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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리산 피아골 (1,507m)무진장임남순 2006. 11. 14. 03:37
지리산 피아골 (1,507m)
위치 : 전남 구례군 토지면
산행일 : 2006. 11. 5 / 김해 경운산악회와 함께
코스 : 성삼재-노고단-임걸령-피아골-삼흥소-피아골-연곡사 / 6시간
문화재와 볼거리 : 지리산, 연곡사, 화엄사, 불일폭포, 천은사, 지리산온천
피아골
전라남도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소재 연곡사에서 반야봉(般若峰:1,751m)에 이르는 연곡천 계곡.
길이 약 20km.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맑고 풍부한 물이 임걸령 ·불무장 등의 밀림지대를 누비며 피아골 삼거리 ·연곡사 등을 지나 섬진강으로 빠진다. 폭포 ·담소(潭沼) ·심연이 계속되는 계곡미가 뛰어나다. 특히 이 곳의 단풍은 지리산 10경(景)의 하나로 손꼽힌다.
피아골은 노고단과 반야봉 사이에 자리잡은 계곡이다. 가을날의 피빛 단풍으로 지리 산 10경의 반열에 든다. 기실 홍염에 불타는 단풍이 워낙 유명세를 타고 있어 그렇 지 피아골은 사계절 내내 아름다운 곳이다.
봄날에 피어난 철쭉은 명경 같은 계곡에 얼굴을 비추고 여름날엔 한 올의 햇살도 허락치 않을만큼 녹음이 우거진다. 가을의 단풍은 두말할 나위 없고, 겨울엔 인적 드문 호젓한 설국의 산길을 선사한다. 계곡 초입에 지리산 제일의 거찰이었다는 연곡사와 국보급 문화재가 있어 찾는 이들이 많다.
피아골은 가을철을 제외하곤 찾는 이들이 많지 않아 지리산 등산로 중 호젓한 곳에 속한다. 그러나 계곡안에 들어서면 단번에 뛰어난 흥치에 압도당한다. 연주담, 삼홍 소 등 속을 알수 없는 심연과 집채만한 바위들이 어울려 풍치가 뛰어나다.
매표소부 터 피아골산장까지 6km는 그런 계곡을 건너다니며 오르는 길이라 눈이 즐겁다. 계곡 또한 가파르지 않아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다. 피아골 산장에서 임걸령까지 2km는 계 곡에서 멀어져 가파른 산등을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소금땀을 흘려야 한다. 여름철에 물놀이 하기에 좋은 곳은 연곡사에서 직전마을까지, 직전마을에서 피아골 산장까지다.
계곡입구부터 삼홍소까지가 특히 아름다운데, 가을이면 삼홍소란 이름에 걸맞게 온 골짜기를 붉게 물들인 단풍과 붉은 빛에 젖은 계곡물과 삼홍소바닥의 바위까지 붉어 장관을 이룬다.(山紅, 水紅, 人紅이 어우러진 三紅沼)
직전 부락 주차장에서 비포장도로를 따르다 마지막 민박집 겸 음식점인 산아래첫집을 지나면 포장도로는 끝나고 비포장길이 500m쯤 이어진다. 승용차는 산아래첫집 직전의 통제선까지 오를 수 있다.비포장도로가 끝난 뒤 선유교를 건너면서 계곡 길이 시작된다. 삼홍교와 구계포교를 건넌 다음 산길은 피아골대피소까지 계속 골짜기 왼쪽으로 길이 나 있다. 피아골의 심장부라 일컬어지는 삼홍소(三紅沼)는 산이 붉게 불타 산홍(山紅), 붉은 단풍이 맑은 담소를 붉게 물들여 수홍(水紅), 유산객들도 단풍빛에 붉게 물든다 하여 인홍(人紅), 셋을 합쳐 부르게 된 것이다.
