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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근대의 풍경 20선]
    논술(설.문)독서도서詩소설수필연설 2008. 8. 30. 16:44
     
    [근대의 풍경20선]

     

     

     

     

    개화기 조선의 꿈-식민지의 덫



    ‘2008 책 읽는 대한민국’ 다섯 번째 시리즈가 26일 새롭게 출발한다.

     

    이번 주제는 올해 ‘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에 이어 8월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근대의 풍경 20선’으로 정했다.

    책 선정에는 허동현 경희대 국제캠퍼스 학부대 학장, 최영묵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와 윤양미 ‘산처럼’ 대표, 이갑수 ‘궁리’ 대표, 정보배 ‘사계절’ 인문팀장 등 근대역사 관련 서적을 많이 내는 출판사 관계자들이 추천에 참여했다.

    이번 시리즈는 근대를 소개하는 책 가운데 건국 60주년이란 의미를 살려 한국 근대에 관련된 도서에 집중했다. 난해하고 까다로운 학술서, 연구서보다는 기초지식이 없어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일반 교양서적 위주로 선택했다.

    20선 도서 가운데 하나인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를 쓴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은 “올해 건국 60주년, 내후년 한일강제합방 100년을 맞는 시점에서 ‘근대의 풍경’이란 주제는 언론을 포함한 여러 방면에서 자주 다뤄져야 할 주제”라면서 “근대에 대한 이해는 현재와 세계를 들여다보는 초석이 된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은 근대가 한국의 사회적 가치나 지적 토양분이 형성되는 시기라는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 대표 역시 “근대는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새로운 문물에 대한 지적 배치가 다양했던 시기”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번 책 선정은 사회 역사 문화 등 다양한 방면에서 근대에 어떤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살펴보는 데 주력했다.

    ‘황금광 시대’ ‘경성 자살 클럽’ 등을 집필한 전봉관 KAIST 교수는 “근대는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의 접점이란 측면에서 무궁무진한 연구 소재”라면서 “근대의 풍경이란 기획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섭취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근대의 풍경’은 전 교수가 쓴 ‘럭키 경성’을 첫 권으로 26일부터 소개한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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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럭키경성


     


    럭키경성/전봉관 지음/살림

    《“행사장 한가운데 서 있는 사람이 클리블랜드 대통령임을 알게 된 박정양은 무릎을 꿇고 이마를 방바닥에 조아리며 사죄와 충성의 표시로 세 번 배례하게 해달라고 사정했다. 대통령 수행원들이 돌출행동을 제지하고 일으켜 세우자 박정양은 당황해 어쩔 줄 몰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국서를 넣어온 상자의 열쇠를 찾지 못해 한동안 소동이 벌어졌고, 며칠 동안 준비한 취임사 원고를 호텔에 두고 오는 바람에 처음부터 끝까지 횡설수설하다 취임사를 마쳤다.” (‘해프닝, 해프닝, 해프닝’ 중에서)》

    협잡-투기꾼과 우아한 거부들

    1925년경 황무지나 다름없는 함경북도 나진 땅의 가능성을 간파하고 450만 평을 매입해둔 이가 있었으니 훗날 이 땅 덕에 천만장자의 반열에 오르게 되는 김기덕이다.

     

    일본의 종단항 건설 사업지로 웅기, 청진을 제치고 나진이 선정되자 그는 일약 부동산 거부로 떠오른다.

     

    쓸모없는 돌섬까지 사들이며 ‘정신 나간 놈’이란 비아냥거림을 들었지만 폭등을 거듭한 땅 값 덕에 수백 배 차익을 남긴 것.

     

    오늘날에도 사회 문제로 지적되는 부동산 투기의 원조를 보는 듯하다.


    조선시대 슈퍼개미들의 눈물나는 분투기도 있다.

     

    미두(쌀) 시세를 과학적으로 분석해 거래한 덕에 의도대로 자금을 확보하고 미련 없이 미두 판을 떠난 냉혹한 승부사 유영섭, ‘칼 물고 뜀뛰기’ 하는 투자 방식으로 미두 시장에서 운 좋게 원금을 불렸으나 증권회사 설립 후에도 그런 방식을 고수한 탓으로 3년 만에 빈털터리가 된 김귀현 등 한몫 잡기 위해 미두시장과 주식시장을 누볐던 개미들의 흔적이 기록돼 있다.


    1925년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 등 사회주의 문학 단체를 주도했던 김기진도 등장한다.

     

    그는 호구지책으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기자로 재직하며 낮에는 주식중매점, 밤에는 조간신문 편집의 ‘이중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는 “금광 등 큰 사업도 해봤지만 주식 매매는 오직 총명한 판단으로 짧은 시일 내에 일확천금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회고록에 적어 놓았다.


    근대 조선을 들썩였던 투기 열풍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관해 다룬 이 책은 근대인들의 ‘돈’에 관한 욕망을 재현한다.

    주식시장에 얼쩡거리면서 주가의 등락을 놓고 도박을 벌였던 합백꾼들, 미두시장에 뛰어들었다 전 재산을 잃고 미치광이가 된 사람들…

     

    당대를 휩쓸었던 땅, 광산, 주식 열풍을 읽다 보면 재물에 대한 욕망이란 부동산, 주식, 펀드에 열광하는 현대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서툴지만 당시 희소가치가 높았던 영어 실력 하나로 출세 가도를 달린 이하영, 고종의 명으로 미국으로 파견된 박정양 공사 일행이 미국 대통령 앞에서 당황해서 배례하는 해프닝 등을 접하면 시대상까지도 엿볼 수 있다.

     

    흑백사진처럼 단조롭던 근대는 어느새 인간들의 욕망과 애환이 섞여 역동하는 컬러의 시대로 다가 온다.

     

    이 책은 투기 소동에 관한 소극들뿐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한 근대의 거부들도 소개한다.

     

    사업에서 망했지만 절치부심 끝에 금광 왕이 된 이종만은 번 돈을 소작농을 위한 ‘자영농 육성사업’을 위해 쓴다. 보부상으로 시작해 거부가 된 이승훈은 안창호의 연설에 감화를 받아 오산학교를 세운다.

    역동적인 우리 근대의 모습이 저자의 맛깔 나는 문체와 수많은 자료로 재구성된 책이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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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2>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신명직 지음/현실문화연구

    《“도시 소시민이 창밖 도회 풍경을 바라보는 풍경은, 거리를 걷는 여성 혹은 전차 창밖을 바라보는 여성에 비해 무척 어둡고 시무룩하다.

     

    근대의 꿈 혹은 아스팔트의 환상을 아무리 현실로 옮기고 싶어도 그것이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1930년대 경성의 꿈은 그 실현을 방해하는 식민지라는 현실에 막혀 절망으로 변모되고 만 것이다.”》

    유쾌하거나 우울한 ‘식민지 도시남녀

    한국사에서 ‘근대’라는 시기는 묘한 위치다.

     

    조선 왕조가 힘을 잃어버리면서 열강들의 먹이가 됐다가 끝내 일본 제국주의에 짓밟혔다. 외국의 앞선 문물이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고 유교 획일주의에서 벗어난 모더니즘도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특히 1920, 30년대는 옛것과 새것이 섞이며 새로운 문화가 발현되는 ‘멜팅 폿(melting pot·도가니)’의 시대였다.

    이런 가운데 등장한 군상이 ‘모던-보이’와 ‘모던-걸’이었다.

     

    이들은 신학문과 신매체를 통해 서구 문물을 익히며 전근대성을 벗어나려 했던 젊음이자 일제강점기에 피어난 ‘하이브리드(hybrid·혼종 혹은 교종)’였던 셈이다.

     

    ‘모던뽀이, 경성을 거닐다’는 이들의 삶과 문화에 주목한 책이다.

    일본 구마모토가쿠엔대 동아시아학과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저자는 모던족을 들여다보는 돋보기로 ‘안석주의 만문만화()’를 선택한다.

     

    석영 안석주(1901∼1950)는 화가, 문인, 배우이자 영화감독이었으며 ‘우리의 소원’의 원가사를 지었다.

     

    그가 동아일보 등에 실었던 ‘만문만화’는 일본의 ‘만화만문’에서 유래된 것으로, 시사나 풍자적 소재를 바탕으로 한 만화 그림과 짧은 글을 일컫는다.

    팔방미인이었던 안석주는 만문만화에서 다양한 소재를 넘나든다.

     

    세계화와 근대화에 노출됐던 경성은 ‘만화경()’ 그 자체다.

     

    잘생긴 총각과 밀회를 즐기는 젊은 첩, 다 쓰러져가는 초가집에 살면서 양복을 빼입은 룸펜 신사, 방학 귀향길에 일제 상품을 손에 든 학생들, 댄스홀과 찻집, 기생집의 세태….

    100년 가까이 지난 과거지만 근대의 삶은 오늘날 모습과도 이어진다.

     

    청계천을 경계로 북쪽 종로통은 가난한 전근대적 거리, 남쪽 명동은 번화한 백화점 거리로 나뉘는 게 오늘날 강남 강북 구도를 보는 듯하다.

     

    값비싼 장신구 치장에 골몰하는 젊은 여성들은 ‘된장녀’ 논쟁과 닮았다.

     

    고등교육을 받고도 취직이 안 돼 다방이나 공원에서 시간을 죽치는 지식인의 풍경도 낯설지 않다.

     

    “실업자의 심경은 그가 아니면 모른다. 아츰에 뜨는 해도 보기 실코, 밤에 뜨는 달도 보기 실코, 모든 색채 모-든 움즉이는 물체, 아모리 조흔 소리라도 다- 듣키 실코, 도대체 사는 것이 실타. (…) 돈 십전만 잇스면 찻집이 조타고 드러가나 컵피차 한 잔만 먹고 왼종일 안저잇슬 수는 업스니, 길로 헤맨다.

     

    이래서 양복쟁이 룸펜이 된다.”(1934년 ‘도회점경’ 중에서)

    만문만화가 암울한 세태만 전하는 게 아니다.

     

    초여름 밤 한강변에서 보이는 젊은 남녀의 사랑가, 여성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모습들은 ‘유쾌한 근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모던-보이’가 들려주는 근대는 움츠렸으되, 꿈틀거리는 시대의 기운이 담겼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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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3>대한제국 황실 비사

     

    대한제국 황실 비사/곤도 시로스케 지음/이마고

    《“나는 15년간 창덕궁의 사무관으로서 각 부국을 두루 역임하면서 궁 안의 거의 모든 일을 담당했으며, 특히 생사를 다툴 때 황제와 황후의 시종이 돼 측근으로서 바로 옆에서 모신 일도 있다.

