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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화제> 일본판 `서동(薯童)설화`<인물산하기관> 2006. 4. 27. 17:08
<화제> 일본판 `서동(薯童)설화' [연합뉴스 2004-08-25 15:51] 포토
한복입은 디자이너
조르지오 아르마니벌써 잊었나?
짜릿한 노출의 기억'받지 않을 자유',
삐삐라면 가능해!바자 3월호
일본 오이타현(縣) 오오노군(郡) 미에정(町)의 `마나노(眞名野) 장자(長者) 전 설 연구회' 회원 13명은 24-25일 서동설화가 삼국유사를 통해 전해 내려오는 전북 익산시를 방문했다.
`리츠메이칸(立命館) 아시아 태평양대학' 김찬회 교수의 인솔로 방한한 이들 회 원은 서동설화의 배경이 된 마룡지를 비롯해 용샘, 미륵사지, 왕궁리유적, 제적사지, 쌍릉, 입점리 고분 등을 답사했다.
이들은 특히 익산시내 역사 교사들이 주축이 된 `익산교원향토문화연구회'와 공 동으로 양국 설화에 대한 연구를 하고 지속적인 학술 교류를 갖기로 했다.
일본에 전해오는 `미나노 장자 전설'은 다음과 같다.
6세기경 미에 마을에 가난한 스미야키코고로가 살고 있었다. 어릴때 숫만 구워 생활했기 때문에 스미야키(숯이라는 뜻)코고로라 불렸다.
당시 서울에는 다마쓰라는 매우 아름다운 공주가 살고 있었는데 공주는 가난한 스미야키코고로를 찾아가 같이 살게 됐다. 다마쓰 공주는 모후가 준 금을 보여주자 스미야키코고로는 `어릴 때 숯 굽던 곳에 이같은 금이 얼마든지 있다'며 둘이 금을 캐어 하루 아침에 큰 부자가 되었다. 그후 스미야키코고로는 마나노 장자로 불려지 게 됐다.
마나노 장자는 불심이 매우 깊어 당나라 천태산으로 황금 삼천냥을 보냈다. 이 에 당나라는 백제국에 사는 연성법사에게 명하여 미에 마을에 불상을 보냈으며 마나 노 장자는 그 불상을 맞아 큰 절을 세웠다. 그 절이 미에 마을에 지금까지 전해져오 는 `연성사'다.
이 마나노 장자 설화는 서동설화와 탄생, 만남, 결혼, 황금발견, 절 건립 등 전 체적인 줄거리와 캐릭터가 매우 유사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같은 내용은 김찬회 교수에 의해 일본측에 알려지게 됐으며 지난 2002년 일본 오이타현 지방신문에 화제기사로 보도되기도 했다.
김 교수는 "양 국가의 설화를 좀 더 심도 있게 연구하면 고대 양국 교류사의 귀 중한 자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사진있음)
sungok@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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