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백제왕궁터, 왕궁리 유적 등 발굴정비 부지하세월
    왕궁춘포> 2012. 9. 11. 09:48

     

     

     

     

     

     

     

    <2007년 왕궁리유적발굴 개토제 광경>

     

     

     

    <2007년 개토제 시삽광경>

     

     

     

     

     

    <왕궁리유적>

     

     

     

     

     

    부지하세월,왕궁리유적발굴.정비 언제 끝나나?

     

     

     

    -백제 무왕이 왕궁성을 세우는 시간보다 더 걸릴 듯

    -부여문화재연구소 발굴하면, 익산시는 유적정비에 별도 예산

    -예산 집중투자로 최소한 시기 앞당겨야

     

     

     

     

    “사적 408호인 왕궁리유적 발굴. 정비가 빠를까, 아님 백제 무왕이 왕궁성을 세우는 것이 빠를까? 발굴과 정비가 다른 사업일까, 같은 사업일까?”

     

     

    왕궁탑 부근에 가면 오래 전부터 발굴. 정비가 진행된다. 곳곳에 비닐이 처져 있어 발굴이 상당부분 진행된 듯하다.

     

     

    그러나 무려 30년이 훨씬 넘어서야 발굴정비가 끝날 조짐이어 1998년 해체.복원사업을 착수해 해체된 채 복원되지 않고 있는 미륵사지석탑을 능가한다.

     

     

     

    미륵사지석탑은 20년을, 왕궁리유적 발굴정비는 30년을 훌쩍 넘길 것이 우려된다.

     

     

     

    특히 발굴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정비는 익산시가 별도 예산을 들인다.

     

     

     

    일반인이 보기에는 같은 현장에 같은 발굴정비로 아는데 그게 아니다.

     

     

     

    왕궁리유적은 백제 제30대 무왕(재위 600~641)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궁성유적이다.

     

     

     

    백제시대 성벽, 축대, 화장실, 정원, 건물지, 공방지 등 ‘궁성유적‘과 왕궁리5층석탑, 금당지, 강당 등 통일신라 시대 ’사찰유구‘가 확인됐다.

     

     

    왕궁사(王宮寺), 대관사(大官寺) 등 명문기와, 수부(首府)라는 인장와 등 5천점 유물이 발굴됐다.

    왕궁리유적은 익산 천도설 및 별도설의 근거지로 학술논쟁이 그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착수한지 23년째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시행하는 1989년부터 1993년 1차5개년 기간에는 3만1천㎡(9300여평)를 정비했다.

     

     

    마치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하는 것처럼 거창하다.

     

    한 해 1800여평에 그쳤다.

     

     

     

    1994~1998년까지 2차5개년에는 2만㎡(6천평)로 대폭 줄었다.

     

     

    한 해 1200평이다.

     

     

    1999~2003년까지 3차5개년에는 2만6천㎡(7800평)으로 한 해 1500평 남짓이다.

     

     

    2004년부터는 16년째 사업이어서인지 제16차사업으로 바뀌었다.

     

     

    왕궁리 유적발굴조사 17차사업은 2005년 5월 시작해 연말에 끝났다.

     

     

    조사면적은 2400㎡(730평)에 불과하다.

     

     

    이런 식으로 2010년말까지 22년간 발굴 예상면적 12만㎡ 중 ⅔인 8만㎡(2만4천평)에 발굴조사가 완료되었다. 한해 1천평 꼴이다.

     

    석축성벽은 동벽 492m, 서벽 490m, 남벽 234m, 북벽 241m의 대규모 궁성 및 사찰 관련시설로 중간 결론 지워졌다. 총 5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됐다.

     

     

    나머지 면적만 4만㎡이고, 사적 408호 전체면적이 21만6069㎡(6만7800여평)에 달하니 얼마나 더 걸릴지 끝나봐야 안다.

     

     

    부여문화재연구소 공식 홈피에는 2012~2014년까지 한해 4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고 공개했으나 익산시 관계자는 연구소의 왕궁리 발굴관련 예산이 “6억8천만원으로 안다“고 밝혀 차이를 보인다.

     

     

    백제 무왕이 왕궁성을 축조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비판이다.

     

     

    그러나 발굴만으로 사업이 전부 완료된 것은 아니다.

     

     

     

    익산시는 부여문화재연구소가 발굴한 면적에 별도 예산을 들여 ‘왕궁리유적정비’ 사업을 벌인다.

     

    2007~2012년까지 무려 37억5800만원 국.도비 및 시비를 들여 금당지와 강당지 등 건물지 정비 및 남측 궁장 정비, 안내판 등을 설치했다.

     

     

     

    일반인들은 아무런 건물이 없는 황량한 들판에서 같은 발굴정비를 하는 것으로 안다.

     

     

     

    그런데 부여문화재연구소는 발굴만을, 익산시는 연구소가 발굴한 면적의 유적정비한다며 별도 예산을 들이는 셈이다.

     

     

    단일 사업이 아닌 시행기관도 다르고 완전 별도 예산이다.

     

     

    최소한 부여무화재연구소가 한해 4억원을 발굴조사에, 익산시가 발굴된 면적의 유적정비에 한해 6억원 이상을 들여 해마다 1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그러나 필자가 신문사에 입사할 즈음 시작됐던 왕궁리 유적 발굴.정비사업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

     

     

    “세월이 갈수록 역사학자들이 발굴할 유적은 더 오랜 기간 발굴할만큼 늘어간다(?)”는 비아냥이 남의 일 같지 않다.

     

     

     

    신속히 발굴 정비할 대책은 없는 것일까?/고재홍 기자>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