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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보리밭을 지나다가<김제>정치의회인사도시청사 2006. 3. 17. 07:39
근무지(하도리 철새도래지)로 출근하는 길, 선흘리 목선동 버스정류장을 막 지나니 수확을 마친 보리밭이 풋보리 내음새를 짙게 풍기고 있었다.
향기에 취해 얼떨결에 길 가에 차를 세웠다. 익숙한 내음새다.
눈을 감고 밭담가에 서서 코를 벌름거린다. 이 냄새...이 정겨운 보리 내음새...
아스라이 멀리 있던 기억들이 내음새따라 와글와글 기억밖으로 튀어 나온다.
초등학교, 중학교를 넘지 않았을 즈음, 기계 없이 몸으로만 때우던 시절이라 너나 없이 바쁜 농번기는 누구에게나 함께 닥쳤다.
품앗이를 살 수도 없었다. 얼추 익어가기 시작하면 미리미리 낫질을 시작해 보지만 온가족이 동원되어도 밭 한뙤기 수확하는데 사나흘이 걸리기 십상이었다.
아무리 바빠도 비가오면 일손을 놓아야 하고, 베어놓은 보리도 뒤집어 말려줘야 썩거나 싹트지 않았다.
베어 둔 보리가 잘 마르면 한 묶음에 알맞게 모아주고 볏짚이나 미리 장만해둔 칡넝쿨을 이용해서 묶는 과정을 거친다.
묶어논 보릿단을 나르는 일과 묶을 수 있도록 모아주는 일은 아이들이 많이 거들었다.
한 장소에 잘 모아두어야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거나 빨리 탈곡이 안 될때 노람지를 씌워 덮어줄 수 있었다. 탈곡기는 동네에 몇 안되는지라 차례를 기다려야 타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창 대목인 시기에는 차례를 다투느라 핏대를 올리며 언쟁을 하기도 하였다. 늦은 탈곡으로 자정을 넘기는 일은 그 시기의 다반사였다.
탈곡한 보리알곡은 또 멍석에 널어 저어가며 사나흘을 말려야 했다. 바람 좋은 날을 골라 까끄래기를 불려서 깨끗하게 만들어서 볕 안드는 고팡에 저장을 해 두었다.바쁜 와중에도 날씨가 나쁘거나 조금만 틈이나면 어머니는 통보리를 가마솥에서 노릇노릇 볶았다. 하얀 보리알의 내부가 쩍쩍 갈라져 먹음직스럽게 익으면 한 주먹식 쥐어 입에 털어 넣었다. 이 시기에만 맛 볼 수 있는 그 당시의 별미다.
땀을 뻘뻘 쏟아내듯 흘리며 볶아낸 보리를 등허리에 짊어지고 모슬봉을 타고 넘어 5km가 넘는 길을 걸어 모슬포까지 가서 가루로 빻아 오면 한여름 동안의 먹거리인 '개역'이 만들어졌다.
물 타 먹고, 밥 비벼먹고, 봉지에 싸들고 다니면서 마른채 먹기도 하던 이젠 추억 속의 음식이다.얼추 걷어들인 곡식을 어머니가 집안에서 단도리를 하는동안 아버지는 맏딸인 나를 데리고 봄걷이가 끝난 보리밭으로 나가셨다. 탈곡후 남은 보리짚을 밭 전체에 골고루 뿌려 널어놓고 불을 붙였다.
제초제가 없던 때다. 담벼락에 사는 덩굴식물, 보리밭에서 극성스럽기 짝이 없는
갈퀴나물 등의 잡초와 그 씨앗이 발아되지 못하도록 태워주는 것이다.
탁 탁 탁 탁 탁....
보리짚은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이천여평의 밭을 삽시간에 태우는데 불과 일이십분을 넘기지 않았다.
뜨거운 열기와 눈 아린 연기가 삽시간에 밭과 나를 에워싸고 천지를 혼돈으로 빠지게 한다. 시벌건 불꽃이 검은 혓끝을 낼름거리며 나를 삼킬 듯 작열하며 피어올라 보지만, 두껍지 않은 보리짚과 보리그루터기만으로는 금새 빈약한 그 힘을 드러내보이고 말아 불꽃도 비실비실 사그라들었다.
채 불이 이어붙지 못한 공간을 찾아 이리뛰고 저리뛰며 마져 불을 놓느라 아버지도 한여름의 굵은땀을 그렇게 보리밭에 뿌려 놓으셨다.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그냥 뇌리속을 스치는 환영처럼 바라보며 불꽃이 전하는 전율속에서 한참을 빠져나오지 못해 멍하니 서 있곤 하던 나의 내부에, 미쳐 펼치지 못하는 열정과 광기 같은 그 무엇인가가 주리틀어 억눌린채 있음을 느끼던 한 순간이었다.
여자아이는 무조건 참하고 어질고 말잘듣는 순둥이여야 하던 시절이었다.
그랬다.
유월이면 보리수확과 아울러, 콩이나 조, 참깨 등 가을 농작물을 파종하느라 눈 코 뜰 새 없이 온동네가 바빴다.
1년 동안의 양식이었고, 가끔씩 오일장에 내다팔아 생필품과 맞바꾸었다. 보리쌀을 한 짐 등에 짊어지고 모슬포 오일장까지 가시는 자그마한 어머니의 등을 졸랑졸랑 따라가면 새알이 동동 뜬 팥죽 한 그릇이 나에겐 덤으로 더 주어졌다.이젠 콤바인이란 기계만 갖다 대면 베고 탈곡까지 마쳐진 보리가 P.P 마대에 담겨지기까지 하루도 채 안 걸린다. 어버지, 어머니의 굵은 땀방울이 보리 낟알 속에 적셔지지도 않지만, 돈이 되어주지 못하는 보리밭은 이제 쉬 보이는 풍경도 아니다.
카메라에 그루터기만 남은 보리밭 풍경을 서너컷 담아본다. 농경 문화는 달라져 가지만, 보리 내음새는 기억속의 냄새와 전혀 다름이 없다.
내 나이 마흔 넷,
땀방울로 적셔낸 보리를 팔아 팥죽 한 그릇을 딸에게 안기던 어머니는 마흔다섯에 삶을 마감하셨다.
기억 속, 어머니의 향기도 어느날 이렇게 문득 다시 나를 찾아올 수 있다면야 얼마나 좋을까...코끝에 감도는 보리 내음새가 문득 서럽게 시려온다.
출처 : 팽이의 정원글쓴이 : 팽이 원글보기메모 :'<김제>정치의회인사도시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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