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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쓴 죄수 칼은 중죄를 지은 죄수의 목에 씌우는 형구로 마른 나무널조각으로 만들었다. 칼을 쓰면 죄수는 보행이 불가능한데 원칙적으로 양반에게는 칼을 씌우지 않았다. 사진의 죄수들은 동학농민군이라는 설명도 있는데, 의병들이었을지 모르겠다. 태형(笞刑) 길이 1m 정도의 곤장으로 볼기를 ..
다듬잇방망이 만드는 노인 다듬이질에 쓰는 방망이를 깎는 노인. 남의 집 앞에 좌판을 벌였다. 연장으로 나무를 깎고 매끄럽게 다듬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에서 장인 정신이 느껴진다. 목재소 긴 톱으로 나무를 자르는 광경. 목공 둘이 위아래에서 톱을 마주잡고 끌고 당기며 나무를 켜고 있다. 주위에..
] | 사진속의 옛모습 2005.09.21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고종의 부친. 1820~98년. 1863년 말 고종이 즉위하자 섭정이 되어 실권을 잡고 쇄국정책과 개혁정치를 추진했다. 1873년 실각했다가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갑오경장 직후 일시 집권한 바 있다. 고집스러워 보이는 눈과 얼굴 윤곽에 성품이 그대로 묻..
.. .. *조선시대의 여인* 조선조에 들어오면서 여성은 점차 권력에서 배제되었다. 남자만이 학문을 하게 되어 관직에 나갈 수 있는 과거를 볼 수 없어 관직에 진출할 길은 전혀 없었다. 물론 관직에도 내명부라 하여 남편의 지위에 따라 그 부인도 관품이 주어졌다. 하지만 그것은 실권이 전혀 없는 오히..
나라의 주권(主權)은 식민지(植民地) 치하(治下)에 들어가고, 國葬(국장)의 형식 및 절차는 조선식+일본식의 혼합 행사의 서러운 기록(記錄) 사진을 자세히 보세요. 우리의 선조들은 두 가지의 눈물을 흘였을 것이다. 순종 장례식 담은 '어장의 사진첩'(御葬儀寫眞帖)' ▲ 국장 행렬 ▲ 영결식장에 도착..
| 사진속의 옛모습 2005.09.21 수원 장안문(長安門). 수원 화성(華城)의 북문으로 정조 때 건축되었다. 서울의 남대문과 비 슷한 형태지만 규모가 더 크고 바깥에 옹성을 갖추었다. 무지개문 위에 2층 누각을 올리고 양쪽 계단으로 오르게 했다. 남한산성 수어장대(守禦將臺). 경기도 광주 남한산성 안에 있..
잊혀져가는 사진들 ... | 화장실이 부족하던 그 시절, 거리엔 온통 지뢰(?)밭 천지였지요 신문지나 빈병을 가져가면 번데기 아저씨는 한번 찍게 해주었다 용돈 이라고는 생각도 못하던 시절 버스 회수권으로 떡복기를 사먹을수 있었다 왼쪽 으로(좌측)통행 하면 공산당 이라고 생각하던 시절! 말썽 꾸러..
신라천년의 고도 경주의 옛모습 경주 역 안압지 경주 박물관 태종 무열왕 측비 금관총 최재원의 서아원 포석정 석빙고 내부 붕괴된 석빙고 봉황대 옆 종각에서 구박물관으로 이전하는 성덕대왕 신종 삼존불상 불국사 정면 불국사 측면 다보탑과 석가탑 석굴암 원경 석굴암 입구 폐허된 석굴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