 가지 못하게 잘 지켜볼 것.”
     

    그들에 따르면 책은 모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니다.
     
    책 속에서 열리고, 책 속에서 갇힌다. 각성과 혼돈의 공존.
     
     
    그렇기에 책은 고맙고도 무섭다.
     
    빌딩만큼 쌓아올려진 책 위에 홀로 선 남자 그림을 받은 체코 출신 작가 이반 클리마도 그 양면성을 훑는다.
     
     

    “이는 책이라든지 다른 모든 사물들의 경우에 있어서도 피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감당할 수 있는 숫자와 통제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다면 말이다.
     
    그건 거리의 자동차든, 신발장의 신발이든 아니면 하늘의 별이든 마찬가지다.
     
    그것들은 우리가 사랑스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친구에서 우리를 자기들 사이에 파묻어 버리는 적으로 변하는 것이다.”

    답은 책에 있지 않다. 책장을 넘긴 당신에게 경배를.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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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19>다다를 수 …

     

    ◇다다를 수 없는 나라/크리스토프 바타유 지음·문학동네

     



    《‘1788년 4월 4일 라 로셸 항구는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오가는 사람들과 떠들썩한 소리로 진동하고 있었다. 무장한 사내들이 마치 십자군 원정이라도 가는 듯 즐거운 표정으로 배에 올랐다. 작은 무리의 수도사들이 다섯 명의 수녀들과 함께 기도를 올렸다.’》

     



    18세기 선교사, 베트남의 심연속으로

    프랑스에서 대혁명의 전운이 감돌던 해, 그들은 그렇게 두 척의 배에 나눠 타고 프랑스를 떠났다. 미지의 세계 베트남을 향해.

    한 해 전 베트남에선 농민들이 봉기를 일으켜 우옌 안 황제를 몰아냈다.

     

    우옌 안은 프랑스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일곱 살 난 아들 칸을 프랑스로 보냈다.

     

    그러나 국내의 정정 불안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던 루이 16세는 베트남의 사정을 살필 여력이 없었다.

     



    가톨릭 교단이 대신 나섰다. 교회의 황금으로 배를 구입하고 여비를 마련했다.

     

    그렇게 해서 선교사들은 무장한 선원들과 함께 베트남으로 떠났다.

     



    이 책은 이들이 베트남에 이르기까지의 여정과 베트남에 도착한 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소설이다.

     

    이국적 풍경에 대한 세밀한 묘사가 돋보이긴 하지만 여행기라고 할 수 없는 책이다.

     

    전반적으로 잔잔한 이야기 속에 삶과 죽음, 신과 인간, 자연의 섭리에 대한 작가의 성찰이 녹아 있다.

     



    대략의 줄거리는 이렇다.

     



    ‘베트남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남쪽 지방의 농사꾼들에게 복음을 전파한다.

     

    그러는 동안 프랑스에서는 대혁명이 일어난다.

     

    프랑스는 동방으로 떠난 선교사들을 까맣게 잊고 만다.

     

    선교사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모든 것을 다시 배웠다.

     

    베트남은 특유의 습기와 특유의 아름다움으로 그들을 모두 딴사람으로 만들어버린 것이었다.

     

    그들은 그 땅에서 살고 죽는다.

     

    그들은 하느님을 까맣게 잊어버린 것이다.’



    선교사들이 베트남 사람들과 정을 나누는 대목, 베트남 생활에 젖어드는 모습에선 잔잔한 감동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 책의 전편에는 ‘죽음’이 곳곳에 나타난다.

     



    프랑스에 온 칸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이역만리에서 폐렴으로 목숨을 잃는다.

     

    정복의 야욕을 부리던 무장 선원들은 베트남에 도착하자마자 현지인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중부 지역을 개척하기 위해 새롭게 길을 떠난 도미니크 수사와 카트린 수녀를 제외한 선교사들은 베트남 군대에 학살당한다.

     



    목숨을 건진 도미니크 수사, 카트린 수녀는 중부지방 안남(Annam)에서 새로운 생활에 젖어든다.

     

    프랑스에서의 생활은 까마득한 과거의 일이 됐고 프랑스에 대한 관심은 점점 식어갔다.

     

    프랑스가 그들을 잊어버린 것처럼 그들도 프랑스를 잊어버렸다.

     

     저녁 때 하는 기도에도 진심이 깃들지 않았고 시편을 낭송하는 것도 습관에 그쳤다.

     

    그들의 머릿속은 이제 베트남으로 가득 찼다.

     



    그로부터 6년이 지난 뒤 카트린과 도미니크도 병으로 숨을 거둔다.

     

     

     

    이 책을 추천한 이병률 시인은 “프랑스 선교사들은 잊혀졌다기보다 그들 스스로 인간의 심연 속으로 걸어 들어간 것”으로 해석했다.

     

    그는 이 책의 백미로 ‘한없이 나른하면서도 시적인 문장’을 꼽았다.



    그의 지적대로 저자는 철저하게 단문으로 문장을 만들었다.

     

    문장과 문장을 이어주는 접속사는 대부분 생략돼 갑작스러운 문장의 등장에 어리둥절해질 때도 많다.

     

     하지만 그런 특징 덕분에 잠시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생각해볼 여지를 가질 수 있다는 게 이 책의 매력이다. 원제 ‘Annam’.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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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0>아리랑…

     

     

     

    아리랑, 조선인 혁명가 김산의 불꽃같은 삶/님 웨일스, 김산 지음/동녘

     



    《“내 전 생애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또한 우리나라의 역사도 실패의 역사였다. 나는 단 하나에 대해서만-나 자신에 대하여-승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계속 전진할 수 있다는 자신을 얻는 데는 이 하나의 작은 승리만으로도 충분하다.” 》

     



    조선인 독립혁명가의 고뇌,투쟁,사랑

     

     



    1937년 초여름 중국 옌안. 신문기자 출신으로 중국에 머물며 혁명가들의 자서전을 쓰던 님 웨일스란 미국 여성은 우연한 기회로 김산이란 32세의 조선인을 알게 된다.

     



    장지락이란 본명을 가진 그는 중국 내에서 항일운동을 펼쳤던 혁명가.

     

    님 웨일스의 끈질긴 요청으로 이뤄진 두 사람의 만남에서 그녀는 자신을 매료시킨 그의 삶을 책으로 쓰겠다고 결심한다.

     



    이 책은 김산이 평양 교외의 농가에서 태어나 혁명가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전기적 형식으로 풀어냈지만 그의 애환과 철학적 사색 등이 문학적으로 녹아 있다.

     


    ‘틀림없이 나에게도 한때 아주 젊었던 시절이 있었을 것이다…

     

    내 기억으로는 위대한 첫사랑의 연인을 만났던 시절도 매우 젊었던 것으로 생각되지만 그 연인과 헤어져 버리기도 전에 나는 이미 늙어버렸다.’

