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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논술(설.문)독서도서詩소설수필연설 2008. 3. 7. 18:31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지난달 25일 오후 본사에서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을 마무리하고 있는 선정위원들. 왼쪽부터 이유선 이명현 이종필 강신주 서동욱 장대익 씨. 이들은 “학문의 경계를 넘나드는 일은 시대적 흐름”이라며 “선정 도서들은 학문 간 소통이 어디까지 와 있는가를 알려주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영대 기자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시리즈가 3일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으로 출발한다.
     
    에드워드 윌슨이 설파한 ‘통섭()’처럼 관습적인 학문 영역을 벗어나 벽을 허물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진리에 접근해 보자는 취지의 책을 골랐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편집장,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등에게 조언을 구해 선정위원을 뽑았다.

     

    천문학자인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물리학자인 이종필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 과학사학자인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 서양철학자인 서동욱 서강대 교수, 동양철학자인 강신주 연세대 강사, 프래그머티즘을 전공한 이유선 군산대 교수 등 자연과학자 3명과 인문학자 3명에게 책을 추천받았다. 이들은 모두 30, 40대 학자들이다.

     

     

     

    6명의 선정위원은 온·오프라인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책을 골랐다. 각각 추천한 책에 대한 평가를 서로 검토한 뒤 모두가 합의하는 책을 30권 선정했다.


     

     

     

    지난달 25일 선정위원 6명이 본사 회의실에서 이 시리즈의 의미 등을 말했다.

     

     

     

    ▽이유선=왜 이런 작업이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지부터 얘기해 보자. 경계를 허문다는 말 자체가 학자나 영역에 따라 다른 의미일 수 있다.

     

     

     

    ▽장대익=서점에 가면 책 분류가 시대에 뒤처졌다는 생각이 든다. 영향력은 크지만 한 가지 장르로 정의하기 힘든 책들이 들어갈 서고가 없다. 시대는 변했다. 철학 생물학 등 기존 잣대로는 나눌 수 없는 공동 연구가 학계에는 이미 활발하다.

     

     

     

    ▽서동욱=그 속도도 엄청나다. 해외를 보면 프랑스의 경우 학제 간 소통을 다룬 ‘크리티크’라는 시리즈가 대중을 상대로 나온 지 꽤 됐다. 학문의 넘나듦은 학자만의 관심사가 아닌 시대적 화두로 자리 잡고 있다.

     

     

     

    ▽강신주=동아시아도 마찬가지다. 이번에 소개한 일본 이와나미() 출판사의 ‘아시아 신세기’가 대표적 사례다. 삶의 주변에서 습관적으로 지나치는 것에서부터 ‘통섭’이 이뤄지고 있다. 대중이 공감할 만한 테마로도 학문적으로 성찰할 것들이 많다.

     

     

     

    ▽이명현=책 선정도 일상에서 고민하는 문제를 경쾌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했다. 초보자에겐 쉽지 않은 책도 있다. 하지만 기계적 접근보다 독서를 통해 자신과 융화되는 화학반응을 일으킬 만한 도서 목록이다.

     

     

     

    ▽이종필=무엇보다 이번 책들은 크게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들고, 작게는 하나의 세부영역에 국한되지 않는다. 거대 담론을 한 번에 주워 담을 수는 없다. 6명이 모였지만 한계도 있다. 우리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그 실천적인 과정을 함께 가보는 것도 의미가 크다고 본다.

     

     

     

    ▽이유선=‘학문 허물기’라는 용어는 20세기 이후 등장했다. 이 때문에 역사성을 고려해 고대나 근대의 통합은 제외했다. 국내외에서 논의되는 이슈들을 중점적으로 다뤘다.

     

     

     

    ▽장대익=국내에서도 이런 논의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이처럼 다양한 학자들이 함께하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이 때문에 책 소개에 그치기엔 아쉽다. 이번 도서를 일종의 기초 텍스트로 삼아 앞으로 함께 성과물을 만들어 보자.

     

     

     

    ▽서동욱=흥미로운 제안이다. 다만 학제를 뛰어넘는 성과물은 시간과 노력이 배로 들 것이다. 단순히 소통이란 정의도 조심스럽다. 신천지를 개척하는 굳건한 마음이 필요하다.

     

     

     

    ▽강신주=너무 어렵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것은 하나의 여행이다. 각 분야의 전문가가 마음이 맞아 함께 세상을 탐구하는 것이다. 비슷한 사고를 가진 이보다 다른 관점을 가진 이들의 여행이 훨씬 재미있다. 그 과정에서 각자 얻는 게 있고 자기 분야에 녹여낼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큰 성과라고 본다.

     

     

    정양환 기자

     

     

     

     

     

     

     

     

     

     

     

     

     

     

     

     

    순서 저자
    1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2 화성의 인류학자 올리버 색스
    3 신화학1 레비 스트로스
    4 최종 이론의 꿈 스티븐 와인버그
    5 조건들 알랭 바디우
    6 헤르메스 미셸 세르
    7 49호 품목의 경매 토마스 핀천
    8 통섭 에드워드 윌슨
    9 고대문명교류사 정수일
    10 인체사냥 소니아 샤
    11 칼 세이건-코스모스를 향한 열정 윌리엄 파운드스톤
    12 내 안의 유인원 프란스 드
    13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14 트랜스 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15 몸의 철학 G. 레이코프
    16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17 풀 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18 진리와 방법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19 우연성, 아이러니, 연대성 리처드 로티
    20 과학 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21 인간을 묻는다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22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23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스피븐 핑커
    24 스피노자의 뇌 안토니오 디마지오
    25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26 몸의 정치와 예술 그리고 생태학 정화열
    27 차이와 반복 질 들뢰즈
    28 과학으로 생각한다 이상욱 홍성욱 등
    29 이보디보-생명의 블랙박스를 열다 션 B. 캐럴
    30 아시아 신세기 아오키 다모쓰 등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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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예술과 철학, 문학은 상호 작용하는 인간의 마음의 산물이며,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뇌의 산물이다. 인간의 뇌는 부분적으로 인간의 유전체에 의해 조직되며, 진화라고 불리는 물리적 과정에 의해 진화했다. 과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입각한 인문주의자들도 지적으로 치우침이 없다. 그들은 ‘시스템’이나 ‘학파’에 따라 작업한다기보다는 다양한 원천들에서 아이디어를 찾고, 가치가 입증된 아이디어는 받아들인다.”》

     

    현대는 지식정보 산업시대라고 한다.

     

    그만큼 지식의 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그만큼 복잡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일련의 혼돈 속에서 방향과 가치관을 잡아 줄 이들도 존재할 터.

     

    저자는 그들을 ‘지식의 최전선에 있는 사상가’라 부른다.

     

     

    ‘과학의 최전선에서…’는 21세기 새로운 지적 풍경에 서 있는 그 사상가들의 이야기다.

     

    여기서 사상가란 기존의 쓰임새와는 약간 다르다.

     

    중세시대엔 지식은 그 자체가 온전히 인문학을 뜻했다.

     

    이 때문에 사상가란 용어도 인문학적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현대 사상가란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아우르는 사람이다. 새로운 사상을 제시하는 ‘제3의 문화’ 개척자들이다.

     

     

    그렇다면 그 개척자들은 누구인가. 이 책에 등장하는 면면을 보자.

     

    ‘빈 서판-인간은 본성을 타고 나는가’의 저자인 스티븐 핑커 매사추세츠공대(MIT) 뇌과학 교수, 인지과학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앤디 클라크 인디애나대 철학과 교수, 컴퓨터사회의 미래를 예측하는 세스 로이드 MIT 기계공학과 교수 등.

     

     

    이들은 하나같이 자연과학 또는 첨단 과학을 연구하는 사람이다.

     

    그들이 인문사회 분야를 논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표현에 따르면 ‘마침내 과학이 철학과 종교의 땅으로 나아가는 깊고 크고 야심에 찬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총, 균, 쇠’를 쓴 세계적 석학 제러드 다이아몬드의 ‘왜 유럽과 아시아가 세계를 지배했는가’를 예로 들어 보자.

     

    이 질문은 ‘아메리카나 호주, 아프리카는 왜 세계를 지배하지 못했을까’라는 뜻이기도 하다.

     

    즉 생리학자이자 진화학자가 학문의 영역을 넘어 역사를 고찰하는 것이다.

     

     

    역사에 접근하는 과학자의 논의는 독특하다.

     

    유라시아는 농경사회로 빨리 발전했기에 다른 대륙을 지배했다.

     

    이때의 무기는 가축과 지형이었다.

     

    가축은 농경사회를 이끌어 가는 중요 매개체인 데다 동서축이 긴 유라시아는 위도와 날씨가 비슷해 가축을 퍼뜨리는 데 수월했다.

     

    그러나 아메리카나 아프리카는 남북축으로 뻗은 지형 특성상 가축이 쉽게 퍼지지 않아 발전이 더뎠다고 분석한다.

     

    이처럼 과학자들은 인문학자들이 놓쳤던 새로운 시각으로 역사를 해석한다.

     

     

    과학자들의 설명이 100% 완벽하지 않다. 이 점은 그들 스스로도 잘 안다.

     

    “이들은 논리적 일관성, 설득력, 경험적 사실들과의 부합을 기준으로 자신들의 생각을 검증한다.

     

    누구의 생각이라도 도전받을 수 있으며, 그와 같은 도전을 거치면서 이해와 지식은 쌓여 나간다고 믿는다.”

     

     

    이 책의 매력은 바로 여기에 있다. 학문의 영역은 물론 지적 권위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 자유로운 정신이야말로 지식과 진리에 다가서는 가장 큰 무기다.

     

    소통을 뛰어넘는 통합의 메시지. 과학 개척자들은 그 길로 독자들을 안내한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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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화성의 인류학자



    《“극적으로 달라진 자아와 세계는 상담실이나 사무실에서 관찰한다고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나는 이런 자세로 하얀 가운을 벗고 병원을 등진 채 25년 동안 환자들의 실생활을 관찰했다. 한편으로는 희귀 생명체를 대하는 박물학자의 심정으로, 또 한편으로는 현장에 나선 인류학자 내지는 신경인류학자의 심정으로.”》
     
     

     

     

    신경질환자에 대한 인문학적 보고서

     

     

     

    세상에 의사는 많다. 병원 일손은 부족해도 하여튼 의사는 있다.

     

     

     

    그들은 병을 고친다. 사람을 치료한다.

     

    하지만 환자 혹은 인간을 이해하는가는 별개의 문제다.

     

    의사를 포함한 과학자들은 그렇다. 문제를 관찰하고 분석하고 판단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의 대상에는 ‘인간’이 빠져 있다.

     

     

     

    이것은 세상이 과학자에게 가지는 오해일 수도 있다.

     

    원인은 과학자에게도, 세상의 시각 자체에도 내재한다.

     

    하지만 저자는 먼저 과학자가 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봤다.

     

    인간을 외부에서 관찰하기보다 내부로 들어가 이해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환자가 어떤 병에 걸렸느냐고 묻기보다는 병한테 어떤 사람을 덮쳤느냐고 물어야 한다.”(윌리엄 오슬러 캐나다 의학교수) 저자는 학문의 벽을 넘어 그 오해를 깨기 위해 시도한다.

     

     

     

    저자는 미국 컬럼비아대 메디컬센터 임상신경학 교수다.

     

    과학자임에도 소설, 영화 시나리오 등 여러 분야에서 집필 활동을 했다.

     

    ‘의학계의 계관 시인’ ‘신경정신학 분야의 칼 세이건’이란 별명도 지녔다.

     

    신경과학자지만 저자는 연구실에서 현미경만 들여다본다고 해서 해답이 나오지는 않는다고 믿는다.

     

    인간 자체의 본성을 연구하는 한편 인문학이든 자연과학이든 다각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봤다.

     

     

     

    ‘화성의 인류학자’에서 소개한 7명의 환자―저자로선 인류라고 보는 게 맞다―를 살펴보자.

     

    자폐증과 기억상실증, 투렛증후군, 전색맹, 측두엽 간질 등. 흔히 환자와 가족의 인생을 무너뜨리는 뇌신경질환을 앓고 있는 이들이다.

     

    하지만 저자는 단순히 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그들을 하나의 존재가치가 가득한 사람으로 접근한다.

     

     

     

    “병에 걸리면 기본적으로 생활에 한계가 생기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다.

     

    내가 만난 환자들은 거의 모두가 어떤 문제를 만났건 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딛고, 심지어 자신이 처한 상황의 도움을 받아 삶을 향해 나아갔다.”

     

     

     

    스스로를 ‘화성의 인류학자’라 부르는 한 여성을 보자. 유명한 동물학자인 그는 어려서 자폐증을 앓았다.

     

     놀라운 기억력과 창의성으로 학문적 성과를 내놓지만 ‘사랑’이나 ‘배려’ 같은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 때문에 그에게 사람은 외계인이다.

     

    외딴 행성에 혼자 떨어져 그들을 관찰하는 인류학자인 셈이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그는 또 다른 이방인이 아니다.

     

    뇌신경이 일반인과 약간 달라 다른 방식으로 사물을 이해할 뿐이다.

     

    그 대신 그는 엄청난 지적 능력과 도덕성을 보유했다.

     

    뇌질환은 정신병이나 장애가 아니라 ‘특성’이다. 한 명의 똑같은 사람일 뿐이다.

     

     

     

    ‘화성의 인류학자’가 가진 매력은 이를 보여 주는 방식에 있다.

     

    의학적 기초를 바탕으로 인류학적 고찰, 그리고 그 속에 환자를 이해하는 마음이 담겼다.

     

    ‘차가운 뇌와 따뜻한 심장의 조화.’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가 이 책을 “신경학과 의학, 인류학의 만남을 통해 신경성 질병 환자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탁월한 인문학적 보고서”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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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3>신화학1-날것과 익힌 것



    《“신화는 진정한 논리-수학적인 분석을 받아야 한다. 우리가 순진하게 논리-수학 개념의 주변을 그리며 즐긴 것을 이러한 겸손한 공언을 고려해서라도 용서해 주기를 바란다. 무엇보다도 신화를 과학적으로 연구하는 데는 엄청난 어려움이 따른다…이 책의 내용이 대단히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돛을 올렸다고 자랑한 우리의 작업은 이 돛의 모서리에 불과할 뿐이다.”》
     
     

     

     

     

    ‘슬픈 열대’(1950년) ‘야생의 사고’(1962년) ‘구조인류학’(1958년)의 구조주의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그는 신화의 체계를 분석한 방대한 분량의 이 고전을 남겼다.

     

     

     

    구조주의 인류학은 인간 삶의 역사와 문화는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근본적인 실체인 구조를 분석함으로써 진리에 다가갈 수 있다는 것.

     

     

     

    레비스트로스는 1950년 신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뒤 20여 년간 신화 연구에 몰두했다.