옛날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한말(韓末) 격동기 ·여순반란사건 ·6 ·25전쟁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10월 말에는 전국에서 모이는 등산객들이 피아골 단풍제를 지내는데, 이 산신제는 1977년부터의 연례행사이다.98년 폭우로 많이 훼손
구계포교에서 대피소까지 1.5km 구간은 98년 여름 폭우로 산사태가 일어나는 등, 피해가 컸던 지역으로, 99년 들어 국립공원관리소는 나무다리를 설치하는 등, 새롭게 산길을 만들었다. 계곡 절경은 대피소에서 대강 끝을 맺는다. 따라서 계곡 또는 단풍 산행만 즐길 생각이면 이쯤에서 되돌아서는 것이 좋다. 피아골대피소는 주변 숲의 정취가 뛰어나고 쾌적해 삼림욕을 즐기며 오후 한나절 머물렀다 내려가기에도 좋은 곳이다.피아골대피소에서 5분쯤 오르면 불로교 지나 용수암삼거리에 닿는다. 여기서 계속 계곡길을 따르면 용수암을 거쳐 삼도봉 서쪽 안부로 올라서고, 왼쪽 지능선 길을 좇으면 임걸령 서쪽 안부 삼거리로 이어진다. 삼거리에서 2km 쯤 떨어져 있는 용수암은 계곡 한가운데 있는 큰 바위로, 그 아래 소와 어우러져 기경을 자아낸다. 그러나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던 상류부가 98년 여름 폭우로 많이 훼손돼 경험 많지 않은 이들은 들어서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성삼재휴게소에서 인원점검을 마치고 노고단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하늘에서 굵은 빗줄기가 천둥을 동반하여 뿌려대기 시작했다.
얼음덩어리인 우박도 같이 내리면서 시야가 전혀 보이지 않는 악천후 날씨이다
얼마간 걸으니, 눈 앞에는 노고단대피소가 뿌연 안개속에 보인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우리 일행들은 잠시 인원을 체크한 후, 노고단 정상을 향해서 힘찬 발걸음을 옮겼다. ....
희뿌연 안개속에 노고단 정상이 보인다 ....
된비알로 이어지는 임걸령 고갯길
삼거리에서 임걸령까지는 약 2.5km로, 매우 가파른 길이다. 폭우에 의해 많이 파여나간 구간을 따라 나무계단길로 만들어놓았지만, 계단 턱이 너무 높아 한발한발 올릴 때마다 힘이 많이 드는 길이다. 삼거리를 지나 임걸령 고갯마루까지 체력과 지구력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1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따라서 너무 한번에 오르려 하지 말고 쉬엄쉬엄 오르는 것이 바람직하다.임걸령쪽에서 내려설 때에는 임걸령 샘에서 노고단쪽으로 향하다 첫번째 삼거리에서 왼쪽 길을 따른다. 샘쪽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다 능선 삼거리에서 오른쪽(남쪽) 길을 따르면 피아골로 내려선다.
임걸령 헬기장에서 늦은 점심이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고, 다시 피아골 계곡을 향해서 걸었다
신
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연곡사( 谷寺)는 국보인 동부도(東浮屠)·동부도비·북부도를 비롯, 삼층석탑·현각선사탑비 (玄覺禪師塔碑)·서부도 등, 귀중한 문화재가 여럿 지니고 있는 사찰이다. 산행 전후 꼭 들러보기를 권한다.연곡사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연곡사는 543년(백제 성왕 21년)에 화엄사 종주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경내에는
동부도,북부도를 비롯하여 국보 2점과 보물 4점이 보존되어 있다.
1981년 3월 1일부터 당시 주지인 장숭부 스님이 정부지원과 시주로 옛날 법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강석과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정면 5칸, 측면 3칸의 새 법당을 신축한 이
후 복원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찰이름을 연곡사라고 한 것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
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
한편 연곡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인데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
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방에서도 의병 활동이 활
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담양출신 의병장 고광순. 그는 1907년 8월 26일 지리산 연
곡사에 근거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기습을 받아 패전하고 순절
하였다. 이때 절도 불탔다. 이를 기리는 비석이 경내에 세워진 것이다.연곡사현각선사탑비(鷰谷寺玄覺禪師塔碑)
연곡사에 있는 비(碑)로, 고려 전기의 승려 현각선사를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임진왜란 당시 비몸돌이 없어져 현재는 받침돌과 머릿돌만 남아 있다.
비를 받치고 있는 돌거북은 부리부리한 두 눈과 큼직한 입이 웅장하며, 수염을 가진 용머리를 하고 있다. 등 중앙에 마련된 비를 꽂아두는 부분에는 안상(眼象)과 꽃조각이 새겨져 있다. 받침돌 위에 놓여 있는 비의 머릿돌에는 여러 마리의 용이 서로 얽힌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데, 긴밀하고 사실성이 두드러진다. 앞면의 가운데에는 탑이름이 새겨져 있어, 현각선사의 탑비임을 알수 있다.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이 비는 고려 경종 4년(979)에 만들어졌다.연곡사삼층석탑(鷰谷寺三層石塔)
연곡사의 법당 남쪽에 서 있는 석탑으로, 3단의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각 층에는 4면의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겨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으며, 각 층의 몸돌에도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각 층마다 4단이고 처마 밑은 수평이다. 또한 윗면에는 경쾌한 곡선이 흐르고, 네 귀퉁이에서의 치켜올림도 우아하다.