     


    투쟁과 패배의 경험들로 실제보다 훨씬 더 늙어버린 젊은 혁명가 김산의 회상으로 시작되는 이 책의 첫머리는 휴머니즘과 진리, 근면의 윤리 등 보편적인 가치에 성실했던 한 혁명가의 진솔한 인간미를 잘 보여준다.

     



    그의 어린시절은 두꺼운 초가지붕을 통해 겨울바람이 몰아치는 소리를 들으며 따끈따끈한 아랫목에 누워 있던 ‘아늑한’ 기억과 군불을 땔 장작을 일제에 약탈당하고 왜놈에게 어머니가 구타당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비참한’ 기억이 공존한다.

     

    이후 그의 육성으로 3·1운동, 관동대지진 후 조선인 대량 학살 등 비장한 역사적 사건을 생생히 되짚어볼 수 있다.

     



    하지만 가출한 그의 학비를 대주는 인정 많은 둘째 형이 가족들에게 ‘반항아적 기질’을 키운다는 비난을 듣는 부분이나 도쿄 유학시절 학비를 벌기 위해 고물상을 하며 겪는 일화 곳곳에선 세련된 유머나 낭만이 느껴지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가 본격적인 비밀지하운동을 시작하면서부터 역사서만으론 알기 힘든 혁명의 현장, 생활상까지 재구성해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의 큰 장점이다.

     



    일본으로부터의 해방과 프롤레타리아 국제주의를 맞물리게 하기 위한 그들의 엄숙한 투쟁과 함께 혁명가들의 연애와 우정, 불신과 배반 등의 인간 드라마도 펼쳐지기 때문이다.

     



    인류의 짐을 어깨에 진 것처럼 살면서 연애도 거부했던 그가 맞이한 아름다운 첫사랑, 일본 경찰에 체포된 후 오히려 당원들에게 의심을 받게 되는 억울한 상황, 배신감과 좌절을 극복하며 사상적, 철학적 단련으로 성숙한 지도자로 다시 서는 과정 등이 생생하다.

     

     

    김산이란 한 인간이 입체적으로 되살아날 뿐 아니라 격동기를 살아가던 혁명가들의 숨결까지 느껴질 것 같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조창완 씨는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옌안 등 김산의 발자취를 답사한 적이 있다”면서 “그가 극비리에 처형됐을 옌안 근처의 고산 평원을 찾았을 때의 느낌이 아직도 선명하다.

     

    그의 삶을 씨줄과 날줄로 만들어 중국 내 항일운동 유적지를 찾다보면 김염, 김원봉, 신채호 등 수많은 애국자들의 삶에도 근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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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1>알래스카…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글 사진 호시노 미치오/청어람미디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 북쪽 끝까지 찾아온 다양한 사람들. 더 편리하고 쾌적한 생활을 떠나서 들판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자연을 개발하려고 하는 사람들, 지켜나가려고 하는 사람들. 다양한 문제를 안고서 빠르게 현대화돼 가는 에스키모 인디언…. 누구나 저마다 더 나은 생활을 찾아 살아가고 있다. 사람들이 어떤 선택을 해 나가는지, 내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 나와 무관하지 않다.》

    피사체가 속삭이는 알래스카 18년

    일본인 호시노 미치오 씨는 1973년 19세 때 미국 알래스카 시스마레프 마을에서 에스키모 일가와 함께 여름을 보냈다.

     

    게이오기주쿠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뒤 1978년 다시 알래스카대 야생동물관리학부에 입학하게 만든 것은 10대 말 그 여름의 기억이었다.

    하지만 그 결정은 젊은 날의 치기가 아니었다.

     

    호시노 씨는 오로라, 백야, 빙하 등 그곳의 대자연과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며 18년을 오롯이 알래스카에서 살았다.

     

    그의 사진은 일본 잡지뿐 아니라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해외 저명 잡지에도 게재됐다.

    사진가로서 명성을 얻은 뒤에도 호시노 씨는 끝까지 알래스카를 떠나지 않았다.

     

    1996년 8월.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TV 프로그램용 사진 취재를 하던 그는 불곰의 습격을 받아 4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책 말미에 해설을 쓴 소설가 오바 미나코 씨의 말대로 표피적인 미학을 추구하는 (자연) 사진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내가 그때 여기에 가서 무엇을 했다’고 이야기하는 사진, 피사체보다 사진가를 드러내기에 급급해하는 사진은 보기에 편안하지 않다.

    호시노 씨의 카메라는 ‘자연의 놀라운 비경’을 좇지 않았다.

     

    사진설명이 아닌, 얼핏 사진과 상관없게까지 느껴지는 덤덤한 일기. 덧붙여진 사진들은 그 글을 쓴 날 곁에서 함께 하루를 보낸 동물과 나무, 사람들의 평범한 표정이다.

    여행작가 김남희 씨는 “단아하고 정갈한 글과 자연에 대한 깊은 외경심이 그대로 드러나는 따뜻한 사진이 한 남자의 단단하고 맑은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며 이 책을 추천했다.

    “자연이란 인간의 삶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삶을 포괄하는 것.

     

    아름답고 잔혹하고, 그리고 작은 것에 의해 큰 상처를 받는 것. 자연은 강하면서 또 한편 연약하다.”

    호시노 씨는 테너 색소폰 주자 덱스터 고든을 “하느님처럼” 사랑했다.

     

    책을 죽 읽어 내려가는 느낌이 비 오는 날 오후 창가에 앉아 담백한 재즈 앨범을 듣는 것과 비슷하다.

     

    균형 있게 편성된 콰르텟의, 기교를 자제한, 소박하지만 묵직한 연주.

    김남희 씨는 이탈리아 여행을 마치고 38도 폭염의 스페인으로 돌아온 날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

     

    그리고 “덧문을 내려 햇빛을 차단하고 소파에 기댄 채 만난” 이제 세상에 없는 이 남자와 사랑에 빠졌다.

     

    “책장을 덮고 난 뒤 알래스카는 내 로망이 됐다. 거기에 더해 ‘이런 남자를 만나 사랑하고, 그를 닮은 아이를 낳아 키우며 살 수 있다면…’ 하는 부질없는 열망까지 생겼다.”

    저자의 말처럼 “알래스카(자연)는 늘 발견되고 늘 잊혀진다.”

     

    하지만 잊었다가 다시 깨닫는 것들 덕분에 사람은 그럭저럭 살아간다.

     

    따뜻하고 상냥한 남자가 평생토록 정성껏 써내려간 연애편지를 엿보는 기분.

    자연에 대한 진실한 사랑은 전염된다.

     

    호시노 씨는 수많은 사람에게 큰 힘이 될 작은 나눔을 세상에 남기고 떠났다.