     

    아마도 일본인으로서 외국 황제의 시종이 된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궁궐감시인이 본 왕족과 친일파

    저자 곤도 시로스케는 1907∼1920년 조선 황실 궁내부(왕실에 관한 일을 맡아 보던 관아)에서 관리를 지낸 일본인이다.

    그는 이 경험을 일제강점기 발행된 ‘조선신문’에 ‘창덕궁의 15년’이란 제목으로 연재했고 1926년 8월 단행본으로 출간했다.

    저자는 궁내부를 보좌하기 위해 등용됐다고 하지만 사실 일제가 궁내부를 감시하기 위해 파견한 인물이었다.

     

    그런 만큼 이 책은 조선의 식민지화를 정당화하는 전형적인 일본인의 인식으로 쓰여 한국 독자를 화나게 하는 부분이 많다.

    이토 히로부미가 영친왕을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일본에 인질로 잡아간 역사적 사실을 “왕세자의 재능을 성장시키기 위한 이토 공작의 지성지순()”이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그러나 15년간 조선 황실에서 일하며 순종의 시종까지 담당한 저자가 일기 형식으로 쓴 이 책은 100여 년 전 일본인들이 조선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에는 일제강점기 권력의 주도권을 놓고 암투를 벌인 친일파 윤덕영과 이완용, 창덕궁을 일본 천황에게 헌상하려던 이완용을 꾸짖은 순종 등 다른 곳에서 찾아볼 수 없는 기록이 있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서구 열강과 일본의 압박에 고뇌하는 고종, 창덕궁과 덕수궁으로 생활공간이 제약된 고종과 순종의 고립감도 드러난다.

    상궁을 선물로 포섭하려 한 이토 히로부미의 행적도 적혀 있다.

     

    저자는 그의 ‘노련함’을 극찬한다.

     

    “이토 공작은 노련한 대정치가였던 만큼 여성의 힘을 이용하는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다.

     

    내가 알기로 이토 공작은 도쿄에서 조선으로 돌아올 때마다…

     

    반드시 상궁에게도 고운 옷감이나 시계, 목걸이와 같은 물품을 선물했기에 궁중에서 이토 공작에 대한 신뢰가 두터웠다.”

    그러나 역자는 이에 대해 “이토 히로부미가 궁녀들을 포섭하기 위해 선물 공세를 편 것은 사실이지만 국권 탈취 음모에 분개한 궁녀가 많았고 왕세자(영친왕)를 유학이라는 명목으로 인질로 잡아갈 때 궁녀들이 분노했다”고 말한다.

     

    1910년 국권침탈 전 일본 경무총장이 창덕궁을 시찰하는 등 조선 황실의 저항에 철저하게 준비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도 있다.

     

    아카시 경무총장은 창덕궁을 관람한다는 명목으로 들어와 순종이 머무는 어전까지 염탐하다가 순종에게 들킨 뒤 “오늘 들켜서 참 난처하구먼, 더위보다 국왕께 들키는 바람에 오히려 더 땀이 났단 말이야”라고 말한다.

     

    또 궁문을 열고 닫는 열쇠를 이때 일본 경찰에 비밀리에 넘기는 과정도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친일파인 윤덕영이 순종의 일본 방문을 성사시키기 위해 고종을 압박하는 과정을 “신랄한 책략을 동원해 옛 신하로서 도저히 할 수 없는 무리한 시도까지 하면서…그 수단의 신랄함, 냉혹함, 거기에 끈질김은 참으로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표현했다. 당시 윤덕영의 행적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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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4>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

     



     

    ◇ 제국의 바다, 식민의 바다/주강현 지음/웅진지식하우스

    《“(일본의) 촌구석이었음에도 일찍이 바다로 열려진 창구를 이용하여 힘을 키우고 그 힘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되었으니 바다를 통한 힘의 축적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바다를 배척한 조선, 바다를 개척한

    “(일본의) 촌구석이었음에도 일찍이 바다로 열려진 창구를 이용하여 힘을 키우고 그 힘으로 메이지유신의 주역이 되었으니 바다를 통한 힘의 축적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륙의 일부인가, 바다의 일부인가.

    ‘관해기’ ‘적도의 침묵’으로 해양문화사에 대해 탁월한 해석을 선보여온 작가는 이 선택이 한국과 일본의 근대사를 결정했다고 말한다.

    1543년 8월 25일 일본 규슈의 최남단 가고시마 앞 섬 다네가시마에 낯선 외국인들이 상륙했다.

     

    이들은 남만국 상인들. 도주()는 이들이 가진 물건 중 총에 흥미를 느껴 구입한 뒤 고스란히 복제해 임진왜란에서 이용한다.

    저자는 100년 뒤 조선에서 일어난 일화를 대비시킨다.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들이 오자 조선의 조정은 이들을 조사한 뒤 출국을 금지하고 군사도감에 배치한다.

     

    저자에 따르면 조정은 이들에게서 고급 군사 지식을 얻기보다 단순 노동을 시켰다.

     

    이들을 18년 동안 억류하고 있었지만 이들로 인해 일어난 변화는 없었다.

    저자는 하멜 일행의 목적지가 나가사키였을 정도로, 일본은 상당한 수준으로 세계와 교류하고 있었음을 상기시킨다.

     

    그 통로는 바다였다.

    명, 청이라는 거대 대륙이 막고 있는 육로는 다른 문화와의 소통에 걸림돌이었지만 경계가 없었던 바다는 지식과 자본이 자유롭게 오가는 소통로였다.

     

    결국 이 소통로를 받아들인 일본은 급속한 발전을 이뤘다.

    양국의 역사는 19세기에 극단적으로 갈린다. 제국주의가 기승을 부리던 이때도 통로는 바다였다.

     

    저자는 19세기 일본의 상황을 자세하게 설명한다.

     

    메이지유신의 주역인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인물과 사회 상황을 사료와 그림, 사진을 통해 보여준다.

    사쓰마번과 조슈번의 공통점은 바다를 인접하고 있다는 것.

     

    중앙에서 멀리 떨어진 이들은 바다를 통해 해외 세력과 접촉했고 곧 중앙의 막부를 능가할 힘을 얻는다.

     

    일본에서도 변방인 사쓰마번이 강대국인 영국과 전쟁을 벌였다는 점도 흥미롭다. 이후 일본의 근대화를 이끄는 이토 히로부미, 야마가타 아리토모, 오쿠보 도시미치 등도 사쓰마와 조슈번 출신이다.

     

    저자는 이들이 근대화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은 해양을 통해 외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는 데 일찍 눈을 떴기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비록 이들은 정한론을 통해 조선을 식민지로 삼는 첨병의 역할을 했지만, 그 힘을 축적한 배경을 살펴봐야 한다고 말한다.

     

    조선의 상황은 또 대비된다.

     

    청의 간섭 때문에 일본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기는 했으나 저자가 보기에 조선은 사고() 자체가 일본과 달랐다.

     

    일본이 해양을 진출의 통로로 생각한 데 비해 조선은 해양을 방어벽으로 여겼다.

     

     

    이로 인해 조선은 확장은커녕 본토 밖 거문도나 독도 등 주요 섬들을 지키는 것도 버거웠다.

     

    조선 숙종 때 에도의 막부로부터 울릉도가 조선 땅임을 확약받았던 안용복과 성종 때 울릉도를 개척했던 김한경은 월권을 저질렀다는 이유로 심문당하고 극형에 처해졌다.

    저자는 발상의 근본을 바꿔야 한다며 한반도 주변의 지도를 거꾸로 보여준다. 한반도의 북쪽이 남쪽을 향하고, 그 아래 만주와 시베리아가 있다.

     

    이렇게 보면 한반도는 대륙보다 해양(태평양)으로 뻗어나가는 통로가 된다.

    유성운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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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5>경성상계



    경성상계/박상하 지음/생각의 나무

    《“1899년 음력 사월 초파일, 미국인 기업가 콜브란이 ‘번갯불 먹는 괴물’ 또는 ‘축지법 부리는 쇠바퀴’라 불린 생전에 듣도 보도 못한 전차를 종로 거리에 선보였다. 지금의 서대문 로터리인 경교에서 종각∼종로∼동대문까지 전차가 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문을 듣고 몰려든 사람들로 운행이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북새를 이루었다.”》

     

     


    일본상인과 겨루며 성장한 ‘토착자본

    19세기 말 개항()부터 일제강점기를 거쳐 1945년 광복. 그 사이 조선 왕조는 몰락하고 서양 문물이 유입되면서 자의든 타의든 이 땅에서 근대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짚신이 점차 고무신과 구두로 바뀌었고 달구지와 인력거 옆에 어느 샌가 전차가 달리고 있었다.


    금난전권()으로 조정의 보호를 받았던 종로 네거리의 육의전 시전 상인들이 전부였던 경성에는 일본 상인들이 밀려들었고 그에 맞선 상인들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경성상계’는 개항 이후 광복에 이르기까지 옛 서울인 경성 상계()의 변화와 그에 따른 생활상 변모 과정을 보여준다.

    1910년 전후 조선에 처음 등장한 자동차는 ‘쇠당나귀’로 불렸다.

     

    당시 시중에는 “궁궐에 이상한 소리를 내며 제 스스로 달려가는 괴물이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1928년 택시요금은 4인 기준으로 1원(현 시세로 12만 원)이었다.

    1922년 9월 신문에는 치열한 광고 전쟁이 펼쳐졌다.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 고무신이 질기다 함도 별표고무를 말함이오….”

    “경고!! 일 년간 사용, 확실 보증품. 가짜 거북선표가 많사오니 속지 마시고 거북선표를 사실 때에는 아래 그림과 같이 거북선 상표에 물결 바닥을 사십시오.”

    평양의 일본인 잡화상 사환이었던 이병두가 구두 모양의 일제 고무신을 짚신 모양으로 바꾸어 내놓아 대박을 터뜨린 직후였다.

    세태는 왕족까지 먹고 살기 위해 상업에 뛰어들 정도로 변하고 있었다. 경상도 관찰사(도지사)를 지낸 왕족 이재현이 대표적이다.

     

    그는 경성 거리에 유리창으로 반짝이는 새로운 근대 건축물들이 여기저기 들어서기 시작하던 1913년 유리공장을 경영하는 기업가로 변신한다.