     

    신화를 현상과 독립된 체계로 생각하고 이 체계를 논리, 수학적으로 분석하려는 레비스트로스의 생각은 당시 획기적이자 낯선 도전이었다.

     

     

     

    2005년 국내에 번역된 책은 ‘신화학’ 전체 4권 중 1권 ‘날것과 익힌 것’이다.

     

    2권 ‘꿀에서 재로’, 3권 ‘식사예절의 기원’, 4권 ‘벌거벗은 인간’ 등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난해한 이론뿐 아니라 수많은 외래어, 토착민 언어, 라틴어, 고전 프랑스어 등이 섞인 탓에 번역이 쉽지 않다.

     

     

     

    ‘신화학’은 남북아메리카의 인디언 신화를 무려 813개나 소개, 분석했다.

     

    1권에는 그중 200개가 넘는 신화가 등장한다.

     

    레비스트로스는 남아메리카 인디언 보로로족의 근친상간 신화를 분석한 뒤 이 신화를 이웃 부족의 신화와 비교 분석하면서 현상 뒤에 숨은 공통의 체계를 확인해 간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은 구조주의 언어학 없이 불가능했다.

     

    그가 인류학의 영역에만 머문 채 언어학의 방법론을 연구하지 않았다면 세기의 고전은 탄생하지 못했을 것이다.

     

    이 책은 언어학과 인류학의 벽을 허물고 넘은 결과물이다.

     

     

     

    구조주의 언어학은 언어의 의미와 역사를 통해 언어 원리를 설명하려는 전통적 언어학과 달리 인간과 완전히 독립된 언어 체계를 상정해 그 내재적 논리 시스템을 통해 언어를 분석했다.

     

    언어의 시니피에(기의·)는 그 자체로 의미를 갖는 것이 아니라 문맥 속에서 차지하는 위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신화 분석에서 이 방법론은 그대로 적용된다.

     

    그는 신화를 구성하는 의미 있는 단위를 신화소로 나누고 이 신화소가 어떻게 결합하고 배열되는지에 따라 다양한 신화가 생겨난다고 봤다.

     

    “버려진 기둥, 깨진 가구, 창틀, 나무토막, 유리조각으로 새로운 책상이나 탁자를 만들었다면 창틀의 한 부분은 책상의 한 부분으로, 가구 조각은 책상 다리로 사용돼 책상이라는 체계(신화) 속에서 새로운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어렵다. 672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에 질릴지 모른다.

     

    그럼에도 천천히 책장을 넘기며 인디언 부족들의 같으면서도 다른 신화를 접하다 보면 레비스트로스가 무엇을 말하려 하는지 조금씩 알아차리는 즐거움이 있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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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4>최종 이론의 꿈


     


    《“어떤 사람이 직접 관측되지 않는 어떤 것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를 거부한다면 그는 양자장론이나 대칭성의 원리나 일반적인 자연법칙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다. 철학자들과 사회학자들과 인류학자들이 연구할 수 있는 것은 과학자들이 실제로 행하고 있는 실질적 행위이며 이 행위는 추론의 규칙들만으로 간단하게 기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과학적 이론이 언젠가 파악되기를 희망하기는 하지만 아직 파악하기 어려운 목표로 존재한다는 것을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이러한 이론의 실재성을 확신하는 것이다.”》
     
     

     

    “가이사(카이사르)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바치라”는 성서 말씀이 있다. 세속 정치와 종교는 구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같은 논리로 “과학은 과학자에게, 철학은 철학자에게 맡기라”는 말도 통할까.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넘나드는 통섭()이 시대정신인 오늘날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철학 없는 과학의 비윤리성과 과학 없는 철학의 허무함을 잘 알고 있다.

     

     

     

    현대 입자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의 근간이 되는 표준모형을 발표했고 1979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세계적인 물리학자인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와인버그 교수는 1992년 이 책을 썼다. 최종 이론이란 모든 자연법칙을 설명할 수 있는 하나의 원리를 말한다.

     

    당시 미국 과학계에선 ‘최종 이론’을 실험할 초전도 초대형 충돌기 사업을 둘러싸고 격렬한 논쟁이 벌어졌다.

     

     

     

    정치인, 종교인, 철학자들은 실험으로 관측할 수 없는 이론의 증명을 위해 80억 달러짜리 초대형 충돌기를 만들 수 없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이들의 공격이 과학을 바라보는 근본적인 관점의 차이 때문에 생겨났다고 생각했다.

     

     

     

    그 근본적인 차이는 이렇다.

     

    최종 이론은 소립자처럼 아주 작은 세계에서 존재하기 때문에 자연 현상을 설명하는 원리지만 우리 일상의 용어나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 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도 않는다.

     

     

     

    실증주의를 바탕으로 한 철학자들에게 이런 최종 이론은 진리와 거리가 멀었다.

     

    눈으로 관측되지 않고 실험으로 검증할 수 없는 것들을 과학이라 부를 수 없다는 것이다.

     

    “공간과 시간은 우리 외부에 존재하는 실재의 일부분이 아니다.

     

    물체와 사건을 연관시킬 수 있게 해 주는 마음속의 선험구조”라고 말한 칸트의 말처럼 확인할 수 없는 것을 존재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반면 저자는 자연의 근본 법칙은 사람이 인식하든 인식하지 못하든 길거리에 널린 돌멩이처럼 실제로 존재한다는 ‘실재론’을 바탕으로 철학과 종교를 비판한다.

     

    또 실증주의 같은 철학이 한때 과학의 발전에 도움을 줬지만 이제 과학의 발전을 방해하는 존재라고 말한다.

     

     

     

    이 책은 최종 이론이라는 최신의 물리학 이론을 둘러싼 과학과 철학의 첨예한 대립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어렵더라도 꼭 읽어볼 만하다.

     

    과학과 철학의 대립은 역설적으로 과학과 철학이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물리학도가 아니라도 최종 이론이 무엇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한 것도 이 책의 장점이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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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5>조건들



    《“포스트모던의 등장과 함께 ‘인간’과 ‘주체’의 죽음과, 철학의 죽음이 공공연하게 선포됐다. 그러나 철학은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 하지만 철학이 존재하려면 욕망해야 한다. 그리고 철학이 존재하려면 욕망을 금지시킨 역사와 단절하고 사랑, 정치, 과학, 예술과 소통해야 한다.”》
     
     

     

    위기의 철학, 과학 예술 사랑과 소통하라

     

     

     

    포스트모더니즘의 등장은 수많은 ‘죽음’을 만들어 냈다.

     

    ‘인간(주체)의 죽음’ ‘이성의 종언’ ‘총체성의 종말’ 같은 해체적인 담론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는 곧 ‘철학의 죽음’으로 총칭할 수 있다.

     

     

     

    알랭 바디우는 이에 맞서 “철학은 가능하고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엄밀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강하게 밀어붙이면서 철학의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고 한다.

     

    단행본으로 출판된 게 아니라 바디우의 강연과 학회 발표문을 묶은 이 책은 철학을 재구축하기 위한 바디우의 사유와 방법론을 담고 있다.

     

     

     

    그는 철학이 자신의 고유한 장소를 잃어버렸다는 사실부터 지적한다.

     

    철학이 고유의 사유로서 스스로를 결정짓지 못하고 역사주의적 사고와 계보학적 전통에 얽매여 있었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해석이다.

     

    바디우는 “철학은 역사에 얽매여선 안 된다.

     

    근본적으로 철학사를 잊어버리자”고 제안한다.

     

     

     

    그는 철학의 갱신을 위해 우선 철학을 궤변론과 구별 짓는 과제를 수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궤변론은 마치 쌍둥이처럼 철학과 함께 존재해 왔다. 친구이자 적과도 같은 존재다.

     

     

     

    궤변론자들은 “진리가 없다”거나 “진리는 무용하고 불확실하다”라고 주장한다.

     

    즉, 협약, 규칙, 담화, 언어유희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궤변론자들은 이에 따라서 “말해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선 침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궤변론자들은 또 ‘진리의 이념’을 ‘규칙의 이념’으로 대체하려 한다.

     

    그러나 바디우는 “말해질 수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철학의 존재 이유”라고 강조한다.

     

     

     

    바디우에 따르면 현대의 궤변론은 스탈린적 마르크스주의 철학인 변증법적 유물론, 민족사회주의적 투쟁의 차원에 위치한 하이데거의 사유, 논리 실증주의에서 발전한 미국의 아카데믹 철학이다.

     

     

     

    바디우가 궤변론을 대립의 대상으로 설정한 것은 궤변론이 부정하는 진리를 일으켜 세움으로써 철학의 자리를 되찾겠다는 뜻에서다.

     

    그러나 철학은 스스로 진리를 생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바디우도 인식한다.

     

    그렇기 때문에 철학은 다른 곳에서 생산된 진리들을 ‘압류’해 옴으로써 ‘진리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는 “독립된 실재 속에서 전개되는, 철학에 앞서는 진리들이 있다”고 말하고 진리를 생산하는 ‘장소’들을 분류해 제시한다.

     

    대표적인 장소가 과학, 예술, 정치, 사랑이다.

     

    이런 장소들은 철학을 가능하도록 하고 필요하도록 해주는 ‘조건들’이다.

     

     

     

    철학의 행위는 여기에서 생산된 진리들을 ‘압류’해 와서 ‘사고’를 덧붙이는 일이다.

     

    이런 작업을 통해 철학은 “진리란 있다”라고 선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바디우의 이런 주장을 앞세우며 과학, 예술, 정치, 사랑 등 철학의 ‘조건들’에 대한 바디우의 세세한 분석을 담고 있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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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6>헤르메스



    《“정확하게 구분되고 세심하게 분리된 여러 과학이 있다. 그리고 지식의 독특한 영역들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런 마당에 어떻게 일반 역사와 각 학문 분야의 역사 사이에 어떤 관계가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분할되지 않은 지식 전체의 일반적인 흐름이 없는 이상, 과학 구성체 전체의 내부 관계를 뚜렷이 밝힐 어떤 실질적 가능성도 없을 것이다.”》
     
     

     

    학문 가로질러 살펴본 19세기 과학사

     

     

     

    책 제목 ‘헤르메스’는 과학, 학예, 상업, 변론의 신이다.

     

    유창한 말솜씨의 전령이자 안내자며 메신저를 상징한다. 소통과 관계의 대변자인 셈이다.

     

     

     

    철학자 미셸 세르는 과학 철학 문학 등 학문 사이를 가로지르는 소통을 평생 과제로 생각했다.

     

    1999년 국내에 번역된 이 책은 ‘소통’ ‘간섭’ ‘번역’ ‘분포’ ‘서북통행로’로 이어지는 ‘헤르메스’ 5부작 중 4권이다.

     

    1977년 나온 이 책은 19세기 과학사를 정리했다.

     

    여러 과학 분야를 가로지르며 탐색하는 세르의 진면목을 엿볼 수 있다.

     

     

     

    세르에 따르면 오늘날 학문은 과학이 철학 문학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무관심하다.

     

    예컨대 유럽의 고전주의 시대에 응용과학이 출현한 배경이 중상주의 경제의 영향이라는 것을 입증한 연구가 없다.

     

     

     

    이처럼 개별 학문은 완벽히 분할돼 있다는 게 세르의 지적이다. 역사가와 철학자가 과학을 알지 못하며 과학자가 역사나 철학을 알지 못한다.

     

    세르는 그 결과 기하학 대수학 수학 광학 열역학 박물학 등 개별 과학의 역사만 있을 뿐 이를 가로지르는 과학사는 없다고 말한다.

     

     

     

    세르의 지적을 들어보자.

     

    “기하학과 광학은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닫힌 체계로 발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기하학이 기하학 자체로부터, 광학이 광학 자체로부터 생겨난 것처럼 보인다.”

     

    결국 이런 관념에 의해 학문의 방법과 결과가 미리 결정되고, 그런 생각에 따라 학문 체계가 세분화된 것이다.

     

     

     

    세르는 이처럼 구분되고 안정된 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서로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무질서한 세계’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서문에서 이를 구름과 대기에 비유한다.

     

    대기 위 구름은 떠돈다.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 태양과 달리 정해진 규칙이 없다.

     

    구름이 어디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세르에 따르면 대기는 학문들의 세계고 학문들은 ‘무정형의 아득하게 넓은 대양 위에 흩어진 군도’에 비유될 수 있다.

     

    구름은 아무렇게 흩어진 학문들 사이를 떠돌며 학문들을 매개한다.

     

    세르의 방법론은 구름에 비유된다.

     

     

     

    이 책의 부제가 ‘분포’인 것도 과학이 정연하고 독립된 체계가 아니라, 서로 떠다니며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르는 학문들의 분포라는 의미를 담았다.

     

     

     

    세르는 이런 19세기 과학사를 여행한다.

     

    데카르트, 뉴턴, 칸트, 니체, 다윈, 마르크스, 베르그송, 프로이트….

     

    수학 물리학 역학 철학 문학 신학을 넘나든다. 과학사를 얘기하면서 문학과 신화를 얘기한다.

     

    그렇다고 지식 분야를 아무렇게나 연결하지 않는다.

     

    학문과 학문 사이에 밀접하게 연관된 지점을 탐색하고 관계성을 복원한다.

     

    역자의 표현대로 “여러 학문 영역들로 찢긴 백과지식의 공간을 깁는다”.

     

    ‘지식의 음유시인’이라 불릴 만큼 시적이고 은유적인 문체가 인상적이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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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7>제49호 품목의 경매



    《“신은 미합중국 우편제도를 이용하지 않기로 한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알고 있을 것이므로 그들의 선택은 결코 반역 행위가 아니었으며, 또한 반항의 표시도 아니었다. 그것은 단지 국가가 지배하는 삶에서, 즉 국가의 기계 장치와도 같은 구조에서 벗어나려는 계산에서 나온 행동이었다.”》
     
     

     

     

     

    거의 매해 노벨 문학상 수상 후보로 오르고 있는 토머스 핀천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원조로 알려진 작가다.

     

    그의 소설은 복잡한 상징이 많아 난해하기로 유명하다. 그의 소설 ‘중력의 무지개’는 1974년 퓰리처상 후보로 추천됐으나 퓰리처상 위원회가 ‘읽기 어렵다(Unreadable)’는 이유로 거부해 결국 그해 퓰리처상 수상작을 내지 못했다.

     

     

     

    1966년 발간된 핀천의 두 번째 소설 ‘제49호 품목의 경매’는 난해한 그의 작품 중에서 상대적으로 쉽다는 평을 받았다.

     

     

     

    이 소설은 미국의 평범한 중산층 주부 에디파가 옛 애인인 부동산 재벌 피어스의 사망 소식과 함께 그의 유산 집행인으로 위촉됐다는 편지를 받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피어스의 유산 집행을 위해 캘리포니아 남쪽의 샌나르시소로 간 에디파는 우연히 위조 우표를 만들어 교류하는 트리스테로라는 지하 우편 제도를 추적하게 된다.

