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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꿩작가, 춘보(春甫) 이형수(李炯秀) 화백))
    대담기획인터뷰인물 2005. 11. 24. 16:34

     

     

     

    "강가 바람불고 해 넘어가니/ 어이여 그만들 일어나게./


    주막에 들려 과부도 볼 겸/ 자네와 나 한잔 술안주는 되네."

     

     

     


    이는 모악산 자락에서 꿩 등 각종 화조(花鳥)와 십이지신상, 문인화와 산수화 등을 그리는 춘보(春甫) 이형수(李炯秀 61) 화백이 즐겨 그리는 낚시꾼을 그린 '귀가'라는 문인화에 자주 쓰는 글귀다.

     

    종교발상지와 풍수로도 유명하고, 경관도 빼어난 모악산은 현대판 시인묵객이 골짜기마다 둥지를 틀고 있다.

     

    시인과 서예가, 염색장과 소목장, 동서양화가 등 무수한 문학인과 예술가들이 영산의 기운을 쐬려는 듯하다.

     

     

     

     

     

     


    구도로를 따라 구이면소재지를 거쳐 운암으로 잠시 차를 몰면 전주예고 입구가 나온다.

     

    2백여m 학교방향으로 올라가면 모악산과 구이저수지가 환히 보이는 '춘보화실'이 위치하는데 여기가 16년 째 화백이 거주하는 주택 겸 화실이다. 저명한 우관서예관과 지척이다.

     

    9시30분 경인데 주인은 대문을 활짝 열고 출타했다.

     

    주민에 물으니 조만간 돌아올 거란다. 마당 한쪽에 묶인 개들이 이방인에게 달려들 듯 소리친다.

     

    하늘을 보니 동쪽에는 해가 떠 있고 오후 3-4시 방향에는 달이 왼쪽과 윗편만 눈처럼 하얗고, 오른 쪽 아래는 눈에 덮인 듯 사라졌다.

     

    모악산에 뿌릴 눈을 잔뜩 짊어진 것 같다.

     

    지구와 태양, 달이 미묘한 삼각형을 이룬다.

     

    나는 우주 어디쯤 서 있고 어디로 향해 가는가?

     

     

     

    널찍한 마당 왼편에는 2층 정자 모악누실(母岳陋室)이 있다.

     

    지인과 여름이면 고기 구워먹고 술잔을 기울이는 곳이다.

     

    한참 후 만난 춘보화백과 내실로 들어섰다.

     

    여느 살림집처럼 옷가지와 그림도구 및 작업중인 그림이 뒤섞여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관심이 많은 수석이 곳곳에 진열됐다.

     

    화백에게 수석 설명을 듣고 의견을 교환했다.

     

    수석경력도 30년이나 되는 화백은 전북수석회원과 한국수석회원으로 활약했고 회원전만 20여회 가졌단다.

     

    눈에 띄는 수작 등 2백여점이 집안 가득하다.

     

     

     

     

     


    화백은 원래 구례 태생이다.

     

    일곱 살부터 서당이나 향교에서 붓을 잡아 평생 서예와 수묵화에 눈 뜬 것도 이 때 영향이 아닌가 여겨진다고.

     

    고교 진학후 전주 '전동'으로 이사했다.

     

    이웃에 화조를 그리던 재야작가 우당선생에게 그림을 배우며 화백은 수습기간을 거쳤다.

     

    10년 이상 전동에서 그림을 배우고 군대시절만 빼고는 화조 그림과 문인화 등을 섭렵한다.

     

    문인화는 조선시대 강희안·희맹 형제를 필두로 윤두서·정선·심사정·강세황·김정희 등 유명 문인들이 여기(餘技)로 그린 그림과 유사하나 차이점도 많다. 사군자에서 문인화로 바뀐 풍조 탓이란다.

     

    '팔복동' 시절 10여년은 스스로 개척하며 창조하는 단계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다."는 말처럼 개척시대를 맞은 것이다.

     

    구이우체국장을 지내던 친구와 술을 하러 자주 왔다가 그의 소개로 사들인 땅에 세운 것이 구이면 항가리 신전부락 현재 '춘보화실'이다.

     

    화백은 "봉황 대신 꿩"이나 "꿩 대신 닭"이란 말처럼 봉황과 꿩, 닭은 물론 모든 꽃과 새를 그리는 화조(花鳥)에 능하고, 이밖에 십이지신상과 산수도 및 문인화 등 다양하게 섭렵한다.

     

    '모악산' 시절 16년은 달관의 단계인 셈이다.

     

    특히 그를 '꿩작가'나 '꿩화백'으로 부르는데 그림을 찾는 사람이 꿩을 즐겨 찾기 때문에 그런 명칭이 붙은 것이지 '능서불택필(能書不擇筆)'이란 말처럼 龍이든 鳳이든 모든 부문의 그림이나 글씨를 잘 써야 한다고.

     

    "글 못쓰는 사람이 종이와 붓을 탓한다."는 말처럼 전천후여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주로 강렬한 색채로 사람이 많을 때 잘 그려진다."는 그의 꿩작품은 장끼와 까투리 한 쌍이나 두 쌍을 그려 넣고 제목도 '화목한 가정이야기'라 붙였다.

     

    '까투리 사냥'이란 노래를 말하려다 그만둔 이유다.

     

    "부인 덕분에 여유를 갖고 그림 그리고 유유자적하며 친구와 술잔을 나눌 수 있다."고 칠보초등에 재직중인 부인 한효순님(58)을 두어번 언급하는 것을 보고 꿩작품과 제목의 숨겨진 의미를 해석해 봤다.

     

    부부는 새벽 5시 헬스클럽에 함께 다니고 일요일 모악산 등반도 거르지 않는다고.

     

    채전에서 감자와 고추, 무와 배추 등 밭작물을 함께 기르다 보면 화목해지고 세월 가는 줄 모른다고.

     

    "아들딸 구별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시절에 화백은 더욱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며 얻은 외아들이 서울에 거주해 요즈음은 많이 낳지 못한 것이 아쉬운 듯.

     

     


    화백은 80년 일본 니이가다 오사가 초청 개인전 등 무수한 국내외 개인전 및 교류전을 치뤘다.

     

     

     

     

     


    "작품이 결실을 보기 위해서는 작품에 혼을 넣어야 한다."는 화백은 "그림을 알수록 더욱 무서워진다."고 피력했다. 

     

     


    화백의 이 같은 언급에 "달관과 득도의 경지에 접어들수록 겸손해진다."는 선현들이 말이 떠올라 화백에 대한 기사를 잘못 쓰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생길 정도다.

     

    취재가 끝나자  차를 몰고 나가는 화백의 뒷모습에서 "주막에 들려 과부도 볼 겸, 자네와 나 한잔 술안주는 되네."라는 그의 글귀처럼 유유자적하는 여유로움을 엿볼 수 있었다. <고재홍기자>

     

    <참고 :이형수 화백 연락처 : 063-222-5723, 011-658-5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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