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내장산국립공원 남창계곡의 단풍은 무더기 무더기의 단풍이 아니라 나무 사이사이에 깃들어 있는 단풍입니다. |
|
ⓒ2005 서종규 |
| 지난 10월 30일 오후, 저는 아내와 함께 전남 담양에 있는
금성산성(605m)에 다녀왔습니다. 금성산성 북바위에서 내려다 본 강천산 쪽 단풍은 이제 갓 익기 시작한 머루처럼 상큼했습니다. 아내는 그
풍경을 친구들에게 두고두고 자랑했고 주중에 친구들을 대거 인솔하고 다시 금성산성에 올랐답니다.
하지만 같이 간 친구 중 한 명의
‘입암산성의 단풍만 못하다’는 말을 듣고는 아내의 입이 삐쭉 나왔답니다. 민망했던 것이지요. 아니 속이 상했는지도 모르겠어요. 친구들 중엔
금성산성의 단풍을 보고 연신 감탄을 하는 사람도 많았는데, 하필이면 입암산성보다 못하다는 평을 쏟아낸 어떤 친구의 한 마디가 가슴에 박혔던
것입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자꾸 “입암산성의 단풍이 좋다는데”라는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
|
▲
무더기진 단풍은 아니지만 계곡에 흐르는 물처럼 펼쳐진 단풍이 너무 고왔습니다. |
|
ⓒ2005 서종규 |
| 비가 내리기 시작한 토요일(11월 5일) 밤에 하늘을 한 번
보았습니다. 내일은 비가 그칠까 하는 안타까움이 앞섰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쏟아지는 빗소리를 듣고 다시 누웠습니다. 교회에 다녀오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밖을 한 번 더 보았습니다. 해가 구름 사이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산을 좋아하는 윤영조 선생님께 전화를 하여
일요일 오후 2시에 광주를 출발했습니다. 호남고속도로를 지나 백양사 나들목으로 빠져나가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나들목은 길게 늘어선 차들로
정체되어 있었습니다. 바로 백양사로 갈 수도 있고 백양사를 지나 내장사로도 갈 수 있는 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장산과 백양사의 단풍을 보기
위해 길을 나섰기 때문입니다.
오후 3시, 서행을 반복하던 우리는 내장산국립공원 남창계곡 주차장에 도착했습니다. 갓처럼 생긴
바위가 있다고 해서 붙여진 입암산 등산은 전남대 수련원에서 남창계곡을 타고 올라 창3교 분기점까지 가서 입암산성 남문~북문으로 도는 길과 은선
계곡으로 도는 길이 있습니다. 어느 길이라도 갓바위(626m)까지 오른 뒤에 다시 분기점으로 돌아오는 9km 정도의 길입니다.
 |
|
▲
전화 한 통화로 산을 동행할 수 있는 좋은 사람 윤영조 선생님과 저의 반려자가 산을 오르고 있습니다. |
|
ⓒ2005 서종규 |
| 내장산이라서 그런지 들어가는 입구부터 단풍나무들이 붉게 불타고
있었습니다. 길엔 이미 많은 낙엽들이 쌓여 있어서 가을이 깊이 들어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아내와 윤 선생, 우리 셋은 낙엽이 가득
쌓인 돌길을 밟으며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지난 10월 초에도 우리 일행들은 이 계곡을 찾았습니다. 지난 10월은 진한 녹음에서
내뿜는 기운이 하늘까지 뒤덮는 뿌듯함을 한없이 느꼈던 산행이었다면, 오늘은 나무 사이사이에 붉게 어우러져 있는 단풍잎들의 향연이
돋보였습니다.
 |
|
▲
낙엽이 가득 쌓인 길을 걷는 것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
|
ⓒ2005 서종규 |
| 그동안 늘 산 전체의 단풍을 많이 보았습니다. 산 정상에서 바라본
능선의 단풍은 늘 불타듯이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지난 10월에 보았던 무등산이며 계룡산이며 남해 금산의 단풍들이 모두 햇살 가득 짊어진 나무꾼의
지게 같이 산 능선을 타고 내려가는 모습에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남창계곡에 들어선 우리들은 빽빽한 나무들 사이사이에 얼룩진
단풍들의 손짓에 넋을 잃고 걸음을 멈추곤 하였습니다. 사진기로는 도저히 잡을 수 없는 나무 사이의 단풍잎들은 손에 손을 잡고 늘어서 있는 듯,
계곡을 덮고 있는 듯, 나무들을 감싸고 있는 듯, 흐르는 물에 자신을 비추어 보는 듯 그렇게 서 있었습니다.
 |
|
▲
남창계곡엔 다섯 개의 나무 다리가 있는데, 외국인이 아름다운 우리의 자연을 연신 찍고 있었습니다. |
|
ⓒ2005 서종규 |
| 단풍이 붉게 어우러져 있는 곳은 더 밝은 빛을 띠면서 이목을 끌고
있었습니다. 차라리 천지가 무더기 무더기로 만들어진 단풍이었다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위에서 바라보는 산 능선이 무더기 무더기로
피어 있는 단풍이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말입니다. 그런데 남창계곡의 단풍은 몇 그루씩 계곡을 따라 점점이 이어져 있었습니다.
