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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죽은 혼령과 사랑을 나눈 양생이 묵던 만복사지무진장임남순 2006. 4. 9. 15:38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무대 만복사
만복사지는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 있는 사적 제349호이다. 사지란 과거에 절이 있던 절터를 말한다. 만복사지는 고려 문종 때(1046~1083) 처음 세운 절로 경내에는 동으로 만든 거대한 불상과 오층 목탑이 있었다고 전한다. 최근 발굴이 되어 사지로 지정이 된 만복사는 가운에 오층 목탑을 세우고 동, 서, 북쪽에 법당을 둔 일탑삼금당식 배치였다.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나오는 만복사저포기(萬福寺樗蒲記)의 무대로도 얼려진 이 만복사는 1597년 정유재란 때 소실이 되었다. 현재는 국가지정 시적 제349호이며 경내에는 오층석탑(보물 제30호), 불상좌대(보물 제31호), 당간지주(보물 제32호)와 석불입상(보물 제43호)이 있다.
국가지정 사적 제349호 만복사지 전경
만복사저포기는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실려 있는 5편의 소설 가운데 첫 번째 등장한다. 그 내용을 보면 남원에 양생(梁生)이라는 노총각이 살았는데,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라는 절에서 방 1칸을 얻어 외롭게 살고 있었다고 한다. 「젊은 남녀가 절에 와서 소원을 비는 날 그는 모두가 돌아간 뒤 법당에 들어갔다. 저포를 던져 자신이 지면 부처님을 위해 법연(法筵)을 열고, 부처님이 지면 자신에게 좋은 배필을 달라고 소원을 빈 다음 공정하게 저포놀이를 했는데 양생이 이기게 되었다. 양생이 탁자 밑에 숨어 기다리고 있자 15~16세 정도 되는 아름다운 처녀가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며 배필을 얻게 해달라는 내용의 축원문을 읽은 다음 울기 시작했다. 이를 들은 양생은 탁자 밑에서 나가 처녀와 가연을 맺은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얼마 뒤 양생은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나 자신이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과 인연을 맺었음을 알게 되었다. 양생은 처녀의 부모가 차려놓은 음식을 혼령과 함께 먹고 난 뒤 홀로 돌아왔다. 어느 날 밤 처녀의 혼령이 나타나 자신은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양생도 불도를 닦아 윤회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처녀를 그리워하며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았다고 한다.」(다음백과사전)
이 금오신화를 지은 김시습은 저포놀이를 좋아했으며 젊은 나이에는 산을 돌아다니며 고생을 했다는 것으로 보아 아마 이 만복사저포기는 바로 자신의 소망을 글로 옮긴 것으로 보인다.
남원 광한루원을 돌아보고 들른 만복사지는 남원 시내인 장터를 벗어난 곳에 있다. 시가 한편에 있는 만복사지 근처에는 큰 건물은 없고 옹기종기 작은집들이 모여 마을 이루고 있다. 이미 해는 넘어갈 준비를 하는 것인지 산머리에 걸려 있다. 마음은 바쁘고 돌아볼 것은 많으니 걸음만 빨라진다. 만복사지를 바라다보니 길가에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당간지주다. 얼핏 보아도 상당히 큰 당간지주가 나그네의 발길을 붙든다. 고려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당간지주는 높이 5m 정도에 아무런 장식이 없이 투박한 모습이다. 많은 당간지주를 보았지만 만복사지 당간지주는 그 규모가 큰 것으로 보아 당시 만복사의 웅장했던 옛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보물 제32호 당간지주
여기저기 솟아 있는 법당 터는 어림잡아 10여개가 되어 보인다. 그리 넓지 않은 사지 안에 오밀조밀 꾸며져 있던 절이었음을 알 수 있는데 안쪽으로 조금 가니 보물 제31호인 석좌가 있다. 만복사를 처음 지을 때 함께 모셨던 이 석좌는 불상을 올려놓던 것이다. 연꽃무늬를 조각한 육각형의 석좌를 보아고 만복사가 얼마나 아름다운 절집이었는가가 상상이 간다. 그렇기에 김시습의 금오신화에 이 만복사가 배경이 되고 이 안에서 사랑을 할 마음이 생겨났던 것은 아닐까?
보물 제31호 만복사지 석좌
보물 제30호 오층석탑은 고려 초기의 작품이다. 오랜 세월을 비바람에 씻겨 마모가 된 부분이 있고 몸체에 얹었던 지붕은 떨어져 나갔다. 현재는 4층만 남아있는 꼴이다. 이 탑은 고려 문종 때인 11세기에 세워진 것으로, 1968년 이 탑을 보수하다가 탑신의 1층 몸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석탑을 둘러보고 있는데 곁에 있는 전각 안을 한 사람이 계속 사진을 찍어댄다. 사진을 찍는 모습으로 보아 작가인 듯하다. 궁금증이 나서 있을 수가 없다. 뛰다시피 달려가 안을 들여다보니 넘어가는 석양에 온화한 미소를 띠우고 있는 부처님이 살아계신 듯하다. 보물 제43호인 석불입상으로 바위에 부처의 서 있는 모습을 조각한 고려 초기의 작품인데 어찌 저리도 온화한 미소를 지을 수 있단 말인가? 더욱 석불입상의 뒷면에도 부처님의 서 있는 모습을 조각해 놓았는데 그 선 하나하나가 갈아 움직일 것만 같다.
보물 제30호 만복사지 오층석탑
보물 제43호 만복사지 석불입상
만복사지를 들러보고 돌아 나오는 길에 석양에 길게 그림자를 끌며 서있는 당간지주며 오층석탑을 바라본다. 아마 이 절집이 불에 타지만 않았다면 또 다시 김시습과 같은 사람들이 이 만복사지를 배경 삼아 아름다운 사랑을 그린 글을 남겼을 것 같다. 눈을 감고 법당이 서 잇던 자리마다 그림을 그려 누각을 올려본다. 광한루원을 보고 난 뒤라서 인가 그와 같이 고색창연한 법당들이 즐비한 만복사지가 그려진다. 그래서 김시습도 이 절에서 자신이 그리던 사랑을 적은 것인가 보다. 돌아서는 발길을 자꾸만 붙들고 있는 만복사지. 아름답게 꽃이 피는 절기에 다시 한 번 찾아와 더울 아름다운 모습을 담아보고 싶다.
석불입상 후면 조각
출처 : 전통을 찾아서~글쓴이 : 다시래기 원글보기메모 :'무진장임남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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