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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답사기 30선]논술(설.문)독서도서詩소설수필연설 2007. 4. 29. 08:36
[문화예술답사기 30선]
<1>문명의 연행길을 가다
《의무려산(醫巫閭山)은 접경이었다…홍대용은 기존의 어떤 질서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곳, 그러면서도 새로운 질서를 잉태하는 곳으로 의무려산을 설정했던 것이다. 의무려산은 두 세계가 만나는, 인습과 관례를 전도시키고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접경이었다.》
연행길에서 새 세계를 만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신경준은 최고 지리학자다운 탁월한 안목을 보여 주는 말을 남겼다.
“길에는 주인이 없다. 그 위를 가는 사람이 주인일 뿐이다.”
이 말을 그대로 실천한 이 책의 저자들은 과거 조선과 중국을 잇는 연행(燕行)길에 담겨 있는 숱한 역사와 문학의 자취를 찾아 나섰다.
연행이란 무엇인가.
연경행(燕京行)의 줄임말로서, 연경은 원·명·청의 수도였던 베이징(北京)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조선 후기에 베이징을 다녀오는 사절단을 ‘연행사’, 이들이 오간 길을 ‘연행로’, 그들이 남긴 기록을 ‘연행록’이라 했다.
조선 초에는 천자를 보러 가는 것을 ‘조천(朝天)’이라 했지만, 오랑캐 청나라에 이 말을 쓰기에는 소중화(小中華)의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아 그냥 ‘연행’이라 했다.
그런데 그 연행길을 오가며 조선의 젊은 지식인들이 소중화의 허위의식을 내동댕이치고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여 조선이 나아갈 길을 찾았던 것도 역사의 아이러니이다.
당시 연행은 넓은 세계로 통하는 유일한 출구였다. 김창업 박지원 박제가 홍대용 등 조선의 뜻있는 젊은 지식인들은 앞을 다투어 연행길에 나섰고 그곳에서 자신들의 안목을 넓히고 새로운 세계 질서와 호흡하고자 했다.
게다가 이들은 오가는 연행길조차 자신들의 무대로 만들었다.
지나치는 산수(山水)가 예사롭지 않고, 또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이별이 이어지고, 감회 어린 역사의 현장들을 만나니 이를 그냥 지나칠 리 없었다.
숱한 문장과 시(詩)들이 곳곳에 남겨졌다. 이런 명문장이, 탄생한 바로 그 현장에서 그대로 되살아나고 있으니, 이 책은 일견 역사 현장을 찾는 답사기이고 일견 문학과 사상의 기행이기도 하다.
사실 수백 년 동안 많은 조선 지식인이 연행을 하고 수백 권의 연행록을 남겼다.
이렇게 오랫동안 하나의 길을 그 숱한 사람이 지나가고, 또 이렇게 풍부한 기행문학을 남긴 예는 세계사적으로도 거의 드문 일이다.
이런 풍부한 문화적 자산을 통해 오래 격절(隔絶)했던 이국땅을 우리 시각으로 되새겨 보는 기행이 이 책이 갖는 미덕이다.
또한 요동 땅에서 마주친 고구려의 유적과 역사를 환기하는 연행사의 발길도, 고구려사를 둘러싼 역사 분쟁이 한창인 요즘에는 예상치 않은 보너스로 읽힌다.
이 책이 단순한 기행문이 아닌 이유는, 그 길에 차곡차곡 쌓여 있는 역사를 한 걸음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과거의 복원이라면 그리 새로울 것도 없다. 저자들은 ‘신연행록’을 짓는 마음으로 연행길에 대한 진한 애정과 깊은 학문적 조사와 또렷한 문제의식을 담아냈다.
이 책에서는 압록강 건너 단둥(丹東)에서 만리장성의 동쪽 끝인 산해관까지만 탐방하였다.
연행길의 절반만 돌아본 셈이니, 나머지 베이징과 열하(熱河·지금의 청더·承德)까지의 연행길이 기다려진다.
임기환 서울교대 교수·한국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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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길 위의 삼국유사
《적막한 빈터에서 길손은 마음과 가슴의 눈을 열어야 한다. 마음과 가슴의 눈을 열어 지난 세월을 반추해 보지 않고서는 좀체 잡히지 않을 모습들이 있다. 그렇기에 길손의 상상력은 한없이 날개를 단다.》
과거의 혼이 살아 숨 쉬는 옛 터전을 찾아가는 것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유적지 답사는 활자화된 텍스트라는 평면적인 역사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생생한 역사를 체험하게 해 준다.
세월의 흐름을 뚫고 굳건히 자리를 지킨 돌 하나에서 우리는 수백, 수천 년 전 사람들의 마음과 정신을 읽는다.
‘길 위의 삼국유사’는 일연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체험을 통해 ‘삼국유사’의 의미를 새롭게 밝히고자 한다.
저자는 백제에 처음으로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의 길을 출발점으로 ‘삼국유사’의 주요 무대인 경주를 조명하고 있으며, 일연이 승려로 입문한 강원도 진전사(陳田寺)를 마지막으로 이 책의 여정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 책은 일연의 삼국유사가 단지 고구려, 백제, 신라의 기록으로서만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 현대인의 인생 지침서로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는 13세기 일연의 자취를 좇아 과거로 가기도 하고, 과거 속 인물들을 21세기 현재로 불러오기도 한다.
그러면서 삼국유사의 무대가 된 장소에서 현재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희로애락을 동시에 살펴본다.
과거와 현재의 삶을 중첩시키면서 시간에 의해서도 변하지 않는 인간 삶의 본질적인 특성들을 들여다보는 것이다.
이 책을 읽노라면 역사가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쌍방향으로 끝없이 현재와 소통하고 있음을 새삼 깨닫게 된다.
저자가 본 삼국유사의 의미는 이 땅에 살다 간 이름 없는 이들의 생애를 고스란히 그렸다는 점이다.
그는 일연의 마음이 되어, 선운사에서 묵묵히 차밭을 가꾸고 있는 우룡 스님, 진평왕릉을 바라보는 박노해, 마당까지 바닷물이 들어오는 식당을 운영하는 우리 시대의 연오랑 세오녀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삼국유사를 새롭게 기록한다.
길은 멈춰 있으면서도 움직이고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모든 것이 있는 역설적인 공간이자, 우리의 생각과 의지와 삶을 모두 투영하는 원형적인 공간이다.
20년간 삼국유사를 연구한 저자는 곱씹어서 책을 읽듯 여러 번 현장을 답사하면서 텍스트의 행간을 읽고, 텍스트의 새로운 면을 다시 발견해 내고 있다.
탑 하나 덩그러니 남은 절터를 여러 차례 답사하면서 13세의 감수성 예민한 청년 일연의 생각을 읽고 또 읽는다. 그리하여 일연과 함께 숨쉬고 마침내 일연의 마음이 된다.
그 열정이 짧은 글, 빠른 독서에 익숙해진 우리 시대에 귀하게 느껴진다.
빈 터는 역사적 상상력이 태어나는 근원이다.
눈으로 보이는 것이 아닌 존재했던 것의 흔적을 통해, ‘스러진 전각을 세우고 탑을 일으키고 담을 둘러쳐서’ 과거 옛 사람들의 형상들을 찬찬히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우리가 빈 터에 서서 사라진 것과 남아 있는 것, 새롭게 생겨나는 것에 대해 숙고할 때마다 삼국유사의 텍스트는 상상력을 안고 다시 태어난다.
‘길 위의 삼국유사’는 저마다의 마음으로 새롭게 쓰일 답사기를 위해 길을 나서고 싶게 만드는 책이다.
조윤경 이화여대 교수 불문학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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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가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
《넘쳐날지라도 낭비하지 않았으며 모자람이 있어도 옹졸하지 않았던 분들, 배우지 않았어도 결코 무지하지 않으며… 환경이라는 말이 없어도 자연과의 조화를 으뜸으로 여기며 이 땅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를 아끼며 살다간 이름 없는 스님들, 목수님들, 장인들….》
가람에 담긴 건축의 지혜
저자 김봉렬 교수를 처음 만난 것은 1980년대 중반, 내 나이 마흔 무렵이었는데 그는 서른 전으로 건축 역사를 연구하는 여러 학자 중에 섞여 있었다.
그를 본 순간 전혀 새로운 눈과 삶을 통한 성찰로 이루어진 신선한 감성이 내게 다가왔다.
그때 나는 건축가로서 세상에 이름을 디밀긴 했으면서도 불혹의 나이에 응당 가졌어야 할 역사인식도 뚜렷하지 않았고 공부도 턱없이 부족했었다.
한국 건축이라고 해야 난해한 양식해설과 별 뜻 없어 보이는 연혁 따위로 가득한 건축사책만 들여다보던 나 같은 실무건축가에게 그의 명쾌하며 신념으로 가득 찬 한국건축 읽기는 축복이었다.
그는 역사와 시간과 인간과 삶의 터로서 ‘장소’를 이야기하고, 선인들의 시대정신과 사상을 통하여 남겨진 소중한 유산을 읽어야 한다고 했다.
이 땅에서 작업하면서 나는 으레 깨닫고, 느끼며, 실천해야 할 많은 부분을 그의 사고와 연구에 힘입어 조금씩 깨쳤다.
그로부터 20년 넘게 그는 나에게 여전히 선생이다.
21세기 초에 새로 저작한 이 책에서 그는 그간의 연구와 이론을 바탕으로 깊은 애정과 통찰력을 갖고 우리의 절집을 이야기한다.
저자가 한국의 가람을 바라보는 틀, 다시 말해 여섯 개의 키워드는 절로 가는 길, 어우러짐, 넉넉함, 멋스러움, 성스러움, 소박함이다.
그는 지형과 교리에 따라 배열된 절집의 영역에서, 자연과의 조화에서, 건축적 표현으로서, 건축 자체의 아름다움과 성스러운 정신으로서, 그리고 절제의 미학으로 가람의 참다운 가치를 설파한다.
영남지방의 절집을 예로 들어보자.
해인사 터의 형국을 주관하는 토지신을 모시는 국사단의 공간을 봉황문과 해탈문 사이에 둔 것은 가람의 안과 밖, 토속신앙과 불교가 만나는 지형적, 교리적으로 이중적인 경계의 공간, ‘균형과 조형, 비대칭적 대칭성’ 등 조형미학에서 말하는 많은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설명한다.
어릴 적 소풍날이면 으레 드나들던 동래 범어사의 3칸짜리 일주문을 지나 해탈문으로 이르는 공간구성을 완벽한 ‘건축적 장치’로서 알게 된 것도 그의 설명을 통해서였다.
달성군에 있는 유가사 입구의 큰 바위로 이루어진 오솔길에서, 자연을 사찰건축의 주인공으로 부각시키며 ‘유가사의 인공적인 건물들이란 비슬산의 대자연을 효과적으로 부각시키기 위한 수단이요 무대장치’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이 책은 단순한 불교건축의 안내서가 아니다.
김봉렬은 우리 가람을 만든 스님(건축가)들의 시대정신과 그곳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면서 찾아가 머물 수 있는 ‘장소’가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가를 일깨워준다.
이 책은 자분자분하게 일러 주던 그의 살아 있는 목소리다. 나아가 아름다운 그의 글과 함께 흐르는 사진은 그 축복을 더 크게 느끼도록 만들어 준다(그 사진을 찍은 관조 스님이 지난해 말 입적하셨다고 들었다).
조성룡 건축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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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강석경의 경주산책
《문득 내 젊은 날 가을 들판을 걸었던 일이 떠오른다. 농부들이 분주하게 추수하는 들녘에서 “나는 아무것도 거둘 것이 없구나” 하고 상심했던 기억이. 그때 내가 생각한 추수는 무엇이었을까. 그건 영혼의 수확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세속의 성취는 아니었을까.》
고즈넉한 경주, 땅과 사람들의 풍경화
강석경의 글은 편안하다. 쉽다는 뜻은 아니다. 뭔가 여운을 남겨 주기 때문이다.
소설도 좋지만 기행문이 나는 더 좋다.
내가 풍수를 전공하며 답사를 해 왔기에 그럴 것이다.
그와의 인연은 30년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안다고 하지 못한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경주산책에서도 알 듯 모를 듯한 그의 사고가 잠재되어 있다.
그래서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든다.
경주에 터를 잡은 지 얼추 20년은 넘었을 것이다.
그의 경주산책은 그런 결과물이니, 내용을 말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좀 과장하자면 경주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본다.
책 첫머리는 ‘내가 경주로 돌아온 것은 근원으로의 회귀이다’로 시작된다.
그는 그것을 자연이 가르쳐 주는 근원이라 표현한다.
나도 경주에서 자유를 바라며 살아갈 수는 없을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안다.
식혜골에서 만난 누비장 김혜자 선생과의 만남에서 “도를 닦는다는 생각조차 없이 똑같이 반복하다 보면 자기 반영이 먼저 된다.
창작 이전에 자기 실상을 먼저 본다”는 술회는 마치 그의 작품세계를 엿본 듯한 느낌이다. 특히 고분군에서 느낀 감회는 “신라인들의 자유로움, 미에 대한 찬사, 올곧은 충정, 종교심”이다. 자유는 그가 추구하는 최종 목표인 듯하다.
대릉원에서는 “자연과 자유를 사랑하는 나의 본성에 유목민의 피가 흐르는 것일까” 하고 묻는다.
유목민 얘기는 이 책에서 자유와 함께 키워드 역할을 한다.
조상을 떠올리며 자유에의 갈망을 말하는 것은 대인 기피 성향을 가진 작가에게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교동을 둘러보며 “이렇게 고즈넉이 전통을 지켜 온 사람이 있어서 경주가 보다 경주답고, 이끼 낀 교동 기왓골이 더욱 아늑해 보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자유와 전통과 사람에 대한 정은 그에게 어쩔 수 없이 모순되지만 함께 가야 할 그 무엇인 것처럼 생각된다.
그는 갈 데 없는 작가다. 그릇을 좋아하는 이유가 비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면서도 비어 있음을 빈곤이 아니라 풍요이며 근원에 다가가는 계단으로 본다.
지금 그는 혼자 산다.
나는 그의 그런 면에 매력을 느낀다. 나는 철저한 가족주의자다.
말을 조금 바꾸면 세속적으로 얽매인 일이 많다는 뜻이다.
‘방랑자의 상실감’도 괴롭겠지만 세속의 인연도 고통이기는 마찬가지다.