    건설 경기가 시들해진 상황에서 제1차 세계대전이 나자 인플레이션을 예상해 쌀을 사재기했던 그는 그해 가을 수십 년만의 대풍년이 들면서 폭삭 망하고 말았다.

    월급 받는 직장인이 늘면서 1930년대에는 ‘샐러리맨’에 대한 얘기가 심심치 않게 나온다.

    ‘삼천리’의 인터뷰 기사에 따르면 1936년 당시 전속 가수 월급은 60원(현 시세 720만 원), 버스차장은 하루 수입 75전(현 시세 9만 원)이었고 신문기자 월급은 70원(현 시세 840만 원)이었다고 한다.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 중심의 남촌()은 ‘일본인 거리’로 불렸다.

     

    종로 화신백화점과 남촌인 현 신세계백화점 자리에 있었던 미쓰코시백화점의 경쟁은 그래서 한일 상권의 대결이기도 했다.

     

    화신백화점은 ‘조선의 백화점’이란 신문 광고를 내 애국심에 호소하기도 했다.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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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6>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조선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한정주 지음/다산초당
     




    《“왜 재물의 이로움에 관해 논하는가?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음식을 대신해서 바람과 이슬을 먹을 수 없고 깃털로 몸을 가릴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연히 옷과 음식을 만드는 일에 종사한다. 위로는 조상과 부모를 봉양하고 아래로는 처자와 노비를 먹여 살려야 하기 때문이다. 재물의 이로움을 경영하고 넓히지 않을 수 없다.” -‘택리지()’ 생리 편》

    성리학 이념 대신 민생을 논하다

    조선시대 국가사상인 성리학은 개인의 덕망과 품격 고취를 삶의 최고 가치로 여겼다. 돈에 대한 이야기는 선비가 삼가야 할 ‘천박한’ 화제였다.

    하지만 굶주린 백성에게 고결한 가치 추구는 허망한 양반놀음일 뿐. 연암 박지원은 소설 ‘허생전’에서 “도둑질이라도 해서 돈을 벌어 오라”며 선비 남편을 타박하는 아낙의 말을 통해 민생을 도외시하는 사회지도층을 비판했다.


    연암처럼 서민 생활의 질을 높이고 사회를 부유하게 만들 방법을 고민한 당대의 학자들은 또 있었다.


     

    이 책은 화폐가 활성화된 17, 18세기에 사회 경제 현상을 분석하고 발전 방향을 모색했던 13인의 조선 경제학자들을 조명한다.

    택리지를 쓴 이중환은 ‘지리경제학의 개척자’로 해석됐다.

     

    택리지는 경제적 사회적 관점에서 전국 8도의 산업 소비 주거 인심 등을 종합적으로 답사한 책.

     

    이중환은 농업 상업 무역에 적합한 지역을 분류하고 상품 종류에 따른 합당한 유통 방법도 제안했다.

    ‘토정비결’의 이지함에게 붙여진 설명은 ‘최초의 사대부 출신 상인이자 중상주의() 경제학자’다.

    “이지함은 조선의 부국안민()을 위해 학문을 펼친 경제학자였다.

     

    그는 ‘상공업을 발전시켜 농업을 보완해야 한다’는 본말상보론()과 ‘자원 경영, 인재 경영, 공동체 경영의 세 가지 정책으로 경제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독창적인 삼대부고론()을 강조했다.”

    조선시대 학자들을 분석하며 비슷한 시기의 서양 경제학과 비교하는 시선도 흥미롭다.

     

    저자는 영조 때의 실학자 유수원이 영국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맬서스가 내놓은 ‘인구론’과 대비되는 견해를 내놓았다고 분석한다.

    맬서스는 ‘인구 증가가 빈곤의 원인’이라 생각했다.

     

    반면 유수원은 저서인 ‘우서()’를 통해 “세월이 태평해 백성이 번성하면 농토가 늘어나지 않아도 식량을 비축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지적했다.

     

    전쟁이나 전염병 없는 안정된 사회가 갖는 생산성을 높이 평가한 것이다.

    정조의 개혁을 보좌한 명재상 채제공은 시장과 상업 활동의 자유를 옹호한 시장주의자로 소개했다.

     

    시전 상인들의 독과점 횡포로 인한 백성들의 고통을 조목조목 아뢴 상소문에는 날카로운 현실 비판뿐 아니라 실행 가능한 구체적인 대안이 담겨 있다.

     

    이용후생()을 사상의 근본으로 삼았던 중상주의 경제학자들의 리더 박지원은 현실을 간파하지 못하는 관료와 지식인을 엄중히 비판했다.

     

    그의 사상은 손자 박규수를 통해 김옥균 박영효 등 19세기 젊은 개화 사상가들의 근대화 노력에 영향을 미쳤다.

    국가 경제가 위태로운 시기를 지나고 있다. 난국을 뚫고 나갈 책임을 맡은 이라면 선인들의 이야기를 돌아보며 민생을 도울 혜안()을 찾아볼 만하다.

    손택균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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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7>모던 수필

     

    ◇모던 수필/방민호 엮음/향연

    《‘서점에서 나는 늘 급진파다. 우선 소유하고 본다. 정류장에 나와 포장지를 끄르고 전차에 올라 첫 페이지를 읽어보는 맛, 전찻길이 멀수록 복되다. 집에 갖다 한번 그들 사이에 던져 버리는 날은 그제는 잠이나 오지 않는 날 밤에야 그의 존재를 깨닫는 심히 박정한 주인이 된다.’ (이태준 ‘책’ 중에서)》

    암흑기 대표문인 51인의 맛깔난 산문

    근대의 풍경을 반추해보기 위해 당대를 살았던 문필가들의 산문만한 단서가 있을까.

    이 책에는 이태준 김기림 채만식 김유정 이광수 이상 백석 등 1920년대부터 광복 전후까지 51명의 문인이 쓴 산문 91편이 수록됐다. 당대의 문필가로 손꼽히던 이들이 문예지 일간지 등에 발표했던 글들에는 문인들의 진솔한 인생관이 녹아 있다.

    소탈한 맛과 유머가 생동하는 글뿐 아니라 당대 풍경을 짐작하게 하는 풍속화 같은 산문, 가슴을 찡하게 만드는 삶의 면면이 숨쉬는 글, 작가의 문학관이나 사상을 담아낸 글 등이다.

    책을 읽다 보면 일제강점기를 보낸 이들의 글이 현실에 대한 지식인의 고뇌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는 편견이 사라진다.

    이들의 글 속에 사람들의 소박하고 정겨운 삶이 살아 있다.

     

    소설가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김남천의 ‘냉면’ 이란 산문에서는 평안도 출신 작가의 냉면론이 전개된다.

     

     

    어머니 등에 업혀 있던 어린 시절부터 냉면을 먹기 시작한 평안도 사람들이 길사 경사 흉사를 막론하고 냉면을 상에 올리고 화가 치밀거나 상심할 때도 술 대신 냉면을 찾는다.

     

    ‘나는 그의 귀여운 발이 멀리 갔다가 나의 집 처마 아래 참새처럼 찾아드는 고운 걸음걸이를 한량없이 사랑한다’고 애틋한 연정을 읊는 시인 임화의 산문은 밑줄을 긋게 만든다.

    놀라운 점은 반세기 전의 산문들이 오늘을 사는 우리의 삶과 괴리감 없이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다.

     

    책만 보면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 냉큼 사놓고 한두 페이지 읽은 뒤 방치하는 소설가 이태준의 산문 ‘책’을 보자.

     

    다 읽지도 못한 책을 친구가 빌려 읽고 심지어 평가까지 하는 것에 대해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끼는 대목에선 웃음이 난다.

     

    먹잇감을 잔인하게 죽이는 고양이의 비윤리성을 증오하다가 그것이 자연의 법칙임을 깨닫는 김동석의 수필 ‘고양이’도 유머가 묻어 나는 끝맺음을 보여준다.

    ‘정녕코 쥐 잡는 고양이가 밉살스럽거든 고양이를 채식주의자로 만들기에 힘쓰라. 그것은 불가능하다고?

     

    그러면 그대의 이상은 불가능에 봉착하는 것이다.

     

    그것은 힘든 일이라고?

     

    인류 역사상 곤란 없이 실현된 이상이 어디 있었던가.’

    어린 자식의 병을 계기로 공덕을 쌓지 못하고 산 자신의 삶을 반성하는 이광수의 ‘참회’나 삼복더위 속에 폐결핵으로 고생하며 귀뚜라미 울음소리를 그리워하는 김유정의 ‘나와 귀뚜라미’ 등에서는 진솔하면서도 소탈한 인간적 면모를 엿볼 수 있으며 김기림 정지용 등의 문학과 예술에 관한 성찰을 감상할 수도 있다.

     

    나도향 최서해 이상 등 타계한 작가들을 기리며 동료 문인들이 썼던 조사에서는 소소한 술버릇부터 죽음을 앞둔 투병 모습까지 선연하다.

    좋은 글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는 가치와 생명력을 지닌다는 것, 이것이 문학의 힘이란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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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8>부랑청년 전성시대

     


    부랑청년 전성시대/소영현 지음/푸른역사

    《“이 책은 1900년대 전후에서 1920년대에 걸친 시기에 근대의 대표적 인간형으로 선택되었던 ‘청년’을 중심으로, 청년이 불려나오고 만들어지며 분류되어 갔던 구체적 장면들을 둘러본다. 때로 ‘청년’을 만들어 내는 토양에 시선을 두기도 하고 ‘청년’이라는 이름이 지워 버린 흔적들을 더듬기도 하면서, 조각난 장면들을 잇대어 ‘청년’ 시대의 희미한 상을 마련해 볼 것이다.”》

    일제하 희망 잃은 청춘들의 삶과 고뇌

    서구의 근대 문물이 급속히 쏟아졌던 100년 전 한국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땠을까.

    이 책은 100년 전 이미 ‘근대적 인간’의 외양을 띠었으나 일제강점이라는 현실 속에서 절망했던 20세기 초 한국의 청년들에게 주목했다.

    1923년 최초의 근대 시집을 발간한 김억(1893∼?)이나 소설 ‘임꺽정’의 홍명희가 당시 신종 국제 공통어인 에스페란토를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이 책의 장점은 근대 문물의 유입과 일제강점이라는 혼란한 사회 격변기에 나름의 정체성을 찾아가야 했던 청년들의 고민과 일상을 당시 발행된 수많은 인쇄물, 산문, 잡지, 청년 모임들이 펴낸 문집을 통해 생생하게 재구성한 데 있다.