기대도 하지 않았던 숲에서 보석을 찾은 기쁨이 이럴까요? 찾은 보석을 가슴에 안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지나 않았던가요? 혹
아는 사람이 지나가기라도 한다면 벅찬 기쁨을 억누르지 못하고 쫓아가서 자랑하고 싶지나 않았던가요? 나무 사이사이에 붉게 물들어 있는 단풍은 벅찬
가슴을 진정할 수 없는 보석이었습니다.
 |
|
▲
흐르는 것이 물인지 단풍인지, 단풍나무가 내려다 보고 있습니다. |
|
ⓒ2005 서종규 |
| 아내는 연신 벙글거립니다. 아마도 내일 친구들을 만나 자랑할 일을
생각하는가 봅니다. 아내는 아마 “내일 친구들에게 자랑해야지. 입암산성에 갔다 왔다고 자랑해야지. 입암산성의 단풍이 너무 고왔다고 자랑해야지.
친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입니다. 입안산성에 오지 않았다면 아내는 많이 서운해 했을 것입니다.
입안산성 북문까지 이어진 계곡 길엔 낙엽들이 쌓여 있어서, 가을을 밟는 걸음이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피곤을 느낄 틈이
없었는지 모릅니다. 계속 나타나는 붉은 단풍잎들에 눈인사를 나누는 사이에 입암산성 남문에 도착한 것입니다.
 |
|
▲
입암산 산허리부터는 구름에 싸여 있었습니다. |
|
ⓒ2005 서종규 |
| 비가 그친 입암산 산허리에는 아직도 구름이 걸려 있었습니다.
입암산성 남문 부근(600m)이 구름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단풍이 깔린 산 능선들이 보여야 하는데 구름에 가려진 능선들은 희미한 테두리만 남아
있었습니다. 지난 10월에 깜짝 놀라 바라보았던 습지의 갈대들도 이제 말라 쓰러져 있었습니다. 주위에 심어져 있던 삼나무들이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습니다.
입암산의 정상인 갓바위(626m)에 앉아 바라본 세상은 꿈속 같은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냈습니다. 멀리 고속도로에서는
차들이 지나가는 소리만 들렸습니다. 우리 셋은 오랫동안 갓바위에 앉아 있었습니다. 올라오면서 보았던 단풍의 모습을 구름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
|
▲
지난 번 "아니 산 정상 부근에 갈대가 있다니" 기사를 썼는데, 그 위에 삼나무들이 노랗게 물들고 있었습니다. |
|
ⓒ2005 서종규 |
| 아내와 이렇게 등산을 같이 온 것은 큰 행복입니다. 아내는
신혼초부터 등산과는 담을 쌓았습니다. 아니 등산이라면 질색을 하였습니다. 어쩌다 한 번 국립공원 월출산을 같이 오른 일이 있었습니다. 몇 미터도
오르지 못하고 주저 않았던 모습이 한 평생 아내의 모습이었습니다.
더구나 아내는 지난 10여년을 허리디스크 때문에 고생하였습니다.
그런데 금년 초부터 아내가 달라졌습니다. 약 300m 정도의 동네 뒷산을 오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동네 뒷산은 무등산의 자락입니다. 뒷산의
능선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무등산 서석대까지도 갈 수 있는 좋은 장소입니다.
처음엔 뒷산을 오르는 데만 2시간 가까이 걸렸습니다.
오르면서 쉬고 또 쉬고 하면서 힘겹게 올라갔다가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거의 매일 오르기 시작하더니 등산에 취미가 붙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은 무등산까지 능선을 타고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5월 말에는 아내와 평생 처음으로 지리산 세석평전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큰 변화입니까. 이제는 가끔 아내와 같이 이렇게 산을 오를 수 있게 되어서 남은 삶에서 큰 활력이 될 것 같습니다.
 |
|
▲
아내와 입암산 정상 갓바위에 앉았습니다. 구름에 싸인 정상에서 우리들은 오랫동안 앉아 있었습니다. |
|
ⓒ2005 서종규 |
| 아내가 다른 친구들을 앞서가는 등산가가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자랑스럽습니다. 아마 아내는 또 이번 주 중에 친구들을 이끌고 입암산성의 단풍을 찾아 나설 것 같습니다. 입암산성의 단풍을 이번 주가 절정일 것
같습니다.
오후 5시가 지났습니다. 오랫동안 갓바위에 앉아서 마음을 내려놓았던 발길을 재촉해야 했습니다. 자꾸 그랬듯이 정상에서
머뭇거리다가 또 밤길을 걸어서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은 밤길에 약한 아내를 부축하면서 조심조심 내려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에 붉은 단풍들이 손짓하는 곳은 환한 기운이 돌았습니다.
 |
|
▲
다시, 꿈에 본 것 같은 남창계곡의 단풍입니다. |
|
ⓒ2005 서종규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