맨 윗기단이 매우 넓어졌으며, 이에 반하여 탑신부는 줄어든 느낌이 있지만, 맨 아래 기단부터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체감비율도 온화하며 안정감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탑이다. 탑에 사용된 돌의 구성양식 등으로 미루어보아 건립연대는 통일신라 후기로 짐작된다.
석탑의 3층 지붕돌은 밑으로 떨어져 있었는데 1967년 해체하여 수리할 때에 복원되었다. 이 때 윗층 기단 안에서 동조여래입상 1구가 발견되었다.연곡사동부도비(鷰谷寺東浮屠碑)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된 연곡사에는 승려의 사리를 모셔놓은 부도가 3개 있는데, 이 비(碑)는 동부도 앞쪽에 서 있는 비로, 비몸돌이 없어진 채 받침돌과 머릿돌만이 남아 있다.
받침돌은 네 다리를 사방으로 쭉 뻗고 엎드린 용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사실성이 떨어지며, 잘려진 것을 복구해 놓아 부자연스럽다. 용의 등에는 새 날개 모양의 무늬를 조각해 놓아 새로운 느낌이다. 등 중앙에 비를 끼우도록 마련된 비좌(碑座)에는 구름무늬와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머릿돌은 용무늬를 생략하고 구름무늬만을 새겼으며, 꼭대기에는 불꽃에 휩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조각해 놓았다.
작고 아담해진 규모와 통념을 벗어난 조각형태를 지닌 고려시대의 비로, 통일신라시대와는 다른 새로운 양식을 보인다.연곡사서부도(鷰谷寺西浮屠)
연곡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전기까지 선을 닦는 도량으로 이름이 높았던 사찰이다. 이 부도는 연곡사 서쪽에 있어서 ‘서부도’라고 하며, 소요대사의 사리를 모셔두고 있다. 승려의 사리를 두는 탑신(塔身)을 중심으로 그 아래에 기단(基壇)을 두고, 위로는 머리장식을 얹었으며, 각 부분이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기단은 3단으로 나누어 각 단마다 연꽃무늬를 새겼으며, 그 위로 탑신을 받치도록 두툼한 괴임을 둔 점이 독특하다. 탑신의 몸돌은 한 면에만 문짝 모양을 새기고, 다른 곳에는 8부신중상(八部神衆像)을 돋을새김해 두었다. 지붕돌은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큼지막하게 꽃장식을 얹어두었으며,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비교적 완전하게 남아 있다.
연곡사에는 이외에도 2기의 부도가 더 있는데, 그 부도들에 비해 조형성은 떨어지지만 각 부분의 비례가 아름다운 작품이다. 탑신에 새겨진 기록을 통하여 조선시대 효종 원년(1650)에 세웠음을 알 수 있다.피아골의 단풍은 피빛 보다 더 붉게 내 앞에 나타나서 가을이 떠나가고 있음을 알리고 있는데 ...
키 높은 산죽길을 돌아가니 소박한 집 한 채가 보이는데, 이름하여 피아골대피소이다
피아골대피소에는 수염을 곱게 기른 분이 오가는 산꾼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는데, 같이 간 일행
연두가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자고 조르니, 아무말없이 옆에 같이 서 주신다
피아골대피소앞에는 누군가 소망을 담고 정성스레 쌓아올린 돌탑이 가을 햇살을 받아 아름답고 고운빛을 자랑하는 단풍잎과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피 빛 가을은 ...
그렇게 가을은 내 곁을 떠나가고 있었다.
2006년 가을 양촌재
지리산의 교통
숙박
대피소
명소
지리산의 일반 등산로
내대리 기점
대원사 기점
백무동 기점
뱀사골 기점
산동 기점
쌍계사 기점
중산리 기점
청학동 기점
추성동 기점
피아골 기점
화엄사 기점
출처 : 여행글쓴이 : 촌장셈 원글보기메모 :'무진장임남순'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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