    근대적 청년의 등장은 외모와 패션의 변화로 시작됐다.


     

    “세비로(남성복의 윗옷을 뜻하는 색코트·sack coat) 양복을 갖춰 입고 맥고모(밀짚 등으로 여름에 쓰는 모자)를 쓰고 단장(·짧은 지팡이)을 들어야 했다.

     

    도회 중심가에 있는 서점에 들어 수입 잡지나 서적을 둘러보고 만년필을 꺼내 뭔가를 끼적여 보기도 해야 했으며…

     

    여성이라면 긴 드레스나 양장 투피스 한 벌쯤은 마련해 둬야 했다…

     

    활동사진관 구경이나 야시() 산보에도 익숙해져야 했으며 때로 도서관이나 강연회, 음악회나 문예전람회에도 들어야 했다.”

    ‘외적 근대화’에 숨은 허영심을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구두에 버선을 신고 도심을 거니는 여성은 어설픈 근대화의 우스꽝스러운 부산물로 비난받았다.

     

    1909년 서울 종로에서 궁중요리와 고급 술, 기예를 팔았던 요릿집 명월관을 ‘부랑청년의 집합소’라고 부르는 비난의 소리도 높았다.

    외모를 근대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일상도 근대적으로 변해야 한다. 삶의 변화 속에서 근대 청년의 정신이 탄생했다.

    당시 사람들은 근대적 청년은 응당 근대 문물을 받아들여 상실한 국권을 회복하고 사회 개혁과 지식 전파에 나서 새로운 시대에 적합한 문화를 만들어 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고 활동사진집이나 요릿집에 가서 노는 청년들을 부랑청년이라고 불렀다.

     

    근대적 학교를 다녀 근대적 의식을 접했으면서도 서양 문화에 익숙했으나 놀기만 했던 청년들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고 본 것이다.

    그러나 부랑청년이라고 불렸던 이들은 고루한 인습에 순응하기 싫으면서도 일제강점이란 절망적 상황에서 근대적 일상을 살아갈 뚜렷한 희망을 잃었던 것이다.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인 저자는 이들이 일종의 ‘정신적 자살 상태’에 놓여 있었으며 현실을 거부하고 타락의 나락으로 떨어지기도 했다고 말한다.

    저자의 표현처럼 당시 청년들은 “진지했으며 가난했고 열정적이었으나 때론 전투적이었고 본의 아니게 비열했으며 신랄할” 정도로 복잡한 삶을 살았던 것이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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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9>근대라는 아포리아

     

    근대라는 아포리아/고사카 시로 지음/이학사

    《“서양과의 접촉 및 서양 열강의 침략은 중국이 가장 빨랐고 일본, 조선으로 이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양문화 수용에 대한 각국의 논의인 중국의 중체서용(西)은 (일본의) 화혼양재()보다 40년 늦었고 조선의 동도서기(西)는 20, 30년 늦었다. 근대화(서양화)라는 하나의 기준으로 연대를 비교하면 조선은 30년, 중국은 40년 뒤에 일본의 뒤를 좇는다. 왜 이런 차이가 생겼는가.”》

    닮은듯 달랐던 문물 수용철학

    아포리아는 해답을 찾기 곤란한 난제()를 말한다. 저자에게 근대는 아포리아다.

     

    근대를 처음 접하고 사람들이 근대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들이 이해한 방식을 다시 현대의 우리가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는 풀기 어려운 퍼즐이다.

     

    저자는 한국과 중국 일본 가운데 일본의 근대화가 가장 빨랐던 이유에 대한 일본 주류학계의 담론을 비판한다.

    근대화론이 주장하듯 ‘일본(민족)의 우수성’이나 전()근대 시기에 이미 사회 문화적으로 근대화를 촉진시킬 요소들을 발전시키고 있었다는 근대화준비론이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일본이 아시아에서 최초로 근대화에 성공한 이유를 개국()이 가장 빨랐던 점을 들어 개국 시기의 차이에 따른 것으로 설명하는 데 대해서도 식민지 지배를 받은 조선과 중국 등의 고통을 외면해 온 오만함을 반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같은 비판에서 출발한 저자는 조선과 중국 일본의 근대화 과정의 차이를 분석한다.

     

    그에 따르면 ‘동양적 가치관을 지키면서 서양의 과학기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절충주의적 논리’로서 세 나라에서 각각 발현한 동도서기와 중체서용, 화혼양재는 닮은 듯했지만 전혀 달랐다.

    일본의 경우 화혼(일본의 정신)과 양재(서양의 재주)는 같은 비중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조선에서 동도(동양의 도)와 서기(서양의 기술)는 그렇지 않았다.

     

    동도와 서기는 차원이 다른 것이기 때문에 제도를 뺀 서양의 기술적인 것만 받아들이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또 ‘중국을 강하게 하고 중국학문을 지키려면 서양학문을 배워야 한다’는 맥락에서 등장한 중체서용은 사실상 근대화에 대한 비판을 위한 것이었다.

     

    저자는 세 나라가 받아들인 서양문명의 내용이 ‘일본은 학문과 기술, 조선은 기독교, 중국은 공산주의’로 특징지어진다고 말한다.

    같은 유교 문화권이었던 세 나라의 민족주의의 내용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다르게 형성됐는지도 분석한다.

    일본의 존황양이론()은 서양의 기독교를 부정하며 천황제 중앙집권국가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고 조선 후기의 위정척사() 사상은 국내에 퍼지던 천주교를 이단이라고 배척한 이데올로기 투쟁이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배만흥한(滿)은 만주족이 지배한 청나라의 역사가 막을 내리고 중화사상이 붕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말한다.

     

    저자는 세 나라의 민족주의가 서양의 ‘기독교와 부르주아 제국주의’에 맞섰을 때 나온 대응도 전혀 달랐다고 지적한다.

    일본은 천황제를 의사종교()처럼 떠받들며 유교를 포기하고 제국주의 노선을 걸은 반면 한국은 기독교와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 속에서 망설이다가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이어 일제에 대한 저항으로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중국은 농민들 사이의 유토피아적 대동사상이 기독교를 매개로 반봉건 투쟁 이데올로기가 된 뒤 공산주의 운동으로 이어졌다고 분석한다.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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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0>서울에 딴스홀을 하라

     

    ◇서울에 딴스홀을 하라/김진송 지음/현실문화연구

    《“1930년대에는 일상 깊숙이 침투한 낯설고, 불협화음을 내며, 퇴폐적이고 비도덕적인 ‘현대’라는 현상들을 새로운 일상으로 재조직하려는 수많은 시도들 또한 한편에서 존재했다. (…) 현대화(근대화)란 개인의 의식과 행동에 균등한 자유를 보장하는 개방과 자유를 요구하는 것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의식과 행동들이 궁극적으로 사회의 자유와 평등을, 그리고 문화적인 고양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대인’ 그 원형을 찾아서

    저자가 첫머리에 밝히듯 이 책은 출발이 독특하다.

     

    저자는 원래 한국의 근현대 문화 자체에는 큰 관심이 없었으나 한국 근현대 미술사를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문화 전반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근현대 미술 행위의 결과로 나타나는 당시의 ‘근대성(그리고 현대성)’이 현재의 미술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규명하고 싶었던 것이다.

    책은 그 근대성을 찾아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가 보기에 1930년대는 ‘현대가 형성된 곳’이다.

     

    지금 보면 어색하고 촌스러움이 밴 낯선 과거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 시기는 현대인의 원형이 싹트고 있었다.

    이를 좀 더 이해하기 위해 저자는 두 가지 개념 축을 염두에 둘 것을 권한다.

     

    첫 번째는 ‘나(주체)’와 ‘나에게 다가오는 다른 것(타자)’이며 두 번째는 ‘새로운 좋은 것(서구 또는 현대)’과 ‘낡은 나쁜 것(전통 혹은 봉건)’이다.

     

    이 두 개의 개념축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 1930년대 다양한 패러다임을 이뤄나간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일제강점기 현실에서 살아가던 지식인은 ‘개념 축의 교차’를 읽을 수 있는 텍스트다.

     

    날선 사각모에 망토를 두른 외양의 지식인은 타자에겐 경외의 대상이 되고 스스로도 선민의식을 가진 ‘새로운 좋은 것’의 향유자들이었다.

     

    하지만 식민지 관료나 교사 등 직업을 갖지 않고 주체적으로 실업자의 길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은 영락없이 ‘낡고 나쁜 것’의 몰락한 양반 모습 그대로였다.

    “1930년대가 되어 신식교육이 확산되면서 지식인의 수는 훨씬 많아졌다.

     

    그러나 그만큼 고등실업자 수가 늘어나면서 ‘룸펜’이라는 말이 하나의 유행어처럼 번졌고 스스로를 멋스럽게 룸펜이라고 부르는 치도 늘었다.

    룸펜이란 말은 독일어에서 누더기, 넝마란 뜻으로 제정러시아 시대의 서구파 자유주의자들을 이르는 말로 지적 노동에 종사하는 사회층 지식계급을 의미하며 이들의 본질적인 속성은 반항과 불안, 무기력 등이다.”

     

    이 책은 연구서로 출발했지만 근대라는 관념의 틀에 빠지지 않았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인 사례를 살펴가면서 ‘있는 그대로의 날것’을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덕분에 책은 진지한 내용을 다루면서도 답답하지 않다.

    이 책을 통해 1930년대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관통한 근대성을 살피는 것은 현대에 우리 사고를 지배하는 틀을 발견하는 일이기도 하다.

     

    저자의 말처럼 “당시 지니고 있던 사고의 줄기나 생각의 결들이 밑동을 파보면 현재와 동일한 뿌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모던 보이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의 또 다른 이름이었던 셈이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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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1>근대의 책 읽기

     

    근대의 책 읽기/천정환 지음/푸른 역사

    《‘이 책은 책 읽기에 대한 책이며, 책 읽기의 한 과거에 대한 책이다. 그 과거란 인문·사회학자들이 즐겨 근대라 칭하는 그 연대의 들머리에 놓인 시간으로서, 현재와 직접 이어져 있는 한편 미래를 예견하게도 하는 그런, 아주 연() 두터운 과거이다.’ 》

    평양 기생, 투르게네프에 빠지다

    이 책은 근대에 관한 색다른 주제를 탐색한다.

