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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새만금 간척사업이 가져다 준 선물 비안도 고려청자<군산>정치 2006. 8. 1. 14:25
새만금 간척사업이 가져다 준 선물 비안도 고려청자
들어가기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비안도 근해에서 2002년 4월 어부의 신고로, 비안도 북동방향 1km 해역에 다량의 고려청자가 매몰된 사실이 확인되었다. 이에 종합적인 발굴을 실시하였는데(’02~03년), 발굴은 해양여건과 기타 상황을 종합하여, 1차 조사는 문화재청·국립해양유물전시관·해군(해난구조대)의 도움을 받아 진행되었으며, 2·3·4·5차는 국립해양유물전시관이 주축이 되어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 신고유물을 포함하여 3,100점이 넘는 고려청자를 인양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비안도 해역환경비안도는 전라북도 군산시 옥도면 고군산도에 속한다. 고군산도는 선유도을 비롯한 신시도·야미도·무녀도 10여개의 유인도와 무인도가 군도를 형성하고 있는데, 비안도는 고군산도의 가장 남동방향에 위치한 섬이다. 유물 인양 지점은 비안도 동방 1km 해역을 중심으로 주변해역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졌다. 비안도는 군산항에서 남서방향으로 약 43㎞ 떨어져 있다. 면적 1.63㎢에 해안선의 길이 6.6㎞이다. 섬의 모양이 날아가는 기러기를 닮았다고 해서 비안도라 불린다. 비안도 동방에는 유인도인 두리도과 무인도인 덕산도·악도?치두도가 위치한다. 비안도를 비롯한 고군산군도 해역은 1970년대 이래, 해저유물의 발견 신고가 20여건 이상이 될 정도로 많은 해저유물이 매장된 해역이기도 하다. 최근 십이동파도, 야미도를 비롯한 주변해역에서 조사가 이루어졌다.
유물 인양 부근의 해양 환경은 조금 조석의 간조시 수심 11~13m, 유속 60~83 cm/sec, 조류 방향 서남향, 수온 12℃ 내외, 탁도 2.25NTU(시정거리 ; 1m 정도)였다. 하지만 해양환경은 만조와 간조에 따라서 다양하게 변화되며. 조석에 따라 조금 시기와 사리 시기의 현장 환경의 변화가 심하였다. 조금시기에는 유속의 흐름이 빠르지 않고 물속의 시계가 1m 정도가 되지만, 사리 때는 유속이 대단히 빠르고 시계는 0~10cm로 조사에 대단히 어려움이 많았다.
새만금 간척사업과 청자의 속살 드러내기고려청자의 노출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갯벌 층이 4~5m 정도 씻겨 나가면서 묻혀 있던 유물이 노출되었다. 이는 노출된 유물상태와 일부 묻힌 유물의 상태를 보아 알 수 있다. 이는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물길이 좁아지면서 골을 형성하고 갯벌 층이 씻겨나가면서 800여 년 동안 잠들어 있던 고려청자의 속살을 드러내게 된 것이다. 유물은 씻겨나간 골층에서 주로 매장되어 있었으며, 매장 범위가 광범위하여 수중발굴을 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새만금 간척사업은 개발과 환경보존으로 많은 논란을 야기하였지만, 우리 조상들이 뱃길을 따라 전북 부안에서 생산하여 개경으로 이동하다 침몰하여 영원히 사려졌을지 모를 해양문화유산을 우리에게 선물하였다. 각고의 노력 끝에 구워낸 도자기를 싣고 개경의 귀족이나 관청에 납품하고 두둑한 돈 주머니를 차고서 귀향하는 바람을 갖고 멀고 험한 뱃길을 떠났던 사내들은 불귀의 객이 되었을 것이다. 고향에 남아 이들을 기다리던 아낙네들의 서글픈 울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조사 내용수중조사는 유물이 발견된 지점의 잔존 유물과 분포 상황을 확인하기 위하여, 잠수사의 수중조사를 조건(유속, 탁도 등)이 가장 양호한 조금시기에 주로 실시하였다. 조금 물때 시기의 수심은 10~12m 정도이며, 수중시계는 1~1.5m, 수중 작업이 가능한 시간 내외였다.