무열왕릉에서 그의 친구는 “여기서 죽고 싶다”고 취한 듯 말한다.
참으로 풍수적인 표현이다.
그렇다. 여기 영원히 있고 싶다는 생각이 명당이 된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그는 경주 전역을 명당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가 그곳을 떠나지 않는 것도 경주가 명당이기 때문이리라.
책 사이사이에 끼어 있는 그림들이 편안한 느낌을 더한다.
산책은 모름지기 강석경처럼 할 일이다.
최창조 풍수지리학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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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1, 2
《오르세에서도 새삼 느낀 것이지만, 사실 파리의 매력적인 분위기와 예술, 짙은 인간적인 냄새는 모두 현실과의 투쟁을 통해 쟁취한 것이다. 근대의 격동기를 삶과 예술 양면으로 치열하게 부대껴 온 파리는 산의 높음과 골의 깊음을 모두 다 맛보았다.》
처음 유럽여행을 떠나 미술관을 순례하던 추억을 잊을 수 없다.
왜 그토록 강박적으로 작품들을 보고 돌아다녔는지. 허겁지겁 돌아다니던 미술관 순례의 날들은 지금 생각하면 민망하기만 하다.
누가 등 떠밀었던 것도 아니건만 루브르, 오르세 하는 식으로 핑핑 돌아다니다가 밤이면 부어오른 다리를 침대 모서리에 걸치고 ‘이 몹쓸 미술관들…’ 하고 푸념했을 정도였으니까.
어디 다리만 고생이었으랴. 간단한 한국어 해설서 같은 것 하나도 없어 주마간산하며 깨알같이 쓴 감상메모 탓에 눈도 핑핑 돌아가야 했었다.
나중엔 머릿속이 하얗게 진공상태가 되어 낮 동안 무얼 보았는지조차 기억에 없었다.
그때 부러웠던 것은 일본어 가이드북을 뒤적이며 천천히 둘러보던 일본인 관광객들이었다.
‘우리는 언제…’ 하고 돌아왔는데 내 미술관 초보여행 10여 년 만에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마침 국내에 미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미술관 여행이 잦아지면서 유럽 미술관을 찾는 한국인의 발길이 부쩍 늘어나던 때여서 책에 대한 호응은 높았다.
이 책을 들고 미술관을 찾는 사람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띄었고 미술사가나 평론가들과 함께 떠나는 미술관 투어 붐의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10여 년간 스테디셀러로서 자리를 잡다가 최근에 다시 개정판이 나왔는데 예나 이제나 이 책의 미덕은 관객과 호흡을 함께하고 눈높이를 맞추고 있다는 데 있다.
미술사적인 지식이나 전문용어를 잔뜩 나열하며 사람을 주눅 들게 하지 않는 것이다. 그림 앞에 서서 도란도란 얘기하듯 글을 쓰고 있는 것인데 바로 이 점이 지난 10여 년간 독자에게서 사랑받아 온 원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작가는 아내와 함께 땡이와 당게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미술관 여행을 떠나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아내에게 들려주고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며 책이 완성되어 간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가족간의 에피소드며 사진 등이 책의 군데군데 삽입되어 친숙함을 더해 주고 있다. 더불어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유럽의 주요 미술관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뒤 한 사람의 한국인 미술평론가로서 유럽미술의 특질을 구체적 시각으로 조망하고 우리의 감성과 언어로 해석해 보려 노력하였다’고.
확실히 저자는 자신의 언급처럼 자신의 언어와 시각으로 미술관에 걸린 작품들을 새롭게 읽고 해석해 내려 노력하고 있음이 군데군데 드러난다.
그의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이 내용의 깊이를 더해 주고 있고 대학에서 그림을 그렸던 바탕에 기초한 기법이나 용어의 해설 또한 자연스럽게 동원되어 작품들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돕고 있다.
이번 개정판에는 초판 이후의 유럽미술관 변동 사항이나 새로운 미술관에 대한 정보가 보완되어 있다.
그간의 독자들에게 준 듬직한 신뢰가 이어져 10년이나 20년 후에도 이 책은 여전히 유럽미술관기행의 독보적 자리 매김을 하게 될 것 같다. ]
김병종 서울대교수 화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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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新서울기행
《남산을 돌아본 뒤 마지막 소감은 간단했다. 산은 장한데 사람들은 산의 부속물 같다는 느낌이다. 더 적나라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남산에 다닥다닥 붙어 기생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남산은 큰 산은 아니지만 빌붙어 사는 사람들에 훼손당하면서도 그런 걸 크게 개의치 않는다.》
600년 수도 서울의 속살 들여다보기
비가 내리면 우산을 받치고 경복궁을 휘 돌아보고 나온 때가 있었다. 세월이 쌓여 이뤄 놓은 풍치를 즐길 공간이 가까이에 있음을 고마워하며 옛 건물, 정원, 수목이 어우러진 고궁의 멋을 드문드문 오가는 사람들 속에서 만끽하곤 했다.
그러나 600년 동안 수도였던 도시임을 생각하면, 그런 멋을 즐길 곳이 기대만큼 많지 않다.
그것이 어찌 서울뿐이랴! 유서 깊은 한국의 대도시는 옛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곳이 거의 없다. 오래됐으면 오래된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상식일 텐데 그렇지 못하다.
전통과 현재가 적절하게 조화를 보이며 공존함으로써, 수십 년이 아니라 수백 년 동안 사람이 살아온 체취를 느끼며 살고 싶다는 것이 분에 넘치는 욕심일까?
20세기 들어 기형적으로 발전한 도시가 최근 수십 년 동안 급속도로 팽창해 온 결과일 것이다.
그래서 서울에 오래 거주한 사람이라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그 문화의 속 깊은 멋과 맛을 즐기기 어렵다.
그러니 서울을 잘 알고 잘 설명해 주는 전문가의 안내를 받을 수밖에 없다.
이 책은 도시의 중심축인 종로를 버리고 옛 성곽을 따라 탐사하고 있다. 남산 지역을 먼저 훑고 다음에는 동대문, 낙산, 성북동, 북악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잘 알 것만 같은 남산이지만 저자의 발걸음을 따라가다 보면 아는 것도 찾아가 본 것도 그리 많지 않음을 자인할 수밖에 없다.
장충단이니 남산 성곽은 그래도 이름을 들어서 아는데 국사당 터, 와룡묘 등은 생소하다.
민속신앙을 연구하는 전공자답게 민속신앙의 자취와 종교적 건축물을 설명하는 데서 진가를 발휘한다.
의외로 그런 유적이 적지 않다.
관우를 모시는 동묘와 와룡묘도 있고, 일본 신사의 자취도 있다.
이 책에서 가장 정성 들여 소개한 유적은 조선 후기에 조성된 정원과 고가(古家)다.
혜화문, 삼군부 총무당, 이화장을 비롯해 때로는 걸어서, 때로는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다닐 수 있는 명소를 소개했다.
저자는 낙산공원과 성락원, 칠궁 두세 곳을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새로운 관광지로 등장한 청와대 옆의 칠궁과 새로 조성된 낙산공원은 답사 의욕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개인적으론 성북구에 소재한 성락원이란 아름답고 운치 있는 옛 정원을 소개받은 것이 가장 큰 보람이다. 저자는 이 정원이 성북동의 기적이라고까지 말한다.
이 책은 고궁 같은 유명한 역사 유적보다는 구석구석에 숨어서 발길을 기다리는 문화 유적을 드러내려는 시도가 장점이다.
오래된 것만이 아니라 최근 것까지도 문화 욕구를 채울 수 있는 것이면 대상에 포함시켰다.
그런데 저자도 인정하듯이 많은 문화 유적이 뒤떨어진 문화감각으로 덧칠해져 있거나 방치돼 있다.
시민의 발걸음을 유혹할 공간을 만드는 노력이 절실함을 서울기행에서 확인하게 된다.
안대회 명지대 국문학 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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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유럽 카페 산책
《고민이 있으면 카페로 가자…바르고 얌전하게 살고 있는 자신이 용서되지 않으면 카페로 가자. 좋은 사람을 찾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언제나 자살하고 싶다고 생각하면 카페로 가자. 사람을 경멸하지만 사람이 없어 견디지 못하면 카페로 가자.》
미지의 카페 여행에 초대합니다
흘러가는 구름을 사랑했던 19세기의 이방인 보들레르의 후예로, 시속 300km로 달리는 초고속 열차를 애호하는 21세기 유목주의자에게 “왜 사는가”라는 물음은 곧 “왜 떠나는가”로 대체된다.
그가 향하는 목적지가 유럽이라면, 그곳이 파리든 로마든 베를린이든 프라하든 광장으로부터, 거리로부터, 그 거리의 카페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유럽의 예술사에 각별한 애정을 보여 왔던 서양사학자 이광주의 ‘유럽 카페 산책’은 여행이라는 매혹적인 삶의 여정에서 캐낸 보석 같은 카페 순례기이다.
그의 발걸음은 16세기 오스만튀르크의 수도 이스탄불을 시발지로 해서 파리 베네치아 로마 런던 베를린 빈 프라하를 거쳐 21세기 새로운 부활을 기다리는 아름다운 도나우 강변의 도시 부다페스트의 ‘카페 뉴욕’에서 끝난다.
그가 산책길에 만나는 사람들은 사랑과 혁명, 문학과 예술의 이름으로 카페를 신봉하던 카페맨들, 사르트르와 보부아르, 나폴레옹과 레닌, 랭보와 베를렌, 고흐와 피카소, 카프카와 루카치 등 18세기부터 20세기 지성사에 휘황하게 존재를 드러냈던 정치가, 철학자, 예술가들이다.
이 책은 역사를 기술하는 몇 가지 방식 중 카페를 통한 사생활의 역사, 곧 미시사의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제목에 ‘산책’이라고 썼거니와, 단순히 카페의 변천사를 통한 유럽의 역사와 문화 읽기에 그치지 않고, 산책을 통한 저자와 독자 간의 상호 발견, 나아가 동반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저자의 안내를 따라 파리 최초의 카페인 프로코프(1686년)에 들어가 보고, 이어 20세기 실존주의 문학의 교조 사르트르와 보부아르의 공공 집필실이자 회합의 장소였던 카페 되 마고(1885년)와 카페 드 플로르(1886년)의 노천 의자에 앉아 보고, 또 보는 순간 에로스의 치명적인 열기에 휩싸이고 마는 매혹적인 물의 도시 베네치아의 카페 플로리안(1720년)에서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 모금을 마시며 깨닫게 되는 것은 저자의 카페 순례를 통한 나의 카페, 내 마음에 자리 잡고 있는 카페의 재발견이다.
저마다의 인생이 있듯이 저마다 카페에 대한 추억이 있다. 영원한 파리의 산책객 보들레르처럼 “1000년을 산 것보다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 외칠 정도는 아니지만, 나 또한 15년 넘게 유럽을 오가며 키워온 소중한 카페의 목록을 간직하고 있다.
추억은 인생을 두 번 살게 한다.
이 책의 미덕은 단지 저자의 안내를 눈으로만 좇는 시선의 카페 산책이 아닌 저마다의 추억 속으로, 나아가 미지의 카페 여행으로 독자를 이끌고 새로운 여행을 도모하게 하는 점이다.
저자의 고백처럼, 이전의 여행이 미술관이나 성당이나 묘지의 조각과 그림을 찾아서였다면, 이제는 미술관 옆 카페, 또 묘지 건너편의 카페를 찾아 떠나는 것, 올여름 나는 어떤 카페와 마주칠까, 생각만으로도 황홀하다.
함정임 소설가·동아대 교수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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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
《사람들은 석탑, 절, 무덤처럼 특정한 한 장소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 공간 전체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길이란 한국인이 만들어낸 역사이자 전통이자 지혜인데도 사람들은 길에 너무나 무관심하고 소홀하다.》
사라져 가는 옛길… 그 위를 걷는 안타까움
조선 후기까지 우리가 현재 사용하고 있는 고속도로나 다름없었던 길은 연행(燕行)길이었던 의주로, 영남대로(嶺南大路), 삼남대로 등 9대로였다.
부산에서 서울로 가기 위해선 대체로 열나흘 길인 영남대로를 이용했다.
교통이 발달하면서 우리나라에 그런 옛길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대부분이 잘 모르는 시대에 우리 선조들이 걸었던 역사 속의 길이며, 조선통신사가 오고 갔던 영남대로를 ‘끊어 타기’로 걸어서 고스란히 되살려낸 지리학자가 있다.
도도로키 히로시. 그가 낸 책이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이다.
지리학을 공부하기 위해 유학 온 그가 우리나라 사람들에 대해 의문을 가졌던 것이 있다.
‘문화유산’에 대해 관심이 많고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사람은 많은데 어째서 ‘세계문화유산이 될 만한 유형무형의 가치가 있는 길인 조선시대의 ‘과거길’에는 관심을 갖지 않는가였다.
‘신작로가 생기면서 옛길의 기능은 사라졌지만 놀랍게도 21세기를 맞이하려는 지금에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9대로 가운데 문경새재 때문에 가장 알려진 영남대로를 소개하려 한다’고 책의 서문에서 밝힌 것처럼 그는 자동차와 기차가 생기면서 아무도 걷지 않은 잊혀진 길을 걷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영남대로나 삼남대로에 대해 여러 형태의 논문과 단행본이 나왔지만 그 역사의 길을 한발 한발 걸어서 갔던 사람은 근래 들어 그가 처음이었다.
우리나라의 옛 지도를 참조하면서 길에 나선 그가 만난 것은 단지 옛길만이 아니었다.
“길이 있으니까 가는 게 아니라 자기가 가니까 길이 열리는 것”이라고 대답하는 할아버지를 비롯해 “어서 타” 하고 차를 세우는 운전자 등 아직도 남아 있는 이 나라의 인심과 문화를 있는 그대로 느끼고 깨달았다.
그는 우리나라 옛길을 걷다가 “가장 중요한 것은 길 위에 있다”는 니체의 말처럼 평생을 같이 걸어갈 도반(道伴)인 반려자를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사라진 옛길을 걷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몇 년 전에 필자는 영남대로를 14일에 걸쳐 걸은 적이 있다. 낯설고 말도 선 땅에서, 닷새가 지나자 자면서도 길을 묻고, 걸어가는 꿈을 꾸는 그 힘든 여정에서, 일본인 도도로키는 얼마나 힘겹게 걸어갔을까 생각했다.
