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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백제를 말하다! - 왕궁리5층석탑 왕궁춘포> 2012. 5. 23. 06:09
<위 사진은 1917년 촬영>
[익산의 재발견 #12]
천사백제를 말하다! - 왕궁리5층석탑
“왜 왕궁리5층석탑은 온갖 세월의 풍상을 견디고 서 있었을까?”
왕궁리유적하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아하지만 경쾌한 탑신의 모양이 마치 여인네의 버선코 같기도 하고 치맛자락 같은 왕궁리5층석탑이다.
왕궁리5층석탑은 왕궁리유적에서 지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이다.
왕궁과 사찰 관련 유적은 모두가 발굴조사 과정에 지하에서 새로이 발견된 유적이다.
이를 통해 백제 무왕이 익산에 왕궁을 짓고 정사를 돌보았다는 역사적 사실이 입증되고 있다.
왕궁리5층석탑은 천사백제 즉 1400여 년 전 백제 왕도 역사의 비밀을 말해주는 단초였다.
왕궁리5층석탑은 기단부의 석재가 벌어지고 탑신부가 북측으로 기울어져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탑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기단부를 흙으로 덮어놓아 한때 기단을 토단으로 만든 특이한 형태의 탑으로 생각하기도 했었다.
왕궁리5층석탑은 1938년부터 보수를 위해 예산 확보의 노력이 있었으나 추진하지 못하다가 1965년에 이르러 전면적인 해체보수를 실시하였다.
돌이켜보면 일제강점기인 1938년 보수를 하지 못한 것이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마저 든다.
이 탑 해체 과정 1층 탑신부에서 사리병과 사리함, 금은제금강경판과 옥, 함 등이 발견되었고, 기단부에서는 금동불상과 청동방울, 철편 등 사리장엄이 발견되어 1965년 12월 국보 제123호로 지정되었다.
1989년부터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 의해 전면적인 발굴조사 과정에서는 탑 하부 조사가 이루어져 석탑 이전에 목탑이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왕궁리5층석탑의 양식적인 측면을 살펴보면 먼저 각층의 옥개석(또는 지붕돌)이 끝에서 한옥의 처마선과 같이 반전하고 있어서 미륵사지석탑이나 정림사지5층석탑과 같은 백제 계통의 탑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단부와 탑신부에 조각된 우주(모서리 기둥)가 미륵사지석탑에서 볼 수 있는 민흘림 흔적이 남아 있다.
결국 왕궁리5층석탑에서는 미륵사지석탑에서 보이는 백제 석탑의 특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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