긴급탐사는 잠수조사자의 육안 확인 및 고탁도용 수중카메라 촬영 결과, 유물의 분포 상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물이 집중 분포된 해저는 길이 20~30m(동-서), 폭 7~8m(남-북) 구간이었으며, 유물 매장처의 지형은 남북 양방향에 깊이 20~30cm로 패인 골이 동서방향으로 진행되어 조류 방향과 일치하였으며, 그 중앙부는 도드라진 형상이었다. 해저토의 저질은 매우 단단한 갯벌 흙이며, 유물들은 개별적으로 엎어지거나 눕혀 묻힌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골이 형성된 단면층에서는 일부 포개진 채 묻혀있는 유물들도 있었다. 긴급탐사결과 노출된 도자기 211점을 수습하였다.
1차조사는 유물매장처 확인을 위해 긴급 탐사 시 조사된 유물 집중 분포지에 기준부표(Mark Buoy)를 설치하였다. 기준 부표에 대한 수중 탐색 결과 유물군을 확인하였다. 수중탐색 결과 유물 분포 상황이 명확치 않으므로 기준 그리드(Grid)는 유물분포 구역 중심선에 설치하였다. 그리드는 각 2 x 2m 의 격자 3칸으로 구성되고, 1m 단위로 도색하여 수중에서 위치 및 거리를 구분을 쉽게 하였다. 유물은 청자양각통형잔 등 1,900여 점의 도자기를 인양하였다.
2차 조사는 1차조사지역의 외곽으로 조사범위를 확대하여 유물과 선체를 조사하는데 중점을 두었다. 조사결과, 서북 방향에 유물이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음을 확인하였다. 수중카메라 및 비디오 촬영을 실시한 후 유물은 해저표면에 노출된 것은 수습하고, 개펄 층 5~10cm에 묻혀 있던 유물은 대나무로 만든 칼을 사용하여 개펄을 제거하면서 인양하였다. 유물은 청자상감국화문잔·청자대접 등 533점을 인양하였다.
3·4·5차 조사는 주변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확인작업을 실시하여, 280여점의 유물을 인양하였다. 그리고 5차 조사에서 목재 4편을(櫓로 추정) 수습하였으나 바다 해충에 의한 부식이 심하였다.
조사 결과비안도 발굴조사에 결과를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첫째, 수중조사 및 수중 촬영 결과를 종합하면, 유물의 분포는 1차조사 기준좌표를 중심으로 방경 1km지점에 유물이 산포되어 인양되었다.
둘째, 유물매장처는 길이 20~30m(동-서), 폭 7~8m(남-북) 구간이며, 해저 지형은 남북 양방향에 깊이 20~30cm의 깊이로 패인 골이 동서방향으로 진행되고, 그 중앙부는 도드라진 형상이다. 해저토의 저질은 매우 단단한 갯벌 흙이며, 유물들은 개별적으로 엎어지거나 눕혀 묻힌 상태로 노출되어 있으며, 골이 형성된 단면층에서는 일부 포개진 채 묻혀 있었다.
셋째, 조사방법은 1차조사때 中心 조사구역(30 x 13m)으로 설정하고, 구획조사(Grid 또는 Circle Survey)방법에 따라 조사구역을 확장하였다. 이후 조사는 1차조사 외곽지역을 주로 부표를 이용한 원형탐사를 하였다.
마지막으로 조사결과를 종합하면, 비안도 해저유물에 대한 긴급탐사·1·2·3·4·5차에 걸친 조사 결과 인양된 3,100여 점의 도자기는 청자음각앵무문대접·청자접시·청자양각연판문통형잔 등이 주류를 이루었다. 특히 2차 조사에서는 청자양인각목단문대접과 청자상감국화문잔이 처음으로 인양되었고, 3차 조사에서는 청자상감국화문합·청자상감목단문합·청자발이 인양되었다. 4차 조사결과는 청자양인각목단문접시 등 153점의 도자기 인양과 함께 선체편으로 보이는 목재편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5차조사에서 목재편들이 산발적으로 흩어져 있어, 정확한 형태를 파악하지 못하였다.인양된 유물의 기종은 잔·대접·접시·뚜껑 등이며, 문양은 양각 및 음각으로 표현된 연판문·앵무문·목단문 등이다. 인양된 청자는 인근의 부안 유천리 도요지 제7구역 27·28호에서 출토된 것들과 유사한 특징을 지니고 있다.
비안도 해저 인양 도자기의 제작 연대에 대한 견해는 12세기 후기에서 13세기 초기로 보는 견해가 있다.
글쓴이: 국립해양유물전시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사 김병근
출처 : 정부/정책글쓴이 : 문화재사랑 원글보기메모 :'<군산>정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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