     

     

    에디파는 트리스테로가 ‘W.A.S.T.E.’라는 명칭으로 소외 계층이 이용하는 지하 우편 제도로 남아있으며 ‘W.A.S.T.E.’는 ‘We Awaite Silent Triestero's Empire’(‘우리는 조용한 트리스테로 제국을 기다린다’는 뜻)의 약자임을 알게 된다.

     

     

     

    코넬대에 입학해 물리학에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 핀천은 물리학 이론인 엔트로피 이론을 이 소설에 차용해 정보 소통에 대한 은유로 사용한다.

     

    즉 외부에 대해 교류하고 열려 있지 않은 닫힌 체계는 파멸할 수밖에 없는 만큼 열린 체계로 전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설 속에 나오는 미국의 우편 제도는 인간 교류의 통제를 의미한다.

     

     

     

    트리스테로를 추적해 가던 에디파는 자신이 믿고 있던 진실과 현실에 대해 점차 회의하며 이 세계 넘어 또 다른 세계가 존재할지 모른다는 의심을 품게 된다.

     

     

     

    소설 끝에서 에디파는 위조 우표가 제49호 품목으로 경매에 나왔다는 소식을 듣는다.

     

    지하조직 트리스테로가 실재한다면 이 비밀을 지키기 위해 우표를 입찰하러 올 것이라고 생각한 에디파는 경매장을 찾는다.

     

     

     

    소설은 에디파의 기다림으로 끝을 맺는다.

     

    결론을 유보하는 이런 ‘열린 결말’은 포스트모더니즘 문학의 한 특징인 ‘열림’ 모티브와 연결된다.

     

     

     

    이 소설을 읽다 보면 미국 대중문화에 대한 패러디와 수많은 상징을 만나게 된다.

     

    심지어 편집자주()의 도움이 없다면 상징임을 눈치 챌 수 없는 것도 적지 않다.

     

    핀천은 이 소설에서 허구와 현실을 뒤섞고 의도적으로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 기술하기도 한다.

     

    그럼으로써 핀천은 공식적 역사를 비롯해 모든 ‘원전’의 신빙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핀천의 작품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라면 책 마지막에 있는 역자의 작품 해설을 먼저 읽을 것을 권한다.

     

    역자는 핀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김성곤 서울대 영문과 교수. 작품 전체와 세세한 상징에 대한 그의 명쾌한 해설은 미로 같은 이 작품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길잡이 역할을 한다.

     

     

    강수진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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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8>통섭



    《“물리학자들은 이미 최종 이론의 많은 부분을 이룩했다. 우리는 행성의 궤도를 알고 있고 그것이 어디로 향하는지도 어림잡을 수 있다. 그러나 거기에는 아무런 종교적 통찰도 없다.…과학은 한때 서구 문명 전체를 주재하던 인격신으로부터 우리를 너무 멀리 떼어놓았다.”》
     
     

     

    ‘사회생물학(sociobiology)’의 창시자로 불리는 미국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의 저서 ‘통섭()’은 2005년 국내에 번역된 뒤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대학마다 전공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지식의 통합을 시도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전공 학문의 울타리에서 벗어나 다양하고 폭넓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미래를 준비하게 된 것이다.

     

    학계의 이런 변화는 기업과 정치권으로 확산됐다.

     

     

     

    통섭은 낯설진 않게 됐으나 제대로 이해했다고 장담하기 어려운 단어다.

     

    윌슨 교수의 제자인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는 옮긴이 서문에서 “통섭이라는 단어를 이해했다면 책의 절반을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고 썼다.

     

     

     

    1998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의 원제 ‘consilience’는 1840년 자연철학자 윌리엄 휴얼이 처음 사용한 말이다.

     

    휴얼은 ‘jumping together’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온 이 단어를 통해 ‘서로 다른 현상들로부터 얻어진 귀납들이 일관성을 보이는 상태’를 설명했다.

     

     

     

    역자는 이 제목을 우리말로 어떻게 옮길 것인가를 놓고 5년 이상 고민했다. 통섭은 불교에서 쓰는 말로 ‘큰 줄기를 잡다’ ‘총괄하여 다스린다’로 해석된다.

     

     

     

    이 책은 생물학 사회과학 심리학 예술 종교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들며 인간과 세상을 바라보는 균형 잡힌 관점을 추구하라고 권한다.

     

    그리고 갈래갈래 쪼개진 특정 학문의 공부로는 그런 관점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16세기 이후 학문의 세분화가 지식의 양적 성장에는 기여했지만 인간에 대한 포괄적 이해를 어렵게 만들었다는 주장이다.

     

     

     

    통합적인 이해를 통한 지적 쾌감은 오래 잊혀지지 않는다.

     

    저자는 그런 이해가 지성의 궁극적 목표라고 말한다.

     

    그 미지의 수평선 너머에서 그가 예견하는 것은 혼돈이 아닌 질서다.

     

     

     

    우리 사회에도 이미 통섭이 진행되고 있다.

     

    1990년대 유행한 ‘퓨전(fusion)’도 통섭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나와 믿음이 다르다고 해서” 덮어버릴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윌슨 교수는 “통섭의 개념은 아직 빈약하며 간헐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인간의 조건을 이해하는 방법들의 연계가 큰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통섭 불가능의 증거로 속단하지 말라고 경계한다.

     

     

     

    본격적으로 줄기를 뻗어 나가기 시작한 인간 지성의 통섭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헤르만 헤세는 1943년 ‘유리알 유희’에서 모든 학문과 예술, 사유와 감정을 통합한 이상향을 그린 바 있다.

     

    그는 인류 문화의 모든 가치를 아우른 ‘유희’를 오르간 연주와 비슷한 예술 행위처럼 묘사했다.

     

    윌슨 교수는 저서의 말미에 “진보라는 이름 아래 도덕과 예술을 내동댕이치지 말라”고 역설한다.

     

     

     

    알고자 하는 욕망은 인간이고자 하는 욕망이다. 알면 사랑하고, 그 사랑은 아름답다.

     

    거기에 경계가 있을 리 없다.

     

     

    손택균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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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9>고대문명교류사



    《현실적으로 지난 20세기의 가장 큰 세계사적 의의는 하나가 된 세계 속에서 오랫동안 ‘벙어리 대화’만 해 오던 이질 문명들이 서로 떳떳이 만나 나눔을 시작했다는 데 있다. 바야흐로 인류는 서로의 어울림과 주고받음에서만 생존과 번영의 활로를 보장받을 수 있는 미증유의 교류 확산 시대를 맞고 있다. 교류를 떠난 문명의 생존은 상상할 수 없다. 바로 여기에 문명교류사 연구의 당위성과 필요성이 있다.》
     
     

     

     

    교류-소통으로 풀어낸 인류문명사

     

     

     

    1996년 11월 28일 서울지법 1심 형사 법정. 그는 고개를 숙이고 최후 진술을 하고 있었다.

     

    그의 소원은 오직 한 가지였다.

     

     

     

    “컴퓨터에 입력된 ‘고대문명교류사’의 원고만은 살려서 학계에 남기고 싶다.”

     

     

     

    본명 정수일. 조선족 2세로 베이징대 동방학부를 수석 졸업했으며 국비장학생으로 이집트와 모로코에서 유학했다.

     

    중국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북한에 포섭된 뒤 무하마드 깐수라는 아랍인 2세로 위장해 국내에 잠입했으며 교수 신분으로 간첩 활동을 하다가 구속됐다.

     

    그는 12년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형 생활을 하던 중 사면됐으며 현재는 연구 및 집필 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고대문명교류사’는 서양 중심적 시각에서 벗어나 독자적 시각으로 세계사를 재구성한 책이다.

     

    인류의 문명사를 왕조의 흥망이나 문명진화론의 시각으로 보지 않고 ‘교류’라는 실을 이용해 각 문명사를 보편사로 꿰어내고 있다.

     

     

     

    그는 세계를 서양과 동양으로 나누는 일반적 구분이 유럽인의 시각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즉 유럽 외의 방대한 지역을 자의적으로 동양으로 지칭하고 있다는 것.

     

    문명교류사는 서양과 동양의 교류가 아니라 유럽 중동 중국 등 여러 문명이 다원적으로 교류와 나눔을 행했다는 것이다.

     

     

     

    문명교류사 연구의 필요성은 오래전에 제기돼 왔지만 중국 아랍 페르시아 유목민족 유럽 등 각 문명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과 다양한 언어 해독능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섣불리 도전하지 못했다.

     

     

     

    교류사의 관점에서 보면 유목민의 역사도 재해석된다.

     

    스키타이-흉노-훈으로 이어지는 고대 유목기마 민족은 정착문명에 의해 야만 혹은 주변문화로 취급됐다.

     

    하지만 그들 나름의 문화를 일뤄 냈고 때로는 침략으로, 때로는 무역으로 방대한 지역의 교류를 중개했다는 의의를 재평가했다.

     

     

     

    이 책은 우리가 몰랐거나 고정관념에 빠졌던 것에 대해 새로운 사실과 시각을 보여 준다.

     

    2세기 로마 황제 안토니우스가 중국에 공식 사절을 보낸 의미나 당나라 때 이미 동방기독교의 일파가 전파돼 기독교적 의식이 뿌리내렸다는 점도 보여 준다.

     

     

     

    한국사 측면에서도 그의 연구는 주목할 만하다.

     

    경주에서 출토된 유리병과 로마제국의 로만 글라스의 관계, 불국사에서 출토된 석십자가와 고대 기독교의 연관성을 밝혀 실크로드의 종착점인 신라의 의미를 부각했다.

     

     

     

    그는 이 책에서 한 문명이 다른 문명보다 우월하다는 시각을 거부한다.

     

     

     

    “때로는 후진 문명에 대한 선진 문명의 이동이 일방적인 것처럼 비치지만 어디까지나 상대적이고 일시적이다.

     

    시간이 흐르면 후진 문명이 선진 문명을 앞질러 반()이동할 수 있음을 역사적 사실이 실증하고 있다.”

     

     

    서정보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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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0>인체사냥



    《“우리의 몸을 ‘사물화’하는 것은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우리의 감성에 상처를 준다. 실험은 우리를 비인간화한다. …의약품 개발은 인간에 대한 실험을 필요로 한다. 이것이 사실로 남아 있는 한, 우리는 그것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항생제 ‘페니실린’, 말라리아 치료제 ‘클로로퀸’ 그리고 ‘비아그라’.

     

     

     

    신약의 힘은 위대하다.

     

    생명 자체를, 또는 그에 상응하는 절망으로부터 인간을 구해냈다.

     

    신을 향한 기도를 넘어 과학이 가져다준 선물. 약은 인간이 자연을 제어하고 스스로를 치유하는 과학적 행위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약은 발명 혹은 개발 자체로 힘을 발휘할 순 없다.

     

    ‘검증’이 필요하다.

     

    동물 실험도 부족하다.

     

    인간에게 효과가 있는지 확인돼야 한다.

     

    그 때문에 신약 임상시험은 피할 수 없는 선택. 그렇다면 우리의 손에 도착한 이 한 알의 약은 어떤 과정을 거쳐 ‘복용해도 괜찮다’는 확답을 얻은 것일까.

     

    저자는 바로 이것이 궁금했다.

     

     

     

    인도 이민자 가정 출신인 저자의 눈에 비친 신약 개발 현장은 과학이란 미명 아래 제3세계에 가해지는 ‘폭력’이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책이 나온 2006년 서구 대형 제약회사들은 임상시험의 30∼50%를 미국과 서유럽 밖에서 실시하고 있다.

     

    또한 앞으로도 해외 임상시험을 70% 수준으로 끌어올릴 계획이다.

     

     

     

    물론 단순히 해외에서 임상시험을 한다고 비난할 일은 아니다.

     

    그 대가로 부족한 의학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도움을 준다고 주장하는 회사도 많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 등지에서 임상시험에 참여하는 수백만 명은 이를 공짜 치료제로 착각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세계의사협회가 정한 ‘구체적인 설명에 근거한 환자의 자발적 동의’가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다수를 구하기 위한 희생’이란 항변도 저자의 눈에는 치졸한 변명이다.

     

    ‘성기능 장애 치료제’를 예로 들어보자.

     

    노화 연구에 따르면 40∼70세 남성 중 절반 이상은 성생활에서 한두 차례 문제를 겪곤 한다.

     

    이는 나이와 흡연, 과체중 때문에 생긴 것이고 따라서 ‘발기부전’ 자체는 심각한 병이 아니다.

     

    하지만 실패한 협심증 치료제가 발기부전에 효과가 있다는 걸 발견한 제약회사들은 이를 성기능 장애라고 심각하게 포장한다.

     

    그 과정에서 부작용은 자연스레 감춰진다. 모든 건 사업적 마인드에서 이뤄진 셈이다.

     

     

     

    “임상시험의 주된 업무는 건강을 증진하거나 생명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임상 연구는 사업이지 사회봉사 활동이 아니다. 임상 연구가 사리()를 추구하는 사업인 만큼 우리는 연구자들이 법을 편리하게 해석하거나 위반할 때 모르는 척해주는 특별한 아량을 베풀 이유도 없다. …

     

    진정으로 질병을 치료하고 생명을 구하기 위한 의학 연구를 원한다면 우리 스스로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과학은 위대하다.

     

    그러나 위대한 만큼 책임이 따른다.

     

    과학이 순수 목적을 잃어버리고 비즈니스로 전락할 때 인간에게 끼치는 폐해는 그 순기능보다 더 위험하다.

     

    이 책을 추천한 이종필 한국과학기술원 고등과학원 연구원의 말처럼 “과학이 왜 인문학적 윤리가 담보돼야 하는지” 고민하게 만든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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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1>칼 세이건



    《“우리 시대를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외계생명체가 대중의 지적인 상상력에 어째서 그토록 강력한 마력을 행사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때 그들은 외계생물학의 시인인 ‘이타카의 칼 세이건’을 향하게 될 것이다.”》
     
     

     

     

     

    이 책은 한 사람의 실패한 꿈에서 시작한다.

    칼 세이건(1934∼1996). 외계생명체를 찾는 데 일생을 바친 사람.

     

    소망하던 것을 끝내 찾지 못했지만 꿈에 이르기 위한 열정으로 너무나 유명해진 사람.

     

     

     

    ‘칼 세이건’은 베스트셀러 ‘코스모스’의 저자이자 영화 ‘콘택트’의 원작자인 칼 세이건의 삶을 담은 책이다.

     

    별과 공상과학소설에 심취했던 어린 시절부터 UFO에 매달린 대학 시절, 외계의 생명체를 찾기 위한 분투, 주류 과학계에서는 외면받았으나 대중에게 명성을 날린 과학 저술, 그리고 여러 차례 결혼했지만 행복하지 않았던 개인사까지, 과학 전문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꼼꼼하게 훑는다.

     

     

     

    이 책을 추천한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은 “학문적 경계와 편견을 걷어내고 다학문적 성취를 이룬 주인공인 세이건의 여정을 엿볼 수 있다”고 말했다.