    손택균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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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2>스밀라의 눈…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페터 회 지음/마음산책

     


    《“눈()을 읽는 것은 음악을 듣는 것과 같다. 눈에서 읽은 내용을 묘사하는 것은 음악을 글로 설명하려는 것과 같다.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마치 다른 사람들이 다 잠들어 있을 때 나만 깨어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나 마찬가지 기분이었다. 고독과 전지전능함이 균등히 반반씩 이룬다.”》

    ‘소년의 추락사’ 진실 찾아 나선 독신녀

    크리스마스이브, 한 아이가 싸늘한 시체로 발견된다.

     

    코펜하겐 항구 옆 이층집에 살고 있는 아이 이름은 이사야.

     

    사인은 실족으로 인한 추락사였다.

     

    목격자도, 증거도 없어 경찰도 서둘러 덮어버린 사건. 이때 한 여자가 다가온다.

     

    아래층에 사는 서른일곱 살 독신녀 스밀라였다.

    스밀라
    카비아크 야스페르센.

    부모로부터 나란히 물려받은 두 개의 성()에선 두 갈래로 갈린 태생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

     

    ‘카비아크’는 그린란드 이누이트족 사냥꾼인 엄마의 것, ‘야스페르센’은 덴마크 출신 외과의사 아빠의 것이다.

     

    모순적으로 보이는 부모의 결합처럼 그의 삶에서 두 가지 국적은 늘 충돌했다.

     

    마치 자연과 문명, 피지배국과 지배국의 대립처럼.

     

    하지만 다섯 살까지 그린란드에서 자란 그는 덴마크가 속한 유럽 시스템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된다.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술래잡기였다.

    “우스꽝스러운 기억의 파편들이, 내가 덴마크에 도착한 직후에 처음으로 술래잡기를 했던 때의 영상을 불러일으켰다. 재빨리 약자를 제거해버리고, 이어서 자연적 위계질서에 따라 나머지 모든 사람을 제거해버리는 게임의 규칙에 익숙지 않았던 기억의 영상들.”

    그가 타고난 또 다른 하나는 눈()에 대한 감각이었다.

     

    눈을 사랑보다 중하게 여기는 스밀라가 아이가 쫓기고 있다는 예감에 사로잡힌 것도 바로 눈 때문이다.

     

    “나는 삶에서 일정한 무언가를 닻처럼 내리고 있다. 그걸 방향감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자의 직관이라고 해도 된다. 뭐라고 불러도 좋다.”

    ‘스밀라…’는 1992년 발표된 덴마크 작가 페터 회의 추리소설이다.

     

    전문 무용수, 배우, 선원, 펜싱선수 등으로 활동한 페터 회는 세 번째 소설 ‘스밀라…’로 ‘올해의 작가상’ 등 그해 덴마크의 각종 문학상을 휩쓸었고 ‘스밀라…’는 시사주간지 타임의 ‘올해의 책’에 선정됐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김연미 씨도 “두께가 꽤 되지만 여행길에는 꼭 챙기는 책”이라며 “여행 중엔 짬이 날 때마다 책을 읽는데 이 책은 한번 잡으면 다 읽고 싶을 만큼 흡인력이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진실들이 한 꺼풀씩 벗겨질 때마다 드러나는 문명의 추악한 모습에 독자들은 책장을 덮어버리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힐지 모르겠다.

     

    범인을 찾기 위해 작동한 스밀라의 직관이 빛을 발하는 것도 이 부분.

     

    “이제 나의 목적은 이사야가 왜 죽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 애의 죽음에 대한 미약하지만, 모든 것을 포괄하는 사실을 꿰뚫어보고 조망하는 것.”

     

    스밀라의 뾰족한 직감이 문명의 이기와 서구인의 탐욕을 향해 겨눠질 때 이 책은 추리소설을 가장한 문명 비판서로 돌변한다.

    그는 사건을 파헤치려 북쪽 어딘가로 향하는 배에 몸을 싣는다.

     

    그를 외부의 환경으로부터 보호해줄 유일한 무기는 이제 스크루 드라이버뿐.

     

    온갖 풍랑과 추위, 살해의 두려움을 뚫고 그가 캐낸 진실은 무엇이었을까.

     

    그 어떤 추리소설의 반전 중에서도 인간으로 태어난 사실이 부끄러웠던 반전은 없었다.

    염희진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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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3>나는 걷는다

     

    ◇나는 걷는다/베르나르 올리비에 지음/효형

    《“자동차가 주요
    이동수단이 된 이후 거리 개념이 변질되어 이제 얼마라는 식으로만 표현되는 것이다. 따라서 보행자는 ‘멀지 않다’ ‘바로 옆이다’ ‘십 분 걸린다’는 표현을 제대로 해독할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게 자동차로 갈 때를 기준으로 한다. ‘십 분’은 10 내지 12킬로미터, 즉 걷는 것으로 따지면 두 시간에 해당한다.”》

    실크로드 도보횡단서 ‘사람’을 만나다

    62세 프랑스인이 터키 이스탄불에서 중국 시안까지 1만2000km를 걸어서 횡단한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고행’이란 단어를 떠올릴 수밖에 없다.

    30여 년간 프랑스의 르 피가로 등 유력 일간지의 기자로 일하다 은퇴한 베르나르 올리비에는 4년에 걸쳐 매년 봄부터 가을까지 실크로드를 걷기로 작정한다.

     

    얼핏 이해가 가지 않는 도전이다.

    하지만 이는 어떤 대단한 성공이나 위업의 달성을 목표로 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얼굴, 새로운 삶에 대한 고집스럽고 본능적인 욕망 때문이다.

     

    군중의 물결 속으로 밀려들어가 더 빨리 뛰어다니길 강요당하는 사회에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이동방법인 걷기는 접촉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사실 유일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마치 유럽에서 아시아 동쪽 끝까지 연결하는 가늘고 질긴 실처럼, 실크로드라는 역사적 길을 순례한다. 그 길에는 터키에 항거하는 쿠르드족 마을, 이란, 투르키스탄 등 위험할 수 있는 지역도 포함돼 있다.

    “여행자들에게 그들만큼 주의를 기울이고 식사를 대접하거나 여행자들의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 그들만큼 신속한 이들은 없다”고 전해지는 터키인의 전통처럼 그는 종종 사람 좋고 순박한 이들에게 대가 없는 환대를 받는다.

    하지만 때로 ‘걸어서 간다’는 원칙을 고수하는 모습은 도저히 이해받지 못하는 괴짜로 비치기도 하고, 때로는 분쟁 지역에 잠입한 스파이나 테러리스트 등으로 오인받기도 한다.

     

    오랜 여행으로 탈수에 화상을 입기도 하고, 균에 감염돼 응급실로 실려 가기도 한다.

