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引導) 이인호 선생을 찾아서대담기획인터뷰인물 2007. 3. 11. 18:22
익산군과 통합 익산시 문화원장, 12년 역임
익산문화발전의 산 증인
제주 전북도민회관위해 5천만원 서화기증도
인도이인호선생(72), 병마 뿌리치고 작품활동 전념
익산지역과 전북 문화창달에 공헌해 온 어르신이 있어 차가운 날씨를 녹이는 훈훈한 화제가 되고 있다.
특히 남국의 땅, 제주도 전북도민회관 건립기금을 위해 유명화가와 서예가 작품은 물론 자신의 그림 등 싯가 5천만원이 넘는 소장품을 기증한 적도 있는 선생은 고희를 넘긴 나이에도 달마와 난, 산수화 등을 그리는데 노익장을 과시해 주위를 놀라게 한다.
아울러 단청문화재로 조각, 승무, 바라춤은 물론 달마와 난을 그리는 등 1人10技, 80종목에 천재성을 보인 예술가이기도 한 선생은 익산군과 통합 익산시 문화원장을 3대 12년에 걸쳐 역임해 지역발전에도 엄청한 공로가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화제의 주인공은 다름 아닌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예도원(藝道苑)에 거주하는 인도(引導) 이인호 선생(72)이다.
선생은 1935년 금마면에서 여덟째 아들로 태어났다.
종손인 부친은 일곱 아들을 잃고 방황하고 어머니 혼자 선생을 낳고 신음중인 것을 탁발 왔던 금산사 소진산 스님이 목격한다.
스님은 "아이가 오래 살려면 부처님께 귀의시켜야 한다"고 말해 선생은 일곱 살에 금산사에 들어가 불교의식, 단청, 조각, 승무, 법고 등 불교예술을 전수 받고 장단과 가락을 접목키 위해 故박초월에게 국악도 깊이 터득한다.
이후 총무원장을 지냈던 손경산 스님에게 引導라는 불명 겸 아호를 받고 사회인으로 단청과 불화를 배우고 포교도 한다.
71년 단청문화재 164호로 지정되고 마곡사와 건봉사, 남산 팔각정, 대한문, 현충사 등 무수한 단청을 직접 맡는다.
그림과 소리를 접목시킨 한국화, 불화, 단청 등 전후 41 차례나 개인 및 단체전을 가진 선생의 작품은 선이 굵고 대담하며 선명. 우아하다는 평을 받는다.
불심과 회화성, 붓의 농담과 자비심이 적절히 조화를 이뤄 억세고 강한 힘이 솟구치는가 하면 머리카락보다 사실적이고 섬세해 감탄을 자아낸다.
한국미술작가협회와 국악협회이사도 역임했다.
92년 지역 문화발전을 위해, 금마면에 자택 '예도원'을 세우고 익산에서 본격 활동한다.
이후 3대에 걸친 문화원장 재임시는 이리노인회관과 함열노인회관, 익산문화원 건립 등에 도합 5500만원도 기부했다.
2004년 문화원장을 마친 선생은 그 해 시가 5천만원이 넘는 소장작품 201점을 재(在)제주 전북도민회관 건립자금을 위해 기증했다.
선생과 제주도 전북도민회와 인연은 30여 년 전 시작된다. 도민회 창설 전부터 공연과 전시로 제주에 들렀던 선생은 79년, 문화 불모지나 다름없던 제주 최초로 국악공연과 그림 전시회도 갖는다.
당시 전시회에서 소감을 묻는 질문에 선생은 '제주는 이국 땅 같으면서 참 아름답다'고 말한 것이 지금도 '제주는 아름다워'라는 문구로 제주 곳곳에 남아있다.
국악의 인식이 없던 당시 공연은 대성황을 이뤘고 자연스레 타향살이하는 전북도민을 접할 기회가 많아졌다.
도민회 크고 작은 행사에 천리 길을 마다 않고 참석했던 선생은 법화사 단청을 그릴 때인 90년 서귀포 도민회 사무실 마련을 위해 밤새 그린 그림을 전시 판매해 당시로는 거금인 3천만원을 기탁했고 후에 추가한 금액까지 5천만원을 기증했는데 지금도 사무실 전세금으로 남아있다.
갈 때마다 국악인이나 농악단을 동행하고 전북인의 향수감을 달래고 문화원장 시절, 익산문화원과 전북도민회 자매결연도 주선했다.
무수하게 제주를 찾던 선생은 58세이던 93년, 제주에서 갑작스런 심장병으로 12시간 죽었다 기사회생하기도 했다.
2004년 고희를 맞은 선생은 전시회를 해달라는 제주시 의견을 받아들여 사교로 얻은 것과 구입작품 등 50인 유명화가와 서예가 작품에다 자신의 작품을 포함해 201점 소장품을 전북도민회관 건립 기금을 위해 전시 판매했다.
기증작품은 남농, 석전, 소암, 시경, 경보, 창해, 매천, 동천, 동포, 가산, 아석, 지남 등 내노라 하는 명사의 서화이다.
인도선생은 "고희가 되니 뭔가 사회를 위해 환원해야겠다는 순수한 생각에서 국제관광 명소인 제주에 사는 전북인을 위해 기증한 것"이라고 회고했다.
2005년에는 팔봉도예와 힘을 합쳐 도자기에 달마와 난 등을 그려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선생은 이후 당뇨와 고혈압 등을 가뿐하게 뿌리치고, 최근 다시 작품활동에 전념한다.
“익산문화야, 세월에게 물어봐“로 시작되는 선생의 심정과 인생을 묘사한 듯한 시비가 세워진 금마면 기세배전수관 옆 자택은 작품을 구경하러 오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익산문화발전에 나름대로 기여하고 싶다"는 인도 이인호 선생은 나이 탓인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한다.
아무리 꽃샘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해도, 봄이 또 다시 오듯 선생의 건강이 날로 좋아져 소망대로 익산 문화발전에 성과와 함께 수많은 작품이 탄생되기를 기대하며 발길을 재촉했다./익산=고재홍기자>
--------------
'대담기획인터뷰인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익산교육청, 정광윤(鄭光允) 교육장 특별대담 (0) 2007.04.15 익산의 빛과 소금, 현대공업사 이희봉 대표 (0) 2007.04.12 익산교육청, 8년째 4번째 최씨가 관리과장 맡아 (0) 2007.01.18 (8도감사 송애(松崖) 반석평(潘碩枰)선생) (0) 2006.12.08 (8도감사 송애(松崖) 반석평(潘碩枰)선생) (0) 2006.1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