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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가람의 문을 열다
    <금마> 2007. 9. 4. 08:07
     

     

     

     

     

     

     

    익산 제석사지(사적 제405호) 가람의 문을 열다

    - 익산 제석사지 드디어 본격 발굴 시작 - 

     

    (사진있음)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김용민)는 사적 제 405호 익산 제석사지 대한 발굴조사 개토제를 7월 30일 오전 11시 개최한다.

     

    제석사지는 『觀世音應驗記』에 의하면 정관(貞觀) 13년(639년)에 세워져, 같은 해 뇌우로 인해 불당(佛堂)과 낭방(廊房) 등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있어 백제 제30대 무왕(A.D. 600~641)대에 세운 왕실사찰로  추정된다.

     

     


    익산 제석사지에 대한 학술조사는 정비복원 목적으로 기존 조사 성과를 기초로 해 2007년~2009년까지 진행된다.

     

     

    금번 조사는 사역 중심부 9,100㎡ 목탑지-금당지-강당지에 대한 전면적인 발굴조사를 실시해 사찰 규모 및 존재양상, 각 유구 축조방법을 밝혀내고, 더불어 익산 왕궁성과 관련된 왕실사찰로서 성격을 규명하고자 한다.

     

     

    이번 조사에서는 『觀世音應驗記』상에 기록된 제석사(帝釋寺) 존재 및 화재로 인한 소실(燒失)에 구체적 확인작업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록이 사실로 판명되면 『觀世音應驗記』상의 “百濟武廣王遷都枳慕密地 新營精舍(백제 무광왕, 즉 무왕이 지모밀지(금마)로 천도해 새로 정사(사찰)를 경영하였다)”라는 백제 무왕 익산 천도 역사적 사실성 확보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제석사지는 1993년에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 시굴조에서 1탑 1금당 가람배치를 확인했으며, 통일신라 「제석사(帝釋寺)명문와․백제 당초문 암막새를 비롯한 7세기대 기와가 다량 출토됐다.

     

     

    그리고 2003~2004년에 걸쳐 기존 왕궁리 전와요지(傳瓦窯址)로 알려져 있던 제석사지 북동편 지역 조사에서는 7세기 전반 연화문 수막새․불에 탄 소조불상 및 악귀상․벽체편 등이 다수 출토돼 이곳이 제석사지 건물폐기장임을 확인했다.

     

     


    현재 제석사지는 사적지정면적 24,218㎡ 일대에 심초석이 노출된 목탑지와 추정 금당, 강당지를 포함해 주변에 궁평 마을이 자리잡고 있는데 최근까지 정비를 위해 민가 이전 및 잡목 제거 등이 이루어지는 상황이다./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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