     

    책을 통해 세이건이 이룬 일들을 만나면 추천사가 더 크게 와 닿는다.

     

     

     

    1972년 목성을 탐사하기 위해 파이어니어호를 보냈을 때 세이건이 한 일은 인간을 그린 그림과 태양계 위 지구의 지도 등 인간이 만든 인공물을 싣는 것이었다.

     

    파이어니어호를 준비할 무렵까지 외계생명체를 찾으려는 작업은 ‘외계에서 오는 신호를 분석하겠다’는 데 그쳤지만 세이건은 지구인의 존재를 외계에 알리려는 노력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선구적이었다.

     

     

     

    이렇듯 ‘외계생물’이라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것’에 대한 세이건의 열정은 전 세계인의 경탄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천문학을 쉽게 풀어 쓴 코스모스는 베스트셀러가 됐으며 TV 다큐멘터리 코스모스도 전 세계 60개국 5억 명이 시청했다.

     

     

     

    여기에는 그에게 용기를 준 세 번째 아내 앤 드루얀의 공도 컸다.

     

    먼저 한 결혼은 실패였지만 뒤늦게 뜻 맞는 배우자를 만난 그는 드루얀의 격려에 힘입어 ‘미디어 과학자’로서의 명성을 떨쳤다.

     

    세이건으로 인해 천문학은 딱딱한 학문의 울타리를 벗어났다.

     

    대중에게 우주는 여전히 신비의 대상이었으나 더는 이해하기 어려운 천문학 용어로 가득한 곳은 아니었다.

     

     

     

    세이건이 제안하고 전 세계인의 공동 작업으로 진행 중인 지구 외 문명탐사계획(SETI)은 출범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아직껏 성과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생전의 세이건이 했던 얘기를 되새기며 연구를 멈추지 않는다.

     

    “증거가 없음이 곧 없음의 증거는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세이건이 이미지와 행운에 힘입었다고, 대중에게 가치가 없는 것을 팔아 성공했다고 비난한다.

     

    그들의 말처럼 세이건이 사람들에게 준 것은 이전 사람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세이건 덕분에 사람들은 꿈을 꾸게 되었고 상상력을 넓힐 수 있었다.

     

    그것이 세이건이 한 일 중 가장 큰 업적이었다.

     

     

    김지영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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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2>내 안의 유인원



    《“침팬지보다 더 잔인하고 보노보보다 공감 능력이 더 뛰어난 우리는 양극성이 가장 심한 유인원이다. 우리 사회는 완전히 평화롭거나 완전히 경쟁적이었던 적이 없다. 우리에게서는 친절과 잔인성, 고상함과 저속함을 모두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침팬지와 보노보라는 유인원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저명한 영장류 학자인 저자는 우선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우리와 가장 가까운 두 종에 대한 관찰과 연구 결과를 상세하게 제시한다.

     

    그런 다음 인간과 비교해 인간 본성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침팬지 사회에 대한 분석은 그동안 많이 이뤄졌다.

     

    덕분에 사람들은 침팬지의 폭력적인 성향을 자세히 알게 됐다.

     

    권력지향적인 침팬지 사회에서 수컷들은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동맹을 하고 배신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투쟁 와중에 집단 폭력이 발생하고, 다른 수컷의 목숨을 빼앗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침팬지의 폭력적 성향을 보면 인간은 본래 악하게 태어난다는 ‘성악설’에 힘이 실린다.

     

     

     

    하지만 저자는 침팬지의 눈높이에서만 인간을 바라보면 인간의 본성에 대한 이해는 반쪽짜리일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보노보 사회를 보지 않은 데 따른 오류라는 얘기다.

     

    침팬지에 비해 덜 알려진 보노보는 250만 년 전쯤 침팬지와 공동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온 유인원이다.

     

     

     

    보노보는 침팬지에 비해 평화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유지한다.

     

    보노보들은 충돌을 피하고 서로 돕는 ‘이타적인’ 모습까지 보인다.

     

    충돌 직전까지 사태가 악화되더라도 대부분의 경우 타협을 통해 긴장을 해소한다.

     

     

    타협의 주된 방법은 섹스다.

     

    섹스를 통하건 아니건 평화로운 사회를 유지하려는 보노보의 모습은 ‘성선설’을 뒷받침한다.

     

     

    저자는 두 종의 특성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침팬지와 보노보는 낮과 밤만큼이나 성격이 대조적이다.

     

    하나는 야심만만한 성격을 가진 반면 다른 하나는 평등주의를 구현하면서 자유분방한 생활을 이끌어 간다.

     

    침팬지가 우리에게 씌워진 악마의 얼굴이라면 보노보는 천사의 얼굴이다.”

     

     

     

    저자는 철학과 인류학의 다양한 명제를 끌어들이며 ‘내 안에 두 종류의 유인원이 있는’ 인간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인간의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 고차원적인 접근과 해석은 제쳐두고라도 이 책은 유인원 이야기, 특히 잘 알려지지 않은 보노보의 이야기를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특히 저자가 소개하는 보노보들의 성생활을 들여다보면 놀랄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보노보는 번식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쾌락을 위해 섹스를 하고 동성 간 행위도 빈번하며 인간의 전유물로 여겼던 ‘정상위’ 체위까지 보인다.

     

     

     

    침팬지와 보노보를 통해 분석한 인간 본성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인간은 내부에 두 종의 특성을 모두 지니고 있지만 중요한 점은 그 양면성을 우리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는 것.

     

    즉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유인원’을 스스로의 의지로 선택할 수 있다는 얘기다. 원제 Our Inner Ape.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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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3>차이와 반복



    《“존재는 본연의 차이 그 자체이다. 존재는 또한 ‘비-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비-존재는 부정적인 것의 존재가 아니다. 그것은 문제 틀의 존재, 문제와 물음의 존재이다. 본연의 차이 자체는 부정적인 것이 아니다. 거꾸로 그것은 비-존재이고, 이 비-존재는 본연의 차이, 즉 반대가 아닌 다름이다…부정은 이런 상위 원리의 그림자, 이미 산출된 긍정 옆에 머물러 있는 차이의 그림자일 뿐이다.”》
     
     

     

    세상 만물, 차이는 있어도 우열은 없다

     

     

     

    솔직히 얘기하자. 들뢰즈는 어렵다. 고등수학책을 보는 것만큼 난해하다.

     

    하물며 철학적 주요 개념을 푸는 바탕엔 미분법이나 리만 기하학 같은 수학 이론까지 깔려 있다.

     

    이만하면 철학과 수학의 궁극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들뢰즈는 인기 있다.

     

    1990년대 국내에 포스트모더니즘이란 광풍이 지나간 뒤에도 살아남았다.

     

    철학뿐 아니라 사회현상 설명에도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1995년 투신자살 이후에도 영향력은 더욱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미셸 푸코가 선언한 ‘들뢰즈 세기()’의 도래. 많은 이는 그 원인을 들뢰즈 철학의 ‘실천성’에서 찾는다.

     

    고전적 이성중심주의를 비판하고 지식과 사회에 만연한 차별의식의 타파, 문학과 과학을 넘나드는 고민을 통해 존재와 비존재라는 발상 자체를 해체한다.

     

    그 정점이자 출발이 ‘차이와 반복’이다.

     

     

     

    원래 이 책은 1968년 저자의 국가박사 학위 청구 논문이었다.

     

    그러나 그 한 편의 박사 논문은 당대 식자들이 “비바람을 동반한 폭풍우”라 부를 만큼 충격이었다.

     

    들뢰즈가 동시대 급진적 사유를 받아들여 기존 철학사 전체를 자기 식으로 재편하고 철학적 변형을 꾀했기 때문이다.

     

    이는 그리스 시대 이후 줄곧 서양철학의 근본이었던 ‘자기 동일적인 존재’, 즉 이데아라는 발상 자체를 재정립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차이와 반복’에서 구축하는 존재론은 플라톤의 ‘이데아’ 이래 지속된 이원적 세계관과 인식 자체가 다르다.

     

    들뢰즈는 이념 세계도 감성 세계 속에 놓는다. 개념적 세계마저 감성 차원에 속한다.

     

    감성적이건 물질적이건 경계선은 존재할지언정 하나의 전체 안에 존재하는 셈이다.

     

     

     

    때문에 모든 사물과 인식은 이미 존재할 때부터 이데아로서 이상적 요소를 머금고 있다.

     

    즉 체계에 따라 충돌이 발생할 순 있어도 우열 자체를 따질 순 없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은 ‘차이’와 ‘반복’의 재생이 있을 뿐 절대와 등급은 존재하지 않는다.

     

     

     

    들뢰즈 철학이 힘을 얻는 지점도 여기에 있다.

     

    기존 서양철학은 감각이 인식하는 사물을 이데아(원형)의 복제로 인식했다.

     

    이는 사물이 얼마나 원형에 가까운가에 따라 좋고 나쁨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이원적 인식론은 현실세계에서 남녀, 인종 차별 같은 우열이 존재한다는 발상의 근거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차이와 반복’은 이데아의 실체를 절대시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같은 테두리 안에 존재한다. 단지 차이와 다양성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저자는 이를 위해선 과학 특히 에너지와 생명을 다루는 자연과학의 습득을 중시한다.

     

    사실 ‘차이’라는 개념 자체도 수학의 미분법에서 도출해낸 것이다.

     

    학제 간 영역을 넘어서는 통섭의 시대에 ‘차이와 반복’이 새롭게 읽히는 이유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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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4>트랜스크리틱



    《“내가 트랜스크리틱이라 부르는 것은 윤리성과 정치경제학 영역의 사이, 칸트적 비판과 마르크스적 비판 사이의 코드 변환, 즉 칸트로부터 마르크스를 읽어내고 마르크스로부터 칸트를 읽어내는 시도이다.”》
     
     

     

     

     

    가라타니 고진(·67)은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저서로 국내에 큰 충격을 주면서 일반인에게도 잘 알려진 평론가다.

     

    뛰어난 문예비평가로 일본뿐 아니라 세계에서 명성이 높지만, 그의 관심이 문학에만 머문 것은 아니다. 가라타니는 철학과 사상사, 사회학을 넘나드는 폭넓은 연구와 저술 활동에 매진해 왔다.

     

    ‘트랜스크리틱(transcritique)’은 그 증거다.

     

     

     

     

    ‘칸트와 마르크스 넘어서기’라는 부제가 보여 주듯 이 책은 칸트와 마르크스라는 대단히 이질적인 두 철학자를 소통시키려는 시도다.

     

    특히 가라타니가 집중하는 것은 두 철학자의 ‘비판정신’이다. 저자 자신은 “물론 ‘비판’은 상대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음미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에서 자본의 한계를, 칸트의 형이상학 비판에서 인간 이성의 한계를 짚는다.

     

     

     

    제1부는 칸트 다시 읽기, 제2부는 마르크스 다시 읽기다.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저자의 관심은 마르크스 쪽에 좀 더 기울어진다.

     

    저자는 “마르크스주의적 정당과 국가가 붕괴한 1989년 이후 칸트에 대해 사고하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철학의 한 정점에 선 이 철학자에 대해 10년에 걸쳐 ‘칸트론’을 쓸 만큼 가라타니는 집요하게 칸트를 연구한다.

     

     

     

    가라타니는 칸트가 ‘공공 개념의 전복’을 시도했다고 해석함으로써, 칸트에게서 사회주의적 요소를 발견한다.

     

    칸트는 국가 입장에 선 것을 ‘사적()’인 것으로, 개인이 모든 국가 규제에서 벗어나서 생각하는 것을 ‘공적()’인 것으로 파악한다는 게 가라타니 칸트론의 핵심이다.

     

    이것은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경제와 국가에 대한 비판과 맞닿는다.

     

     

     

    그럼에도 ‘자본론’이 자본주의에 대한 출구를 제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가라타니는 밝힌다.

     

    오히려 그 출구가 찾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줌으로써 저자는 시스템에 대한 반성을 끌어낸다.

     

     

     

    그러나 이 책이 비관적인 결론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가라타니는 그가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에 대한 대안을 내놓는다.

     

    마르크스에 대해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는 저자답게, 그는 마르크스가 생각했던 ‘가능한 코뮤니즘’의 재생을 시도한다.

     

    그것은 생산의 국유화나 일당 독재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자유롭고 평등한 생산자의 연합사회’를 가리킨다.

     

    가설이지만, 가라타니는 이 이상적인 자율공동체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소망을 책을 통해 밝힌다.

     

     

     

    이 책을 추천한 강신주(철학) 연세대 강사는 “전혀 이질적인 것처럼 보이는 칸트와 마르크스를 글자 그대로 횡단적으로 읽어 내는 작업을 수행한 책으로, 저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를 비판적으로 진단할 수 있는 시선을 제공한다”고 말했다.

     

     

     

    일반인을 대상으로 썼다고 저자는 밝히지만, 일반 독자들이 이해하려면 칸트와 마르크스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갖춰야 하는 게 사실이다.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쓴 소개의 글 ‘트랜스크리틱이란 무엇인가’를 꼼꼼하게 읽는 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김지영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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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5>특이점이 온다



    《“우리가 삶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사용하는 온갖 개념들에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죽음도 예외가 아니다. 특이점을 이해하게 되면 지나간 과거의 의미와 미래에 다가올 것들에 대한 시각이 바뀐다. 보편적 삶이나 개인의 개별적 삶에 대한 인생관이 본질적으로 바뀐다.”》
     
     

     

    ‘특이점(singularity)’은 주로 천체물리학에서 블랙홀 내 무한대 밀도와 중력의 한 점을 뜻하는 용어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과학으로 인해 완전히 새로운 문명이 도래하는 시점’을 가리킨다.

     

    특이점이 오면 인간은 기계가 되고 기계는 인간이 된다. 아니, 인간은 신이 된다.

     

     

     

    그럼 병에 걸리거나 늙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유전자를 조작해 미리 방지하고 장기를 교체하면 된다.

     

    힘들여 공부할 필요도 없다.

     

    지식과 경험을 뇌에 내려받으면 되니까.

     

    뇌 속에 들어간 수많은 나노 로봇은 다양한 가상현실 속의 신나는 경험을 가능하게 해 준다.

     

    심지어 감정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

     

    또 한 30년만 지나면 뇌를 스캔해 싫증날 때마다 다른 몸으로 바꿔가며 영원히 살 수 있다.

     

    인간의 육체는 단지 이것들을 담는 ‘용기’에 불과하게 된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만고불변의 진리 자체가 뒤집어진다.

     

     

     

    뛰어난 발명가이면서 미래학자이자 사상가인 저자는 “특이점이 반드시 등장할 수밖에 없으며 더구나 그 시기가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유전공학 나노기술 인공지능 등의 발달로 인해 인간은 생물학의 원리들을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게 됐다.