“개발이란 이름 아래 너무도 무방비하며 그래서 닥치는 대로 훼손되어 가는 불쌍한 옛길이 너무 딱하지 않은가”라고 애석해하는 저자의 말이 아니라도 지금 우리가 그 옛길을 복원하고 관리하지 않는다면 금명간 그 자취마저 사라지고 말 것이다.
걷기 붐이 일어나 땅 끝에서 휴전선까지 또는 국도 1호선을 따라 걷는 사람도 많고, 산티아고나 실크로드 구간, 또는 ‘세계는 넓다’고 세계 구석구석을 걷는 사람도 많아졌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옛길이나 강 길을 걷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다.
그 역사의 길을 수많은 사람들이 걸어가도록 사람을 위한 길을 만들고, 길을 걸은 사람들에게 인증서를 주는 운동이 있었으면 한다.
또 그 길이 문화재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를 바라며 저자에게 격려를 보낸다.
신정일 우리땅걷기 대표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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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지중해 문화기행
《산토리니에서 에게 해로 넘어가는 해는 마지막 힘을 다해 미처 태우지 못한 붉은 기운을 지평선에 뿌려 놓는다. 이것은 석양제라 이름 붙여야 할 것만 같다. 짧은 순간 모두가 신화의 주인공이 되어버리는 장엄한 태고의 의식이었다.》
지중해 여인의 깊고 두터운 눈길에 스쳐본 적이 있는가.
수십 일 동안 배를 타고 지중해를 왕복한 내게 지중해의 추억이란 오디세우스의 방랑기, 소크라테스의 명징한 지혜, 오셀로의 뜨거운 감성이 애매모호하게 뒤범벅된 수염 긴 사내들과 그들의 귀향을 고대하며 코발트빛 수평선을 응시하는 여인들의 햇빛에 살짝 데인 눈빛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지중해는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대륙에 둘러싸인 바다를 말한다.
세상에 바다도 많고 (일반적인 의미의) 지중해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토록 인간과 자연이 혼과 살을 알맞게 섞어 가며 매콤달콤하고, 냉정과 열정이 뒤섞이며, 화려 담백하면서도 독특한 문화를 탄생시킨 곳은 흔치 않다.
저 동쪽 끝, 해가 떠오르는 동아지중해(한반도 서해)를 빼놓고는.
기후 풍토가 전혀 다르고 피부색과 언어가 같지 않은 여러 인종이 제각각 만들어낸 역사의 강물이 흘러들어 섞이고, 다시 물결 따라 상륙해서 또 다른 모습으로 재탄생한다.
그래서 그곳에는 온갖 것이 다 있다.
대전쟁과 평화가 있고, 춤과 음악이 흐르는가 하면 미술과 문학이 공존한다.
그뿐만 아니라 점성술과 신화 종교가 함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철학자와 상인이 휴머니즘과 자본주의 논쟁을 벌이는 곳이다.
그래서 지중해는 물의 집합체가 아니라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처럼 온갖 종류의 의미 깊은 문화가 탄생한 자궁이고, 인류의 정신이 잉태된 모태이다.
‘지중해 문화기행’의 저자는 소아시아의 시각으로 동아지중해에 사는 우리들의 손을 붙들고 그만이 볼 수 있는 유럽 지중해로 안내한다. 그는 관념이 아니라 사실을 전달한다.
지중해 문명의 주춧돌은 유럽의 백인들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이집트와 소아시아에 사는 유색인들이 놓았다는 사실.
그는 동부지중해 남부지중해 북아프리카지중해 서부지중해를 샅샅이 여러 번 발품을 팔아 뒤지고 다니면서 거의 모든 분야를 말하고 있다.
자연과 문화에 대해서만 극찬하는 이들과 다른 마음으로, 이곳이 사람들의 터였음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수천 년 전의 조각과 그림 속에 존재하는 여신들, 르네상스의 환한 살결을 지닌 여인들, 근대문학 속에서 어두운 고뇌에 찬 사람들, 지금 햇살이 뜨겁게 내리쬐는 노천카페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홀짝거리는 생기발랄한 여인들, 바자르(시장)에서 낙천적인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는 상인들이 책 속에서 뛰쳐나와 독자들을 껴안을 것만 같다.
역사는 과거 또는 현장과 살을 섞는 작업이다.
문화답사 또한 마찬가지일 수밖에 없다.
이 정도의 열정과 치밀한 관찰, 역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가슴 아픈 현대정치에 이르기까지 온갖 다양하고 구체적인 지식, 거기에 더해 사물과 인간에게 이렇듯 농도 짙은 애정을 표시한다면 꽤 대단한 역사학자라고 불러도 될 것 같다.
그런 그가 지중해를 통해서 동아지중해의 우리들과 온 인류에게 던지려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혹, 자연과 인간과 문화가 더불어 살아가는 조화와 합일의 세계관은 아닐는지.
윤명철 동국대 교수 한국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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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불교미술기행
《삼국시대에 조성된 많은 불상은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하고 있다. 시무외인은 부처님의 공덕을 나타내는 세계 공통의 손모양이다. ‘괴로움의 바다(苦海)’로 표현되는 세상살이에 지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시무외인은 단순한 손이 아니고, 차안에서 피안으로 인도하는 해탈의 손짓이다.》
불상 피부는 왜 금색일까
부처님이 절을 짓다가 건축비가 좀 부족했다. 할 수 없이 교회를 짓는 예수님을 찾아가 돈을 빌리기로 했다.
그렇지만 점잖은 체면에 돈 얘기를 꺼낼 수 없었다.
그래서 오른쪽 손가락을 동전 모양으로 동그랗게 말고 왼쪽 손바닥을 펴 보였다.
그러자 예수님은 두 팔을 벌렸다. 자기도 형편이 좋지 않다는 뜻이었다나 어쨌다나.
누가 만든 농담이겠지만 여기에는 종교적 상징을 보는 일반인들의 시각이 매우 재미있게 패러디돼 있다.
물론 예수가 두 팔을 벌린 것은 돈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십자가의 순교를 상징한다.
불상이 손가락을 동그랗게 한 것은 지혜와 자비를 설법하는 모습이다.
이를 수인(手印)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런 상식이 없는 사람들은 절에 가면 궁금한 것이 무척 많다.
불상은 왜 머리카락이 소라처럼 생겼으며, 피부는 왜 금색일까. 불상은 왜 그렇게 많고, 벽화에 코끼리 그림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무슨 이유에서일까….
의문이 해소되지 않으면 갖가지 오해가 생긴다.
실제로 18세기 서양의 어떤 동양학자는 부처님을 힌두교의 신으로 보았다고 한다.
그 정도까지는 아니더라도 우리의 불교미술 이해수준도 사실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이 책은 바로 여기에 착안해서 쓰인 ‘불교미술 이해’의 길잡이다. 제목은 ‘불교미술 기행’이지만 내용은 기행보다는 해설에 치중했다.
전문가적 감상보다는 그 작품이 보는 사람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무슨 뜻에서 그런 조각을 했는지, 작품 속의 인물은 누구인지를 친절하게 해명하는 데 주력한다.
저자가 분류한 43가지의 주제에 대한 교리적 역사적 배경설명도 재미있다.
현대인의 헤어스타일과 부처님의 머리 모양을 비교하면서 일상생활과 연관시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그러면서도 풍부한 자료를 동원해 깊이 있는 이해를 돕는다.
누구든지 끝까지 읽다 보면 불교미술 감상의 안목이 높아지고, 불교의 본질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날 수 있다.
책 속에 소개된 사진 자료도 볼 만하다.
저자가 직접 인도 중국 한국의 불교유적지와 박물관을 취재하면서 확보한 113점의 자료사진은 독자들에게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좋은 기회를 제공해 준다.
이 책이 갖는 또 하나의 미덕은 불교미술 이해의 새로운 방법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불교미술 해설은 양식적 특징이나 미학적 관점에서만 이해하는 데 치중해 왔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불교미술의 감상을 몇몇 전문가가 독점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불교미술은 감상 능력이 뛰어난 전문가들의 안목에 맞춰 제작된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교리를 구상적으로 설명하는 수단으로 시작됐다.
그러므로 불교미술은 이 책처럼 제작 목적과 배경부터 살펴봐야 이해의 바른 단초가 열린다.
또 그래야만 미술작품을 통해 형상화된 불교의 진리를 최종 소비자인 대중에게 쉽게 납득시킬 수 있다.
불교미술이야말로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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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
《해가 지고 거리에 불이 켜지면, 밤의 장막에 완전히 싸이기 직전 아를의 하늘은 코발트블루가 된다. 파란색에도 단계가 있다. 아주 파란색을 띠는 순간을 포착해서 촬영하고 나니 하늘이 금세 검은 천막처럼 변하고 만다. 고흐가 말한 “밤 광경과 그 느낌을 그 자리에서 그린다는 것”을 촬영을 통해 체험한 기분이 들었다.》
화가는 왜 풍경화를 그리는 것일까. 아름다운 자연이나 도시의 풍광을 기록하기 위해, 세상을 바라보는 독특한 관점을 실험하기 위해, 혹은 자연이 베푸는 색채의 향연을 나름의 방식으로 화폭에 담기 위해 등등. 그 대답은 풍경화를 그린 화가의 수만큼 다양할지 모른다. 화가의 의도가 어떠하든, 그들이 남긴 풍경화는 마음 내키는 대로 떠나는 일이 여의치 않은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기도 하고 유혹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빈센트 반 고흐는 동생 테오가 삭막한 대도시에서 생활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옆에 두고 볼 수 있도록 아름다운 농촌 정경을 그려 보내 주었다.
그런데 인상주의 미술, 특히 반 고흐에 몰두한 사사키 미쓰오와 사사키 아야코 부부에게는 반 고흐의 풍경화가 그의 생애와 작품으로 다가서는 문을 열어 주는, 일종의 통로 역할을 했다.
파리에서 오래 생활한 사사키 부부는 반 고흐가 ‘색채와 빛’에 눈뜨게 된 프랑스에 초점을 맞춰서, 그가 작품 활동을 했던 파리와 아를, 생레미, 오베르를 직접 방문하여 그의 행적을 되짚어 나간다.
그들은 ‘고흐가 캔버스를 놓았던 장소에 서 보면, 고흐 정신의 결정체와도 같이, 그의 작품이 의도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히 보였다’고 했다.
물론 화가가 이젤을 세웠던 곳, 화가가 살던 곳을 찾아 그 자리에 섰다고 자동적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이해할 수는 없다.
사실 여행을 다니다 보면 의도했든 우연이든 자주 바라보던 풍경화 속으로 들어선 듯한 경험을 할 때가 있다.
나도 오베르의 교회 앞에서, 그리고 밤 시간 아를의 카페에서 바로 그런 느낌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꼼짝 못하고 서 있었던 기억이 난다.
이 책이 놀라운 것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이런 개인적이고 순간적인 경험을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화가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경험으로 확장한 데 있다.
사사키 부부는 집요한 열정으로 반 고흐의 그림과 일기, 평전들은 물론이고 당시의 공문서나 언론 보도 내용까지 꼼꼼하게 검토했고 반 고흐가 그림을 그린 지점을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 모든 노력은 그가 풍경화를 그릴 때 대상을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믿음을 전제로 하며, 궁극적으로는 반 고흐가 변덕스러운 열정이나 정신병자의 광기에 사로잡혀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화가의 냉철한 시선을 유지하면서 작업했음을 보여 준다.
화가가 밟고 지나갔을 돌바닥 하나도 그저 지나치지 않는 애정 어린 시선과 섣부른 추측이나 유추를 피하고 객관성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균형을 이룬 이 책을 읽다 보면, 화가에게 다가가는 길이 미술관이나 화집, 평전 같은 문헌 자료에만 있는 것은 아님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혹시라도 미술과 여행을 다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책을 덮을 때쯤 자기만의 그림 속 풍경기행을 계획하느라 엉덩이가 들썩이지 않을까.
신성림 작가·번역가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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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곽재구의 예술기행
《사람이 사람과 세상을 사랑하고 아파한 때문으로 박해를 받는 시절은 아름답다. 삶의 양대 본질, 절망과 희망 곁에서 해일처럼 밀려오는 그리움과 슬픔, 분노와 억압의 감정을 고스란히 경험할 수 있으므로. 인간이, 인간성이 무엇인지 뼈끝으로 찍어 바르는 눈물을 경험할 수 있는 절박한 시절이므로.》
책에 대한 예의는 결국 책읽기에 대한 예의다. 책에 따라 읽어야 할 장소가 따로 있다.
꽃놀이 가는 열차 안에서 법률 서적에 형광펜을 긋는 사람은 독서가가 아니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독서 공간을 갖고 있는 사람이다.
책을 위한 특별한 공간이 없다면, 책에 따라 그 공간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아직 독서가가 아니다.
나는 아직 독서가가 못되지만 어떤 책에 대해서만큼은 각별하려고 애쓴다.
기행서는 남다른 장소에서 읽으려 한다.
기행서 중에서도 남도 사람의 그윽한 눈매와 깊은 목소리가 내장되어 있는 책, ‘곽재구의 예술기행’을 펼쳐 든 곳은 벚꽃 이파리가 흩날리며 춘설처럼 쌓이는 교정의 후미진 벤치였다. 나쁘지 않은 장소였다.
벚나무 그늘에 앉아, 하르르 하르르 떨어지는 꽃잎을 맞으며, 책장을 열었다. 마침, 곽재구 시인은 꽃 이야기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남해안의 포구를 돌며 ‘외로움이 깊어지는 시간’을 스케치했던 시인의 ‘포구 기행’에 대한 독후감이 아련한 터여서 그의 예술 기행에 기꺼이 동참할 수 있었다.
시인의 발길은 남해 금산, 화개장터, 질마재, 부여, 강진, 진도, 통영, 장흥 등 남도 중에서도 주로 ‘아랫녘’을 돌다가 강원도 봉평과 서울 종로 한복판으로 북상하기도 한다.
시인이 몇 권의 시집과 취재노트를 들고 찾은 곳은 대부분 십수 년 만에 다시 찾은 곳이다.
십수 년 사이에서 시인의 기억은 파르르 떨린다. 그 기억의 한 뿌리는 저 ‘80년 5월’에 박혀 있다.