     

    때로 도둑이나 강도를 만나기도 하고 미친 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그는 산을 오르내리고 사막을 횡단하다가 질병, 상처, 자연재해, 도둑 혹은 전쟁으로 예고도 없이 죽어 간 이들을 떠올리며 실크로드를 거쳐 간 문명의 부침을 되짚는다.

    은퇴 후 찾아온 고독하고 쓸쓸한 삶, 10여 년 전 배우자를 잃고 자녀들은 이미 성인이 돼 함께 있을 때조차 각자 혼자임을 인식한다.

     

    하지만 그는 TV와 책 몇 권이 놓인 안락한 거실에서 노년기를 보내는 것을 거부했다.

     

    500여 년의 역사가 응축된 그 길을 걷고, 또 걸으며 사람과 삶, 역사와 문화를 탐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살아 있음을 실감하는 벅찬 일이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 작가 김완준 씨는 “그는 길을 걸어가는 동안 죽을 고비를 숱하게 넘기고 타인에 대한 적의를 품은 이들로부터 봉변을 당하기도 한다.

     

    그러나 말은 한마디도 통하지 않지만 가족처럼 자신을 걱정해 주는 아름다운 사람도 여럿 만난다”면서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훌륭한 성찰기인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여행기에서는 드라마틱하거나 충격적인 에피소드는 많지 않다.

     

    그 대신 담담하고 소박한, 사색적인 이야기들이 버무려져 있다.

     

    마치 앞을 향해 조금씩 꾸준히 나아가며 걷는 것처럼.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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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4>사진가의 여행

     

    사진가여행법/진동선 지음/북스코프

    《“아름다운 대자연 앞에서 초점과 구도, 노출은 얼마나 무의미한가. 감성으로, 눈이 아닌 가슴으로, 뷰파인더가 아닌 마음의 프레임으로 플랑드르 길과 만난다. 그 다음은 카메라가 알아서 찍는다.”》

    가 가슴으로 찍은 유럽풍경

    “여행은 돌아오기 위해 존재한다. 마찬가지로 사진은 되돌아보기 위해 존재한다.”

    짧지만 멋진 말로 시작하는 이 책은 ‘사진 여행기’다. 사진평론가인 저자는 대학에서 사진을 전공하는 딸과 함께 유럽으로 사진 여행을 떠났다.

    아버지와 딸은 독일 프랑크푸르트, 하이델베르크, 이탈리아 베니스, 프랑스 니스와 아비뇽,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와 룩셈부르크 등 유럽 5개국 주요 도시 13곳을 만났다. 아름다운 미술관과 박물관이 가득한 예술 도시들에서 부녀는 마음껏 사진을 찍었다.

    저자는 사진이 “시간의 알리바이”라고 말했다. “사라진 시간이 하나의 증명처럼 남겨놓은 삶의 풍경을 여행 사진을 통해 다시 만난다”는 것. 그에게 여행 사진은 생생한 삶의 기록이다.

    멋진 사진을 보는 즐거움이 크지만, 이 책은 단순히 여행 사진집은 아니다. 저자는 여행 내내 깨닫고 딸에게 들려준 사진에 대한 철학을 다시 독자에게 들려준다. “빛은 색을 만들고 색은 감동을 만든다. 새벽의 거리에서 빛과 색이 춤을 춘다.”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 독일 카셀에서 맞은 새벽 풍경은 이 말을 증명한다. 새벽 어스름의 신비로운 느낌이 푸른색과 어울린다. 아침 해가 어스름을 물리친 아침의 카셀은 선명하고도 상쾌하다.

    길 위의 사진들도 빼놓을 수 없다.

    “여행도 사진도 길 위에 있다. 끝없이 다가서면 또 그만큼 멀어지는 길 위에서 사진을 통해 추구하는 의미는 사라짐이다. 길도 사진도 사라짐을 전제로 한다. 모든 것이 결국 하나의 이미지로 끝나고 마는 사라짐의 기표들이다.”

    저자의 말처럼 길은 독일 아우토반 너머로 펼쳐지는 시원한 풍광인 동시에 끝없이 펼쳐지다 사라지는 풍경이다. 여행 중 만났다 헤어진 사람들의 희로애락 표정도 엿볼 수 있다. 저자는 “모든 존재는 삶 속에서 부단한 이별 연습이 필요하다. 이별 연습이 있었기에 모든 이별로부터 이 정도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저자는 딸에게 말한다. “도시를 만날 때 중요한 건 그 도시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시가 너에게 어떻게 다가오느냐 하는 거야. 많은 도시를 다니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훗날 그 도시가 너에게 어떻게 기억되느냐가 중요하지.”

    저자에게 사진은 기억의 방식이다. 기억은 개인적이고 주관적이다. 그래서 저자는 ‘가장 사진적’인 것은 자아가 가장 잘 드러나는 사진 이미지라고 말한다. 자기만의 생각, 자기만의 시선, 자기만의 프레임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좋은 사진에 대한 ‘강의’도 빼놓지 않았다. 사진을 찍을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빛과 그림자다. 이 둘은 한 몸이다. 책 마지막에 사진 여행을 떠나기 위해 준비할 촬영 장비, 훌륭한 여행 사진 촬영의 비법도 정리했다.

    여행작가 박준 씨는 “‘흔들리지 않는 삶이 없듯이 흔들린 사진 또한 자연스럽다’는 저자의 말이 참 좋다. 여행길에서 읽으면 좋지만 길 위에서가 아니라도 상관없다. 저자는 열흘 동안 유럽의 가장 아름다운 5개국을 부지런히 돌았다. 고작 열흘인데 사진은 왜 그렇게 좋은가?”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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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5>한국의 야생화

     

    ◇한국의 야생화/이유미 지음/다른세상

    《“야생화를 가까이 하고 싶다면 눈높이를 낮출 준비를 해야 된다. 금창초는 눈을 바닥으로 낮추어야 그 잔잔하고 오묘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양지바른 척박한 땅 위 혹은 바위 사이에서 세상을 향해 꽃잎을 벌리고 귀엽게 웃고 있는 모습이라니! 그 소소한 특별함을 찾아내는 것이 우리 꽃을 알게 되면서 느끼게 되는 아주 큰 즐거움이다.”》

    이름 없는 들꽃은 없다, 그대가 모를 뿐

    개불알꽃, 괭이눈, 금꿩의다리, 깽깽이풀, 매발톱꽃, 닭의장풀, 투구꽃…. 작고 고운 꽃에 웬 민망한 이름? 산과 들에 피어난 야생화의 모습을 보면 왜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금세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개불알꽃은 분홍빛 둥근 주머니처럼 생긴 꽃송이 때문에
    까치오줌통, 요강꽃, 복주머니난이라는 별명도 붙어 있다. 괭이눈은 샛노란 가루가 뒤덮인 작은 꽃송이와 살짝 보이는 안쪽의 수술이 어둠 속에서 눈동자를 빛내는 고양이 눈과 비슷해 보인다. 꿩의다리는 꿩의 가는 다리처럼 생긴, 가장 가는 줄기를 가진 풀을 찾아보면 된다.