     

    또 ‘기술가속의 법칙’에 따라 정보기술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기 때문에 족히 100년은 걸릴 것 같은 일이 1년 만에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과학이 이뤄내는 꿈같은 세상. 그러나 여기서는 인간의 본질과 정의가 달라진다.

     

    생물학적 부분보다 비생물학적 부분이 더 많은 존재는 과연 인간일까.

     

     

     

    그러나 저자는 그런 의문이 필요 없다고 한다.

     

     ‘인간다움’의 속성, ‘기계’의 정의, ‘비생물학적 지능’에 대한 생각이 뿌리부터 바뀔 것이니까.

     

    저자는 자신을 특이점주의자라고 칭하지만 그의 주장은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인류에게 가장 위협적인 사상’으로 꼽은 트랜스 휴머니즘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트랜스 휴머니즘 역시 우리가 과학기술을 통해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영생을 실현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이 책을 추천한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은 “역설적으로 이런 미래를 위해서 (또는 대항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지 성찰하게 해주며 이 부분에서 다()학문적 논의의 장이 열린다”고 말했다.

     

     

     

    저자의 대담한 주장에 열광하는 사람도 많았지만 허황된 얘기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저자는 생각이 다르다.

     

     ‘당신들은 감히 기계 따위가 위대한 인간과 어떻게 맞먹을 수 있겠느냐고 말하지만 아니다.

     

    세상은 바뀌고 특이점은 분명히 온다.’

     

    저자는 그래서 비판에 대한 반론에만 70여 쪽을 할애했다.

     

     

     

    저자의 예측은 과연 현실이 될 수 있을까.

     

    물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가 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채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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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6>몸의 철학



    《“우리의 신체적 존재 살, 피, 근육, 호르몬, 세포, 시냅스와 세계 안에서 우리가 매일 부딪히는 모든 것이 어떻게 현재의 우리를 만들어 주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방식을 제공해 주었다. 이것이 몸의 철학이다.”》
     
     

     

    인간의 이성은 신체와는 무관한가. 인간의 의지는 근본적으로 자유로운가. 인간은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도덕성을 갖고 있는가.

     

     

     

    조지 레이코프의 ‘몸의 철학’은 인간 철학에 대한 전통적인 서구적 관념에 대한 의문으로 채워진 저서다.

     

    레이코프는 언어학과 인지과학사에 큰 족적을 남긴 저명한 언어학자. 그의 연구는 최근 인지과학적 탐구 성과를 이용하며 탈()신체화된 이성과 사고를 주장하는 데카르트를 주된 공격의 표적으로 삼고 있다.

     

     

     

    이 책은 인지과학의 주요 발견 세 가지를 거론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건 △마음은 신체화되어 있고 △사고는 대부분 무의식적이며 △추상적 개념들은 대체로 은유적이라는 내용이다.

     

     

    우선, 신체화된 마음은 이 책의 핵심 개념이다.

     

    그는 “지각이나 운동과 같은 신체 능력과 독립적인 이성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며 이성(reason)은 근본적으로 신체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지각 작용과 개념 작용이 뚜렷하게 구분될 수 없으며 그 과정은 대부분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채 진행된다.

     

    쉽게는 우리가 생각할 때 개개의 뉴런(신경계를 이루는 기본 세포)의 작용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이들을 자유로이 사용하는 것처럼 사고와 신체의 긴밀한 연결은 무의식적이라는 말이다.

     

     

     

    ‘개념’이라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범주들을 정신적으로 특징짓고 그것들에 대해 사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신경구조이며 신체화된 개념은 실제로 우리 두뇌의 감각 운동계의 일부나 그 운동계를 이용하는 신경구조다.

     

     

     

    개념적 추론의 많은 부분은 감각 운동 추론이다.

     

    각 차원에서 신경구조 및 감각운동계 신경구조에 의한 감각 추론의 알고리즘(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또는 어떤 일을 진행하기 위한 절차나 방법)은 현재 과학 연구로 밝혀지는 중이며 실제로 어떻게 이런 과제들이 수행되고 있는지가 생각만큼 모호하거나 알 수 없는 과정으로 남아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뇌과학의 연구자들은 인간이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까지 뇌세포의 움직임으로 파악하며 심지어 조작까지 가능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레이코프는 인간이 갖는 대표적 정신적 영역인 ‘영성()’도 신체화에서 독립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영적 경험을 정열적으로 만들고 거기에 치열한 욕구와 즐거움 고통 환희 등을 가져오는 것은 몸이라는 견해다.

     

    이러한 감각들 없이는 영성이 완벽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는 세계의 전통들에서 성 예술 음악 춤 음식은 명상이나 기도와 마찬가지로 수천 년 동안 영적 경험의 행태였음을 상기시킨다.

     

     

     

    900쪽에 걸쳐 그림 자료 하나 없이 글자로 빼곡하게 채워진 방대한 분량 때문에 이 책은 읽기에 다소 부담스럽다.

     

    그러나 최근 서구 철학계에서 활발하게 논의 중인 인지과학, 몸에 대한 철학의 재정립 움직임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다면 시간을 투자해볼 만한 책이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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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7>풀하우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인간만이 고등한 존재라는 주장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진화에 어떤 경향이 존재한다고 우기고 있다…이 책의 새로운 설명 도구는 생명의 역사에서 진보란 보편적인 현상이 아니었으며,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진 적도 별로 없음을 이해시킨다.”》
     
     

     

     

    모든 생물이 고등진화하는 것은 아니다

     

     

     

    다윈 이론에 따르면 진화는 서서히, 더 나은 방향으로 일어난다.

     

    자연 상태에서 생존과 생식에 이롭게 적응한 돌연변이 개체가 선택된다.

     

    그렇게 나타난 유리한 특성이 오랜 세월 누적돼 생물은 고등한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것이다.

     

     

     

    다윈 이론이 맞다면 실제 화석에서도 그런 진화 과정을 보여주는 패턴이 나타날 것이다.

     

    그런데 양서류에서 파충류로, 침팬지에서 인류로 진화하는 과정의 화석은 발견되지 않았다.

     

    20세기에 등장한 신()다윈주의는 통계법칙을 활용해 화석 기록의 불안정성을 보완한다.

     

    한 종()에서 더 나은 다른 종으로 변해 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중간 종은 안정되게 큰 집단을 형성하지 못해 화석으로 남을 확률이 적은 것이라고.

     

     

     

    다윈주의자들은 이처럼 어떻게든 고등한 생물로 진화한다는 진화의 경향성이 확고부동하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세계적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는 묻는다.

     

     

     

    “이런 법칙이 수십만∼수백만 년에 걸쳐 일어난 ‘진화’의 다양하고 복잡한 모습을 시원하게 설명해줄 수 있을까.

     

    포유류가 파충류보다 더 적응을 잘해 중생대에 멸종한 공룡과 달리 살아남은 것인가.

     

    그렇다면 여전히 남아 있는 파충류는 뭔가.”

     

     

     

    다윈의 자연선택 이론은 ‘한 시점’에서 환경에 적응한 개체의 변이 과정일 뿐, 수백만∼수천만 년 세월의 복잡한 진화 과정을 설명해줄 수 없다는 게 굴드의 생각이다.

     

     

     

    이 책에 따르면 진보는 하나의 선이 아니라 다양성의 증가다.

     

    고등한 생물은 우연적이고 무작위적인 다양성의 증가에서 나온 진화의 부산물이지 진화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제목 ‘풀 하우스(full house)’는 다양한 종이 생겨나 제각기 살아가는 모습을 뜻한다.

     

     

     

    생태계는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으로 진화하기 위해 생겨난 게 아니다.

     

    전체 생물군 가운데 호모사피엔스는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다세포 동물군의 80%를 차지하는 절지동물은 복잡한 신경을 가진 생물체로 진화하지 않고도 잘 살아간다.

     

     

     

    결국 진화에서 어떤 경향성이 나타난다고 해서 그것을 법칙성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이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굴드는 “고등 생물로 진화한다는 경향성은 전체 생태계 중 부분적 속성일 뿐 생태계라는 시스템을 대표하는 속성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특정한 경향성으로 전체를 짐작하는 사고 습관을 버려야 다양성의 가치가 눈에 들어오고 인간중심주의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화의 방향은 여러 갈래이고 그 결과는 필연적이지 않다.

     

    생명의 역사가 다시 시작된다면 지능을 가진 인간이 다시 출현할 확률은 극히 적다는 것이다.

     

     

     

    굴드는 진실을 보려면 시스템 전체의 변화를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스포츠 건축 음악 문학 등을 넘나드는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전개되는 굴드의 설명이 복잡하고 추상적인 진화생물학의 개념을 쉽고 재미있게 알려준다.

     

     

     

    윤완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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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8>진리와 방법
     
     


    《“해석학적 현상에서는 진리의 경험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진리의 경험은 철학적으로 정당화되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일종의 철학적 사유 방식이기도 하다.”》
     
     

     

     

     

     

    ‘진리와 방법’은 철학자 가다머(1900∼2002)의 주저()일 뿐 아니라 해석학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가다머가 1948년부터 1960년까지 12년에 걸쳐 집필한 이 역작은 해석학을 독일 철학계의 중심적인 논제로 대두시킨 계기가 되었다.

     

    워낙 오래된 저서인 만큼 비판과 지적도 따랐지만 아직껏 이 책을 능가하는 해석학 저서는 나온 것이 없다는 게 철학계의 평가다.

     

     

     

    이 책을 읽기 위해선 해석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19세기 중반 자연주의적 과학주의적 정신의 득세로, 철학의 고유한 연구 대상이었던 인간 정신은 자연과학의 부속물로 여겨지기 시작했다.

     

    해석학은 철학의 문제 영역인 정신과학이 자연과학의 일종이 아니라 독자적인 정체성을 갖고 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가다머가 진리와 방법이라는 제목을 생각해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철학적 해석학의 기본 특징들’을 염두에 두었지만 출판사 발행인이 ‘해석학’이라는 용어를 낯설게 여겨서 제목을 바꾼 것.

     

    그러나 진리와 방법이라는 제목은 적절했다.

     

    진리에 이르는 ‘방법’이란 자연과학의 객관적 방법론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가다머의 의도는 과학주의·객관주의의 방법론으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경험 세계를 찾아, 여기에서도 진리가 획득될 수 있음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경험’이 중요하다.

     

    경험이란 자연과학에는 없고 정신과학에만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경험은 주체와 객체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변화를 끌어내는 것을 가리킨다.

     

    가다머는 정신과학의 진리의 ‘경험’을 찾아내 고유한 정당성을 규명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상이한 세 영역의 연구를 이행했지만 이 영역들은 철학적으로 통일성을 갖고 있었다.

     

    세 영역이란 예술과 역사, 언어의 철학적 분석을 말한다.

     

    2000년 국내에 번역된 ‘진리와 방법Ⅰ’은 예술 경험의 진리 문제를 탐색한다.

     

     

     

    이론을 세우는 게 아니라 경험을 분석한다는 점에서 예술에 대한 논의는 정신과학에 속한다.

     

    해석학에 따르면 예술은 개인의 사사로운 영감에서 발동한 것이 아니라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진리를 표현하는 것이다.

     

    예술 ‘경험’, 즉 예술작품에서 다른 방식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진리를 경험한다는 것은 자연과학적 방법론에 맞서는 예술의 철학적 의미를 형성한다.

     

    가다머는 이렇게 예술 경험에 대한 이해 지평뿐 아니라 예술작품의 존재론과 그 해석학적 의미를 물음으로써 예술 경험의 자기정체성을, 나아가 정신과학의 독자성을 규명한다.

     

    가다머는 고대 그리스철학부터 딜타이, 칸트, 후설, 하이데거 등 철학사를 훑으면서 예술의 고유한 인식 방법과 진리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한다.

     

     

     

    난해하기로 소문난 텍스트다.

     

    고려대 이길우(철학) 교수, 강원대 이선관(철학) 교수, 동국대 임호일(독문학) 교수, 강원대 한동원(철학) 교수가 이 책의 번역에 함께했다.

     

    역사와 철학에 대해 논의한 ‘진리와 방법Ⅱ’도 번역 중이며 이르면 연내 출간될 예정이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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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19>우연성,아이러니,연대성


    《“진리는 저 바깥에 존재할 수 없다. 즉 인간의 정신을 떠나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문장들이 인간의 정신과 독립적으로 저 바깥에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는 저 바깥에 존재하지만 세계에 대한 서술은 그렇지 않다. 세계에 대한 서술들만이 참이나 거짓이다. 따라서 인간의 서술 활동의 도움을 받지 않는 세계 그 자체는 참이나 거짓일 수 없다.”》
     
     

     

    책을 읽기 전 우선 리처드 로티의 철학을 간단히 살펴보자.

     

    그는 ‘진리’를 추구해온 서구 철학의 전통에 반기를 들었다.

     

    절대적 진리란 있을 수 없으며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더 나아가 보편적인 과학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봤다.

     

     

     

    로티는 이 책에서 ‘우연성’을 강조한다.

     

    우선 우리의 언어가 역사적 우연성의 산물이라는 점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선천적인 언어’가 있다고 강조한 플라톤을 반박하는 것이다.

     

    보편적 진리가 없다는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대목이다.

     

     

     

     

    그는 세계에 대한 묘사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는 점에서 언어를 우연성의 산물로 간주한다.

     

    세계를 묘사하는 인간이 옳을 수도, 그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는 더 나아가 우리의 자아도, 우리가 속한 공동체도 우연성의 시각으로 해석한다.

     

     

     

    이런 우연성을 수용하는 사람을 로티는 ‘아이러니스트’로 부른다.

     

    아이러니는 상식의 반대 개념. 아이러니스트는 본래적인 성질, 즉 진정한 본질이란 없다고 본다.

     

    아이러니스트들은 스스로에게도 오류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인정한다.

     

     

     

    로티는 프루스트, 니체, 하이데거 등을 아이러니스트로 정의했다.

     

    특히 프루스트가 대표적이다.

     

    프루스트는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주인공이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재정의를 시도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로티는 책의 전반에 걸쳐 형이상학에 대해 비판적 태도를 보인다.

     

    그는 “형이상학자란 인간 존재의 요점을 결정하고 책임의 우선순위를 수립해 주는, 시간을 초월한 질서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라고 규정한다.

     

    이에 반해 아이러니스트들은 ‘실재’ ‘진정한 본질’ ‘객관적 관점’ 같은 관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로티는 “아이러니스트가 ‘질서’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고 믿는 지식인들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1980년대 서구 지식인들에게 호소력을 얻은 ‘연대성’에 대해선 특정 명제로 그룹을 이룬 ‘우리’가 거기에 속하지 않은 ‘그들’을 흡수해 가는 과정으로 서술했다.

     

     

     

    로티는 종교와 철학의 시대에 이어 문화, 특히 문학의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현대인들은 소설, 시, 영화 등에서 타인에 대한 정보를 얻고, 상상력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공감대를 확장함으로써 연대성을 강화해 나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책에서도 그는 철학 텍스트를 문예 텍스트로 읽는 문예비평을 강조했다.