예술기행은 목적이 뚜렷한 여행이다.
이성복 김동리 서정주 신동엽 박인환 이청준 한승원 등 한국 현대문학의 산맥을 등정하는가 하면, 윤두서와 다산, 윤이상, 이중섭, 김환기의 고향을 찾아 예술의 태자리를 탐사한다.
그러니까 곽재구 시인의 예술기행은, 누구보다 치열한 삶을 살다 간 예술가의 생애를 역사와 시대를 배경으로 복원하는 ‘탐사 보도’이기도 하다.
곽재구 시인이 수시로 저널리스트적인 면모를 보이는 것도 그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1990년대 초반에 쓴 것이다. 책에 소개된 질마재나 통영 부여 강진은 몰라보게 달라졌을 것이다.
진도 아리랑을 부르던 노인은 대부분 돌아가셨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옛이야기’가 아니다.
곽재구 시인의 기행의 최종 목적지는 특정한 장소가 아니라 예술가의 내면이었기 때문이다.
시인이 예술가의 고통스러운 생애와 만나던 그 장소들이 독자인 우리의 마음속에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곽재구 시인은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자주 사용했다.
자발적이고 내면적인 변화, 그리하여 총체적인 변화를 목말라 한다는 증거다.
그렇다.
변화를 꿈꾸지 않는 자, 여행을 꿈꾸지 않는다.
지금 여기가 행복한 자, 예술가를 떠올리지 않는다.
오늘과 다른 내일을 꿈꾸면서도 떠나지 못한다?
그렇다면 ‘곽재구의 예술기행’ 속으로 떠나 보라.
점심시간이든, 지하철 안이든, 주말이든 언제든 원할 때 떠날 수 있다.
이문재 경희사이버대 초빙 교수·시인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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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주강현의 관해기(觀海記)
《아틀란티스는 지구상에 없는 섬일 수도 있다. 이어도, 삼봉도, 홍의도도 모두 존재하지 않는 섬일 수 있다. 그러나 민중들은 그 섬의 진실을 믿었다. 여름만 되면 섬에 가고 싶어 하고, 왠지 그 섬들에는 뭔가 있을 것 같다는 착각, 미지의 섬을 찾아 나서는….》
600여 년 전의 해금정책으로 변방으로 전락해 버린 바다. 그래서 역사는 있되, 기록은 없었던 바다를 ‘관해기’는 생활의 공간, 역사의 공간, 민중의 공간으로 되돌린다.
바다의 생태·신화뿐 아니라, 바닷가 사람들의 역사, 민속, 생활을 종합적으로 탐사한 해양생활문화의 보고서인 ‘관해기’는 미지의 세계인 바다로 가는 ‘유토피아행 티켓’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한말 이광로의 ‘관해일기’가 있다. 환갑이 다 되도록 평생 바다 구경을 한 번도 못한 그가 동지들과 계획을 구상하다가 1885년 8월 21일 드디어 칠포(七浦) 바다 구경을 하고, 바다는 말과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장관이라며 감탄한다.
그에 비하면, ‘관해기’의 저자 주강현은 참 행복한 학자임에 틀림없다.
일생에 한 번 보기도 힘든 바다를 늘 누비며 발품을 팔았으니 말이다.
김정호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대동여지도’를 그렸다면, 주강현은 미지의 공간인 바다와 섬을 늘 다니며, 들숨과 날숨을 호흡하는 생명의 바다, 인문의 바다, 생활문화사로서의 바다로 새로운 가치와 생명력을 부여한다.
이어도 과학기지와 제주도를 포함한 남쪽바다에서 출발하여 서쪽바다, 그리고 울릉도를 포함한 동쪽바다에 이르기까지 역사 민속과 해양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그에게 바다는 늘 새로운 이야기보따리다.
섬과 섬뿐만 아니라, 섬과 육지를 잇는 문화의 바닷길, 육지로부터 내몰려 섬에 정착한 ‘갯것’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아 온 삶의 터전인 ‘바다 밭’은 어머니 품과 같은 정겨움을 갖는다.
거기서 만나는 바다 밑 수중세계의 황홀한 비경, 미역 소라 전복 등 다양한 해양자원과 그네들로 말미암아 삶을 살아가는 ‘잠녀’와 어민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문헌자료에 현지 조사를 보태고, 취재를 바탕으로 저자 특유의 씨줄날줄로 엮어가며, 쓰이지 않은 해양생활민속의 역사를 복원해 낸다.
‘관해기’를 읽으면 바다가 새롭게 보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절망이 아니라 생명과 희망, 닫힌 바다가 아니라 열린 바다, 대륙사관이 아니라 해양사관, 소외된 변방이 아니라 바다 중심의 세계관으로 우리를 안내한다. 하여, 바다에서 올라온 미륵에서 민중의 이상을 찾고, 청해진에서 만나는 송징과 장보고에서 사라진 민중영웅의 복원을 기대한다.
제국의 불빛 등대를 바라보며 식민의 바다를 되새긴다.
신이 내린 황금그물 ‘돌살’이 내팽개쳐지는 현실에서 해양문화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그뿐인가.
썩은 두엄더미 속에서 썩혀 먹는 홍어의 과학성과 문화성에서 해양음식의 경쟁력을 확인케 한다.
이제 그의 말대로 배를 띄우자. 때론 거센 풍랑과 해적을 만날지라도 ‘관해기’를 통해 ‘우리 바다 오디세이아’를 꿈꾸는 대항해를 떠나보자.
바다를 보면 저절로 견문과 학식이 넓어진다고 한다.
그래서 ‘관해’가 아닌가.
김동전 제주대 교수 한국역사민속학회장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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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城)
《성은 한쪽 발을 공간 속에, 다른 한쪽 발을 시간 속에 딛고 서 있다. 허물어진 벽의 이쪽은 과거요 저쪽은 미래다. 너무나도 오래되어 완전히 소진되고 만 기억의 먼지, 그 먼지가 마침내 빛 밝은 허공 속으로 떠오를 때 그것을 우리는 미래라고 부르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은 무엇에 매혹당할까.
크고 넓은 집과 정원과 언제나 믿을 수 있는 단 하나의 사람, 콩나물처럼 쑥쑥 자라는 아이들. 나도 그런 것에 매혹당한다.
그리고 이 말, ‘여행’이라는 말에는 언제나 매혹당한다.
매혹이란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때로 자연의 힘과 같은, 불가항력적인 힘으로 우리를 압도한다.
그것은 그 매혹의 대상이 우리를 행복에 이르는 길로 인도할 거라는 기대 때문일지도 모른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행복해지고 싶을 때 변명할 수 없을 만큼 외로울 때 나는 기꺼이 저항하듯 ‘여행’에 이끌리곤 한다.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은 프랑스문학자 김화영 선생의 ‘여행’에 관한 글들을 수록해 놓은 예술기행문이다.
젊은 시절, 한번쯤 카뮈와 플로베르와 발자크, 그리고 가깝게는 파트리크 모디아노에게 빠져 본 적 있다면 저자에 대한 설명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로 그는 정교하고 미학적인 번역과 글쓰기로 널리 알려진 작가이다.
이 책은 그가 ‘알베르 까뮈의 작품에 나타난 물과 빛과 이미지’로 프로방스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카뮈의 무덤이 있는 마을, 루르마랭을 찾아가는 길부터 시작한다.
그 여정은 프루스트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무대인 콩브레 성,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클로 뤼세 성’, 그리고 조르주 상드의 ‘노앙 성’을 거쳐 파리 한가운데 노트르담, 개선문까지 시간을 반추하는 새로운 사유의 ‘프랑스 지도’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성’이란 무엇일까.
현실의 땅 위에 건축된 집이지만 그 첨탑이나 탑실은 꿈의 공간으로 사라진, 시간의 깊이로 지은 건축물. 저자는 그것이 성이라고 말한다.
꿈과 환상. 거기엔 그런 것들이 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그곳을 찾아가는 여정이 쉽기야 하겠는가.
낯설고 궁금하고 약간은 두려운 길. 그래서 트렁크를 끌고 낯선 도시에 막 도착하면 가슴이 떨리는 것일까. 플로베르가 말했듯 마음은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줄 수 있는 보물인 것처럼, 나는 팔 수도 살 수도 없는 것이지만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보물이 바로 여행이라고 짐짓 단정해 버리는 것이다.
사람은 같은 시간에 두 장소에 머물 수 없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기서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을 읽고 있는 사이, 또 하나의 나는 어느새 훌쩍 달빛 속의 노트르담을 걷고 있거나 생제르맹 거리, 한갓진 카페에 앉아 뜨겁고 진한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이것 참, 여행 가고 싶은 마음 꾹꾹 눌러 봐야 소용이 없다.
저마다의 시간으로 짓는 성. 그런 성이 나에게도 어딘가엔 있을 텐데.
서문만 읽어도 너무나 아름다운 이 책. 읽는 내내 프루스트가 마들렌 과자와 차 한 잔을 마시며 느낀 ‘알 수 없는 어떤 감미로운 기쁨’이 무엇인지 알 것 같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이 책, 이렇게 속삭이는 듯하다.
이전에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그런 성의 문을 한번 열어 보지 않겠어요?라고. 자 이제 당신이 떠날 차례다.
이 봄이 다 지나가기 전에.
조경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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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남아 있는 역사, 사라지는 건축물
《어떤 이는 근대건축물에 대한 보존 요구를 문화적 감상주의 또는 문화적 콤플렉스의 발로라 몰아붙이지만 역사상 배타 국수주의, 맹목적 국수주의의 폐독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한국 근대건축 답사기
요즘 암울하게 얼룩진 한국근대사를 ‘문화 경험’이라는 삶의 체험으로 재조명한 책들이 봇물 터지듯 서점가에 나오고 있다.
새롭고 다양한 감각으로 가까운 과거를 더 알려는 사회풍조는 근대문화의 대중화가 뿌리내리고 있음을 단적으로 말해 주고 있어 바람직한 현상이다.
한편으론 이러한 사회풍조 속에서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감성이 강할수록 지성은 제자리를 잃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감도 감출 수 없다.
이 우려를 한꺼번에 잠재우는 책들 중의 하나가 바로 ‘남아 있는 역사, 사라지는 건축물’이다.
김정동 교수는 무엇보다 근대역사의 부재와 보존이라는 생각을 저변에 깔고 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사라진 건축물을 반성하면서 21세기 첫해에 출판된 것은 이러한 점에서 뜻 깊다고 할 수 있다.
과연 사라진 건축물 뒤에 새롭게 나타나 도시를 장식하고 있는 건물을 스스럼없이 좋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기도 하다.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역사성을 퇴색시키면서 개성 없는 도시로 전락하게 해 당황스럽기도 하다.
김 교수는 과거라는 냉동실에서 꽁꽁 얼어붙은 ‘근대시간’을 새로운 감각과 구성으로 해동시키면서 근대의 기억 형상을 구체화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근대건축’에 얽히고설킨 사연을 발굴하고 한국적 근대건축의 다양성과 특수성을 입증하기라도 하듯이 장마다 색다른 이야기로 풀어나간다.
최초의 신식 무기 제조공장이었던 번사창을 통해 근대국가로 탈바꿈하려는 대한제국의 노력과 좌절, 덕수궁 한적한 곳에 세워진 정관헌의 사연, 서울 한복판에 세운 영국공사관의 숨은 이야기, 캐나다 건축가 고든이 우리에게 남긴 건축정신,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이야기, 대천해수욕장의 선교사 별장촌, 해미읍성과 가톨릭 박해, 명동성당을 사랑한 코스트 신부 이야기, 3대 시장의 신화를 간직한 강경포구 이야기, 부산 왜관 이야기, 대전의 근현대사 등을 다루면서 참신한 읽을거리와 재밋거리를 건축 사람 장소 3박자로 엮어 생동감 있게 보여 준다.
책을 읽다 보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김 교수의 빠른 행보에 먼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웬만하면 이러한 행보에 스스로 지칠 법도 한데 적어도 저자에게는 이 말이 통하지 않을 것 같다.
어떤 이는 역사는 펜 끝에서 나온다고 했지만 이 책을 보면 역사는 발끝에서 나온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만큼 이 책은 근대건축의 대중화를 위한 발걸음을 재촉하는 동시에 역사기록의 부재를 막기 위한 면밀한 사료의 검증과 반복된 현장답사로 구성되어 있어 읽는 이에게 설득력을 더해 준다.
모든 것은 아는 만큼 보이기 마련이기에 근대건축에서 이해의 폭을 넓히고자 할 때 먼저 이 책을 읽고 답사 나가기를 권하고 싶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의적 또는 타의적으로 선대들의 삶과 함께 호흡하면서 공생해 온 근대건축을 보존이라는 영역으로 발전시키려는 김 교수의 뜻은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할 하나의 종착역이기도 하고, 문화적 다양성을 풍요롭게 하는 지름길이기도 하지만 우선 독자들에게 넌지시 던진 숙제이기도 하다.
최병하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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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실크로드 문명기행
《중앙아시아에서 화려하게 꽃핀 이슬람의 건축 문화에 황홀해지고, 이란에서는 오리엔트 문명의 정화를 응축한 중동 최대의 문명유적 페르세폴리스와 1500여 년간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조로아스터교의 성화 앞에서 숭엄한 감회에 젖기도 했다.》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 책 ‘실크로드 문명기행’에 관해 대화를 나누는 어느 북포럼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 모임에서 저자인 정수일 선생이 들려주는 맛깔스러운 얘기는 참가자 모두를 신비와 선망으로 가득 찬 ‘실크로드의 세계’로 빠져 들게 하였다.
저자는 기행문의 가치야말로 ‘시대의 실록’이라는 점에 있다고 강조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이란 실록이 없었던들 콜럼버스의 이른바 ‘신대륙 발견’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알렉산드리아 파로스 등대에 관한 중세 아랍 대여행가 이븐바투타의 현장 기록은 파로스 등대에 관한 유일한 실록이다.”
저자의 말처럼 오늘의 ‘기행 실록’은 후손에게 물려줄 역사 현장에 대한 생생한 실록으로서 그 값어치는 자못 크다고 할 것이다.
이 실크로드 실록의 초점은 어디까지나 우리 것에 맞춰져 있어 더욱 감동적이다.