    1920, 30년대 한국사회의 근대성을 ‘책 읽기’ 문화를 통해 분석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중독자, 텍스트(주로 문학 텍스트), 작가라는 근대 독서의 세 주체가 어떻게 상호 연동했는지 살피고 근대 한국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짚어본다.

    한국 근대소설이 식민지 자본주의라는 조건 아래서 생산 유통됐다는 점은 이 분석에서 중요하게 다뤄진다.

    저자는 먼저 근대 독자 형성의 문화적 제반 조건을 따진다. 그에 따르면 근대 출판시장은 1919년 3·1운동 이후 근대적 학교교육이 보급되며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20년대 중반 이후에는 신문 저널리즘의 영향 등으로 대중문화로서의 영향력도 확보했다.

     

    이 과정에서 독자는 근대 이전부터 구연된 고전소설의 향유자인 ‘전통적 독자층’, 대중·통속소설 향유자인 ‘근대적 대중독자’, 순수 문예작품과 일본 작품 향유자인 ‘엘리트적 독자층’으로 분화한다.

    독자층의 분화는 일제 치하의 모순적 언어 상황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편으론 높은 문맹률을 유지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문명생활’을 위해 일본어 습득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근대소설은 이 중 후자의 두 계층에 의해 유력한 도시 대중문화의 하나로 자리 잡게 된다.

     

    이 외에도 영화 연극 등 새로운 장르의 출현과 책 읽기의 상호작용, 당시 폭발적인 양상이었던 편지 쓰기(그중에서도 내밀하고 낭만적인 연애편지)가 근대문학 발전에 미친 영향 등은 눈길을 끈다.

    근대의 문화상을 엿볼 수 있는 다양한 자료가 수록돼 있는 것 역시 책의 장점이다.

    저자는 특히 1920, 30년대에 이뤄진 책 읽기 양상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통계와 신문기사, 일간지에 실린 책 광고지면 등을 풍부하게 제시했다.

    이런 자료를 바탕으로 시대별 도서 발간 추세, 기능적 독서와 오락으로서의 독서 양상에서부터 1920년대에 출현한 사회주의 문학, 1930년대 제기된 조선 문학 정체성 논란까지 짚어낸다.

     

    문학 독자층의 형성과 분화 과정에서는 계층별 독서가 지닌 특징뿐 아니라 서울 월급쟁이들의 삶, 투르게네프를 읽는 평양 기생 등 독서를 통해 본 사회상까지 생생하다.

     

    고급 취향의 문학 규칙을 제도화하는 교육의 힘과 독자를 계몽대상화했던 근대문학의 독자상까지 파악하고 보면 책 읽기란 것이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거대한 문화사적 변동 속에서 이뤄진 문학사의 일부임을 실감할 수 있다.

    저자의 학위 논문을 수정 보완한 것이지만 어렵지 않게 읽힌다.

     

    ‘책 읽기의 현재와 미래에 대한 독자 여러분의 성찰에 약간의 소재 거리’가 되길 바란다는 저자의 말대로 근대의 지적 풍경 변화에 대한 새로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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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2>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

     

    ◇꼿 가치 피어 매혹케 하라/김태수 지음/황소자리

    《‘마라손의 왕국 조선의 건아 손기정 남승용 양형은 우리의 무상의 영예! 마라손을 제패햇슴니다. 우리들도 자양의 과자 모리나가 카라멜을 먹고 무럭무럭 자라나 선배의 뒤를 이어 오는 날의 올림픽에는 우리들의 힘으로 이 자랑 이 영광을 영원히 직힙시다.’》

    믿거나 말거나 ‘요절복통 광고

    손기정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경기에서 금메달을 딴 직후 국내 신문에 등장한 광고다.

     

    광고주는 일본 제과업체 모리나가. 세계를 제패한 마라토너를 닮기 위해선 영양이 풍부한 캐러멜을 먹어야 한다는 내용이다.

    1928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에 실린 초콜릿 광고의 카피는 ‘포켓트에 너흘 수 있는 호화로운 식탁’이었다.

     

    당시 캐러멜이나 초콜릿 같은 신식 먹을거리는 ‘에너지의 근원’ ‘첨단 영양제’인 것처럼 포장돼 광고에 등장했다.

    근대는 모든 게 새롭던 시절이다. 신문광고에는 매일같이 신기한 문물들이 등장했다.

     

    신문광고를 통해 근대의 풍경을 본다는 게 이 책의 취지.

    사람들이 접하지 못하던 물건이 대부분이어서 과장 광고가 많았다.

     

    고무신이 처음 등장했을 때 별표 고무신은 ‘강철은 부서질지언정 별표 고무는 찢어지지 아니한다’는 광고를 냈고, 만월표 고무신은 ‘이강 전하(의친왕)가 손수 고르셔 신고 계시는 신발’이라는 믿거나말거나식의 광고를 게재했다.

    1910년대 중반 한 성병약 업체가 ‘성병에 걸린 여자’라며 코가 떨어져 나간 여자의 사진을 실은 약 광고도 과장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단성사는 1934년 ‘아가씨 시절’이란 영화를 상영하면서 ‘십 년에 한 번 아니 이 작품은 영화 탄생 이래에 최대 걸작’이란 신문광고를 냈다.

    저자는 ‘근대의 풍경을 신문광고를 통해서 재미있게, 어렵지 않게 보여주자’는 콘셉트로 책을 기획했다.

     

    저자의 의도대로 책은 술술 읽힌다.

     

    각각의 주제에 대한 정보도 풍부하다.

    1920년 6월 10일자 매일신보에는 기생을 관리하던 권번들의 연합체인 ‘경성오권번연합’ 명의의 광고가 실렸다.

     

    ‘기생의 시간대 서비스 요금을 개정했다’면서 ‘한 시간에 1원 30전, 세 시간 반에 4원 30전’이라는 개정 요금을 알리는 광고였다.

     

    기생업이 대중 서비스업이 되면서 박리다매 전략을 채택할 수밖에 없었던 당시 기생들의 처지가 담겨 있다.

    당시의 광고를 보면 오늘날과 다를 바 없는 사회 양상을 볼 수 있다.

    배재학당은 1899년 9월 15일자 독립신문에 ‘원어민 교사를 늘려 영어교육을 강화한다’는 광고를 냈다.

     

    영어가 관리가 되는 데 유용한 도구였던 구한말 당시의 실상을 보여주는 광고다.

     

    일제강점기에 영어는 더욱 붐을 일으켰고 신문에는 ‘금야 영어 인푸레 시대’ ‘뻐쓰의 차장까지도 영어를 배웁니다’ 등의 광고 문구가 잇달았다.

     

    누드 사진집을 선전하는 일제강점기 신문광고는 누드집 열풍이 한창인 오늘날에도 신문에선 보기 어려운 광고다.

     

    ‘절세의 미인이 몸에 일사()도 부치지 아니한 순진 나체사진이외다.

     

    그 풍만한 육체미는 고상하고, 쾌절재득()키 난()한 근세의 진사진이올시다.’

    ‘얼른 절판이 되고, 다시 구하기 어려운 사진’이니 서둘러 구매하라는 내용이었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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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3>경성 트로이카

     

    경성 트로이카/안재성 지음/사회평론

    《“산업화가 시작되면서, 경성의 아침은 노동자들과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경전회사 운전사와 차장을 실은 전차가 새벽 공기를 뚫고 달리며 경성의 아침을 알렸다. 밝아 오는 하늘을 등지고 동대문 옛 성문이 윤곽을 나타내면 텅 비었던 네거리에 일을 찾아 나선 막일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업복 입은 사람들부터 양복쟁이와 한복 입은 여자들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전차를 타고 일터로 향했다.”》

    어느 사회주의 혁명가의 ‘불꽃 투쟁’

    이 책은 영화 같은 극적인 삶을 살았던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혁명가의 이야기다.

    일제강점기 경성에서 활동하던 노동운동 조직이 있었다.

     

    이들은 주로 서울 동대문 일대 방직공장에서 파업을 주도했다.

     

    당시 수많은 노동운동 조직이 있었다.

     

    대부분 노동자협의회, 무산자동맹 같은 건조한 정치적 용어로 이뤄진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 조직의 명칭은 경성 트로이카. 지도자는 이재유(1903∼1944)였다.

     

    그는 일제의 검거망을 번번이 뚫어 일제로부터 ‘신화적 인물’로 불렸던 혁명가다.

     

    일제에 체포된 뒤 변절을 거부하다 광복을 1년 앞두고 감옥에서 세상을 떠났다.

    이재유는 3년간 70번이나 일본 경찰에 체포당했는데도 운동을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을 감시하던 일본 경찰을 감화시켜 서대문경찰서를 두 번이나 탈출했다.

     

    탈출 뒤 반 평 지하 공간에 40여 일 숨어 있다가 포위망을 뚫고 탈출하기도 했으며 2년 동안 농사를 지으며 비밀 활동을 했다.

     

    다시 그를 잡은 일본 형사들이 이재유와 함께 기념 촬영을 할 정도였다.

    ‘트로이카’는 삼두마차라는 뜻. 이 조직을 이끌었던 나머지 2명은 광복 후 빨치산 총대장을 지낸 이현상, 남로당 총책을 지낸 김상룡이었다.

    저자는 ‘경성 트로이카’의 여성 조직원이었던 생존자를 만나고 방대한 자료를 뒤져 찾아낸 역사적 근거를 바탕으로 수많은 사람이 명멸해 간 한국 근현대사에서 의미 없이 잊혀졌던 영화 같은 이야기를 문학으로 복원해 냈다.

    이 소설은 계란형의 곱상한 얼굴에 적당히 활달한 성품을 가진 아이 이재유가 1919년 3·1운동 이후 사회주의자로 커가며 일제에 맞서는 과정을 그렸다.

     

    경성 트로이카는 1930∼1940년 해외에서 무장투쟁을 주도한 다른 사회주의자들과 달리 한국 땅에서 일제에 저항하고 고문과 폭력, 투옥 위험을 감수했다.

    이 소설은 이재유의 일생을 재구성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여기저기 공장이 생겨나고 일제의 부당한 착취에 반발하는 파업이 빈발할 수밖에 없었던 1930년대 경성의 모습을 생생히 그렸다.

    화려한 일본인 거리나 조선인 부촌과는 거리가 먼 경성의 비참한 빈민촌을 자세히 묘사한다.

     

    찰리 채플린의 무성 영화가 유행한 당시 문화상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1930년대 혼란한 시대를 살아가며 그 시대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사회주의라는 노선을 택한 운동가들의 일상도 흥미롭다.