    여름휴가 때 만나는 숲이 너무 멀게 느껴진다면 ‘숨은그림찾기’를 한번 해보자. 돌 틈에, 바위틈에, 물가에 피어 있는 이름 없는 야생화들. 선명하지 않아도 흐드러지게 핀 작은 꽃들이 어우러져 있는 모습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

    이 책은 우리 산과 들에 피어나는 야생화 500여 가지를 생생한 사진을 통해 설명해준다. 국립수목원 연구관으로 있는 저자는 전국의 산하를 돌아다니며 탐사한 야생화의 생김생김, 비슷한 식물 구별하기, 꽃에 얽힌 이야기, 쓰임새, 씨앗을 받아 키우는 방법 등을 자세히 소개한다.

    대부분의 야생화는 우리가 그저 그런 잡초로 생각했던 꽃들이다. 그중에는 곰취, 돌나물, 머위, 삼지구엽초와 같이 식용이나 약용으로 귀한 대접을 받는 꽃도 많다.

    조선시대 때 서당에는 으레 앉은뱅이꽃, 즉 민들레를 심기도 했다. 나쁜 환경을 견뎌내는 인(), 뿌리가 잘려도 새싹이 돋는 강(), 꽃이 한 번에 피지 않고 차례로 피므로 예(), 줄기를 자르면 흰 액이 젖처럼 나오므로 자(), 약으로 이용하면 노인의 머리를 검게 하여 효(), 흰 액은 모든 종기에 효험이 있어 인(), 씨앗은 스스로의 힘으로 바람을 타고 멀리 가 새로운 후대를 만드니 용(), 이렇듯 민들레는 많은 덕을 가지고 있다 하여 어린 학생들이 다니는 서당에 심었다.

     

    금낭화는 ‘아름다운 주머니를 닮은 꽃’이라는 뜻이다. 수줍은 듯한 진분홍빛 꽃송이는 휘어진 줄기에 조랑조랑 매달리고, 끝이 양 갈래로 갈라져서 위로 살짝 올라간 하트 모양의 꽃잎이 일품이다. 이렇게 아름다운 금낭화를 앞마당에 가득 심고 싶어도 산에 있는 것을 함부로 캐오면 안 된다. 6월쯤 꽃이 지고 열매가 익을 때 씨앗을 받아 뿌리면 된다. 씨를 받으면 쉽게 많은 야생화를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함부로 캐내기만 한다. 결국 지천에서 흔하던 개불알꽃, 금낭화, 고란초, 삼백초, 매화마름 등 많은 야생화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다.

    여행작가 양영훈 씨는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에피소드도 간간이 섞여 있어 자칫 따분하기 쉬운 식물이야기가 할머니가 들려주던 옛이야기처럼 재밌게 들린다”고 이 책을 추천했다. 이번 휴가 때 곰취, 금매화, 꽃창포, 산수국, 비비추, 참나리, 해란초와 같은 여름철 야생화를 한 번쯤 찾아보심이 어떨지….


    전승훈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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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6>세 도시 이야기

     

    ◇세 도시 이야기-주홍빛 베네치아·은빛 피렌체·황금빛 로마/시오노 나나미 지음/한길사

    《“투르크인이나 아랍인임을 알 수 있는 각양각색의 터번도 여기 베네치아에서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그리스어로 떠드는 뱃사람들 바로 옆을 독일어를 사용하는 상인들이 지나간다.”》

    르네상스 대표 도시들의 ‘우아한 쇠퇴’

    ‘주홍빛 베네치아’ ‘은빛 피렌체’ ‘황금빛 로마’ 3부작은 ‘르네상스를 만든 사람들’ ‘르네상스의 여인들’ 등 인물 중심으로 르네상스기를 소개해 온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가 도시로 시선을 옮긴 작품이다.

    16세기 초엽, 베네치아의 유력 귀족 가문 출신인 30대 남성 마르코 단돌로의 활약을 중심으로 황혼녘에 접어든 세 도시의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16세기는 르네상스의 수혜자로서 유럽의 중심에 있던 이탈리아 도시 국가들이 내부 분열과 스페인, 프랑스, 오스만튀르크 등 강력한
    중앙집권국가들의 등장으로 서서히 밀려나기 시작하던 때. 시오노 나나미는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베네치아 피렌체 및 로마라는 세 도시를 묘사해보고 싶었다. 우아하게 쇠퇴해가는 시기야말로 인간이 아니라 도시가 주인공이 되기에 어울리는 시기”라고 말했다.

    사건의 시작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 이곳에서 발생한 의문의 자살 사건을 시작으로 마키아벨리, 미켈란젤로, 알렉산드로 대공, 교황 파울루스 3세 등 16세기 지중해 세계를 움직이던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가 허구의 인물인 마르코 단돌로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1부 ‘주홍빛 베네치아’는 베네치아 귀족 청년들의 우정과 베네치아를 둘러싼 오스만튀르크, 헝가리제국 등의 정략이 탄탄하게 펼쳐진다. 2부 ‘은빛 피렌체’는 스페인과의 관계를 두고 내분이 벌어지는 메디치 가문을 중심으로 피렌체의 쇠퇴 과정이, 3부 ‘황금빛 로마’는 주인공 마르코와 고급 창부 올림피아의 로맨스가 중점적으로 펼쳐진다. 각 권의 초반에 일어나는 의문의 죽음과 맞물려 벌어지는 추리 과정이 더해져 독특한 책읽기의 즐거움을 던져준다.

    여기에 ‘세 연인 이야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로맨스가 두툼하게 덧입혀졌다. 베네치아 통령의 아들 알비제 그리티와 유부녀인 프리울리 부인의 사랑, 마르코와 올림피아, 교황의 아들 파르테세 공작 간의 삼각관계 등 각 도시를 배경으로 사랑이야기가 펼쳐진다.

    로맨스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저자는 “인간이 아닌 도시가 주인공”이라는 목적을 놓치지 않는다. 스페인, 오스만튀르크, 헝가리제국과 세 도시 간에 얽힌 복잡한 국제 정치 관계를 비롯해 베네치아 첩보기관이 사용한 암호 통신, 피렌체의 재판과 처형법, 로마에서 활동한 예술가들의 작업 방식 등 정치 건축 사상 패션 등 당대의 복원에 많은 분량을 할애했다.