중국 시안(西安)에서는 혜초와 원측 등 선현들의 행적을 재확인했고, 둔황(敦煌) 막고굴의 벽화에선 혜초 스님의 입적지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를 포착했으며, 쿠차 키질석굴에 이르러선 걸출한 동포화가 한낙연의 업적과 유작들을 역사의 먼지 속에서 찾아냈다.
그뿐만 아니라 키르기스스탄과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서는 고구려 유민 고선지 장군이 거룩한 발자국을 남긴 탈라스 전쟁터를 밟아 봤고, 유럽 문명의 토대 ‘종이의 길’을 트게 한 사마르칸트 제지공장의 전통 제지술 복원과정을 현장에서 지켜봤으며, 사마르칸트 아프라시압 궁전 벽화 속의 고구려 사절을 통해 고대 한국인의 국제교류상도 입증하였다.
그런가 하면 이란에서는 석류와 격구의 고향을 찾아 그 옛날 두 나라 사이에 오간 문물의 교류상을 더듬었으며, 이스탄불 토프카프 궁전박물관에서는 그토록 애타게 찾던 우리네 도자기의 흔적을 실증할 법한 유물도 발견했다.
저자는 “이 모든 유물들은 분명 우리의 역사와 문화의 단면들을 보여 주는 무언의 증인들”이라고 말한다.
저자의 이 같은 간절한 주장과 논리는 필자가 추구하는 ‘디지털 문화유산’ 역시 한반도 영내에 국한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해 주었다.
외국에 남아 있는 한민족 관련 문화유산도 디지털 문화유산의 범주에 포함시키도록 다짐하게 했으니 필자에겐 실로 값진 개안(開眼)의 계기였다.
그래서 그날 북포럼이 시작될 때는 그저 실크로드에 대한 담담한 관조자(觀照者)였으나, 북포럼이 끝날 무렵엔 어느덧 나 자신도 실크로드 도상(途上)의 한복판에 서있음을 느꼈다.
이렇듯 이 책은 교류의 무한 확산 시대에 실크로드에 관한 의미 있는 문명기행서다.
우리 문화와 아무 상관이 없을 성싶은 실크로드의 먼 지점에서도 우리의 문화를 새삼 재확인해 주면서 그 도도하고 서사적인 흐름을 보여 준다.
실크로드의 갈피마다 찍혀 있는 우리 문화의 흔적을 되새겨보면서 한(韓)문화를 일궜던 옛사람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높은 자긍심을 느낀다.
박진호 KAIST 문화기술 연구센터 선임연구원 문화재디지털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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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자전거 여행
《구르는 바퀴 위에서, 몸은 낡은 시간의 몸이 아니고 생사가 명멸하는 현재의 몸이다. 이끄는 몸과 이끌리는 몸이 현재의 몸속에서 합쳐지면서 자전거는 앞으로 나아가고, 가려는 몸과 가지 못하는 몸이 화해하는 저녁 무렵의 산속 오르막길 위에서 자전거는 멈춘다.》바퀴 위에서 문득 깨달은 삶의 축복
매일처럼 단조롭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우리의 감각과 인식은 타성에 젖어 생생한 활력을 지니지 못한다.
일상은 감흥을 주지 못하고, 우리는 진정한 의미를 묻지 못한 채, 존재와 세계를 그저 지나쳐 간다.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이런 되풀이 속에서 삶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삶은 일상 ‘안’의 나만이 아니라, 일상 ‘밖’에 감추어져 있는 나의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밖’에 있는 나를 찾고 싶을 때 우리는 여행을 떠난다.
물론 우리에게 ‘밖’인 여행지 역시 그곳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익숙한 일상 ‘안’의 터전이다.
그러니 문제는 떠남 그 자체가 아니라, 존재와 세계를 느끼고 인식하는 시선의 차이일 것이다.
타성에 젖어 보는가, 아니면 새롭게 보는가.
게다가 우리들 대부분은 일상의 이런저런 일에 묶여 매일처럼 떠날 수는 없다.
따라서 친숙하다 못해 진부한 일상의 굳어진 감각과 인식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세계와 삶을 새롭게 느끼고 싶을 때, 우리는 여행자의 기록을 펴 든다.
소설가 김훈 씨의 ‘자전거 여행’은 그때 절대로 빠뜨릴 수 없는 기록이다.
전남 여수 돌산도 향일암, 담양 소쇄원, 순천 선암사, 경북 경주 감포 등 우리 국토 곳곳에 배어 있는 생명력과 문화의 흔적들. 자전거 ‘풍륜’을 타고 떠난 이 여행은 20세기의 마지막과 첫머리에 걸쳐 이루어졌다.
외환위기의 환란 속에 삶은 요동치고, 사람들은 충격과 당혹에 휩싸여 있을 때였다.
그 역시 오랜 언론인 생활을 마감하고 늦깎이 글쟁이의 첫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50대 초반 그의 앞에 주어진 시간은 자유이자 공포였을 것이다. 김훈 씨는 ‘빈곤한 한 줌의 언어로 그 운명에 맞선다’.
막막한 시간의 빈자리에 명료한 이름을 부여하는 것, 그것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출구였다.
그는 자전거와 함께 그 시간의 길을 저어 갔고, 마침내 지나온 길에다 ‘사는 일과 목숨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을 붙인다.
그 길은 남도 끝의 바다에서 태백산맥의 깊은 골짜기까지 이어져 있다.
페달에 얹은 두 발과 온몸의 근육을 통해 얻은 그 이름이야말로 우리의 국토에 바쳐진 최고의 헌사 가운데 하나다.
그래서 나는 이 ‘자전거 여행’이 ‘한국 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이라 불린 그의 대표작 ‘칼의 노래’와 쌍둥이라고 생각한다.
‘사는 일과 목숨의 아름다움’이란 이름을 찾지 못했다면 그의 ‘칼’ 역시 ‘노래’를 부르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여행은 그 자신을 포함하여 20세기 말 너무도 쓰린 상처를 겪어야 했던 이 땅의 사람들을 위무하는 절절한 노래였다.
나 역시 짧지 않은 외국생활을 청산하고 들어와 겪어야 했던 ‘세기말’의 막막함을 이 사랑의 말들을 통해 건너갈 수 있었다.
나날의 삶에 지칠 때, 살아 있음의 기쁨이 잘 느껴지지 않을 때, 나는 기꺼이 김훈 씨의 ‘자전거 여행’을 펼쳐 든다.
몸을 통해 전해지는 국토와 생명이란 에너지의 폭발, 오늘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그 뜨거운 기록을 읽는 일은 복되다.
박철화 중앙대 교수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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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중국문화답사기
《중국 산천은 시체가 즐비한 전쟁터이자 수레와 배가 왕래하는 낙토(樂土)이기도 하다. 또한 봉건시대 권력자들이 생명의 불을 환하게 밝히거나 꺼지게 했던 곳이자, 시인들의 위대한 생명력이 한껏 위세를 발휘할 수 있도록 비호하던 곳이기도 하다.》중국 詩文과 풍경의 만남
중국 여행은 그들의 오랜 역사와 문화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다.
크고 작은 도시와 향촌 곳곳마다 성벽과 원림(園林), 누각과 사묘(寺廟)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고, 심지어는 큰 바위 고목 하나까지 역사의 이끼 속에 서서 여행객을 맞는다. 그런데 그런 경관들이 빼어난 풍광, 역사적 사연만으로 거기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앞서 다녀간 시인묵객들이 그것들을 체험하며 써낸 다양한 시문(詩文)이 있어 그 유적들은 한층 깊은 문화적 의미를 자랑한다.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다룬 여행기가 여럿 있지만, 위추위(余秋雨)의 ‘중국문화답사기’가 특별한 것은 바로 이러한 문인들의 발자취에 대한 관심이 글 곳곳에서 시종 이어지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막의 변방이나 아름다운 강남 작은 마을 어디를 가든 그곳을 이름나게 한 시문이라는 문화적 배경 속에서 풍경들을 다시 바라본다.
대부분의 일반 여행기처럼 그곳 여행지의 생김새를 그려 보이거나, 독자들이 훗날 찾아갈 때를 위해 길 안내를 하는 일에는 거의 신경 쓰지 않는다.
그에게 산수 자연은 내내 ‘인문학적 산수’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여행기는 중국 문학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를 어느 정도 갖춘 독자가 맘에 들어 할 책이다.
관광버스 단체 여행부터 혼자서 떠도는 여행까지 여행의 방식은 여러 가지다.
이 책은 혼자 혹은 두셋의 벗과 터벅터벅 걸어 다니며 유람하다가 때로 생각에 잠기는, 그런 호젓한 여행길에 알맞다.
그는 사막과 산천, 강촌과 도시를 만날 때마다 학자다운 문화적 해석과 더불어 매우 주관적인 격정으로 그들을 그려 내고, 끊임없이 생각한다.
예컨대 ‘영혼을 울리는 사막과 푸른 샘물’에서 독자는 이 글이 끝날 때까지 저자가 어디를 여행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가 ‘산은 명사산(鳴沙山), 샘물은 월아천(月牙泉), 모두 둔황현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마지막 문장을 읽게 된다.
강남의 전통 마을 저우좡(周莊)에 대한 여행기 앞에는 바로 그 언저리에서 겪은 문화혁명 때의 고통스러운 개인적 체험이 놓여 있다.
저자의 이런 독특한 문화답사기 쓰기 방식은 이 책이 출간된 후 수백만 권이 팔릴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키는 주된 요인이었다.
1990년대 초 출간 직후부터 전개된 ‘위추위 열기’는 폭발적인 판매량뿐만 아니라 이 책과 뒤를 이은 시리즈를 싸고 전개된 평단의 찬탄과 비판, 심지어는 매도에 가까운 공격으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은 그만큼 이중성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하다.
전문 학자가 보기에는 상업성을 노린 ‘분 바른’ 모습일 수도 있고, 일반 독자들은 흥미로운 글쓰기로 아속공상(雅俗共賞·고상한 것과 세속적인 것을 함께 감상함)의 마당을 연 신선한 일로 여겨질 수 있다는 뜻이다.
결국 평가는 독자 자신에게 달린 셈이다.
이등연 전남대 중문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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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에게-영원 회귀의 바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 교과서 속의 역사, 이런 것들은 전부 윤색된 것이다…가장 전통적인 역사는 기록되지 않은 역사, 언급되지 않은 역사, 후세인(後世人)이 전혀 모르는 역사가 아닐까.》고대 그리스 문명과 역사에 대한 지식 없이 그리스나 터키, 시칠리아를 여행하는 사람들이 처음 느끼는 것은 자신의 엄청난 무지다.
초창기 인류 역사가 싹튼 이 땅에는 유적지마다 우리가 알지 못했던 수많은 전설과 사연이 시루떡처럼 켜켜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런 무지를 마주한다는 일만큼 끔찍한 일도 없다.
이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떤 사람은 무지 앞에서 좌절하고 애써 이 사실을 외면하려 한다.
그런다고 자신이 무지하다는 사실이 바뀌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굳이 외면하려는 것은 그 사실이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용기 있는 사람들은 무지를 떨쳐 버리기 위해 어려운 도전을 선택한다.
괴롭기는 하지만 개척자 정신을 갖고 처음부터 하나하나 배우면서 무지를 정복해 나간다.
이 기행문의 저자 다치바나 다카시(立花隆)는 바로 이런 도전 정신의 소유자다.
도쿄(東京)대를 나와 일본 최고 지성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그가 1972년 겨울 시칠리아의 셀리눈테를 우연히 들렀을 때, 잘 보존된 거대하고 멋진 그리스 신전들 앞에서 망연자실하고 만다.
그곳에 그런 유적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도시에 대한 역사 기록이 부족해서 각 신전이 어떤 신에게 바쳐졌는지 모르기에 그냥 A, B…O라고 알파벳으로 불리는 것을 보고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묻는다.
‘눈앞에 보이는 신전이 이토록 멋지게 보존되어 있는데도 이 신전이 어떤 신전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면, 기록된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 오히려 기록되지 않은 역사가 훨씬 더 많은 것이 아닐까.’
그리곤 자신이 그때까지 알고 있었던 역사에 대해 깊은 회의에 빠지기 시작한다.
그 후 그는 홀린 것처럼 고대 유적을 찾아다닌다.
그리고 이 같은 지적 모험에 대한 그의 열정은 마침내 1982년 그리스 터키 여행으로 이어진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사진작가와 함께하는 본격적인 취재 여행이었다.
40일 동안의 여행에서 그는 될 수 있는 대로 길을 돌아간다.
마치 일주일이면 도착할 이타케를 20년 동안이나 표류했던 오디세우스를 닮은 모험이다.
그 길에서 그는 가는 곳마다 새로움으로 가득한 과거의 위대한 흔적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쓰이지 않은 역사를 발견하면서 자신의 생각이 맞아 들어가는 지적 희열을 맛본다.
이야기는 그의 마지막 방문지인 수도사들만의 공화국, ‘성산 아토스’에서 시작해서 이오니아 문명의 종말을 보여 주는 폐허, 밀레토스에서 끝난다.
이성을 포기하고 믿음에 자신을 맡겨 영원한 세계를 꿈꾸는 수도사들의 세계에서 인간 이성의 세계가 시작된 서양 철학의 아버지 탈레스의 도시로, 시간을 거스르며 ‘영원 회귀의 바다, 에게 해’를 누비는 저자의 지적 모험. 그 자체가 시작도 끝도 없는 영원회귀의 행동인 듯 하나의 거대한 원을 그린다.
유재원 한국외국어대 교수 그리스발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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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고구려 역사유적 답사
《진정으로 과거의 역사를 만나게 되는 것은 답사를 통해서다. 한발 한발 내디뎌 온몸으로 답사를 하다보면 어느새 사료 안에서 접하던 인물들과 호흡을 같이 하게 되는 순간도 느껴지며 그들이 살았던 환경과 공간을 통해서 추체험을 하게 된다.》대륙 호령하던 고구려의 숨결을 찾아
이 책은 서길수 교수가 11차에 걸쳐 고구려의 첫 번째 도읍지인 홀본(忽本·중국 랴오닝 성 환런) 지역과 두 번째 도읍지인 국내(國內·중국 지린 성 지안) 지역에 산재한 고구려 유적답사 기록을 정리한 것이다.
저자는 자신이 다녔던 두 곳의 도읍지를 중심으로 고구려 역사 유적 답사기를 시작한다.