    활동가들은 지금의 을지로 충무로 거리에서 일제의 감시를 피해 몰래 접선하거나 위장 결혼식을 올렸다.

     

    또 일제에 고문을 당하면서도 하루 동안 아지트를 발설하지 않아 동료들이 도망갈 시간을 벌어주기도 했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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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4>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



    ◇매혹의 질주, 근대의 횡단/박천홍 지음/산처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못지않게 철도가 세계에 기여한 점이 있다. 바로 ‘민족’의 출현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말한 것처럼 민족이란 ‘상상의 공동체’다. 민족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타자에 대한 발견이 전제되어야 한다. 국외자와 자신이 속한 집단 사이의 차이가 발견됨으로써 하나의 민족적 정체성이 성립하게 된다. 철도는 지역과 국가의 경계선을 넘나들면서 지역적 고립을 극복하고 민족적 동질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

     

     


    식민지 모순의 상징 ‘조선철도’

    세계사에서도 19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철도는 혁명과 진보의 상징이었다.

     

    증기기관에 이르러 인간은 드디어 인공 동력을 만들어냈다. 인류와 물자의 이동을 가로막던 지리적 자연적 장벽도 철도로 인해 무너진다.

     

    저자의 말처럼 철도는 “지역과 국경의 경계선을 넘어 자본의 정신을 세계로 퍼뜨렸다.”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도 마찬가지였다.

     

    광무 3년(1899년) 9월 18일 오전 9시.

     

     

    노량진과 제물포를 잇는 철마()의 첫 기적소리는 이 땅에 근대의 새벽을 깨웠다.

     

    당시 경인선 열차에 올라탔던 독립신문 기자가 ‘형형색색 황홀 찬란하다’며 찬탄을 멈추지 않은 것도 새 시대에 대한 희망의 표현이었다.

     

    “철도 굉음이 지신()을 깨운다”는 평민들의 우려에도 지식인들은 근심보다 기대가 더 컸다.


    경인선 경부선 경의선으로 철도가 연장되며 지식인들은 철도를 ‘근대의 표상’으로 대한다.

     

    육당 최남선은 1908년 창가 ‘경부철도가’까지 지어 노래한다.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

     

    춘원 이광수의 소설 ‘무정’에 기차와 기차역이 수시로 등장하는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근대의 새벽을 알리는 기적소리는 동시에 “식민지의 어둠을 예고하는 불길한 소리”였다.

     

    조선이 철도를 세우는 주체가 되지 못할 때부터 불길함은 시작됐다. 일본에 조선의 철도사업은 ‘한국 경영의 골자’였다.

     

    일본 통치자들에게 철도는 조선을 지배하는 수단이자 중국 대륙과 러시아를 침략하기 위한 발판이었다.

     



    역사학자 F A 매켄지가 “제국주의적 통치의 가장 거칠고도 가장 무자비한 모습”이라고 일컬은 일본제국주의는 철도공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1906년경 철도공사장을 여행한 한 일본인 고등학생마저 “(조선인이) 일본 공부가 휘두르는 곤봉에 얻어맞아 허무하게 이슬로 사라져가는 약육강식의 현장”이라고 몸서리칠 정도였다.



    “조선 철도는 문명의 이기가 아니었다. 오히려 침략과 지배, 수탈과 분열, 탄압과 차별이라는

    ‘동아일보’ 1923년 3월 6일자 사설에서 ‘조선 사람이 의지하여 수입의 원천을 짓는 교통기관이 아니라 다소의 편리를 이용하여 조선 사람의 피를 빨아먹고 주머니를 빼앗아가는 교통기관’이라며 울분을 토하고 있듯 우리에게 타율적 근대화의 대가는 컸다.”


    이 책은 철도를 매개로 한반도의 20세기 초를 들여다봤다. 철도는 새로운 문명의 축복이자 식민지 백성의 삶을 덮친 칼이었다.

     

    이는 철도가 아닌 근대를 대입해도 의미가 달라지지 않는다.

     

    주권을 잃어버리고 타인의 필요에 의해 형성된 근대는 아무리 번듯해도 그늘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이 땅의 근대는 조선 민족의 비애와 아픔을 먹고 자란 꽃이었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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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5>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


     


    《“1920, 1930년대는 ‘연애의 시대’였다. 물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연애를 꿈꾸고, 연애의 대상을 찾아 헤매는 오늘날에 비하면 그때는 일부 소수의 사람만이 연애를 누렸다. 하지만 연애가 개인이나 사회에 미친 영향이나 자못 뜨겁게 전개된 연애 논쟁만을 놓고 보자면 단연 ‘연애의 시대’는 현재가 아니라 80, 90년 전 근대 조선 사회였다.”》

     



    신여성-모던보이 ‘치명적 연애행각’

     



    청춘남녀의 연애행각은 1930년대 경성에도 있었다.

     

    서양 문물의 영향을 받은 신여성과 모던보이들은 유교적 규범이 수그러든 자리에 사랑과 연애를 적극 받아들였다.

     

    1930년 7월 16일자 한 일간지의 기사를 보자.


    “아이스컵피를 두 사람이 하나만 청해 두 남녀가 대가리를 부비 대고 보리줄기로 쪽쪽 빠라 먹는다.

     

    그래도 모자라서 혀끗을 빳빳히 펴서 ‘아다시! 아이스고히가, 다이스키, 다이스키요!’(전 아이스커피가 좋아요, 좋아!) ‘와시모네’(나도 그래)!”


    이 책은 근대 조선에 충격을 던진 11가지 연애 사건을 기술하고 있다.

     

    연애 사건으로 보는 우리 근대의 한 풍속도인 셈이다.

     

    사랑에 울고 웃었던, 때로는 목숨까지 저버릴 정도로 치열했던 치정극의 실제 사례들이 담겼다.


    외모와 능력을 따지는 계산적 연애를 앞세우는 요즘과 달리 당시 연애는 목숨을 바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른바 정사() 사건이다.

     

    이 중 절세 기생 강명화의 음독자살은 조선을 떠들썩하게 했던 대표적인 사건이다.

     

    부호의 아들 장병천을 사랑한 강명화는 기생이라는 이유로 손가락질 당하자 자신의 사랑에 대한 순수성을 증명하려 단발()에 단지()까지 서슴지 않았다.

     

    결국 강명화는 장병천의 품에서 약을 먹고, 죽은 애인의 뒤를 이어 장병천도 쥐약을 입속에 털어 넣는다.


    또 돈 때문에 열일곱의 나이에 마흔이 넘은 남자에게 시집갔다가 이혼한 뒤 카페 여급이 된 김봉자와 경성제대를 졸업한 유부남 의사 노병운의 비극적 정사는 1934년 인기 가수에 의해 노래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동성 연인 관계였던 신여성인 김용주와 홍옥임의 동반 자살 등 파란만장한 연애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1920년부터 1940년까지의 동아일보 기사를 찾아보면 ‘자살, 정사’로 분류되는 기사만 8000건이 넘을 정도로 당시 정사는 유행처럼 번져 나갔다.

     

    신여성과 모던보이들은 사랑에 미쳐 죽는 것을 ‘절대미의 극치’로 칭송했다.

     

    비련의 사건은 상업적 관심으로도 이어졌다.

     

    김우진과 투신자살 직전에 남겼던 윤심덕의 ‘사의 찬미’ 음반은 최초로 10만 장을 돌파할 만큼 전례 없는 판매액을 올렸다.

     

    자유연애를 부르짖은 신여성들은 대담한 선언으로 연일 신문에 오르내렸다.

     

    정조는 육체가 아닌 정신에 있다는 ‘신정조론’을 외친 시인 김원주를 비롯해 정조란 오직 취미에 불과한 것이라는 ‘정조취미론’을 내세운 나혜석, 성적 만족을 위해서라면 정신적인 사랑 없이 육체적 결합이 가능하다는 ‘연애 유희론’을 주장한 허정숙이 그 주인공이다.

    이러한 발칙함은 시대를 너무 앞서간 것이었을까.

     

    저자가 쓴 대로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항거를 넘어 여성도 ‘이것저것 맛 좀 보자’는 주장은, ‘애욕의 순례자’라는 비난을 여성들에게서 듣기도 했다.

    염희진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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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6>한국 근대 청소년 소설 선집-쓸쓸한 밤길


     


    ◇ 한국 근대 청소년 소설 선집-쓸쓸한 밤길/최시한 최배은 엮음/문학과지성사

    《“이 망할 녀석, 먹으라는 밥을 먹지 않아서 밥이나 먹고 자라고 하쟀더니…” 하고서 주먹을 들고 덤벼들며, “어디 좀 맞아보아라!” 하고서 또다시 덤벼든다. 진태는 아무것도 변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루에 두 번씩 매를 맞게 되니까 무엇이 원망스럽고 또 무엇을 저주하고 싶었으나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참 얻어맞고 혼자 울었다. 그는 위로해주는 사람 하나 없고 쓰다듬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나도향 ‘행랑 자식’》

    가난해서 서럽던 식민지 청소년들

    일제강점기 보통 교육이 실시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 개념이 등장한다.

     

    두 개념 모두 근대의 산물이다.

     

    이 책은 1920년대 청소년의 생활과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는 단편 15편을 모았다.

     

    작가는 이태준 방정환 송영 등 11명.


    교장 집 행랑아범의 아들 진태는 눈을 치우다 교장의 신발을 더럽혀 매를 맞는다.

     

    어머니의 은비녀를 전당포에 맡기고 사온 쌀을 바닥에 떨어뜨려 또 매를 맞는다.

     

    서럽게 운다.

     

    억울하지만 무엇을 원망할지도 모른다.(나도향 ‘행랑 자식’)


    그들은 서러웠다.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해서 서러웠고, 월사금을 내지 못해 서러웠고, 집에서 뼈 빠지게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서러웠다.

     

    가난에서 해학이 머리를 내민다.

     

    가난한 창남이는 동네에 불이 나자 ‘샤쓰’를 입지 못하고 학교에 간다.

     

    다른 학생들 모두 양복저고리를 벗고 ‘샤쓰’만 입고 있는 체조시간, 선생님이 왜 윗옷을 벗지 않느냐고 묻자 창남이는 ‘만년 샤쓰(맨몸)’도 괜찮은지 묻는다.(방정환 ‘만년 샤쓰’)


    서러움을 극복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정’이다.