     

    3부작을 읽고 나면 어느새 주홍빛 바탕에 금실로 성 마르코의 사자를 수놓은 국기가 지중해를 오가는 선박의 돛대에서 펄럭이던 시대의 베네치아, 두오모 대성당을 중심으로 붉은 물결이 펼쳐지는 피렌체, 그리고 위대했던 제국의 영화를 노래하는 하얀 대리석의 도시 로마의 골목골목을 훑은 느낌이다.

    여행작가 오영욱 씨는 “지나다니는 슬픈 고양이에게도 역사가 깃들어 있는 것 같은 이탈리아를 여행할 때, 장소에 대한 상상력을 배가시키는 책이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널리 알려진 로마인 이야기 시리즈보다 훨씬 읽기 편한 ‘추리소설’”이라며 이 책을 추천했다.


    유성운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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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7>그림으로 본…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케네스 벤디너 지음/예담

    《“어느 날 아침,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에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선 내 앞에 몸무게가 130kg은 족히 됨직한 남자가 서 있었다…과연 그는 예상대로 생선, 햄, 파이, 포도, 거위고기, 소시지 등을 묘사한 작품들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었다. 처음에 손가락질하던 그는 이내 입맛을 다시기 시작했다.”》

    음식그림에 버무려진 서구문화 속살

    미국의 예술사학자인 저자는 음식을 등장시킨 서양 미술사에서 음식의 문화사를 노련하게 읽어낸다.

    책에 등장하는 그림은 대체로 시대 순을 따랐지만 구성이 독특하다. 저자는 음식의 수집과 판매, 음식 준비, 식사 등을 주제로 한 그림을 차례로 소개한다. 음식을 사는 시장, 요리하는 주방, 음식을 먹는 식당을 묘사한 그림이 단계적으로 등장해 인류 역사의 ‘식사 시간’을 보는 것 같다.

    책에 등장하는 14세기 유럽
    르네상스∼20세기 포스트모더니즘 시대의 그림 150여 점을 보는 재미만도 쏠쏠하다.

    음식물의 재료인 죽은 동물이, 살아 있는 인간보다 중시된 최초의 그림은 네덜란드 화가 피터르 아르천의 ‘푸줏간의 진열대’(1551년)이다. 소시지, 돼지 다리, 양 다리, 내장, 소머리, 돼지머리, 닭고기 등이 그림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푸줏간 내부 풍경에서 당시 유럽인의 식생활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그림 저 멀리 조그맣게 성가정(성모 마리아, 요셉, 예수로 이루어진 거룩한 가정)을 은유한 가족의 모습이 보인다. 세속적 음식이 종교적 주제보다 훨씬 크게 그려진 이 작품은 유럽 사회의 세속화를 반영한 그림으로 해석된다.

    18세기 교역이 늘고 물자수송이 원활해지면서 중세의 대기근은 사라졌다. 한 지역에서 식량이 제대로 생산되지 못하면 다른 지역에서 곧바로 수입할 수 있게 됐다. 식량 공급이 안정되자 음식의 맛은 심미적 취향을 뜻하기 시작했고 왁자지껄 풍요로움을 강조하던 서양 미술은 세련된 식사 장면을 묘사하기 시작한다.

    프랑스 화가 니콜라 랑크레의 ‘햄이 있는 점심 파티’(1735년)는 식탁 위에 차린 음식이 술과 안주인 햄과 빵뿐인데도 포크와 나이프가 놓여 있다. 평범한 포도주 잔치에도 이 시기 포크를 널리 썼다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 화가 아돌프 폰 멘첼의 ‘무도회의 만찬’(1878년)은 유럽의 궁정에서 뷔페 형식의 식사가 생겨났음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림에 등장하는 음식의 상징에 대한 이야기도 풀어낸다. 사과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 화가 휘호 반 데르 흐스가 그린 ‘아담과 이브’(1470년경)를 보자. 아담과 이브가 과일을 먹은 죄악은 성교 행위를 은유했다. 아담과 이브는 이 그림에서 음탕한 느낌의 누드로 서 있다. 과일은 과일을 먹게 한 유혹자의 몸과 같은 색이다. 노르스름하면서도 불그스름하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들이 누가 제일 아름다운지를 놓고 경합을 벌이는 장면을 묘사한 스위스 출신 화가 니클라우스 마누엘 도이치의 ‘파리스의 심판’(1517∼1518년)에서 아프로디테가 받는 사과는 위대한 성적 힘을 지닌 상징이다.

    여행작가 유연태 씨는 “며칠 전 강원 고성군 거진항에서 생태맑은탕을 먹으면서, 동해안에는 명태 씨가 말라 일본산을 쓰는데 알은 죄다 일본 사람들이 빼놓고 우리에게 수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제 한국에서도 이 책만 한 수준의 음식문화사 책이 나오면 좋겠다며 수저를 놓았다”고 말했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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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8>안 보이는 …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마종기 지음/문학과지성사

    “밤새 내리던 눈이 드디어 그쳤다. 나는 다시 길을 떠난다. 오래전 고국을 떠난 이후 쌓이고 쌓인 눈으로 내 발자국 하나도 식별할 수 없는 천지지만 맹물이 되어 쓰러지기 전에 일어나 길을 떠난다.”(표제작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 중에서)

    뼛속 깊이 사무친 떠도는 의 ‘애련’

    여행 작가이자 시인인 이병률 씨는 마종기 시인을 “여전히 청년의 마음으로 시를 쓰는 시인”이라 불렀다.

    1939년생, 1959년에 등단해 내년이면 등단 50주년과 고희를 맞은 시인에게 젊음의 향취라.

     

    1980년 세상에 나와 지난달 19쇄가 나온 이 시집은 그런 헛헛한 의구심을 씻어주는 단초로 손색이 없다.

    ‘항아리를 그리기 시작했다./빈 들판같이 살기로 했다./남아 있던 것은 모두 썩어서/목마른 자의 술이 되게 하고/자라지 않는 사랑의 풀을 위해/어둡고 긴 의 길을/핥기 시작했다.’(‘그림 그리기’ 중에서)

    그의 시는 어렵지 않다.

     

    시에 소경 신세라 해도 읽을 만하다.

     

    끝자락 해설을 맡은 문학평론가 김주연 씨도 “이해가 잘 안 가는 어려운 단어도 없고, 이른바 관념적인 난해의 그림자도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정갈한 시어가 뭉클뭉클 가슴에 꽂힌다.

     

    예쁘고 낙낙한 시가 처연하게 슬퍼진다.

    ‘목숨을 걸면 무엇이고/무섭고 아름답겠지./나도 목숨 건 사랑의/연한 피부를 쓰다듬고 싶다.//날아도 날아도 끝없는/의 날개를 접고/창을 닫는다. 빛의/모든 슬픔을 닫는다.’(‘의 비밀’ 중에서)

    이병률 시인은 꽤 여러 차례 이 시집을 들고 서울 청량리역을 찾았다 한다.

