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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태현(70) 이리국악원장
    대담기획인터뷰인물 2005. 8. 29. 21:05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잡지.

     

    진양조 중머리 중중머리

     

    엇머리 자진머리 휘몰아 보아(중략)

     

     


    떠받는 명고(名鼓)인데 잔가락을 온통 잊으오.

     

    떡 궁! 동중정(動中靜)이요.

     

    소란 속에 고요 있어 인생이 가을같이 익어가오.

     

    자네 소리하게 내 북을 치지...』

     

     

     



     시인 김영랑의 '북'이란 시처럼 평생을 고수(鼓手)로써 익산 국악발전에 인생을 바친 어른이 있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원장님은 가정보다 국악원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을 정도로 일생을 헌신해온 익산국악의 산 증인입니다."
    동초제 판소리 전수와 후진양성을 위해 이리국악원에서 공휴일까지 쉴날이 없는 임화영(49) 명창이 문태현(70) 원장을 지켜본 소감이다.

     


    문원장이 국악과 인연을 맺은 것은 4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군산 임피가 고향인 문원장은 1935년 비교적 유복한 대농에서 3남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대후 26세에 판소리, 북, 장고 등에 능한 30여명이 조직한 율계(律契)에 가담해 소리북을 배운 것이 고수로써 이름을 날리고, 국악에 몰입한 계기가 됐다.

     

    부모님과 본가에 거주한 문원장은 "공부보다 북에 미쳐 걱정도 많이 끼쳐드렸다"고 회고한다. 그러나 소리북 특유의 장단이 무조건 좋은 북공부는 막을 길이 없었다.

     

    '북의 선구자'인 김제 출신 신태술 선생에 사사하고, 홍경택선생, '소리북 대가'인 백남희·송영구씨에게 공부를 계속한다. "무던히 북을 친다"고 할 때는 50세때 일이다. 날리는 고수로 입소문이 났고, 선생은 91년과 92년 전국고수대회 우수상과 최우수상, 93년에는 내노라하는 명고수 80여명이 경쟁하는 명고부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했다.

     

    수상식장에서 "직업적 고수의 수상이 늦어질까 염려되므로 북을 순수하게 좋아한 나는 대통령상 도전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익산과 인연은 문원장이 40대말 무렵이다.

     

    명창과 명무(名舞)였던 장록운여사의 사설국악원과 연관되면서부터다. 90년대 초반 현재 익산시 갈산동 이리국악원 총무를 맡았고 94년 이리국악원장에 취임해 4대 연속 원장이 됐다.

     

    맡을 사람도 없고 문원장처럼 정열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도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리국악원은 판소리·가야금·아쟁·해금·고법·거문고를 가르치는 익산국악의 산실로 정착했다.

     

    97년 고수분과위 교수를 겸임해 북을 가르치며 후진양성도 주력했다. 동편제 우람함과 서편제 아련함이 융합된 동초(東超) 김연수 선생(1907∼74)의 동초제 판소리를 임화영 명창이 가르치고, 임명창 남동생이자 도립국악원 고법교수인 임청현(41)씨가 아쟁을 가르친다.

     

    일제때 세워진 국악원이 비가 새 시보조를 받아 수리해 분야별 연습실도 만들었다. 시기하는 사람의 모함과 무고로 검경의 조사도 받았으나 무혐의로 판명됐다.

     

    시보조금을 받으며 원생을 가르친다고 이따끔 제보해 언론인이 취재도 했으나 기초생활비도 안되는 월 50만원에 불과해 이내 물러나는 일이 반복됐다.

     

    경상비가 적어 직원도 채용치 못한다며 당국의 관심이 절실하다는 문원장은 복지시설 위문을 계속하고 전국판소리경연대회를 올해로 5회째 개최예정이다.

     

    9월7일 정정렬 명창 추모비제막식과 공연을 성황리에 끝냈는데 익산소리의 뿌리를 찾고 자긍심 고취에 큰 역할이 기대된다고.

     

    국민생활관 등에 상설무대도 갖고 싶다는 문원장은 "몇년에 하나도 못하는데 5년을 배워야 도전가능한 완창을 16명이나 일궈낸 것"을 보람으로 여긴다고. 

     

    80kg이 넘는 강골인 문원장은 "신문에 보도돼 도내 과부들이 잘 생긴 내 사진을 보고 줄지어 쫓아오면 기자가 책임지라"며 곧장 농담을 건네는 모습을 뒤로 하고, 건강을 기원하며 발길을 재촉했다. <익산/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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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익산시에서는 7일 오후2시 솜리문화예술회관에서 국창 정정렬을 추모하는 추모비 제막식이 채규정 익산시장, 문태현 이리국악원장, 임화영 명창을 비롯한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이번 제막식에는 익산국악원생, 원광대국악과 학생, 김일구 명창(박봉술제 적벽가), 최승희 명창(정정렬제 춘향가) 등이 참가한 가운데 제막식 공연도 열려, 국창 정정렬을 기리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익산 망성면 내촌리에서 태어난 정정렬(丁貞烈 :1876-1938)은 일곱 살에 소리에 입문해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입산수도하는 방식의 독공(獨工)을 할 만큼 무던한 노력을 기울인 명창이다.

     


     

     

    특히 정정렬은 소리를 잘 부르는 명창이었을 뿐 아니라 이전에 없었던 남다른 독자적인 판소리 세계를 이룩해 정정렬제 판소리를 완성했다.

    훗날 근대5명창(김창환,송만갑,이동백, 김창룡, 정정렬) 중의 한사람으로 꼽히는 등 최고의 명창 소리꾼으로서 국창으로 칭송되기도 했다.

    현재 정정렬제 판소리 계승자로는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를 인정받은 김여란이 있으며, 김여란 문하에서 소리를 배웠던 최승희가 정정렬제 판소리를 계승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에 익산시 관계자는 "정정렬 추모사업은 판소리사랑 정신을 되새기고, 익산이 판소리 고장으로 긍지와 자부심을 갖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시민여러분도 익산이 낳은 명창에 자부심을 갖고, 그분의 업적을 되새겨 보기 바란다"고 말했다. <익산/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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