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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시 구도심 갈수록 인구유출 가속화인구청년임신출산은퇴지역소멸 2013. 4. 16. 06:37
익산시 구도심 갈수록 인구유출 가속화
-중앙시장. 매일. 창인시장 현대화 등 많은 투자에도 불구
-지속적인 인구감소 막을 길 없나?
-구도심 전체인구는 1990년 11만6017명에서 2013년 3월말, 7만7825명으로 33% 순감소
-그나마 송학동 현상유지와 남부개발 영향을 받은 동산동의 1995년께 인구급증으로 반토막 신세면해
전주와 군산 등 다른 대도시처럼 익산지역도 구도심이 갈수록 쇠퇴하며 인구가 급감하고 곳곳에 점포가 비어 임대를 알리는 플래카드만 여기저기 나부끼고 있다.
이는 익산시가 구도심 활성화를 위해 재래시장 현대화와 문화시설 유치 등 다양한 지원책에도 개선될 조짐이 없어 구도심은 낮에만 일시적으로 사람이 보이나 초저녁부터 인적조차 뜸해지고 집값도 신도심권보다 현저하게 낮은 등 슬럼화 현상까지 보이고 있다.
익산 구도심은 시청이 위치한 남중동과 중앙동, 평화. 동산. 인화. 송학동과 마동을 말한다.
익산인구는 시군통합 전인 1990년 이리시와 익산군 인구를 합쳐 30만9404명을 기록했다.
그 후 시군통합이 있던 1995년 32만9212명, 2천년 33만6651명, 2005년 32만0780명, 2010년 31만773명, 2013년 3월말 현재 30만6743명으로 18년전에 비해 6.8%인 2만2469명이 줄었다.
그러나 90년(연말 기준), 95년, 2천년, 2005년, 2010년, 2013년 3월말 남중동 인구는 (3만2233명⟶ 2만4721명, 2만247명, 1만6760명, 1만4971명⟶ 1만4255명)으로 갈수록 줄고 있다.
23년전인 1990년말 보다는 절반이 넘는 1만7978명이 줄어들었다. 시청과 국토청, 세무서와 산림조합 등 국가와 지자체의 각종 기관이 밀집했는데도 말이다.
또한 중앙동(1만4435명⟶ 9500명, 7051명, 5839명, 5012명⟶ 4552명)은 아예 2/3 이상인 9883명이 감소했다. 마동(1만8088명⟶ 1만7178명, 1만4419명, 1만3142명, 1만2630명⟶ 1만1780명), 평화동(7578명⟶ 6308명, 5099명, 6589명, 6006명⟶ 5594명), 인화동(1만6138명⟶ 1만3457명, 1만896명, 9280명, 8386명 ⟶7827명)으로 대부분 비슷하다.
다만, 송학동(9127명⟶ 8573명, 7134명, 7079명, 9041명⟶ 8499명)은 최근 서부신시가지 개발로 인해 2010년을 전후해 인구가 2천명 가량 늘어난 후 답보상태다.
동산동(1만8418명⟶ 2만5632명, 2만7371명, 2만6734명, 2만6177명⟶ 2만5318명)만 90~95년 사이 대폭 늘어난 후 정체상태인데 당시 남부지역 개발로 아파트가 집중 들어섰기 때문이다.
익산시는 1991년부터 익산시 공영개발사업소에서 지방재정확충과 개발수익을 지역개발에 재투자하는 차원의 택지개발을 추진해 왔다.
익산시 택지개발 역사는 평화. 인화. 동산동을 포함한 ‘남부지역’ 14만6천여평은 1992년 완료돼 당시에는 모텔촌을 중심으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95년께 동산동 인구급증의 원인이다.
이후 부송1차 9만평, 부송2차 8만평, 영등2차 29만평, 영등3차 9만평, 신동지구 9만평 등에 택지개발을 추진해 익산도심이 ‘동북부’로 발전하는 기폭제가 됐다.
구도심 인구는 급감했다.
익산인구는 큰 변함이 없는데 신시가지 개발로 좋은 주거 및 교육환경을 추구하는 사회적 이동만 극심해졌다.
“바람은 일정한데 한 쪽을 누르면 다른 쪽으로 튀어나오는 ‘풍선효과’로 구도심은 인구가 썰물처럼 빠져 나갔다.
근년에 토공이 개발한 모현동과 장신리 76만6234㎡ ‘배산지구’, 전북개발공사가 송학동 3만2340㎡를 국민임대주택단지로 개발한 ‘송학지구’, 주공이 오산면 장신리 12만833㎡에 공동주택을 세운 ‘오산지구’ 등 27만여평의 서부지역 개발이 완료됐다.
서부지역에는 대단위 아파트와 단독주택 6500여 세대가 속속 들어서 인구 2만명이 거주하게 돼 ‘서부 대이동’이 한참 진행된다.
상대적으로 구도심인 남부지역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북부. 중앙. 남부시장 등을 현대화 하거나 구도심에 문화시설을 유치해도 대낮에도 허전할 뿐 아니라 뒷골목에서는 슬럼화까지 진행돼 인적조차 드물다.
초저녁만 돼도 남은 인적조차 썰물처럼 빠져 나간다.
한 때 최첨단 패션매장와 명품 브랜드를 찾는 인파로 가득했던 중앙동 일대는 곳곳에 임대를 알리는 플래카드만 어지럽다.
과거 중앙동 발전의 상징이었던 SK빌딩(구 보배빌딩)은 임대가 다 되지 않았는지 임대를 알리는 대형 플래카드가 건물 외벽을 장식한다.
남중동의 43년이 다 된 익산시 청사는 장마철에 빗물이 새는 등 반백년을 앞두어 우려의 시각도 있으나 신청사 건립은 논의조차 안 된다.
구도심 낙후와 슬럼화의 상징처럼 됐다. <남중. 중앙. 평화. 인화. 송학. 동산. 마동> 구도심 전체인구는 1990년 11만6017명에서 2013년 3월말, 7만7825명으로 감소했다. 33%인 3만8192명이 감소했다.
대부분 반토막이 났으나 송학동의 현상유지와 95년께 동산동의 인구급증으로 그나마 반토막은 면했다.
이처럼 구도심의 인구감소와 슬럼화는 시장현대화와 연이은 투자에도 달라질 조짐은 없다.
좋은 주거 및 교육문화 환경을 쫓는 것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구도심 활성화는 다람쥐 채 바퀴 돌리듯 요원한 숙제일까, 해결책은 없는 것일까?/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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