    굳이 어딘가로 떠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역사에 앉아 시집을 읽고 또 읽었다.

    ‘기차를 타지 않아도 기차를 탄 듯’ 그렇게 시집은 그 자체로 여행이 됐다.

    “여행을 떠날 때면 꼭 이 시집을 챙겼다.

     

    객차에 오르지 않아도 몸을 실은 듯 느껴졌다. 펼치지 않아도 시집을 읽은 듯했다.

     

    아픈 것, 따뜻한 것, 쓸쓸한 것들로 온몸이 달궈지는 기분. 그럼에도 순해지는 기분.”

    쓸쓸함에도 따뜻해지는 것은 시인의 습속과도 맞닿는다.

     

    그의 시 ‘그리고 가’에서도 언급했듯 시인은 ‘에서 낳고 자라고/에서 를 보내고/다시 에 나와 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고 했던가.

     

    그의 그리움에 절절한 애정이 담뿍한 이유. 그건 떠나본 자의 애련이다.

     

    “어쩌다가 나는 고국을 떠나 흘러 다니는 이민자가 되었다.

     

    떠나 살면서 더욱더 아름다운 모국어에 대한 사랑과 자랑을 지니게 되고, 내 모국의 이리저리 뚫린 골목길의 조그만 입김들이 만들어놓은 조그만 풀잎까지 그리워하며 살고 있다.”

    오래건 잠시건, 터전을 벗어나본 사람은 안다. 그곳은, 그이는 ‘안 보이는’ 게 아니다. 눈에 밟히고 밟히며 뚜렷해질 뿐. 떠남이 뼛속 깊이 새겨져 긴 목청을 뽑은 시인의 노래.

     

    여행길에 이만 한 길벗이 또 있을까. ‘빛의 모든 슬픔’을 닫을지언정 마음은 더욱 훤하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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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29>삼국지 경영학

     

    ◇‘삼국지 경영학’/최우석 지음/을유문화사

    《“삼국지는 무용담뿐만 아니라 정치, 군사, 외교, 행정은 물론 재무, 인사, 과학기술까지 망라하고 있다. 삼국지가 보여 주는 천시(), 지리(), 인화()의 중요성은 현대 경영에서도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조조 유비 손권…21세기형 CEO는?

    ‘삼국지’를 변주한 책은 무수히 많다.

     

    특히 경영 부문에선 인사와 리더십에 대한 원 텍스트로서 삼국지는 늘 인기를 끌고 있다.

    이 책은 조조 유비 손권을 최고경영자(CEO)에 대입해 그들이 가진 CEO로서의 장단점과 리더십 스타일을 일목요연하게 비교 분석하고 있다.

     

    많은 삼국지 관련 서적 가운데 이 책은 지난해 6월 1쇄를 발행한 뒤 올 5월까지 27쇄를 찍었으니 ‘스테디셀러’의 반열에 오르고 있는 셈이다.

    조조는 유비를 중심으로 쓰인 삼국지연의에서 ‘난세에는 간웅’으로 표현된 것처럼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하지만 저자는 조조를 개인적 능력이 가장 뛰어난 ‘만기총람()형’ CEO로 꼽는다.

     

    조조는 로마의 카이사르나 프랑스의 나폴레옹처럼 전쟁에선 훌륭한 장수였고 정치가로선 나라를 잘 다스렸으며 뛰어난 감성을 지닌 문인이기도 했다. 신상필벌을 엄격히 하고 좋은 인재가 있으면 어떤 사람도 마다하지 않고 찾아가 초빙했으며 누구도 예상치 못한 결단으로 난관을 돌파하는 데 일가견이 있었다.

    그는 흔히 신임하던 부하를 조그만 이유로 쉽게 내치는 옹졸한 인물로 그려진다.

     

    그는 적재적소에 인물을 쓴 뒤 그 용도가 다하면 가차 없이 제거했다.

     

    그러나 저자는 사소한 인정에 이끌리지 않고 회사 전체의 경영상 필요한 판단을 빠르고 정확하게 내린 것으로 평가했다.

     

    그는 항상 현실에 입각해서 냉철하게 판단하고 임기응변에 능했으며 기민하게 움직였다.

     

    저자는 삼국시대라고는 하지만 중원의 최강국을 건설했던 조조의 능력을 쉽게 폄훼할 수 없다고 평가한다.

    조조에 비해 유비는 답답하다.

     

    대의와 명분을 내세우며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그의 행보를 보면 안타깝기까지 하다.

     

    그러나 당장 손해를 보더라도 이상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선 대단한 배짱과 믿음이 필요하다. 길게 보면 그것이 이득이 된다.

     

    유비는 비록 인정과 의리에 약했지만 통이 크고 후했다.

     

    특히 사람을 믿고 쓰는 것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하는 CEO였다.

     

    권한을 한 번 위임하면 끝까지 맡기는 그의 리더십은 섣불리 흉내 낼 수 없는 것으로 그가 타고난 재질을 갖고 있음을 보여 준다.

     

    조조 같은 만기총람형이 명석하고 정력적이며 정확한 평가 시스템을 구축한다면 유비 같은 권한위임형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도전하고 건곤일척의 승부를 걸었던 조조, 유비와는 달리 손권은 부형의 패업을 물려받아 상대적으로 덜 험난한 길을 걸었다.

     

    그렇지만 그는 신중한 성격으로 물려받은 자원을 잘 관리했다.

     

    실리를 위해 체면에 구애받지 않고 실사구시를 구현했다.

     

    특히 그는 큰일이 생기면 신하를 불러 모아 의견을 경청하고 모두가 승복할 수 있는 안을 채택해 에너지를 결집시키는 능력이 탁월했다.

     

    특히 적벽대전을 앞두고 신하들의 반대를 설득해 가며 이끌어 간 그의 합리성은 재해석될 만하다.

    저자는 만기총람형(조조), 권한위임형(유비), 합의형(손권) 중 누가 더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만의 스타일을 적절히 구사할 때 국가(기업)의 운명이 결정된다고 결론 내린다.

    서정보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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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30>정열의 방랑자…

     

    ◇정열의 방랑자 프레야 스타크/제인 플레처 제니스 지음/이은주 옮김/달과 소

    《“1928년 3월 14일, 책과 옷과 리볼버 권총을 챙긴 뒤 베이루트에서 다마스쿠스까지 160km도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를 9시간 반 동안이나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떤 방도를 마련하지 못한다면 결국 이탈리아로 돌아가 시골 생활에서 끝내 벗어나지 못할까봐 두려웠다.”》

    편견의 땅 중동, 마음을 열고 탐험하다

    1927년 겨울, 프랑스가 위임 통치 중인 레바논에 34세 영국인 여성이 도착했다.