첫 도읍지인 홀본은 고구려 당시의 이름으로 졸본(卒本)이라고도 불렸던 곳이다. 홀본 지역의 답사에서 제일 관심이 가는 곳은 오녀산성. 이곳은 압록강의 지류인 혼강을 도도하게 내려다보면서 웅위를 자랑하는 산성이다.
오녀산성을 멀리서 바라본 사람들은 우선 웅혼함에 압도당하는데 그 위용은 아름답기조차 하다.
오녀산성 안에 남아 있는 고구려 당시의 유적 가운데 천지(天池)라고 불리는 못과 당시 쓰이던 연자방아 밑돌, 환런 시내에 있는 평지성인 하고성자를 둘러 본 저자는 빼놓을 수 없는 중요 유적인 상고성자 무덤 군, 미창구 무덤과 환런 주변의 고검지 산성 등도 안내한다.
이들 산성은 환런 지역의 방어체계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산성이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읍지인 국내 지역은 400여 년 동안 도읍지 역할을 했기 때문에 도시 전체가 유적에 뒤덮여 있다.
우선 장군총과 태왕릉, 무용총, 각저총, 오회분, 삼실총 등의 고구려 고분을 꼽을 수 있으며 광개토대왕비도 빼놓을 수 없다.
일제가 만든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報)’에 실렸던 광개토대왕비 사진을 이 책에 실었는데, 민가 옆에 우뚝 서 있던 비의 원래 모습을 잘 알아볼 수 있다.
이 사진을 통해서 414년에 비석이 세워진 후 1400여 년 동안 비바람을 맞으며 만주 벌판에서 온갖 세월을 견뎌 낸 ‘고구려’를 생각하게 한다.
광개토대왕비는 1920년대부터 비각을 세워 보호를 받고 있으나 어쩐지 갇혀버린 듯 답답하다.
이 책의 첫 번째 특징은 답사를 하기 위한 중요한 정보인 지도를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다는 점이다.
요즘이야 위성사진이나 인터넷의 발달로 중국에 대한 정보가 흘러넘치지만 저자의 이러한 배려는 이 지역을 찾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은 저자가 답사를 다니면서 꼼꼼하게 한 기록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볼거리는 많은 사진과 설명을 곁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유적에 관한 사진뿐 아니라 저자가 구입한 자료 사진, 유적의 평면도 등을 통해 생생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환런이나 지안 시의 고구려 유적뿐만 아니라 저자가 곳곳의 유적지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함께 기록한 점도 이 책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그들과의 에피소드는 과거의 흔적인 역사 유적과 잘 어우러진다. 그런 점에 차라리 이 책은 고구려 옛 도읍지의 여행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 책에 실려 있는 사진이나 정황 설명 등은 오늘날에 또 다른 사료로 재탄생한다. 급변하게 변하고 있는 중국의 발전 상황에 비추어 더욱 그러하다.
금경숙 동북아역사재단 전략기획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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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백두대간 가는 길
《금강산이 어른거리는 향로봉 정상에서 북녘 하늘을 한참 바라본다. 남북이 하나 되는 그날이 오면, 우리는 이 순간 잇지 못했던 나머지 반쪽을 호랑이처럼 단숨에 달려 기어이 백두산에 도달하고야 말 것이다. 그리하여 그 천지의 맑은 물로 목젖을 적시고 마음껏 포효할 것이다. 그날이 오면….》나는 백두대간을 다 밟아 보지 못했다.
백두대간이란 백두산에서 두류산(지리산의 옛 이름)에 이르는 장장 1625km의 큰 산줄기를 뜻한다.
이 큰 산줄기에서 북한 땅에 속한 구간이 985km, 남한 땅에 속한 구간이 640km이다.
북녘의 백두대간을 밟아 보지 못한 것이야 내 탓이 아니다.
하지만 남녘에 살면서, 게다가 명색이 ‘산에 다니는 놈’이, 지리산에서 진부령까지의 남한 땅 백두대간도 다 밟아 보지 못했다는 것은 커다란 부끄러움이다.
흔히들 남한 땅 백두대간을 24구간으로 나누는데, 내가 밟아 본 구간이라야 절반을 겨우 넘긴 정도이다.
그것마저 워낙 두서없이 이 구간 저 구간을 들쑤시며 돌아다녔던지라 이 위대한 ‘민족의 등뼈’를 올곧게 이해하는 데에는 턱없이 부족할 따름이다.
언제나 그러하듯 핑곗거리야 부지기수다.
하지만 백두대간의 곳곳과 거기 서려 있는 역사와 문화를 소개한 이 책을 뒤적이다 보니 이 모든 핑계들이 더할 나위 없이 초라해 보일 뿐이다.
아니 솔직히 고백하자면, 그나마 내가 이미 밟아 보았다는 그 열 두어 구간마저도 과연 제대로 알고나 지나친 것인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만약 그 길에 얽힌 역사나 문화를 알지 못한다면 길은 다만 길일 뿐이요, 걸음은 다만 걸음일 뿐이다.
백두대간이라는 용어가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문헌은 신라 말인 10세기 초에 쓰인 도선대사의 ‘옥룡기’다.
이 개념을 근간으로 삼아 우리의 국토를 면밀히 규정한 신경준의 ‘산경표’가 집필된 것은 1769년이다.
일제강점기에 처참히 그리고 의도적으로 묵살된 이 개념을 되살린 것은 1980년대 초 고지도 연구가 이우형 선생이다.
그리고 1980년대 이후 백두대간은 한국산악계가 끌어안은 가장 커다란 화두가 되었다.
그 덕분에 백두대간을 소재 혹은 주제로 삼아 쓰인 책만 해도 대형 서점의 한쪽 서가를 빼곡히 채우고 남는다.
하지만 산길은 다만 산길일 뿐인가.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헬스클럽의 러닝머신 위를 달린다거나 마라톤코스를 완주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깨달음과 의미를 갖추고 있어야 되는 것이 아닌가.
‘백두대간 가는 길’은 이 근원적인 질문에 성실하게 답한다.
이 책은 그저 종주를 위한 가이드가 아니다.
백두대간의 역사와 문화에 관한 이야기로 백두대간이 단지 물줄기가 넘나들지 못하는 큰 산줄기를 뜻하는 것이 아님을 말해 준다.
길과 그 아래 펼쳐진 산자락, 물자락에는 수천 년간 이어져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가 서려 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백두대간 자체가 우리 민족의 희로애락들이 덧쌓여 생성된 거대한 문화의 성채가 아닌가 싶은 느낌마저 든다.
책을 읽으며 나는 부끄러웠고 동시에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품게 되었다.
이제야말로 백두대간을 제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다는 희망이다.
나는 저자의 이 사려 깊고 튼실한 걸음걸이가 38선을 넘어 백두산까지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진심으로 기원한다.
심산 시나리오 작가·심산스쿨 대표
동아일보----------------
<22>화첩 기행 1, 2, 3
《예술의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예나 이제나 이것은 나의 꿈입니다. 나만의 꿈일 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현실이기를 소망하는 바이기도 합니다. 예술의 창을 통해 바라본다면 고달픈 세상살이도 한결 나아질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어지러운 풍경들도 훨씬 정돈될 것이라고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보이지 않는 예술의 힘입니다.》‘7월의 에게 해를 본 적이 있는가?
햇빛은 눈부시고 물은 깊은 청람색. 천지는 황혼이다. 태양에 녹은 신비한 묵색은 정령처럼 사람을 빨아들이려 한다.
바라보고 있노라면 삶과 죽음의 경계마저 흐려져 버린다. 저렇게 깊고 고운 푸른색 물속에서라면 죽음마저도 아름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물속에 뛰어들어 버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 바다는…. 햇빛이 강렬하고 물색이 고울수록 조심할 일이다.’(‘화첩기행’ 3권 가운데 ‘김우진·윤심덕과 현해탄-그윽한 물빛 위 떠도는 사의 찬미’에서)
저자 김병종의 붓끝을 따라 천재 작가 김우진과 절세의 소프라노 윤심덕의 자취를 더듬어 가다 보면 한 세기 전, 문명의 동이 트기를 기다리기 힘겨워했던 두 사람의 영혼이 저자를 통해 문득 책을 읽는 나에게로 스며들어 오는 듯하다.
저자는 이렇게 먼저 떠난 예술가들의 차가운 흔적에 자신의 따뜻한 체온을 담아 우리에게 전한다.
이 책은 저자의 글과 그림 재주를 유감없이 내보이고 있다.
유려한 문체와 지적인 어휘, 청량한 그림만으로도 하고많은 기행문 중에서도 이 책은 단연 돋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이 가슴에 오래 남는 이유는 앞서 간 예술인들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존경이 녹아 있기 때문이다.
기행문만큼 저자의 면모가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글은 없다.
저자와 여정을 함께한 화첩은 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맑은 눈과 뜨거운 가슴을 그대로 전한다.
이 책은 괴테의 ‘이탈리아 기행’에 비견될 만하면서도 우리의 정서를 매료시키는 훈훈함에 있어서는 단연 한 수 위다.
윤선도의 보길도, 정지용의 옥천, 이인성의 대구, 이응로의 파리, 채만식의 군산, 박수근의 양구, 정선의 금강산 등 우리 예인들의 흔적을 찾아가는 길은 그래서 감동적이다.
연초에 고창엘 다녀왔다. 서정주의 시비와 아직 꽃망울도 피지 않은 동백나무 숲을 뒤로 하고 선운사 절문 앞에 늘어선 장어 집 중 하나를 골라 들어갔다.
진짜 복분자술과 함께 풍천장어를 맛보고 싶었다.
“이제 풍천에는 장어가 안 나요. 다 수입이지 뭐….”
장어 집 주인의 대답이 웬만하면 원망스러웠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서운하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풍천장어 맛이 궁금했던 것이 아니었다.
고창으로 내려가는 길 내내 ‘화첩기행’ 1권의 ‘서정주와 고창’ 편에 실린 저자의 그림 ‘학의 다리를 무는 풍천장어’가 머리를 떠나질 않았다.
그 그림 속 장어는 늘씬한 학의 다리를 물고 늘어져서는 미끈한 허리로 물을 가르는 품이 금방이라도 물이 튈 듯 싱싱했다.
그림 한 장을 한숨에 다 그린 듯 붓이 한순간도 쉰 흔적이라곤 없었다.
내 눈 앞에도 저자의 화첩과 같은 풍광이 펼쳐지기만 한다면 저자가 애정과 존경으로 되살려 놓은 앞서 간 예인의 체취를 느낄 수만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떠나고 싶다.
나의 다음 행선지는 어디가 될 것인가. 몇 번이나 읽은 책을 오늘도 다시 뒤적인다.
조윤선 한국씨티은행 부행장·변호사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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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김윤식 문학기행
《대륙과 섬나라와 반도. 하나는 땅에 안정되고, 하나는 땅에서 즐기고, 하나는 땅을 떠난다. 첫째의 길은 강하고, 둘째의 길은 즐겁고, 셋째의 길은 쓸쓸하다. 강한 것은 숭배되기 위해서, 즐거운 것은 맛보이기 위해서, 쓸쓸한 것은 위로받기 위해서 주어졌다.》이 책은 한국 현대문학 연구가로 명성 높은 김윤식 명지대 석좌교수의 기행문집이다.
김 교수가 국문학 연구에 바친 평생의 노고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가 예술적인 기행 산문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사람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득한 회색 선연한 초록’ ‘청춘의 감각 조국의 사상’ ‘지상의 빵과 천상의 빵’ ‘환각을 찾아서’ 같은 저서들은 여행가이자 예술적인 산문가인 김 교수의 면모를 잘 보여 준다.
‘김윤식 문학기행’에서 저자는 몽골의 울란바토르, 네팔의 카트만두, 중국의 타이산(泰山) 산과 룽징(龍井), 그리고 일본 도쿄(東京)같이 ‘텅 빈’ 세계를 떠돌면서 우리 문학과 문화의 자취를 찾았다.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들리지 않는 것들을 잡아내고자 하는 이 책은 영혼의 순례집이다.
여기서 저자는 바야흐로 샤머니즘의 영매가 된 것처럼 두 손에 영혼의 대나무를 쥐고 우주의 리듬에 반응해 나간다.
이 책의 서문에서 저자는 일생 동안 자기의 생각을 실체화하고 싶었다고 썼다.
이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저자는 무수히 많은 논문을 썼지만 갈증은 풀리지 않았고, 때문에 그는 ‘순수 감각’의 힘으로 자신의 생명을 노래하고 싶어 했다.
모름지기 연구는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법이다.
그러나 저자는 역설적으로 이 밀실에서 전력을 다해 도주하고 싶어 했다. 자신의 생명을 다른 방식으로 확인하고 싶어 했다.
기행 산문들은 그러한 도주의 기록이다.
이 책에서 저자는 야생과 원시의 공간을 떠돌면서 근대적인 인식과 미의식의 한계를 초월하고자 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의 고단한 ‘여행’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한다.
길은 아무리 멀리 나아가도 결국은 자기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다.
김 교수에게 ‘여행’은 문학 연구가답게 형이상학적인 의미를 내포한다.
여행 과정에서 두통과 피로감을 선사하는 타자의 낯선 존재감은 대상을 인식하는 ‘나’의 한계를 일깨운다.
‘나’는 ‘나’의 ‘외부’를 ‘나’의 것으로 만들기 어렵다.
일찍이 일본의 비평가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가 석굴암과 조선의 민예품에서 얻은 기묘한 미의 체험을 저자는 이 산문집의 여행 속에서 되풀이한다.
그러나 단순한 반복이란 없다.
‘김윤식 문학기행’은 ‘울림’과 ‘헛것’을 찾는 저자의 신선한 감성과, 인식의 한계에 관한 현대판 이론 및 지식이 서로 맞서고 서로 삼투됨으로써 창출되는 어떤 고상한 국면을 연출한다.
이론과 지식의 측면에서 우리는 그것을 오리엔탈리즘론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포스트콜로니얼리즘(탈식민주의)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머나먼 울림, 선연한 헛것을 향한 그의 여행은 이런 이지의 영역을 초월해 나간다.
이 책을 읽는 사람은 영혼을 젊게 유지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 한없는 갈증, 그 비상한 초월 의지로 인해 기행문집 속의 그는 언제나 젊다.