     

    반찬가게가 잘 안 돼 학교를 다니지 못하게 된 칠성이를 위해 동무 명환이는 가게 광고지를 만들어 돌리고, 칠성이는 다시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된다.(방정환 ‘동무를 위하여’)


    교육적 목적을 띠고 정의와 정직을 강조한 작품도 있다.

     

    학교 야구부 투수인 순길이는 자신의 학비를 대준 김 변호사로부터 자신의 아들이 속한 팀에 져 달라는 부탁을 받지만 승리한다.

     

    김 변호사는 순길이를 칭찬하고 이후의 학비도 대주겠다고 약속한다.(이정호 ‘정의의 승리’) 최병화의 ‘참된 우정’도 이 범주에 속한다.


    이태준의 ‘쓸쓸한 밤길’의 영남이는 가혹한 현실을 견딜 수 없어 가출하기도 한다.

    “‘나가자, 나가자! 이놈의 집을 나가면 그만이다’ 아! 밤길은 쓸쓸하였습니다.

     

    고향을 떠나는 것이 슬펐고, 어머님 생각과 발목이 아파서 절름거리며 울면서 걸었습니다.

     

    그러나 밤은 머지않아 밝을 것이며, 한참씩 달음질쳐 앞서 가던 바둑이가 도로 와서 영남이의 옆을 서 주고 서 주고 하였습니다.”(‘쓸쓸한 밤길’)

     

    영남이는 부모를 잃은 뒤 친척 어른의 횡포로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긴 채 구박을 당하자 설움에 겨워 집을 나온다.

     

    함께 떠나는 것은 ‘바둑이’밖에 없고 멀리서 들려오는 파도소리에 앞날 걱정이 밀려오지만 그는 계속 길을 걷는다.

     

    엮은이는 “나라 잃은 설움을 빗대어 그린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엮은이는 “어른을 독자로 삼는 일반 소설 및 어린이 대상의 동화와 구별되는 청소년 소설은 근대에 생겨났다”며 “고아나 결손 가정이 많고 청소년들이 일을 해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당시 현실을 반영해 부모를 그리워하거나 가난 때문에 고통 받는 이야기가 많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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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7>근대여성, 제국을 거쳐 조선으로…


     


    근대여성, 제국을 거쳐 조선으로 회유하다/박선미 지음/창비

    《“우리 아버지가 선견지명이 있어서, 또 교육도 받은 분이라 ‘앞으로 여자도 절대로 자립해서 살 수 있는 자격을 따야 된다’고 하셨어. 일본 가서 다른 건 그만두고 의학이나 약학을 하라고. (…) 고등학교 교육을 받으면서 앞으로 여자들이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느꼈다고요. 그래서 사회에 나가서 활동을 하는 것도. 우리 어머니 보니깐 평생 부엌에서 사시는 거야. 그저 앞치마 두르고 부엌에서.”(유학생 D 씨의 구술, 데이코쿠()여자의학약학전문학교 약학과, 1936∼40)》

     



    그녀들, 왜 일본에 갔을까

    일제강점기 조선의 청년들에게 도쿄()는 이중적인 의미를 갖는 도시였다.

     

    한편으로 저항의 대상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동경()의 도시였다.

     

    일제 식민지배로 ‘내지()’가 된 일본제국은 ‘외지()’ 조선 청년에게 문화와 권력이 총집결된 메트로폴리스였다.

     

    당시 일본 유학은 낙후된 주변부에서 앞선 중심부로 가는 행위로 인식됐다.

     

    특히 여성에게 일본 유학은 신분과 역할 상승의 기회로 읽혀졌다.


    일본 쓰쿠바()대 전임강사인 저자는 각종 문헌과 구술자료 등을 통해 왜 당시 많은 조선 여성이 일본 유학길에 올랐고 그들이 무엇을 배웠으며 조선에 돌아와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분석한다.

    당시 조선 여성의 일본 유학은 일종의 사회현상이었다.

     

    1910년 34명이었던 일본 내 조선인 여학생 수는 1942년 2942명으로 급증할 정도로 많은 여성이 현해탄을 건넜다.


    저자는 1910년대 일본 유학을 결심하는 배경에는 실력양성론이 있었다고 분석한다.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사회를 개화하기 위해 이미 시행착오를 거쳐 서구문명을 한 번 걸러낸 일본으로부터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생각이 퍼져 있었다는 것이다.

     

    실력양성론은 1920, 30년대가 되면서 진학이나 사회 진출 같은 좀 더 사적인 이유로 대체된다.


    그렇게 일본으로 건너간 여학생들은 교사와 의사, 약사, 신문·잡지 기자, 예술가 등으로 귀국했다.

     

    독립운동과 여성운동을 이끄는 지도자가 되기도 했다.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돌아와 화가로 활동한 나혜석의 경우처럼 많은 유학생이 여성이기 이전에 인간이라는 인식을 가질 것과 스스로 배우자를 선택할 것 등 당시로서는 선각자적인 의식과 교육자적인 의식을 갖게 됐다.

     

    저자는 상당수 여학생이 일본 유학에서 가정학을 전공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가정학을 배운 여학생들이 일본에서 발달한 근대적 가족관을 조선사회에 퍼뜨리는 등 근대의식이 형성되는 데 기여했다는 것이다.

    ‘현모양처론’에 대해서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일본 유학생을 중심으로 형성된 ‘현모양처’라는 젠더규범이 “유교적·봉건적 가치관을 이어온 개념이 아니며 남성중심주의나 일본제국주의가 여성에게 강요한 성 역할 이데올로기만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현모양처는 여성을 한 집안의 며느리가 아니라 자녀의 교육자인 어머니이자 남편의 내조자인 아내, 가정의 책임자인 주부로 새롭게 정의한 것이었다는 주장이다.

     

    저자는 이 같은 현모양처론이 일제 말기 총력전 체제하에서 ‘군국의 어머니상’과 같이 식민지 지배 체제에 이용됐다는 점을 아쉬워한다.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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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8>그들은 정말 조선을 사랑했을까?


     


    ◇그들은 정말 조선을 사랑했을까?/이순우 지음/하늘재

    《“주위에 ‘영친왕()’을 일본식 호칭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꽤 많다. 그래서인지 개중에는 ‘영친왕’이라고 하지 않고 꼭 ‘친’자를 빼버린 ‘영왕’이라는 식의 표현을 고집하는 이도 더러 있다. 일본에도 엄연히 친왕제도가 존재하고 있으니 분명 그렇게 생각할 만한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이는 명백한 오해이다. (…)우리나라에도 마침내 친왕이라는 호칭이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00년 8월의 일이다. (…)친왕 책봉에 대해 여러 차례 논의가 있었고 그 결과 황2자에게는 ‘의친왕’, 그리고 황3자에게는 ‘은()’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영친왕’이라는 봉호가 주어졌다.”》

     



    음모에 관한 31가지 오해와 진실

    경복궁과 서울시청, 북한산과 관련해 널리 퍼져 있는 얘기는 이렇다.

    일제가 조선왕조의 정궁인 경복궁 터를 파헤쳐 조선총독부 청사를 일()자 모양으로 세웠고 그 앞으로 이어진 덕수궁 앞쪽에 경성부청(현 서울시청)을 본()자 형태로 만들었으며 이것이 대()자 형상인 북악산과 어우러져 ‘대일본()’을 나타낸다는 것. 민족정기를 압살하고 일제의 영구통치를 획책하기 위해 조선의 심장부에 그런 식으로 건물을 배치했다는 해석이다.

    저자는 일제강점기 이후 잘못 알려진 서른한 가지의 역사적 오해와 오류에 대해 사료를 통해 무엇이 진실인지 밝힌다.

     

    ‘일제잔재’와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자는 것이다.


    그가 밝힌 ‘대일본’ 건물 배치의 진실은 이렇다.

    우선 일제 식민통치자들이 설령 그런 저의를 갖고 있었더라도 공개적으로 확인된 기록은 ‘아직’ 없다.

     

    조선총독부 청사의 경우 ‘일()’자 모양을 지녔다는 것이 줄곧 지적돼 왔지만 그렇더라도 ‘일본’의 ‘일’자를 의미하는지는 입증되지 않았다.

     

    게다가 본()자 형태로 알려진 경성부청의 경우에도 그 시절 조선인이든 일본인이든 그런 모양으로 그 건물을 인식했다는 아무런 흔적이 없다.

     

    오히려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은 당시 경성부청의 설계자가 건물의 형상을 ‘궁()자형’으로 인식했다는 사실이다.


    1996년 말 정부가 국보 제1호인 남대문과 보물 제1호인 동대문의 공식명칭을 각각 ‘숭례문’과 ‘흥인지문’으로 바꾼 데 대해서도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일제가 문화재를 지정하며 왜곡했던 것을 바로잡은 것이 아니라고 밝힌다.

    예전 사람들이 ‘한성()’이라는 이름을 고집하지 않고 대개 ‘서울’이라고 불러왔듯이 남대문이나 동대문은 일제가 악의적으로 왜곡한 결과라기보다 오랜 세월 숭례문과 흥인지문의 속칭으로 전해 내려왔다는 것이다.

     

    반면에 원래 명칭이 ‘돈의문()’인 서대문의 경우 ‘서대문’이라는 이름은 일본인들이 붙인 것이라고 밝힌다.

     

    조선후기 실학자 이수광의 ‘지봉유설’에 돈의문의 속칭을 ‘신문()’으로 기록하고 있고 지금도 종로 방면에서 경희궁 쪽으로 이어지는 도로의 이름이 ‘새문안길’이라는 점을 들어 서대문이 아니라 ‘새문’이 옳다고 말한다.

    저자는 “누군가 기초자료 몇 가지를 조금만 꼼꼼하게 살펴보더라도 금세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복원하는 것이 가능한데도 이토록 부정확하거나 조금은 엉터리에 가까운 내용들이 아직까지도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지적한다.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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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19>대합실의 추억


     


    《“작품에 등장하는 기차, 패션, 커피 등은 결코 사소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이것들은 ‘이미 언제나 문학의 영역 속에 들어와 있는 문학의 타자들’로서, 한 텍스트뿐만 아니라 수많은 텍스트들을 가로지르는 작품과 사회의 보다 육중한 의미를 날카롭게 발현하는 중요한 계기다.”》

    기차-커피-패션에 매혹된 지식인

    문학 연구는 최근 문화 연구로 외연을 넓히는 추세다.

     

    문학을 특권적 글쓰기가 아닌 문화의 일부로 파악하는 이 관점에 따르면 문학은 당대의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도구가 된다.