     

    키는 153cm 정도였고 병석에서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여윈 모습이었다.

     

    정규 학교 교육을 받지 못한 이 여성은 뒤늦게 중동 지역에 관심을 가져 28세에 아랍어 공부를 시작했다.

     

    그는 요리사와 시종 한 명을 거느리고 나귀와 조랑말에 몸을 실은 채 평생 거친 중동을 여행했다.

     

    시리아, 요르단, 아라비아 반도, 이라크, 이란, 아프가니스탄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었다.

     

    이 책은 90세까지도 여행을 멈추지 않았던 탐험가 프레야 스타크(1893∼1993)에 대한 전기다.

    레바논 산악 지대에 있는 이슬람의 한 종파인 드루즈파를 찾아갔던 그는 프랑스 군대에 잡혀 국제 분쟁을 일으킬 뻔했다.

     

    유럽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이란 서부 산악 지방인 루리스탄을 여행했고, 아라비아 남부 고대 향료 무역로의 잊혀진 도시를 찾아다녔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중동 전문가로 영국의 첩보 활동에 기여했다.

     

    중동 지역이 큰 변화를 겪던 시기 4권의 자서전과 8권의 서간집을 포함해 30여 권의 책을 쓴 그는 1993년 100세의 나이로 숨을 거뒀다.

    이처럼 매력적인 삶의 비결은 두려워하지 않는 데 있었다고 이 책은 전한다.

     

    그는 ‘아랍 놈들’과 어울린다는 이유로 영국 식민지 사회에서 눈엣가시 취급을 받았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슬람 사원의 내부를 보기 위해 변장을 하고 이교도에게는 출입이 금지돼 있는 알 카지미야 모스크로 몰래 들어가기도 했다.

     

    반군에 포위된 바그다드의 대사관 안에서는 티그리스 강 너머로 떠오르는 태양을 아름다운 문체로 묘사하는 태연함을 보였다.

    또 다른 비결은 타문화에 대한 존중이다.

     

    프레야 스타크는 1938년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여행가가 갖춰야 할 첫째 덕목으로 ‘자신의 기준과 맞지 않는 기준을 인정하고 자신의 가치관과 다른 가치관이 있다는 것을 인식할 것’을 꼽았다.

     

    그는 이슬람의 교리를 공부해 아랍 사람들에게 존중과 신뢰를 얻었다.

     

    “왜 영어나 프랑스어, 독일어를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어엿한 호텔에서 묵지 않는지 궁금한 일”이라는 주변 사람들의 오해와 걱정 속에서도 그는 현지인 가정에서 묵었다.

    이 책을 추천한 여행작가 권삼윤 씨는 “프레야 스타크는 현지인들과 허물없이 어울리며 험난한 곳을 돌아다니는 고행길을 선택했다”며 “나는 그녀가 했던 그 방식을 가능한 한 따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중동을 휘젓고 다녔던 이 여성의 삶을 따르다 보면 자연스레 20세기 전반 중동 정치를 들여다볼 수 있다.

     

    1941년 영국을 지지하는 조직을 만들기 위해 바그다드로 온 프레야 스타크는 라시드 알리 전 총리가 반()영국 성향 쿠데타를 일으킬 무렵 하지 아민이라는 이슬람 성직자를 만난다.

     

    아민은 쿠데타의 핵심 인물로 유대 민족주의를 반대하고 아랍의 독립을 주장하는 인물이었다.

    프레야 스타크는 그렇게 시대의 한복판에 있었다.


    조종엽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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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길 위의 동반자’

     

    ■‘여행…’시리즈를 마치며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네 번째 시리즈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이 13일 끝을 맺었다.

     



    이번 시리즈는 6월 23일 여행작가 양영훈 씨가 추천한 사진가 로버트 카푸토의 ‘여행 사진을 잘 만드는 비결’로 시작했다.

     

    양 씨를 포함해 대중에게 사랑받는 여행서로 이름난 국내 여행작가 10명이 30권을 직접 골라 의미를 더했다.

     

     추천 작가들은 권삼윤 김남희 김연미 김완준 박준 양영훈 오영욱 유연태 이병률 조창완 씨(가나다 순).

    여행작가가 추천했지만 여행기나 여행안내 책에 편중되지 않은 것이 이번 도서들의 특징.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이나 베르나르 앙리 레비의 ‘아메리칸 버티고’처럼 멋들어진 여행기도 들어 있지만 문학 철학 등 다른 분야의 책도 많았다.

     

    말 그대로 여행작가들이 여행길에 진정한 친구가 되어주는 책을 솔직히 고른 덕분이다.

    여행작가이자 시인인 이병률 씨는 3권 모두 문학 책만 추천했다.

     

    이 시인은 “이런 책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느낌, 낯선 곳에서 잠을 청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행복하다”며 마종기 시인의 ‘안 보이는 사랑의 나라’를 포함해 소설 ‘섬’ ‘다다를 수 없는 나라’를 골랐다. 오영욱 씨가 추천한 백영옥 씨의 소설 ‘스타일’이나 박준 씨가 추천한 ‘책그림책’, 김연미 씨가 고른 ‘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등도 비슷한 맥락에서 추천됐다.

    여행에 직접 도움을 주는 책도 많았다.

     

    ‘여행 사진을…’이나 ‘뛰어난 자연 사진의 모든 것’ ‘사진가의 여행법’ 등은 최근 사진에 관심 많은 여행객들의 취향에 맞아떨어지는 선정.

     

    ‘한국의 야생화’ ‘주말이 기다려지는 행복한 나무 여행’ ‘자전거 여행’ ‘허시명의 주당천리’ 등은 테마 여행을 선호하는 이들에게 좋은 지침서였다.

     

    김완준 씨는 “구석구석 실핏줄처럼 누비며 눈에 보이는 것 너머 풍경까지 포착해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책 선정 이유도 눈길을 끌었다.

     

    김남희 씨는 3권 모두 지난해 스페인 여행 당시 읽었던 책을 추천했다.

     

    조창완 씨는 3권 모두 현지답사나 다큐멘터리 제작 등을 이유로 자신이 직접 가본 장소가 등장하는 책을 꼽았다.

     

    권삼윤 씨도 인도 여행 때 읽은 오쇼 라즈니시의 ‘삶의 길 흰 구름의 길’, 그리스에서 탐독한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영혼의 자서전’ 등을 선정해 감칠맛이 묻어났다.

     

     

    25일부터 ‘근대의 풍경’ 연재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은 올해 ‘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 등이 연재됐습니다.

     

    25일부터는 다섯 번째 시리즈 ‘근대의 풍경 20선’이 연재됩니다.

     

    인문학자 및 역사 전문 출판사 등이 추천한 20세기 초 조국의 모습을 담은 역사서들이 소개됩니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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