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스크랩] `익산 `왕궁리 사리장엄구`는 백제 작품`
    <인물산하기관> 2006. 4. 27. 17:07
    '익산 '왕궁리 사리장엄구'는 백제 작품'
    [부산일보 2004-11-05 12:12]

    국보 제123호인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1965년 석탑 해체 복원과정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1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 이는 금동여래입상이 나와 제작시기를 나말여초 또는 고려시대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다 1990년대 들어 불국사 석가탑 사리장엄구 등과 유사성을 들어 8세기 중엽 통일신라시대 작품이 란 설이 대두됐다.

    이런 논란 속에서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를 7세기 전반 백제 무왕시기에 제작된 백제의 유일한 사리장엄구라는 주장이 제기됐 다.

    통도사 성보박물관과 불교미술학회가 공동주최해 5~6일 열리는 제 4회 추계학술대회. 한정호 통도사 성보박물관 수석학예사는 석탑 제작이전에 백제계의 목탑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정과 함께 사리장 엄구의 문양이 당시 백제에서만 유행하던 형태였다는 점을 들어 고려 또는 통일신라시대 제작품이란 주장을 뒤집었다.

    그가 주목한 것은 금제사리내합의 문양. 구름문양과 연꽃문양이 결합된 연화서운문(蓮花瑞雲紋)이다.

    연화서운문은 부여 능산리 고분출토 금동산형투각장식과 나주 복암리 출토 대도 손잡이 장식 등 10여점과 유사성을 띠는데 이들 유물이 출토된 유적이 모두 6 세기 중반~7세기 전반의 백제 사비시대라는 공통점이 있다.

    또 다 른 문양인 어자문(魚子紋)의 경우도 입자가 촘촘하고 중복시켜 표 현한 신라의 금속공예품과 달리 백제불상에서 종종 나타나는 것처 럼 겹칩이 없고 비교적 성기게 시문돼 있다.

    이와 함께 왕궁리 오층석탑에 앞서 목탑이 존재했을 가능성도 제 기한다.

    최근 왕궁리 발굴조사를 통해 석탑의 아랫부분에 석탑에 선행했던 목탑의 판축구조가 확인됐다는 점,석탑 기단 안에 있는 품자(品字)형 사리공이 백제 목탑의 심초석이었을 것이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이런 논리에 따라 그는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가 백제 유일 의 사리장엄구이며 완전한 형태로는 가장 오래된 사리장엄구라는 의미를 새롭게 부여했다.

    이상헌기자 ttong


    기사제공 :
    출처 : 나라사랑
    글쓴이 : 나라사랑 원글보기
    메모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