     

     

     

    분석철학이 지배하는 서구 철학계에서 인식론에 반대한 그를 두고 사람들은 “네오프래그머티즘(신실용주의)의 기수”라고 불렀다.

     

     

    지난해 7월 사망한 뒤 로티에 대한 재평가가 더욱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금동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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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0>과학 혁명의 구조

     
     


    《“첫째, 과학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은 여타 방식으로 대처될 수 없는 두드러지고 일반적으로 인정된 문제를 해결하는 듯 보여야 한다. 둘째, 새 패러다임은 선행 패러다임들을 통해서 과학에 조성된 구체적인 문제 해결 능력의 상당 부분을 보전하리라 기약돼야 한다. (…) 결과적으로 새로운 패러다임은 선행 패러다임들의 능력을 소유하고 있지 못함에도, 보통 과거 업적의 구체적인 부분을 많이 보전하며 구체적 문제 풀이들의 출현을 허용한다.”》
     
     
     

     

     

    과학은 기존 패러다임 파괴통해 발전

     

     

     

    과학은 길고 긴 레이스다. 인간은 선사시대부터 스스로에게, 그리고 자연을 향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 왔다.

     

    이를 좀 더 객관적으로 발견하고 검증하려는 노력이 과학으로 발현된 것이다.

     

    한 발씩 내디뎌 온 그 과정이 없었다면 지금의 과학은 존재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이는 과학 속성을 제대로 이해한 게 아니다. 과학은 단순히 차곡차곡 쌓여서 발전하지 않는다.

     

    과학 지식의 발전은 기존 판도를 뒤집는 폭발적인 무언가로 인해 가능하다.

     

    이러한 발전을 저자는 ‘과학 혁명(Scientific Revolution)’이라는 분기점을 통해서 가능하다고 판단했다.

     

     

     

    저자의 발전 모델에 따르면 과학 혁명은 이전에 통용되는 패러다임이 새로운 패러다임의 출현으로 바뀌는 “비축적적인 변화”의 과정이다.

     

    여기서 패러다임은 다양한 의미로 규정되는데, 과학 분야의 기본 이론과 법칙, 개념, 지식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한다.

     

    과학을 아우르는 가치관과 과학자들 간에 공유되는 관념까지 일종의 패러다임에 해당한다.

     

     

     

    과학 혁명이 오기 전까지 이러한 패러다임은 과학 사회에서 안정된 형태를 띤다.

     

    자연 현상의 본질에 대한 탐구 자체가 이 패러다임 내에서 이뤄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시기를 ‘정상 과학(normal science)’이라고 규정한다.

     

     

     

    그러나 어느 범위까지 유효하던 정상 과학은 한계에 부닥치는 시점을 맞이한다.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치명적인 이상 현상”이 빈번하게 출현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위기에 부닥친 패러다임은 붕괴를 맞이하고 그 결과 새로운 정상 과학이 나타나는 과정이 바로 과학 혁명이다.

     

    코페르니쿠스나 뉴턴, 라부아지에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출현은 모두 이런 과학 혁명이란 개념으로 설명된다.

     

     

     

    저자의 과학 혁명 개념은 정치 혁명과 비슷하다.

     

     “정치 혁명의 목적이 기존 제도를 파괴하기 때문에 기존 정치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듯이, 과학 혁명에서도 경쟁하는 패러다임 사이의 선택은 양립 불가능하다.”

     

     

     

    이 책은 1962년 첫 출간 당시 그 자체로 혁명이었다.

     

    당시 과학철학은 지식 축적을 통해 진보한다는 귀납주의 관점이 지배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쿤 혁명’이라 불린 이 책은 과학은 물론 지식사회 전체의 변천 자체를 새롭게 정의했다.

     

    그래서 과학철학을 넘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 예술에 이르기까지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는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물론 아쉬운 점도 있다. 언어학자 마거릿 매스터먼이 지적했듯 패러다임이란 용어 자체가 모호하다.

     

    그러나 과학 역시 인간의 여타 활동과 비슷한 방식으로 발전한다는 발상 자체는 현대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과학 역시 인간의 산물인 것이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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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1>인간을 묻는다



    《“정확하게 말해서 동물과 사람 사이에 다른 점이 있다면 그것은 개념을 형성할 수 있는 자질이 주어졌다는 데 있다. 그리고 우리는 사고하는 언어를 통해서 우리의 자질을 표현하고 있다. 사람은 끊임없이 자연의 현상 뒤에 숨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그 현상을 통합해 주는 것으로 여겨지는 것을 표현하는 관념들을 창조한다. 이와 같은 관념의 창조와 언어 안에서의 상호작용이 상상력을 만들어내는 일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도 시에 있어서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상상 활동이다.”》
     
     

     

    나는 누구인가.

     

     

     

    나의 개성을 찾는 손쉬운 방법은 내가 남과 얼마나 다른지 파악하는 것이다.

     

    타자와 구분 지으며 인간은 끊임없이 자아를 찾으려 했다.

     

    물론 기계에도 개성은 있다.

     

    내 자동차도 나이를 먹고 어딘가에 긁혀 가며 그것만의 습성을 얻는다.

     

    같은 모델의 다른 자동차들 가운데서도 내 차를 쉽게 찾을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기계의 경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수동적이고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것이다.

     

     

     

    반면 인간의 자아는 두뇌 속에 고정된 무언가가 아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자아의 경험은 변화무쌍하다.

     

    하지만 이 경험들이 인간의 개성으로 되기 위해서는 지식으로 변환되는 과정이 필요하다.

     

     

     

    저자는 자아가 지식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결론짓는다.

     

    과학과 예술이다.

     

    이제까지 상반된 영역에 속한 줄 알았던 과학과 예술의 벽이 허물어진다.

     

     

     

    절대적인 객관성과 엄격한 체계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던 과학은 이 책에서 새롭게 정의된다.

     

    저자는 예술의 창작활동과 마찬가지로 과학적 발견이라는 활동도 상상력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이런 까닭에 과학은 시 못지않게 모호하다.

     

     

     

    이유는 과학도 자연을 기술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면 과학은 ‘공학적인 설계도’가 아닌 ‘자연의 기계적인 메커니즘을 표현하는 언어’다.

     

     과학자는 우리가 실제로 보는 자연 현상을 과학용어로 표현하고 이 용어들은 또 한 번 동일한 현상이 목격됐을 때 검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단지 우리는 과학의 애매모호함을 애써 모른 척할 뿐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문학에서는 애매함을 내버려 둬도 된다.

     

    예술은 인간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을 보여주며 어떤 윤리적 판단도 거부한다.

     

    우리는 그저 예술 작품에 등장하는 상황과 인물에 공감하며 ‘자신이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의 답을 얻는다.

     

     

     

    이런 까닭에 과학과 예술은 둘 다 자연과 인간의 삶에 대해 완전무결한 설명을 할 수 없다.

     

    하지만 이 점이 나를 나답게 만드는 핵심 열쇠가 된다.

     

    자연의 변화를 지켜보며, 소설 속 인물에 공감하며 나의 정체성도 끊임없이 옷을 갈아입는다.

     

     

     

    저자 제이콥 브로노프스키는 1945년 원자폭탄의 효력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하지만 폭탄이 투하된 나가사키 공군기지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한 후 ‘과학과 인간 가치’에 매달렸다.

     

    이 책은 ‘과학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평생 매달린 저자의 1965년 강연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결국 이 책의 메시지는 과학과 예술의 이면을 직시하자는 것.

     

    그리고 이를 나 자신에 대한 물음의 해답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염희진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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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2>과학으로 생각한다



    《“1900년에 멘델의 법칙이 재발견된 이래 지금까지 숨 가쁘게 발전한 분자생물학은 사람들에게 프랑켄슈타인의 공포를 상기시킬 정도로 질주하고 있다. 생명의 신비를 규명하기 위해 어떤 조작과 실험도 서슴지 않았던 시기를 지나 이제 우리는 과학 연구의 어디까지가 허용돼야 하며, 또 얼마나 빠른 속도로 과학이 발전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다시 던져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이 책은 과학과 과학자들을 이야기의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 책을 과학서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곤란하다.

     

    과학의 발달에 따른 철학적 사유의 변천을 고찰하는 것을 비롯해 과학이 인간의 사상과 문화, 생활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동시에 짚고 있기 때문이다.

     

     

     

    4명의 저자는 과학사 또는 과학철학을 전공했다.

     

    저자들은 자연과학과 인문학의 영역을 넘나들며 과학이 지니는 인문학적, 사회적 함의를 살폈다.

     

    이른바 통섭()적 탐구의 결과물인 셈이다.

     

     

     

    저자들에 따르면 오래전 과학자들은 과학자이면서 철학자였고, 사회 경제에도 관심을 가졌다.

     

    과학적 연구에만 매진한 과학자들도 있었지만 그들의 연구 결과 역시 과학의 경계를 넘는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진화를 연구한 찰스 다윈의 자연선택론은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전환시킨 이론이었다.

     

    이 이론은 ‘의미와 목적이 없는 물질 영역’과 ‘의미, 목적이 있는 생명의 영역’을 통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더 나아가 다윈 스스로 “심리학은 새로운 토대 위에 세워질 것”이라고 예견한 대로 ‘진화 심리학’ ‘진화 철학’ ‘진화 경제학’ 같은 새로운 학문 분야가 탄생했다.

     

     

     

    1900년대 초 영국의 수학자 앨런 튜링은 ‘아무리 복잡한 일도 잘게 쪼개면 그 각각은 매우 간단한 일로 만들 수 있다’는 명제를 제시했다.

     

    튜링은 이런 믿음을 근거로 인간의 지능과 동등한 능력을 기계가 갖게 되는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라고 믿었다.

     

    그의 예견처럼 사칙연산을 기본으로 하는 컴퓨터는 오늘날 건물 설계, 수학 증명 같은 고도의 지적 작업까지 해내고 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분자생물학은 생명의 본질이 유전자에 존재한다고 봤고, 생명 그 자체는 유전자에 각인된 정보의 총합이라고 정의했다.

     

    이를 통해 분자생물학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의 방향을 바꿔 버렸고, 철학자들은 생명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 시작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오스트리아의 물리학자이자 과학철학자였던 에른스트 마흐는 “경험적으로 검증 불가능한 이론적 언술을 과학에서 수용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경험과 관찰을 강조한 마흐의 생각은 논리 실증주의 과학철학을 출범시킨 빈 모임의 구성원들은 물론 조지프 슘페터 같은 경제학자,

     

    막스 아들러 같은 사회과학자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저자들은 “과학과 사회 각 분야 사이에는 모세혈관과 같은 소통의 관()이 존재하는데 그 관에서 이뤄지는 소통의 흐름이 일방적이거나 막히면 사회가 병들고 문제가 생긴다”고 강조하고 대표적인 사례로 우생학을 들었다.

     

    과학이 사회의 요구에 무조건적으로 순응하거나 사회가 과학의 힘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결과 ‘인종 청소’라는 참혹한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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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3>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나는 우리의 마음이 신의 입김이나 정체불명의 단일한 근원으로부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는다. 마음은 아폴로 우주선처럼 수많은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되었고, 각기 다른 과제들을 극복하도록 고안된 여러 개의 첨단 체계들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은 정교한 컴퓨터 프로그램

     

     

     

    인간의 마음이 수많은 공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설계된 컴퓨터 프로그램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이 책의 핵심 주제다.

     

     

     

    저자는 유명 진화심리학자인 스티븐 핑커 하버드대 교수. 인간은 백지상태로 태어나고 그 백지에 무엇이 쓰일지는 양육(nurture)에 의해 결정된다는 주장에 반기를 들었던 인물이다.

     

    양육 대신 인간의 타고난 본성(nature)을 강조하는 그는 이 책에서 마음이 추상적인 심리 현상이 아니라고 말한다. 마음은 곧 뇌라는 말이다.

     

     

     

    저자는 뇌가 외부에서 들어온 정보를 처리하는 연산체계를 면밀히 분석한다.

     

    인간이 보고 걷고 계획하고 계획한 바를 실행해 옮길 때, 뇌는 복잡하고 정교한 작동 과정을 거친다.

     

    입력 장치를 통해 받아들인 자극을 정보로 전환하고 내장된 프로그램인 기억 장치, 중앙처리 장치를 거쳐 출력 장치로 결과물을 내보내는 첨단 체계가 마음이라는 것.

     

     

     

    이런 논리에 따르면 마음은 컴퓨터와 똑같다.

     

    하지만 하나의 중앙연산장치에 의해 통제되는 단일한 체계는 아니라고 핑커 교수는 말한다.

     

     

     

    그는 마음이 여러 개의 모듈(컴퓨터 프로그램을 기능별로 분할한 논리적인 일부분)로 구성돼 있으며 각각의 모듈은 뇌와 외부 세계의 상호작용을 전담하도록 특별히 설계됐다고 말한다.

     

    다양한 기능의 모듈이 독립적인 통제권을 갖고 상황에 따라 함께 작동하거나 따로 작동한다는 것이다.

     

     

     

    마음이 처음부터 이렇게 모든 상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는 첨단 기계였을까.

     

    핑커 교수는 현재 마음의 작동 체계는 오랜 세월 진화해온 결과라고 말한다.

     

    저자가 마음 진화의 기원을 추적하는 방법은 역설계다.

     

    기계가 특정한 일을 하도록 하는 일이 설계다.

     

    역설계는 그 반대다.

     

    이미 만들어진 기계의 작동 방식을 분석해 어떤 일을 하도록 설계됐는지 알아내는 과정이다.

     

     

     

    저자는 현재 마음의 주요 기능을 분석한 뒤, 마음이 작동하는 방식이 오래전 인류의 조상이 환경을 극복하고 생존하기 위해 부닥쳤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 곧 ‘자연 선택’ 과정에서 설계됐다고 말한다.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대처해야 하는 환경이 복잡해지면서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음 체계의 설계 수준도 고도화되어 왔다는 것이다.

     

     

     

    웃고 말하고 예술에 감탄하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할 때조차 인간의 마음은 복잡한 연산 과정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저자는 언어학, 컴퓨터학, 진화생물학, 뇌과학을 넘나들며 마음의 작동 원리를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이를 바탕으로 지각, 사고, 감성, 사회성 같은 마음의 주요 기능을 해부해 마음을 추상적인 심리학의 영역이 아니라 통합 학문의 연구 대상으로 끌어 올린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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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4>이기적 유전자



    《“40억 년 전 스스로 복제본 사본을 만드는 분자가 처음으로 원시 대양에 나타났다. 이 고대 복제자의 운명은 어떠했는가? 그 복제자는 절멸하지 않고 생존기술의 명수가 됐다. 그러나 그 복제자는 오래전에 자유로이 뽐내고 다니는 것을 포기했다. 이제 복제자들은 거대한 군체 속에서 떼 지어서 로봇 안에 안전하게 들어 있다. 그것들은 원격 조종으로 외계를 교묘하게 다룬다. 그것들은 유전자라는 이름을 갖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들의 생존 기계이다.”》
     
     

     

     

     

    1976년 이 책이 출판됐을 때 학계는 즉각적인 논쟁에 휩싸였다.

