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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인도(引導) 이인호 선생을 보내며<칼럼사설수필> 2012. 4. 24. 08:45
<칼럼>인도(引導) 이인호 선생을 보내며
인도 이인호 선생님! 청천벽력 같은 선생님의 부음을 듣고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필 선생님이 마지막 작품전시회를 가지려던 익산문화원에 전시회 취재차 들렀다가 타계하신 지 5분도 안 돼 익산문화원 김복현 원장에 들은 소식입니다.
정확히도 23일 타계하신 오후 3시15분에 문화원에 들렀습니다.
마치 저를 부른 것 같은 생각입니다. 생애 마지막 전시회를 신문에 다루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심장수술로 힘들어할 때 아무 것도 모르고 문화원에 들러 부음을 들어야 할 때 황당함과 허망함, 미안함과 절통함은 말할 수 없었습니다. 며칠간 심장병으로 고생 하고 수술직후 이승을 떠날 때 전혀 알지 못하고 한가하게 취재차 들렀다가 부음을 접한 것입니다.
선생님을 만나 뵌 지도 어연 20년이 넘었습니다. 아버님처럼 생각하며 강산이 두 번이 변하는 세월을 일 년이면 최소한 4~5번씩, 선생님의 자택, 예도원(藝道苑)을 들렸지요. 안부도 묻고 작품활동을 기사화하고 가정 대소사도 들으며 보낸 세월입니다.
그토록 오랜 세월을 가까이 한 것은 권력자나 재력가여서도 아니고 작품활동에 뛰어난 능력 때문도 아닙니다. 오직 익산과 전북 문화발전에 애쓰시며 남을 위해 헌신. 봉사하는 ‘전북의 원로’를 봤기 때문입니다. 끊임없는 정쟁과 자리싸움, 이권다툼, 모함과 술수로 얼룩진 정치판과 예수의 이름을 팔고 석가의 법복을 파는 사이비 종교인이 많은 세태에 선생님은 재가불자를 넘어선 부처의 모습이었습니다.
선생은 1935년 금마면에서 여덟째 아들로 태어나시었지요. 전주이씨 회안대군파 종손인 부친은 일곱 아들을 잃고 방황하고 어머니 혼자 선생님을 낳고 신음 중인 것을 탁발 왔던 금산사 소진산 스님이 목격했지요.
스님의 권유로 선생님은 일곱 살에 금산사에 들어가 불교의식, 단청, 조각, 승무, 법고 등 불교예술을 전수 받고 장단과 가락을 접목키 위해 故박초월에게 국악도 깊이 터득하셨지요. 71년 단청문화재 164호로 지정돼 남산 팔각정, 대한문, 현충사 등 무수한 단청을 맡으시고, 그림과 소리를 접목시킨 한국화, 불화, 단청, 난화 등 일본과 미국, 캐나다에서 가진 16회 전시회를 포함해 41 차례나 개인 및 단체전도 가지며 일취월장 명성을 날렸다는 것은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미술작가협회와 국악협회이사도 역임했고 서울 인사동 ‘引導화실‘은 그림이 불티나게 팔렸으나 수입은 불우이웃이나 친구에 아낌없이 나눠 주셨지요.
풍요로운 삶을 팽개치고, 미륵사지와 왕궁탑이 그리워 판소리 고장, 익산으로 낙향한 것이 1992년입니다. 그 해 금마면에 '예도원'을 세우고 익산문화를 위해 여생을 보내게 되는데 저와의 만남은 이 때부터지요
3대에 걸친 문화원장 재임시 이리노인회관과 함열노인회관, 익산문화원 건립 등에 5500만원 기부, 익산인물과 살아있는 익산문화, 마을유래 등 17권에 이르는 지역문화관련 도서출판, 5천만원이 넘는 소장작품 201점을 재(在)제주 전북도민회관 건립자금으로 기증 등 부처 같은 삶이었습니다. 일부에서는 현실에 능수능란하지 못하는 선생님을 비난하거나 심지어 사기를 쳐 곤욕을 치르게 했지요. 제12회 '익산시민의 장, 문화장'도 수상했지요.
‘문화장‘은 문화예술 발전에 헌신하고, “富나 특장점을 지닌 사람이 갖지 못한 사람을 도와주는” 노브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실현 등 높은 도덕성을 견지한 분에 수여하는 상으로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요. 그런 선생님의 심장질환으로 타계는 익산과 전북이 큰 어른 한분을 보내게 된 것입니다. 이제 선생님이 평소 말씀하신 기세배 전수나 미륵사지 등의 관광도로 부족, 관광상품 부재, 숙박시설 등 관광시설 낙후, 국적불명의 놀이문화가 많은 서동축제 등은 남아있는 저희들의 몫입니다. 지난 3월초 선생님을 기사화할 때 수십번의 사진촬영을 마다 않고 응하시던 것이 마지막인 것 같습니다. 따뜻한 봄날 꽃가마를 타고 훨훨 극락왕생하시기 바랍니다./편집국장 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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