방민호 문학평론가 서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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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
《티베트를 떠나며 깨닫는다. 그림자를 없애는 단 한 가지 방법은 그림자를 만들어 내는 몸이 영원히 존재한다는 착각을 버리는 것임을. 그림자와 싸우지 않고, 그림자를 만드는 몸의 실체를 고요히 바라봐야 하는 것임을.》티베트, 상처받은 영혼의 정화
왜들 이러나 싶을 만큼 얼마 전부터 많은 이가 티베트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티베트란 나라 이름 앞에는 당연한 듯 ‘그리운’이라는 형용사가 빠지지 않았고 이야기가 무르익을라치면 ‘세상 모든 바람이 모이는 곳’이거나 ‘하늘과 가장 가까운 땅’이거나 ‘가없는 사랑과 치유의 에너지가 넘치는 장소’로, 나아가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 달라이 라마의 고향’으로 이어졌다.
결론은? 모두 “죽기 전에 꼭 한 번 티베트에 가고 싶다”는 것. 요가와 영성과 기쁨의 나라, 인도에 대한 뜨거운 열기가 수그러들 즈음이었다.
배낭 여행으로도, 순례 여행으로도 인도에 못 가본 탓이었을까.
인도나 티베트 이야기만 나오면 은근한 열패감과 주눅이 들어 눈 둘 곳이 없었다.
“왜 하필 티베트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 티베트 문화 기행서의 저자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사니까 바보가 많을 것 같아서요”라고 대답한다.
이미 ‘티베트의 아이들’을 펴냈던 그녀는 차밭의 고향에서 태어난 사람답게, 그리고 명상 잡지를 만들던 사람답게 경쟁과 빠른 속도와 이기적인 욕망이 휘몰아치는 이 풍토에서 탈진했으리라.
아무리 사랑의 마음을 품고 천천히 살고자 마음먹었더라도 초발심을 온전히 지키기가 버거웠으리라.
티베트로 가지 않으면 안 될 치명적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저자는 그렇게 ‘진정한 바보’를 만나고 싶어서, 사랑을 배우고 싶어서 거의 생명을 걸고 허락도 없이 중국 공안의 눈을 피해 티베트로 깊게 들어간다.
이 책에는 나라와 고유문화를 빼앗긴 채 오직 불교와 달라이 라마의 가르침만을 가난한 몸에 품고 살아가는 티베트 사람들에 대한 저자의 공감이 눈물을 적실 만큼 절실하게 묻어난다.
저자는 성스러운 산 카일라스를 오르고 죄를 씻어 준다는 호수에서 몸을 씻는다. 티베트 곳곳의 삶과 문화를 만나면서 상처와 분노 그리고 자학의 끝의 허망함을 본다.
아무려나. 인도와 티베트를 말하던 사람들은 말 그대로 죽기 전에 그곳을 향해 떠났고 돌아왔다.
안타깝게도 그들 모두가 사랑을 배워온 것처럼 보이진 않았다.
여전히 난 인도도, 티베트도 가지 않았다.
그러나 가장 안타까운 건 “정녕 사랑을 배워 왔으면 그 사랑을 보여 보라”고 그들에게 종주먹을 들이대며 따져 묻는 마음의 내 꼬락서니다.
저자는 홈페이지에 이렇게 써 놓았다.
“사랑은, 한번 익히고 나면 평생 잊지 않는다는 자전거 타기나 은행원들이 돈을 부채처럼 펴서 세는 기술과는 다르다.
사랑은 배우고 나서도 자주 넘어진다.
때때로 화가 나고 미워지고 원망스러워지는 건 사랑의 반대편에 선 감정들의 습(習)이 너무 깊은 까닭이다”라고.
생전 처음 나도 사랑을 배우고 싶어 티베트에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나야말로 죽기 전에.
권혁란 이프 출판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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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우리 궁궐 이야기
《궁궐을 제대로 보려면 현상의 이면을 파고들어 그 원형과 본질을 보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궁궐이 그렇게 된 내력을 찬찬히 짚어 볼 일이요, 더 나아가서는 그에 얽힌 우리 역사를 더듬어 볼 일이다.》궁궐만큼 우리에게 가깝고 친숙한 문화재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궁궐만큼 우리가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었던 문화재도 없다.
그동안 궁궐을 단지 ‘고래등 같은 기와집들’이 모여 있는 공간, 혹은 호사가적 관점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가득한 곳으로 접근하고 이해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궁궐박사’ 홍순민 교수의 궁궐 기행서 ‘우리 궁궐 이야기’는 역사적 실체로서 궁궐 읽기를 시도한 본격적인 대중서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 점은 궁궐을 다룬 기존 책과 차별화된 부분이기도 하다.
조선 후기 정치사를 공부하던 저자가 궁궐에 대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뭘까.
“왕에 대한 기록은 굉장히 많으면서도 정작 왕이 어떻게 살았는가, 어떤 활동을 했는가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
왕의 구체적이고 세밀한 활동상을 알기 위해서는 왕이 활동하던 공간인 궁궐을 상세히 알 필요가 있었다”고 밝힌 집필 후기는 역사학자로서 궁궐에 대한 남다른 시각과 접근 방법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당연한 얘기지만 왕조사회에서 주권자이자 통치자인 왕의 활동무대인 궁궐은 곧 ‘국정운영의 최종 단계가 행해졌던 최고의 관부’였기 때문이다.
이 책이 지닌 미덕 가운데 하나는 저자가 직접 권하는 꼼꼼한 ‘입궐 채비(궁궐 멀리서 보기)’이다.
궁궐이 있는 서울과 도성, 궁의 종류와 궁궐의 짜임새 등에 대한 이야기는 궁에 발을 들여놓기에 앞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이해를 돕고 있다.
특히 별도의 장을 마련해 궁궐 답사에 앞서 어떠한 안목으로 세 가지의 ‘사이-간(間)’, 즉 공간 시간 인간을 들여다보고 원형을 추적해야 하는지 강조하는 대목은 궁궐뿐 아니라 ‘깊이 있는 문화유산 답사’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견지해야 할 철칙임을 알려준다.
이 책 곳곳에서 저자가 ‘거침없이 시비’ 삼는 부분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를테면 서울 종로구 세종로 교보문고 앞 ‘기념비전’을 ‘비각’으로 부르는 문제나 ‘백악산’을 ‘북악산’으로 부르는 문제, 경복궁을 왜 ‘정궁’이 아닌 ‘법궁’으로 불러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제기는 용어 사용에 대한 시비가 아니라 대상에 대한 바른 인식의 출발점이다.
더불어 우리가 잘 몰랐던 일제강점기 궁궐 수난사를 펼쳐 들면, 이는 되풀이 되어선 안 될 문화재 수난사의 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저자는 창덕궁 금천교 난간기둥의 작은 돌짐승처럼 지나치기 쉬운 궁궐 구석구석의 소품에도 애정 어린 시선을 주면서 ‘명품이 지닌 디테일의 맛’도 일러 준다.
지금 우리 눈앞의 궁궐은 아직 과거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모습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끄는 대로 역사적 원형 복원을 통해 궁궐을 답사한다면 예전의 장엄했던 모습을 머리로 그려 보는데 어렵지 않을 듯하다.
300컷이 넘는 그림과 사진에 저자가 직접 붙인 설명글은 덤이자 재미다.
강임산 문화재청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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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옛집의 향기, 나무
《(해미읍성에서) 두 나무의 실제 간격은 몇 걸음밖에 되지 않았지만 두 나무 사이에 놓인 삶의 거리는 아득하다.…그때 느티나무는 호야나무에 묶여 고통받던 교인들을 어떻게 외면했을까. 아마 두 눈을 질끈 감고 귀를 막아야 했을 게다.…이렇듯 두 그루의 나무는 엇갈린 운명 속에서 삶을 이어 왔고 지금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흔히 ‘나무처럼 살고 싶다’고들 말한다. 삶이 고단하거나 버겁다고 느낄 때 더 그렇다.
우리 눈에 비친 나무는 항상 꼿꼿하게 제자리를 지키며 굳건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나무의 한살이를 꼼꼼하게 지켜본 사람이면 그런 말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안다.
겉으로는 당당하고 의연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나무도 제 딴에는 힘겨운 삶의 굴곡과 매듭들을 힘겹게 그러나 당당하게 헤쳐 가며 살고 있다.
나무는 알면 알수록 우리네 삶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된다.
그렇게 나무의 삶은 우리에게 삶의 태도와 방법을 묵묵히 가르친다.
그래서 나무는 특히 고맙다.
저자의 차를 타고 함께 천리포 수목원에 간 적이 있다.
자그마한 체구의 그에게 덩치 큰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이 크게 느껴져서 날렵하고 가벼운 차가 낫지 않으냐고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온 나라 구석구석을 찾아다녀야 하고, 때론 거친 들판과 좀처럼 사람을 들이지 않으려는 자연의 숨은 곳을 찾으려면 어쩔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의 차는 불과 3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다른 사람이 10년은 탈 만한 거리를 이미 훌쩍 넘기고 있었다.
도대체 무엇이 그를 그렇게 불러냈는지 궁금했다.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고 무작정(옆에서 보기에는 그랬다) 온 나라를 뒤지며 나무 순례를 하는 걸 보고는 무모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식물학자도 아니고 그 방면에 전문가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저 잠깐 머리 식히는 일이겠거니 했던 일이 한 해가 지나고 다시 서너 해를 넘길 때쯤 돼서야 그가 새로운 주제에 삶을 송두리째 걸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이 땅의 늙은 나무들에 대한 그의 순례는 구도자적인 것이라기보다는 그저 나무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겸손함에서 온 것이라는 걸 이제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다.
이 책은 옛 건축물과 함께 살아 온 나무들을 직접 보고 어루만지면서 그 감동적인 느낌을 옮겨 놓은 나무와 역사 답사기다.
가장 한국적인 정원으로 평가받는 전남 담양군 소쇄원의 소나무, 19세기 조선 최고 지성의 흔적이 남아 있는 충남 예산군 추사 김정희 고택의 백송(白松), 이 땅의 마지막 주막인 경북 예천군 삼강주막 옆의 회화나무 등등.
이 나무 답사기는 지금까지 그가 펴낸 여러 권의 나무 관련 책들과 조금은 다르다. 무엇보다 ‘더불어 산 나무’에는 그 나무와 함께 그 집, 거기 살았던 사람들의 삶과 다솜한 역사까지 넘침도 모자람도 없이 잘 어울려 있다.
관념으로 쓴 글이 아니라 힘겹게, 그리고 여러 번 찾아가 직접 보고 느끼고 익혀 두었던 게 따뜻한 그의 시선으로 되살아난 것은 분명 고마운 일이다.
그는 나무가 있어 행복할 것이다.
또 나무는 그가 있어 행복할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의 속내를 전해 주는 책이 있어 우리는 함께 행복하다.
김경집 가톨릭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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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웬디 수녀의 미국 미술관 기행
《이 청자 물병(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을 만든 12세기의 한국 도공은 작은 예술품을 만드는 마음가짐으로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나는 힘겨운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온 한국인이 이 물병의 유쾌한 아름다움에 미소 짓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미술관에는 도슨트(docent)라 부르는 전시 안내원이 있다.
아무런 정보도 없이 그저 눈 한 쌍에 의지해서 미술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전시를 보러 가기 전에 도슨트의 안내 시간을 미리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런데 같은 설명 내용이라 해도 어떤 도슨트가 이야기를 전하는가에 따라 전시를 보는 재미가 달라진다. 다양한 변형이 뒤따르는 구전문학의 미덕처럼, 혹은 소리판의 추임새처럼 도슨트 각각의 개인적인 감상이 곁들여지면 작품은 더욱 친근하고 매혹적인 것으로 변한다.
웬디 베케트 수녀는 우리 시대 가장 유명하고도 친근한 도슨트라 하겠다.
전문가적 감식안은 물론이고 할머니라는 ‘지위’가 주는 푸근함, 종교인으로서의 깊은 통찰력 덕분에 소개하는 작품 하나하나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의 책을 읽다 보면 당장에 발품을 팔아 직접 가 볼 수는 없지만 마치 입담 좋은 도슨트와 함께 미술관 관람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에서 미술관이 가장 많은 나라인 미국의 미술관을 소개한 이 책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보스턴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등 꼭 찾아가 봐야 할 미술관 여섯 곳과 그 소장품을 안내한다.
선정된 미술관도 소개된 작품도 모두 웬디 수녀만의 시각이 반영된 것인데, 유럽 회화를 위주로 했던 이전의 글과는 달리 아프리카 원시미술부터 데이비드 호크니의 최신 회화, 또한 전장의 갑옷에서 탁자 위의 게임 세트에 이르는 다양한 미술품을 다루고 있다.
그녀의 글이 많은 사람에게 따뜻함을 주는 것은 무엇보다도 웬디 수녀만의 ‘추임새’ 덕분이다.
엘 그레코가 그린 ‘호르텐시오 펠릭스 파라비시노 수사’를 이야기할 때는 그가 너무도 젊고 아름답고 지적인 시인이자 성직자라서 질투가 난다고도 하고, 한국의 분청사기 병 하나를 두고는 그 안에 우유나 묽은 수프, 혹은 와인이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곁들이기도 한다.
미국 남부의 킴벨 미술관을 소개하면서는 훌륭한 소장품보다도 눈부신 미술관 건축에 찬사를 보낸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경쾌함은 근본적으로 예술작품과 문화에 대한 애정에서 나온다.
그녀는 한 이집트 여왕의 두상 단편을 보면서 입술과 턱 부분만 겨우 남아 있는 이 작품이 무자비하게 훼손된 시기의 안타까움을 이야기하고, 동시에 수천 년이 지난 후에나마 비로소 그것이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 이 시대의 안목을 함께 말한다.
미술관에서는 이렇게 머나먼 시간을 관통하여 ‘매혹적인 과거’를 만나게 된다.
또한 그녀의 말처럼 “어떠한 선입견이나 방어, 조급함 없이 작품들을 볼 준비만 되어 있다면 예술은 우리를 변화시킬 것이다”.
황록주 미술평론가
동아일보----------------
<28>옛 다리, 내 마음 속의 풍경
《창경궁 옥천교 위를 여러 번 거닐어 본다. 옛적 군왕을 흉내 냄이 아니다. 어지러웠던 조선 왕조의 역사를 회억하는 것도 아니다. 다리라는 이름을 가진 조각품을 감상할 따름이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 거뭇거뭇해진 난간의 빛깔마저 더욱 장중함을 느끼게 한다.》메마른 마음에 그리움의 다리 놓다
이 책은 빨리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책 속에 담긴 사진이, 다음 페이지로 이어지는 문맥이 끊어지는지도 모르고 독자를 유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20여 년이 넘도록 집요하게 돌다리를 찾아다닌 저자의 풍부한 자료와 정보, 이를 풀어내는 미려한 문장은 책을 더욱 단단한 돌다리처럼 만들었다.