     

    이경훈 연세대 교수도 ‘문화로서의 문학’에 주목한다.

     

    ‘대합실의 추억’은 그 연구의 산물이다.


    ‘이경훈 평론집’이라고 밝히긴 했지만 엄격히 말하면 연구서다.

     

    저자가 다루는 대상은 식민지시대의 문학과 풍속이다.

     

    저자는 식민지시대 지식인들이 생산한 문학텍스트 속 문화의 풍경을 훑으면서 ‘근대성’이라는 치열한 테마를 탐색한다.


    김동인이 단편 ‘마음이 옅은 자여’에서 ‘Y는 나를 러브한다’라고 적을 때 ‘러브’는 개화기 이전 남녀의 ‘촌무지렁이의 갈퀴 식 사랑’과는 다른 ‘세련된’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이 외래어의 사용이야말로 유학을 통해 서양의 학문과 문화와 접촉한 김동인이 이전과 다른 ‘근대’라는 시대를 인식한 증거다.

     

    “무식스러운 사랑함으로는 달라진 시대의 세련된 연애욕을 만족시킬 수 없음”(이광수 장편 ‘그 여자의 일생’)을 작가들은 알아차렸다는 것이다.


    ‘빵은 카네코가 제일이요 찻거리는 팔진옥에 구비되었고 코오피는 동의 것이 진짬이라는 것을 횅하게 익혀버렸다.

    빵 한 근을 사러 십릿길을 타박거릴 때도 있고 코오피 한 잔 먹으러 버스에 흔들린 때도 있었다.’

     

    저자는 이효석의 산문 ‘고요한 동의 밤’에서 주인공이 빵과 커피를 사기 위해 십리 길을 걷거나 버스를 타는 장면에 주목한다.

     

    ‘카네코’와 ‘동’이라는 상점 이름에서 근대적 욕망을 발견하면서 저자는 ‘근대란 바로 이런 풍속적 경험으로 형상화되는 것’임을 파악해낸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대합실의 추억’에 관한 글이 흥미롭다.

     

    이 글은 ‘백수’에 대한 분석이다. 대합실은 지식인이 더 나은 교육을 받기 위해 떠나는 곳이자 노숙자 무직자의 세계다.

     

    시인이자 평론가인 김기림이 시 ‘함경선 오백킬로 여행풍경’에서 ‘대합실은 언제든지 튜-립처럼 밝고나/누구나 거기서는 깃발처럼/출발의 희망을 가지고 있다’고 묘사한 장소다.

     

    저자는 이 지점에서 중요한 근대성을 찾아낸다.

     

    근대 시스템이 본격적인 직업은 물론이려니와 무직이나 실직상태도 생산해낸다는 것, 증여(가문)보다는 교환(시장)을 중심으로 조직된 근대사회에서 무직자는 새로운 천민계급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장환의 시 ‘The Last Train’에서 대합실은 ‘청춘의 조각이 흩어져 있고/병든 역사가 화물차에 실리어’ 가는 곳이다.

    학술적인 글모음이지만 책을 따라 읽다 보면 당시의 지식인들이 근대에 얼마나 매혹됐는지 와 닿는다.

     

    시인과 소설가들은 봄의 훈풍이 아니라 ‘전등불’을 보고 밤거리로 나가고 가게의 라디오 소리, 카페에서 흘러나오는 레코드 소리에 생의 환희를 느낀다.

     

    저자의 말대로 기차 패션 커피 같은 문학 속 새로운 기호들은 그 자체로 새로운 시대를 상징한다.

     

    문학작품 속에서 근대는 이렇듯 생생하게 접촉되고 체험된다. 그것은 텍스트가 얼마나 시대를 살찌우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김지영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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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20>식민지 조선의 풍경-조선을 그린 일본 근대 소설


     


    ◇식민지 조선의 풍경-조선을 그린 일본 근대 소설/아쿠타가류노스케 외 지음/고려대학교 출판부

    《‘그는 일본어를 대단히 잘했다. 게다가 자주 소설 따위를 읽었던 까닭에, 식민지에 사는 일본 소년들이 들어본 적도 없을 것 같은 에도시대의 말투까지도 알고 있었을 정도였다. 그래서 그 누구도 한 번에 그가 반도인이라는 것을 알아챌 수 없었다.’(나카지마 아쓰시 ‘호랑이 사냥’ 중에서)》

    작가들이 보고 느낀 ‘반도, 반도인’

    이 책은 어떤 면에서 도발적이고 어떤 면에서 낯설다.

     

    일제강점기 조선의 풍경을 일본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통해 역추적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 실린 네 편의 단편은 일제강점기 조선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 일본 작가들이 당시 조선을 배경으로 (혹은 소재로 해서) 쓴 작품이다.


    ‘김장군’이란 소설은 일본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과 영화 ‘라쇼몬’의 원작자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아쿠타가와 류노스케가 조선 민담(전설)을 소재로 쓴 소설이다.

     

    이 소설은 임진왜란 당시 김응서 장군이 계월향의 도움으로 고시니 유키나가란 일본 장수를 살해했다는 전설 속 영웅담을 기반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소설 속에서 엿보이는 그의 비판적 역사 인식이다.

     

    아쿠타가와는 소설의 후반부에서 상대주의적 역사인식을 보여주는 질문을 던지며 일본의 자국중심주의적 태도를 꼬집는다.


    ‘그러나 역사를 꾸미는 것은 비단 조선만은 아니다. 일본도 역시 어린아이에게 가르치는 역사는 이러한 전설로 가득 차 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역사교과서는 한 번도 이런 패전 기사를 실은 적이 없지 않은가?’


    일제 강점 이후 조선으로 이주해 온 일본인들의 생활을 그려낸 작품들도 있다.

     

    이 땅을 생활의 터전으로 받아들이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거나 일을 하고 재산을 모으며 삶을 영위했던 평범한 일본인들의 모습은 우리에겐 사뭇 낯설다.

     

    하지만 그것 역시 식민지 조선 풍경의 일부였을 것이다.


    나카지마 아쓰시의 ‘호랑이 사냥’과 ‘순사가 있는 풍경’은 작가가 식민지 조선에서 청소년기를 보낸 경험을 바탕으로 쓴 작품들이다.

     

    전자는 조선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한 일본인이 조선인 친구 조대환과의 관계 속에서 얻은 경험을, 후자는 조선인 순사의 눈에 비친 일제 강점 하 경성의 겨울 풍경을 그려냈다.

     

    일본 작가의 작품임에도 이들 작품은 제국주의적 역사관을 옹호하는 대신 피지배자의 처지에서 시대를 바라본다.

     

    작가의 구체적 체험을 바탕으로 식민 지배의 기만성 모순성 등을 짚어낸다.

     

    일본을 떠나 조선에서 삶을 꾸려가는 일본인들의 애환을 다룬 유아사 가쓰에의 ‘망향’은 주제의식면에서 나카지마의 소설과는 다르다.

     

    일본 소시민들이 타향에서 살아가는 소박한 모습을 다루고 있지만 내선일체론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비판적으로 읽힌다.

     

    자녀들이 조선인들과 어울리는 것을 마뜩잖게 생각하고 향수에 시달리는 모습이라든가, 조선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 청년들이 신붓감은 내지(일본)에서 구해오는 세태 등 당시 모습을 사실감 있게 보여준다.

     

    배경 이상의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조선인들과 조선 땅의 현실 등을 통해 당시 조선을 바라보던 일본인들의 생각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일본 작가들의 다채로운 시각으로 일제강점기를 보낸 우리 근대의 풍경을 재구성해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다.

     

    내부적인 시각으로 봤을 때는 미처 조명되지 못했던 부분까지 비판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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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의 풍경 20선]근대를 통해 바라본 오늘


     


    ■ ‘근대의…’ 시리즈를 마치며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다섯 번째 시리즈 ‘근대의 풍경 20선’이 24일 끝을 맺었다.

    이번 시리즈는 지난달 26일 전봉관 KAIST 교수가 지난해 출간했던 ‘럭키 경성’(살림)을 소개하며 출발했다.

     

    책 선정은 허동현 경희대 국제캠퍼스 학부대 학장, 최영묵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와 윤양미 ‘산처럼’ 대표, 이갑수 ‘궁리’ 대표, 정보배 ‘사계절’ 인문팀장 등이 참여했다.


    근대라는 개념은 시기와 지역 등에 따라 여러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지만, 책 읽는 대한민국은 올해 대한민국 건국 60주년을 맞아 한국 근대에 관한 도서에 집중했다.

     

    또한 난해한 학술서나 연구서보다 일반인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 위주로 뽑았다.


    첫 번째 소개 도서로 선정된 ‘럭키 경성’ 외에도 ‘황금광 시대’ ‘경성 자살 클럽’ 등 근대를 소개하는 책을 많이 집필한 전 교수는 “근대의 풍경은 근대라는 특정한 시점을 통해 현재의 세상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을 섭취할 수 있었던 기획”이라면서 “근대가 세계적 보편성과 한국적 특수성이 만나는 시점이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말했다.

    스무 권의 근대 관련 도서에는 근대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의 책들이 포함됐다.

     

    근대 사회 전체를 개괄하는 책뿐만 아니라 광고나 철도사업, 만화 등 특정 분야를 통해 근대를 들여다보는 책이 많았다.

     

    ‘경성 상계’(생각의나무) ‘경성을 뒤흔든 11가지 연애사건’(다산초당) 등 당시의 경제 상황이나 연애 관념을 소개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시리즈에는 문학을 통해 근대를 살피는 시도가 많았다.

     

    ‘모던 수필: 새로 가려 뽑은 현대 한국의 명산문’(향연) ‘한국 근대 청소년 소설 선집’(문학과지성사) 등을 통해 근대 문학을 소개함과 동시에 ‘식민지 시대의 근대문학-대합실의 추억’(문학동네) ‘근대의 책 읽기’(푸른역사) 등 관련 비평서도 함께 포함됐다.


    주강현 한국민속문화연구소장은 “올해 건국 60주년을 맞는 시점에서 근대에 대한 이해는 현재와 세계를 살피는 초석이 될 것”이라면서 “내후년이 한일강제합방 100년이기 때문에 근대를 연구하는 노력은 앞으로도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내달 6일부터 ‘음식’ 연재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은 올해 ‘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 ‘근대의 풍경 20선’ 등이 연재됐습니다.

    다음 달 6일부터는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풍성한 가을을 맞아 여섯 번째 시리즈 ‘음식의 재발견’을 소개합니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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