     

    마치 1859년에 다윈이 ‘종의 기원’을 출판했던 때와 흡사했다.

     

    저자는 다윈주의 진화론자이지만 진화의 기본 단위를 ‘개체’나 ‘종()’이 아닌 불멸의 존재인 ‘유전자’로 보는 주장을 펼친다.

     

     

     

    그에 따르면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일 뿐이다.

     

    모든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이며, 미리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살면서 자신의 유전자를 후대에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하는 로봇일 뿐이다.

     

    이탈리아의 갱단처럼 유전자가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이다.

     

    보편적 사랑, 종 전체의 번영 같은 것은 진화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생명체를 돕는 이타적 행동도 결국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기 위한 이기적 행동일 뿐이다.

     

     

     

    동물 행동을 관찰하면서 얻은 생생한 사례와 간결한 문체는 ‘과학의 문외한’인 대중을 이 책으로 끌어들였다.

     

    30년 동안 수많은 혹평과 찬사 속에 이 책은 25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다.

     

    생명복제기술과 유전공학이 발전하고 있는 요즘 이 책은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저자는 유전자의 세계는 비정한 경쟁, 끊임없는 이용, 그리고 속임수로 가득 차 있다고 말한다.

     

    유전자 이기주의는 동물생물학뿐 아니라 부모와 자식 간, 남녀 간의 미묘한 싸움, 가족계획과 개체 수 조절, 집단과 이타주의, 게임이론 등 사회적 경제적 주제로까지 연결된다.

     

     

     

    이 책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유전의 영역을 인간 문화로까지 확장한 ‘밈(Meme) 이론’이다.

     

    ‘밈’은 저자가 만든 새로운 용어로 ‘모방’이란 뜻이다.

     

    유전적 진화의 단위가 유전자라면 문화적 진화의 단위는 ‘밈’이다.

     

    유전자는 하나의 생명체에서 다른 생명체로 복제되지만, 밈은 모방으로 한 사람의 뇌에서 다른 사람의 뇌로 복제된다.

     

     

     

    그러나 유전자의 ‘이기적’ 행동이라는 의인화 접근 방식이나 유전자가 모든 생명현상에 우선한다는 ‘결정론적 생명관’은 여전히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자유 의지를 가진 인간의 뇌는 유전자의 독재에 반항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이다.

     

     

     

    호주의 한 독자는 “이 책은 무척 재밌었지만 나는 때때로 이 책을 읽지 않았으면 한다”며 “10년 이상 나를 괴롭혀 온 일련의 좌절감을 이기적 유전자의 탓으로 돌리게 됐으며, 이는 매우 강한 인격의 위기를 야기했다”고 편지를 보냈다.

     

     

     

    저자는 발간 30주년을 맞아 새로 쓴 서문에서 “‘어떠해야 한다는 주장’과 ‘어떠하다고 하는 진술’은 다르다. 어떤 진실이 우리가 진실이 아니기를 바란다고 해서 그 진실을 원상태로 돌릴 수는 없다”고 말한다.

     

     

    전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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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5>스피노자의 뇌



    《“마음이 몸 안에 존재하는 뇌 안에서 발생하며 마음과 몸은 상호 작용한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 마음은 몸의 다른 부분을 구성하는 살아있는 조직과 같은 특성을 공유하는 생물학적 조직―신경세포―에서 발생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사람들은 말한다.

     

    가슴에 손을 얹은 채. 마음의 소리. 머리가 아닌, 뇌와는 상관없는 마음이 움직인다고.

     

    심장 어디쯤에 뭔가가 존재한다고.

     

     

     

    그러나 그건 반쯤 맞는 말이다.

     

    심장은 마음을 관장하지 않는다. 마음은 뇌에서 비롯된다.

     

    하지만 뇌, 몸 그리고 마음은 나눠진 별개 기관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선 가슴이 아니라 엉덩이에 손에 올리고 얘기한들 아무 상관이 없다.

     

     

     

    지금은 공공연해졌지만 이는 최신 과학이 풀어낸 쾌거 중 하나다.

     

    진화론과 뇌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마음 메커니즘’의 실타래를 풀어 왔다.

     

    그런데 미국 서던캘리포니아대 뇌과학연구소장인 저자가 보기에 벌써 수백 년 전에 이를 깨친 사람이 있었다.

     

    네덜란드 철학자 바뤼흐 스피노자다.

     

     

     

    현대과학자에게 스피노자의 철학은 엄청난 보고다.

     

    표현은 다르지만 그는 몸과 뇌의 상호작용, 생명체와 외부환경의 조화 등을 꿰뚫어봤다.

     

    첨단 뇌 과학을 다루면서 17세기 철학자의 발자취를 찾아가는(원제가 ‘Looking for Spinoza’다) 형식을 취한 것도 이 때문이다.

     

     

     

    “스피노자의 ‘코나투스(conatus)’를 현대 생물학 용어로 어떻게 표현할까.

     

    코나투스는 생명체가 신체 내부나 외부 환경의 조건에 직면했을 때 생존과 안녕을 추구하도록 생물체 뇌 회로에 자리 잡은 경향의 총합이라 할 수 있다. …

     

    수많은 생명활동이 뇌에 신호로 전달되고 그곳에서 뇌 특정 부위에 존재하는, 신경세포의 회로로 만들어진 수많은 지도에 표현된다.

     

    바로 느낌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단계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스피노자가 저술한 ‘에티카(Ethica)’의 21세기 과학 버전이다.

     

    단순히 스피노자의 재해석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최신 실험의 결과물들을 소개하고 현재 뇌과학이 이룩한 성과를 보여준다.

     

    또한 여전히 탐구되어야 할 영역, 이를테면 신경 패턴이 심적 이미지로 이어지는 과정의 모호성 등도 함께 진단한다.

     

     

     

    저자에 따르면 뇌 활동의 일차적 목표는 뇌를 포함한 몸의 ‘안녕’이다.

     

    외부 환경을 접한 육체가 물리적 사회적으로 상호작용을 조절해 생명 활동을 유지한다.

     

    이런 기본 목표가 달성되면 이차적 목표, 즉 시를 짓거나 우주선을 설계하는 복잡한 활동을 벌인다.

     

     

     

    마음 메커니즘도 여기서 작용한다.

     

    인간과 같은 고등동물에게 뇌의 조절작용은 심적 이미지 또는 생각의 생성과 조작에 의존한다.

     

    시각이나 촉각 등이 감지하는 기본적인 외부 이미지부터 미래의 반응을 예측하고 계획하는 모든 이미지까지 ‘지도화’된다. 이것을 우리는 흔히 ‘마음’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이 책의 매력은 자연과학과 철학 간의 절묘한 줄타기에 있다.

     

    각각의 분야에선 난해했던 내용이 교류를 통해 진일보함은 물론 알기 쉽게 설명된다.

     

    특히 저자는 스피노자의 생애에 한 장이나 할애해 실체이원론을 극복한 철학사적 배경까지 들려준다.

     

    진짜 ‘통섭’이란 무엇인지, ‘스피노자의 뇌’가 제대로 보여준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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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6>몸의 정치와 예술…


    몸의 정치와 예술,그리고 생태학 / 정화열 지금·아카넷
     
     

     

     

    《“서구의 정태적이고 독백적인 ‘존재’ 사유 방식 또한 동적이고 상관적인 ‘상호적 존재’를 강조하는 동양적 사유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 우물 하나를 깊게 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우물을 파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몸의 정치’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이것은 저자가 1999년 출간한 ‘몸의 정치’를 통해 내놓은 개념. 근대 서양 철학이 ‘나’라는 존재의 본질을 의식에 둠으로써 몸은 철학 논의에서 소외됐다는 것, 그러나 ‘나’는 의식뿐 아니라 몸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저자는 역설했다.

     

     

     

    ‘몸의 정치’란 인간이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존재가 되기 위해 몸으로 맺는 인간관계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회 공동체는 필연적으로 인간 사이의 상호관계를 전제하며, 인간이 서로를 인지할 수 있는 것은 몸을 통해서라고 저자는 말한다.

     

    타인의 목소리를 듣는 것도, 타인의 글을 읽는 것도 내 몸을 통해서라는 사실을 상기하면 저자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몸의 정치’ 이후 6년 만에 나온 후속작이다.

     

    ‘몸의 정치와 예술, 그리고 생태학’이라는 제목 그대로, ‘몸의 정치’를 예술과 생태학까지 넓혀 적용한 저서다.

     

     

     

    재미철학자인 정화열 미국 모라비언대 교수는 미국 정치철학계의 거두로 꼽히는 석학이다.

     

    그는 현상학을 정치학에 접목해 ‘정치현상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를 개척하면서 세계적인 철학자로 이름을 알렸다.

     

     

     

    “미학적인 것은 철저히 행위 수행적인 몸의 담론이다.”

     

     

     

    정 교수는 예술과 ‘몸의 정치’의 관계를 이렇게 정의하고 동시에 예술과 문화의 긴밀한 관계에 대해 참신한 이론을 펼쳐 왔다.

     

    예술 혹은 미학적인 것은 문화적 공백에서 존재할 수도 없고 살아남을 수도 없다는 것, 예술은 그 시대의 문화적 풍토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가 더 깊은 관심을 갖는 것은 생태학이다.

     

    1971년 미시간대에서 개최된 아시아환경회의에 참석한 이후 저자는 생태학과 환경 문제를 연구해 왔다.

     

    그는 “환경은 인간의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몸의 상호관계’는 환경 문제와 뗄 수 없다”고 말한다.

     

     

     

    그의 생태 사상은 이 책의 3부 ‘대지 철학’에 대한 논의에서 잘 나타난다.

     

    대지 철학의 핵심은 저자가 만들어낸 ‘환경 존중(ecopiety)’이라는 개념에 명확하게 담겨 있다.

     

    이 환경 존중은 “인간 사이의 관계뿐 아니라 종 사이의 관계를 규정함에 있어서 ‘절대적 상호성’을 표현하는” 것이다.

     

    우주 안의 모든 존재와 사물은 상호 의존적이며 지구는 모든 요소를 포괄하는 근원적 어머니라고 저자는 밝힌다.

     

    따라서 그의 사상은 정치학, 문학, 인류학 등 존재와 사물을 갈라놓고 논해 왔던 기존의 학문 경계를 가로지른다.

     

    그의 사상을 ‘코스모폴리탄적 사유’로 부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을 추천한 연세대 강신주(철학) 강사는 “현대 철학의 성과, 과학적 성과, 그리고 동양적 선의 전통을 비판적으로 연결함으로써 저자는 생태학적 사유의 논리와 그 필요성을 설득력 있게 보여 준다”고 평가했다.

     

     

    김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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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7>부분과 전체



    《“콜럼버스의 발견과 마찬가지로 과학에 있어서도 실질적인 신세계는 어느 결정적인 자리에서 지금까지의 과학이 의존하고 있었던 그 토대를 박차버리고, 말하자면 허공에 뛰어들 각오가 되어 있을 때에만 얻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리학과 철학-종교-역사의 대화록

     

     

     

    물리학자인 이종필 KAIST 고등과학원 연구원은 이 책의 추천 사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대가의 숨결이 느껴지는 책. 양자역학의 태동으로 과학혁명의 격동에 휩싸였던 거장들의 생각의 흔적들을 뒤쫓을 수 있는 명저.

     

    과학과 철학을 넘나드는 천재들의 치열한 고민이 절절히 묻어나는 책.”

     

     

     

    1927년 물질을 파동()과 입자()의 두 측면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양자역학을 창시하고 이것을 불확정성의 원리로 정식화한 독일 물리학자 베르너 하이젠베르크(1901∼1976).

     

    이 같은 연구 업적에 힘입어 1932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하이젠베르크의 삶과 과학정신을 잘 보여주는 자전적인 글이다.

     

    19세 때 친구들과 함께 여행하면서 나눴던 대화로 시작해 50여 년 동안 독일 출신의 아인슈타인, 덴마크의 보어 등 위대한 과학자들과 나누었던 지적 편력, 과학자로서의 고뇌가 진지하게 펼쳐진다.

     

     

     

    이 책의 메시지는 다양하다. 물리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양자역학의 창시와 불확정성 원리의 정립 과정을 목도할 수 있다.

     

    과학과 세상의 관계에 대해 고민해 온 사람이라면 과학이 세상에 어떻게 기여하고 때로는 어떻게 거리를 두면서 과학의 순수성을 지켜내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다.

     

    물리학과 철학의 관계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이라면 하이젠베르크가 플라톤의 이데아 철학, 칸트의 인과율 철학을 공부하면서 물질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에 대해 어떻게 고민했는지 그 궤적을 따라가 볼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물리학과 철학, 물리학과 종교, 물리학과 역사의 대화록인 셈이다.

     

     

     

    이렇게 다양한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하이젠베르크 자신이 경계를 넘나들었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말하는 통섭이다. 통섭은 그의 삶과 과학에 있어 일관된 대원칙이었다.

     

     

     

    ‘부분과 전체’라는 제목도 여기서 나왔다.

     

    과학은 철학 없이 발전할 수 없고, 과학은 세상과의 소통 없이 발전할 수 없다.

     

    과학뿐만 아니라 어느 학문도 단순히 그 분야의 ‘부분적’인 성과에 의해서 홀로 발전할 수 없다.

     

    다른 모든 분야의 ‘전체적’인 지식의 토대 위에서만 발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양자역학과 불확정성의 원리 역시 하이젠베르크라는 한 천재에 의한 것이 아니라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임을 그는 스스로 역설하고 있다.

     

     

     

    이 같은 통섭은 과학과 인류, 과학과 정치와의 관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하이젠베르크는 늘 “과학은 과학을 둘러싸고 있는 인류와 한 시대의 정치 상황에 어떻게 기여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과학과 정치를 넘나들면서 부분과 전체를 함께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젊은 시절 하이젠베르크가 과학과 사회의 관계에 대해 고민한 일도, 핵무기 개발이 가져올 파괴력을 우려해 독일의 핵무기 개발을 늦추려 노력한 일도 이러한 통섭의 정신에서 나온 것이다.

     

     

     

    부분과 전체를 아우르고, 경계를 넘나들며 통섭의 길을 걸었던 하이젠베르크. 그의 과학은 그래서 인간적이고 감동적이다.

     

     

    이광표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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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8>철학자 가다머 현대…



    《“의사는 한편에서는 신뢰를 불러일으킬 수 있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직업적인 권위와 영향력을 제한해야 한다는 점에서 곤경에 처한다. 의사는 자신들이 다루는 ‘사례’를 뛰어넘어 바라볼 수 있어야 하고, 인간을 그가 놓인 상황에서 하나의 전체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한다. 의사는 또한 자신의 의학적 개입과 그것이 환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서도 생각해야 한다.”》
     
     

     

     

     

    한스게오르크 가다머(1900∼2002)는 20세기 독일의 대표적 철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이 책은 그가 의사들을 상대로 강연한 글을 묶은 것이다.