오랜 여행과 집필을 통해 겪었을 수많은 고통을 덜어내고, 저자는 깔끔하게 즐거움만을 주고 있었다.
저자가 자상하게 들려주는 다리 이야기를 통해, 참으로 오래된 것들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가지고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서 머무는 것들의 영원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여행을 하듯이 즐겁게 읽다가, 문득 왜 다리 사진에 사람들이 없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물론 서두에 임권택 감독의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아름다운 여인이 건너는 다리 사진이 있지만 그 뒤로는 오로지 다리만 있었다.
외로웠다. 사람이 그리웠다.
물론 글 속에서는 수없이 많은 사람이 손을 나에게 내밀었지만….
책을 읽다가 중간쯤에서 잠시 멈춘다. 편집자가 그런 의도를 알아서일까, 아니면 필자의 배려일까.
송광사 편을 보니, 신록이 가득한 송광사 청량각 홍교 위에 사람들이 머물고 있었다.
나도 그쯤에서 그들과 어울려 잠시 쉬었다.
책을 읽는 동안 많이 걸은 것 같아 ‘마음의 다리’가 좀 쉬고 싶어 한다.
그리고 여행의 여정이 끝나 갈 무렵에는 홍예교 아래에서 할머니들이 빨래를 하는 장면, 마음이 푸근해진다.
책을 읽는 것도 마치 다리를 건너는 것과 같다. 내가 지금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를 만나러 다리를 건너는 것이다. 저자는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혹은 이미 사라진 우리네 민초들의 섶다리부터, 차안과 피안을 건너는 불가(佛家)의 다리, 예술 작품인 궁궐의 다리에 이르기까지 거침없이 다리 위를 걸어간다. 흙다리 나무다리 돌다리 그리고 물위에 세운 다리가 아닌 산중에 있는 너럭바위다리까지. 이렇게 다양한 다리, 다리들.
사진들은 독자를 책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하고, 거닐게 한다.
중간 중간 그 다리에 머무는 마음은 어떤 때는 애잔하고, 어떤 때는 웃음이 나오고, 또 어떤 때는 비장하기도 하다.
우리의 다리를 통해 그는 우리의 잃어버리고 있는 ‘거시기’를 보여 주고 생각하게 한다.
황산벌에 있는 원목다리 편을 보면 호남선 철도변에 원목다리가 있다.
질주하는 기차 밑으로 원목다리가 선명하게 서 있다.
달리는 기차는 흐릿했다. 빨리 가는 것과 움직이지 않고 거기에 있는 두 사물의 대비를 통해 그가 찍고 쓴 것은 아마도 원목다리처럼 우리 곁에 오래 머물 것이다.
저자에게 감사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메말라 버린 마음에 연못을 파서 섬을 만들고, 거기에 연꽃을 띄웠고, 그리운 사람에게 가는 나무다리를 놓았다.
원재훈 시인
동아일보----------------
<29>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
《다시 미술관 밖으로 나선다. 하늘의 푸른빛이 훨씬 더 짙어졌다. 그야말로 짙은 쪽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하다. 하늘을 넉넉히 품은 운하의 물빛도 하늘만큼 깊다. 아, 더 이상 태양의 유혹을 외면할 수 없다. 내 그들의 유혹을 기꺼이 받아들이리라.》‘문화’, ‘낭만’, ‘유럽’, ‘기행’, ‘미술’ 모두 우리 시대의 코드와 직결되는 단어이다. 다소 나른하면서도 부르주아적인 이런 단어들이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온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0년대 중반에 들어 이른바 해외여행 자유화 ‘조치’가 내려졌으니 이제 우리도 20년이라는, 어쩌면 짧고 어쩌면 그럭저럭 논할 만한 연륜을 갖게 된 셈이다.
오늘도 인천국제공항은 숱한 여행객으로 북새통이지만 과연 이들이 여행지의 박제된 표피와 진열장 안에 정리된 유물의 ‘구경’을 넘어선 해석과 논리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관점을 가질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만 쉽게 떠나기 힘든 게 장거리 해외여행이니 남들도 알고 자신도 아는 것을 ‘단체’로 보고 오는 차원을 넘어서려면 약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여행다운 여행을 위해서라면 약간의 투자와 공부는 필요하지 않을까 싶은 것이다.
미술사 전공자답게 저자의 주된 관심은 방문한 도시들의 시각예술, 특히 그림이다.
저자는 시각예술이 사회와 문화, 정치의 유기적이고도 복합적인 산물이라는 사실을 차분하고도 예민한 글쓰기를 통해 잘 보여 준다.
한마디로 이 책은 시각예술의 인문학적 맥 짚기라 할 수 있는데, 특히 도시마다 중심 테마를 선정하여 완결된 하나의 스토리를 갖게 한 것은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이다.
저자가 둘러본 피렌체 톨레도 암스테르담 파리 런던 베네치아는 모두 유명 미술관이 있는 도시로서 각 도시의 특징은 기존 관념과 연결되기도 하고 특유의 삐딱한(?) 시선으로 인해 낯설어 보이기도 한다.
저자의 독특한 관점은 본문에서도 언급한 “우리에게 낯익은 대상이 그것과는 상관없는 장소에 놓여졌을 때 느끼는 이른바 ‘데페이즈망(d´epaysement·전치·轉置)’에 의한 당혹감과 신선함”을 만끽하게 해 주는 반가운 체험이다.
피렌체에서 사보나롤라의 죽음을 목도하고, 톨레도에서는 묵시록의 장면과 맞닥뜨리기도 하며, 파리에서 모디아노의 소설 속 고독한 소녀를, 베네치아에서는 비스콘티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을 떠올리지만 여정의 곳곳에서 경박한 일본인 쇼핑부대를 만나기도 하고 아름다운 화장실을 함께 이용하게도 해 준다.
이런 유의 책에서 곧잘 보이는 미술사 지식의 과시가 아닌 적절하고도 수준 높은 해설은 감탄스럽다.
도시와 미술, 그림과 영화, 곤돌라와 바포레토(수상버스), 포케몬과 홍등가, 르네상스와 무데하르 양식(스페인적 요소와 아랍적 요소가 결합된 예술), 기타 팝송과 오페라, 케밥과 인도네시아 요리까지 고루 잘 버무려진 성찬을 맛보았지만 역설적인 갈증은 더욱 커진다.
비틀스의 도시 리버풀, 러시아의 영광 상트페테르부르크, 동서양의 가교 이스탄불, 고대 그리스의 진주 아테네, 비겔란의 도시 오슬로 등등을 친절히 읽어 주면 기꺼이 와유(臥遊)할 것만 같다.
이건 욕심인가.
김상엽 인천국제공항 문화재감정관·미술사
동아일보----------------
<30>조선통신사 옛 길을 따라서
《아들 쇼노 신주로 씨는 축제와는 인연을 끊고 가업을 잇는 데만 전념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읍장이 찾아와 그에게 말했다. “재산만 이어받지 말고, 아무쪼록 아버지가 시작한 조선통신사의 일도 계승해 달라.” 쇼노 씨는 조선통신사 일을 이어받지 않을 수 없었다.》이 책은 한국과 일본의 조선통신사 연구자 6명이 통신사의 역사와 발자국을 따라가며 쓴 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옛 문헌상 통신사 여정을 답사하는 수준이 아니라 오늘날 살아 숨쉬는 통신사 행사에 함께 참여하고 그 속에서 일본 주민들과 직접 교류하면서 쓴 21세기 민간통신사의 기록이다.
덕분에 두 나라가 앞으로 어떻게 교류해야 할 것인지 단초를 열기 위해 고민한 흔적이 여실히 보인다.
임진왜란 동안 수많은 백성이 일본에 포로로 끌려갔다.
조선 조정에서는 전쟁이 끝난 뒤 그들을 되찾아오기 위해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다.
이름도 적국의 정세를 살핀다는 뜻의 탐적사(探賊使)였다.
그러나 조정은 가장 가까운 나라인 조선과 일본이 함께 살아남는 길은 신의(信義)밖에 없다고 생각하여 사신의 이름을 통신사로 바꿨다.
일본 막부에서는 쇼군이 즉위하면 조선에 통신사를 보내 달라고 요청했으며 조선에서는 시인, 화가, 음악가를 비롯해 씨름꾼, 바둑 두는 기객(碁客)에서 말 위에서 재주를 부리는 마상재(馬上才)까지 이르는 열댓 가지의 예능보유자들을 사신과 함께 파견했다.
중국과 외교가 끊어진 일본은 조선을 통해 외부의 문물을 받아들였다.
임진왜란 전에는 왜구가 수백 번이나 침입해 편안한 해가 없었지만 통신사가 파견된 200년 동안 두 나라 사이에는 모처럼 전쟁이 없었다.
1811년 마지막 통신사 김이교가 쓰시마 섬까지만 갔다가 돌아온 뒤 두 나라의 공식적인 외교는 끊어지고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군사강국으로 발전한 일본은 훗날 조선을 침략했다.
우리가 식민지에서 벗어난 뒤에도 통신사 이야기는 한국과 일본 모두 서로 잊고 있었다.
조선통신사 연구자인 신기수 선생은 1980년 ‘에도 시대의 조선통신사’라는 영화를 상영하고 “쓰시마에 살던 옛날 사람들이 한일 교류에 훌륭한 업적을 남겼으니, 자랑스럽게 여겼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 영화를 보고 감동한 쓰시마의 쇼노 고자부로 씨는 8월의 이즈하라 항구 축제의 메인이벤트로 조선통신사 행렬을 재현했다.
당시 쓰시마 주민 가운데는 조선 옷을 입는 것 자체를 부끄러워한 사람들이 많았으며 쇼노 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도 대화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타계 후 읍장의 간곡한 설명을 들은 아들은 두 나라가 함께 살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을 마침내 이해하고 통신사 행렬의 재현을 이어받았다.
2002년부터는 한국의 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가 해마다 사신과 취타대를 보내 쓰시마의 통신사 행렬 재현을 지원하고 있다.
특히 이 책에는 사진과 옛 그림이 많이 실려 있어 일반 독자들이 읽기에 좋다.
이 책은 쓰시마 섬에서 우시마 섬까지 뱃길을 따라 통신사의 문화를 찾아냈는데 오사카에서 에도(도쿄)까지의 육로 이야기가 나올 날이 기다려진다.
허경진 연세대 교수 국어국문학과
동아일보----------------
[문화예술답사기 30선]삶과 문화예술에 대한 성찰 기회
‘책 읽는 대한민국’의 2007년 세 번째 시리즈 ‘길에서 만나는 역사의 숨결-문화 예술 답사기 30선’이 17일 막을 내렸다.이번 ‘문화 예술 답사기 30선’은 인류가 남긴 문화 예술을 둘러보고 감상함으로써 인간의 삶과 역사 문화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 보는 기회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유럽 카페의 예술과 낭만을 소개한 ‘유럽 카페 산책’, 그동안 무심했던 우리 돌다리의 미학과 의미를 들여다본 ‘옛 다리, 내 마음 속의 풍경’, 고택의 나무를 통해 옛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만난 ‘옛 집의 향기’, 백두대간 곳곳의 꿈틀거리는 역사를 따라가 본 ‘백두대간 가는 길’, 섬과 바다에서 역사의 애환을 만난 ‘관해기(觀海記)’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문학 음악 미술 문화재와 같은 것만 문화 예술이 아니라 돌다리 하나, 나무 한 그루 모두 문화 예술의 소중한 흔적임을 잘 보여준 책들이었다.
또한 동서 교섭의 핵심 루트였던 실크로드에서 우리 문화를 되돌아본 ‘정수일의 실크로드 문명기행’, 우리 국토와 문화재에 대한 한국인의 무관심을 부끄럽게 만드는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도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 주었다.
이번 시리즈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은 책 행간에 녹아 있는 저자들의 사유와 고뇌를 만날 수 있었다는 점. 저자들의 안내를 따라 위대한 문화 예술을 만나는 것도 행복했지만 길 위에서 만난 시간의 숨결 앞에서 인간 존재와 예술의 본질, 역사의 무게에 대해 고민하는 저자들의 모습은 문화 예술 그 이상의 감동을 전해 주었다.
저자들의 이 같은 사유와 고뇌는 좀 더 효과적이고 감동적인 문화 예술 답사에 많은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
‘건축이야기 20선’ 28일부터 소개
한편 28일부터 ‘책 읽는 대한민국’의 2007년 네 번째 시리즈 ‘공간의 미학, 건축 이야기 20선’을 시작한다.
이광표 기자
문화 예술 답사기 30선 목록 도서(저자) 조선의 지식인들과 함께 문명의 연행길을 가다(김태준 외) 신(新)서울기행(최준식) 강석경의 경주 산책(강석경) 고구려 역사유적답사(서길수) 가 보고 싶은 곳 머물고 싶은 곳(김봉렬) 길 위의 삼국유사(고은기) 옛 다리, 내 마음 속의 풍경(최진연 ) 우리 궁궐 이야기(홍순민) 화첩기행1, 2, 3(김병종) 곽재구의 예술기행(곽재구) 관해기(주강현) 옛 집의 향기(고규홍) 남아 있는 역사 사라지는 건축물(김정동) 일본인의 영남대로 답사기(도도로키 히로시) 자전거 여행(김훈) 시간의 파도로 지은 성(김화영) 김윤식 문학기행(김윤식) 백두대간 가는 길(민병준) 조선통신사 옛길을 따라서(조선통신사문화사업회) 중국 문화 답사기(우치우위) 불교미술기행(조병활) 정수일의 실크로드 문명 기행(정수일) 에게, 영원회귀의 바다(다치바나 다카시) 지중해 문화기행(이희수) 유럽카페산책(이광주) 50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1,2(이주헌) 어느 미술사가의 낭만적인 유럽문화기행(정석범) 웬디 수녀의 미국미술관 기행(웬디 베케트) 그림 속 풍경이 이곳에 있네(사사키 미쓰오) 나는 그곳에서 사랑을 배웠다(정희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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