     

    건강이란 무엇인가라는 본질적 문제부터 현대과학과 의술, 의사의 권위와 한계 등 의학을 둘러싼 여러 문제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다.

     

     

     

    가다머는 “철학자가 건강의 본질과 관련한 폭넓은 문제 영역을 다루려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닐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의학이 철학자들의 주된 사유 대상이 아니라는 점에서 가다머가 제시하는 담론과 해석은 여러모로 흥미를 자아낸다.

     

    102세까지 산 철학자의 글이라는 점에서 건강과 삶, 죽음에 대한 그의 해석이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가다머는 우선 과학기술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낸다.

     

    오늘날 인간의 모든 삶의 영역에는 과학기술적 관점이 도입된다.

     

    과학기술을 통한 대상의 이해는 흔히 ‘객관적 진리’로 포장돼 나온다.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추상적이고 일면적일 수밖에 없다고 가다머는 지적한다.

     

    과학기술의 하나인 의학 또는 의술 역시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갖고 있다.

     

     

     

    현대 의학을 얘기하기 위해 가다머는 질병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

     

    질병이란 ‘평형을 유지하다가 불균형 상태로 떨어진 것’을 뜻한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가다머에 따르면 의사는 잃어버린 평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질병을 정복하는 게 아니라 환자의 회복 과정에 동참하는 것일 뿐이다.

     

    ‘질병을 정복한다’는 말은 과학기술의 발달이 인간을 자연의 힘으로부터 해방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 계몽주의자들의 독단 같은 것이라고 가다머는 지적한다.

     

     

     

    따라서 의사들은 의학적 한계를 넘어서 그 이상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가다머는 “의사는 자신의 의학적 개입이 환자의 질병에 대해서뿐 아니라 환자의 전체 삶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가다머는 의사들의 태도와 역할에 대해 반복해서 주문한다.

     

    그는 특히 오늘날 병원에서 환자가 이름 대신 번호로 구분되는 것처럼 의술의 대상으로 격하되는 것을 비판한다.

     

    환자가 과학기술(의술)의 일반적 지식을 적용할 수 있는 하나의 ‘사례’로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환자는 사례로서 다뤄질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해의 대상이다.

     

    따라서 의사는 과학기술자로서의 역할을 넘어서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해석학적 이해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가다머는 강조한다.

     

     

     

     

    건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그는 “건강은 질병을 통해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고 말한다.

     

    따라서 질병은 건강을 위해 극복하거나 제거돼야 할 대상이 아니라, 역설적이지만 건강한 삶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라고 가다머는 주장한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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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29>아시아 신세기 1∼8



    《“아시아적 세계관과 가치관의 좌표를 재검증하는 것은 우리에게 대단히 긴급한 과제라는 생각이 듭니다. ‘21세기에 아시아라는 인식은 어떤 형태로 가능할까? 아시아의 각 지역은 어떤 원리와 가치에 바탕을 둔 사회를 구상하고 있으며, 그것은 세계 전체가 나아가는 방향과 어떻게 연관되는 것일까?’… 이러한 물음에 대한 근원적 논의를 심화하면서… 새로운 문제 제기를 해 나갔으면 합니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아시아의 일부다.

     

    그러나 우리의 현대 문화, 가치관, 생활양식은 같은 아시아인 중동, 동남아시아 국가들보다는 미국에 더 가깝다.

     

     

     

    사실 아시아의 정체성은 아시아 외부, 곧 서양으로부터 규정됐다.

     

    선진적인 서양에 대비되는 후진적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일본 지식인 가운데는 일본이 아시아에서 벗어나 서양에 근접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런 모순들은 아시아를 하나의 정체성으로 규정하는 데서 기인한다.

     

    금융, 산업, 문화 측면에서 나타나는 역동성은 21세기 아시아를 한 가지 성격으로 묶을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시아의 다양한 민족 집단, 정치 경제체제를 하나의 공동체로 볼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아시아 신세기’ 시리즈 8권은 아시아의 이런 다채로운 모습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한 이와나미()서점의 기획이다.

     

    일본 학자 8명이 쓴 아시아 관련 논고 121편을 모았다.

     

    이를 ‘공간’ ‘역사’ ‘정체성’ ‘행복’ ‘시장’ ‘미디어’ ‘파워’ ‘구상’이라는 8가지 주제로 나눴다.

     

     

     

    1권 ‘공간’은 인도-파키스탄 분쟁이나 아프가니스탄전쟁 등 파괴와 살상이 일상화된 지역과 첨단 도시로 떠오르는 중국 베이징 등 이질적인 지역들이 아시아에 공존하고 있는 현상을 분석했다.

     

    이 지역들을 아시아라는 끈으로 이어주는 요소는 무엇인지 고찰했다.

     

     

     

    2권 ‘역사’는 침략과 식민지시대를 거쳐 갈등, 반목으로 얼룩진 아시아의 근현대사에 대한 이야기다.

     

    3권 ‘정체성’은 재일 조선인, 미국인 병사와 오키나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인 아메라지언, 디아스포라인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디아스포라 팔레스타인 사람들 등 국경을 넘은 아시아인들에게 관심을 갖는다.

     

     

     

    4권 ‘행복’은 대중문화로까지 성찰의 범위를 넓힌다.

     

    아시아인에게 아이돌 스타는 어떤 의미인지, 스포츠에 대한 열광은 어떻게 생겨났는지 등을 분석했다.

     

     

     

    이처럼 이 시리즈는 다양한 학문을 넘나든다.

     

    정치학, 사회학, 인류학뿐 아니라 대중문화 연구까지 폭넓은 영역의 전문가들이 집필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직된 학문 틀로는 아시아의 복잡한 면모를 파악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에게 아시아는 ‘대상’으로만 여겨진다.

     

    경제 진출의 대상, 한류의 대상….

     

    우리 문화나 산업이 아시아의 다른 국가에 진출하는 것에는 관심이 높아도 다른 아시아 국가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에는 인색하다.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와 외국인 신부가 도시, 농촌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이들의 문화에 여전히 배타적이다.

     

     

     

    이 책은 이른바 아시아의 선진국들이 패권적인 의식에서 벗어나 아시아의 공존자가 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곱씹게 해준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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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30>이보디보 생명의…


    《“형태를 이해하려면 발생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단세포인 수정란이 자라서 수십억 개의 세포로 이뤄진 복잡한 동물이 되는 과정이 발생이다. 200년에 가까운 생물학의 역사에서 가장 풀기 힘든 미스터리로 여겨온 굉장한 현상이다. 생명체 형태의 변화는 배아의 변화를 통해 이뤄지기 때문에 발생은 진화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
     
     

     

     

    모든 동물의 유전자는 거의 닮았다

     

     

     

    ‘이보디보(Evo Devo).’

     

     

     

    진화발생생물학(Evolutionary Developmental Biology)을 뜻하는 이 신조어는 최근 생물학 계에서 가히 혁명적 의미로 쓰인다.

     

    사실 생물학은 작게는 수십 개의 세부 학문 분야로 나뉘어 있는 상태다.

     

    그동안 유전학이나 생리학 등을 다루는 기능생물학 분야, 생태학과 계통분류학 등이 포함된 진화생물학 분야, 최근에 각광받는 생물정보학 분야 등이 거의 서로 이방인 대하듯 담을 쌓아 왔다.

     

     

     

    하지만 진화생물학과 발생생물학의 통섭을 뜻하는 이보디보가 출현하면서 생명과 관련된 학문 분야는 하나로 묶이기 시작했다.

     

    실제로 많은 해외 대학에서 이보디보의 개념을 받아들여 ‘통합생물학과’가 들어서고 있다.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의 유전학과 교수인 저자는 이러한 이보디보를 대중에게 소개하는 대표적 생물학자 가운데 한 명이다.

     

     

     

    저자에 따르면 이보디보는 ‘하늘에서 뚝 떨어진’ 생소한 학문이 아니다.

     

    이미 찰스 다윈 시대부터 생물학자들은 진화와 발생의 관계를 눈치 채고 있었다.

     

    분명 진화학에서 살피는, 세포 덩어리 수준의 생명체가 오랜 세월을 거쳐 고등생물로 진화하는 현상은 놀라운 일이다.

     

    그렇다면 발생학에서 다루는 하나의 세포에 불과한 수정란이 복잡한 성체로 ‘발생’하는 건 단순한 일일까.

     

    진화론자 다윈조차 “형태의 변화를 지지하는 가장 강력한 사실들이 담긴 학문”으로 발생학을 꼽았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1980년대 들어서며 진화 과정 연구에서 발생학 관점의 유용성은 더욱 두드러졌다.

     

    발생과정에 관여하는 유전자들이 지속적으로 발견됐다.

     

    그리고 그 유전자들이 진화에서 맡는 역할들도 드러나기 시작했다.

     

     

     

    이보디보를 통해 밝혀진 또 하나의 놀라운 사실은 모든 동물의 유전자가 매우 닮았다는 점이다.

     

    한 가지 예로 눈을 담당하는 유전자는 파리나 생쥐나 엇비슷하다.

     

    심지어 인간의 눈 발생 유전자를 파리에 삽입해도 정상적인 파리 눈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눈뿐이 아니다. 팔다리나 심장, 신체 배열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진화가 유전자 자체의 변화가 아니라 유전자 사용 방식의 변화로 일어난다는 것을 뜻한다.

     

    저자는 이를 ‘유전자 스위치’라고 부른다.

     

     

     

    이 같은 발견은 단백질을 만드는 ‘구조 유전자’에 대한 생물학계의 기존 관심을 완전히 뒤바꿔 놓았다.

     

    즉 단백질 자체가 아니라 유전자 스위치를 맡아 진화 기능을 담당하는 ‘조절 유전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보디보는 여전히 진행형 학문이다.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진 상태도 아니다.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엄청난 잠재력을 지녔다는 뜻이기도 하다.

     

    실제로 하나의 분야에선 풀리지 않았던 난관들이 이보디보라는 통합 학문을 통해 극복되고 있다.

     

    그만큼 통섭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가 돼 가는 셈이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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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독자 내면의 지적욕구 채우다

     


    ‘책 읽는 대한민국’ 서점에서 만나세요 2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를 찾은 사람들이 ‘동아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특별판매대에서 책을 고르고 있다. 본보의 ‘2008 책 읽는 대한민국’ 두 번째 시리즈인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는 인문과학과 자연과학을 융합한 책 30권을 소개했다. 김재명 기자
    ■ ‘인문과…’ 시리즈를 마치며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두 번째 시리즈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이 18일 막을 내렸다.

     

     

     

    지난달 3일 1회 ‘과학의 최전선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존 브록만 등)로 시작한 이번 시리즈는 학문의 일반적인 범주와 벽을 벗어난 사유로 진리에 접근해 보자는 취지를 담은 책들을 골랐다.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이 제시한 의미를 시리즈로 묶은 셈이다.

     

     

    선정에는 6명의 학자가 참여했다.

     

    천문학자인 이명현 연세대 천문대 책임연구원, 물리학자인 이종필 고등과학원(KIAS) 연구원, 과학사학자인 장대익 동덕여대 교수, 서양철학자인 서동욱 서강대 교수, 동양철학자인 강신주 연세대 강사, 프래그머티즘을 전공한 이유선 군산대 교수. 모두 30, 40대 학자로 인문과 자연과학자가 세 명씩이었다.

     

     

     

    김인호 바다출판사 대표,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편집장 등 많은 출판인의 조언도 더했다.

     

    선정위원들은 한달이 넘는 선정 기간에 온·오프라인에서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쳤고 추천 책에 대한 평가를 서로 검토했다.

     

     

     

    이종필 연구원은 “선정위원들 역시 시행착오를 겪으며 해답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면서 “그 실천의 과정에서 함께 가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컸다”고 말했다.

     

    강신주 강사는 “이처럼 다양한 분야의 학자가 모이는 기회는 흔치 않다”면서 “책 소개로 그치기엔 아쉬움이 커 좀 더 진일보한 작업을 함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여섯 학자는 책 선정 이후에도 지속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실제로 한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경계에 도전하는 사람들’이란 이름으로 온라인 카페도 만들었다.

     

    장대익 교수는 “조만간 작게는 하나의 세부 영역에 국한되지 않고, 크게는 자연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학문의 융합’을 보여주는 성과물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정된 책들이 일반 독자에게는 다소 어렵다는 평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뜨거웠다.

     

    그 반응은 교보문고 서울 광화문 본점에 설치된 ‘동아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특별판매대에서 드러났다.

     

    박영준 광화문 본점장은 “예상과 달리 신문을 보고 책을 찾는 독자가 많았다”며 “동아일보와 함께 진행한 시리즈 가운데 가장 판매 성과가 좋다”고 말했다.

     

     

     

    문학수첩의 박광덕 주간은 “독자들이 읽기 편한 쉬운 책만 찾는다는 생각이 출판계에 있긴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다”면서 “이번 시리즈는 그동안 독자들에게 내재돼 있던 지적 욕구를 채워주는 계기가 된 것 같다”고 평했다.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은 첫 시리즈 ‘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에 이어 28일 새로운 시리즈로 독자들을 찾아갑니다.

     

    올해 세 번째 시리즈는 정신과 전문의들이 추천하는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입니다.

     

     

    정양환 기자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저자
    과학의 최전선에서인문학을 만나다 존 브록만 등
    화성의 인류학자 올리버 색스
    신화학1 레비 스트로스
    최종이론의 꿈 스티븐 와인버그
    조건들 알랭 바디우
    헤르메스 미셸 세르
    49호 품목의 경매 토마스 핀천
    통섭 에드워드 윌슨
    고대문명교류사 정수일
    인체사냥 소니아 샤
    칼 세이건-코스모스를향한 열정 윌리엄 파운드스톤
    내 안의 유인원 프란스 드 발
    부분과 전체 베르너 하이젠베르크
    트랜스 크리틱 가라타니 고진
    몸의 철학 G 레이코프
    특이점이 온다 레이 커즈와일
    풀 하우스 스티븐 제이 굴드
    진리와 방법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우연성, 아이러니,연대성 리처드 로티
    과학혁명의 구조 토머스 S 쿤
    인간을 묻는다 제이콥 브로노프스키
    철학자 가다머 현대의학을 말하다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마음은 어떻게 작용하는가 스피븐 핑커
    스피노자의 뇌 안토니오 디마지오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스
    몸의 정치와 예술그리고 생태학 정화열
    차이와 반복 질 들뢰즈
    과학으로 생각한다 이상욱 홍성욱 등
    아시아 신세기 아오키 다모쓰 등
    이보디보-생명의블랙박스를 열다 션 B 캐럴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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