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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시의 추모연설과 예수의 산상수훈
    연설논설논문언론 2005. 12. 10. 10:40

    부시의 추모연설과 예수의 산상수훈

     

    2002년 9월 13일 오마이뉴스

    황당하다. 기가 막히다. 아니 슬프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우리의 지성이 마비됐을까. 자유의 여신상을 배경으로 "우리는 대량살상무기로 문명을 위협하는 어떠한 테러리스트나 폭군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살인으로 권력을 잡으려는 광신적 집단을 외면하거나 유화적으로 대할 의도는 없다"고 엄포한 부시 미 대통령의 9.11 추모연설이 예수의 산상수훈에 비견되다니!

    미국의 일방주의를 편드는 것까지는 좋다.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팍스 아메리카나'를 찬양하는 것까지도 괜찮다. 하다못해 뉴욕의 그라운드 제로에서 숨져간 이들을 위해서 눈물을 훔치며 마치 그들의 죽음만이 기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처럼 추모하는 것까지도 큰 맘 먹고 너그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부시의 연설과 예수의 산상수훈을 동렬에 놓다니, 이 무슨 빌어먹을 짓이냐.

    "미국인들은 역사의 고비마다 명연설문을 인용해 국민들의 용기를 북돋았다. 독립선언문, 링컨 대통령의 게티스버그 연설문, 루스벨트 대통령의 '네 가지 자유’ 연설문 등이 그것으로 이번 추도식에서도 낭독됐다. 부시 대통령이 뉴욕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행한 추모연설은 예수의 '산상수훈’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라운드 제로 추도식에서 연설은 없었다. 어떤 말로도 유가족들의 가슴에 맺힌 상처를 치유할 수 없었을 것이다."(만물상, 9.11 추모행사, 2002.9.13)

    "부시 대통령이 뉴욕 자유의 여신상 앞에서 행한 추모연설은 예수의 ‘산상수훈’을 연상케 했다고 한다"고? 어느 고매한 인간의 입에서 이따위 말이 나왔단 말이고. 아니 어느 누구의 입에서 나온지도 모르는 이따위 말이 만물상의 가슴에 얼마나 감명깊게 와닿았으면, 이것을 주위에서 다들 이렇게 말하더라는 식으로 이렇듯 뻔뻔하게 은근슬쩍 옮겨놓을 생각까지 했을꼬. 통제라! 통제라!

    부시의 추모연설을 예수의 산상수훈에 버금간 것으로 평가한 익명의 광인이야 어쩔 수 없다 치자. 그런데 그 말을 자신의 글 한 귀퉁이에 당당히 삽입한 만물상은 예수의 산상수훈을 한 줄이라도 제대로 읽어 보고서 그런 짓을 하는 걸까. 산상수훈을 조금이라도 아는 이같으면, 화약냄새가 풀풀 나는 부시의 호전적인 연설과 '복된 무력함'을 설파한 예수의 산상수훈을 감히 연관짓지는 못할 터.

    미국의 이익에 어긋난다 하여 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명명하고 그를 파멸시킬 야망에 충만한 부시의 연설과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며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도 돌려주라는 예수의 산상수훈이 어떻게 한 자리에서 발음될 수가 있는가. 아프간을 초토화시킨 것으로도 모자라 이젠 이라크까지 쓸어버리겠다고 떠벌이는 부시의 연설과 긍휼히 여기는 자에게 복 있음을 선언한 예수의 산상수훈을 어떻게 나란히 자리매김할 수 있는가.

    끄떡하면 부시가 신을 들먹이고 자기가 무슨 신의 사자인 것처럼 횡설수설하는 것을 모르지 않는다. 모든 것을 선과 악, 내 편과 불량한 놈들로 나누는 그의 단순무식한 이분법이 기독교적인 결벽증에서 나왔음을 또한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기독교를 잘못 믿으면 이렇게 망가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라이브한 사례는 될지언정 부시의 연설을 예수의 산상수훈에 연계시키는 단서는 되지 못한다.

    바르게 말하자. 부시와 부시의 나라 미국처럼 산상수훈의 정치에서 거리가 먼 존재들도 없다. 아니, 거리가 먼 정도가 아니라 그들은 사사건건 정반대로 행하고 있다. 강대국의 오만을 이용하여 약소국을 침탈하는 부시의 전쟁은 팔복의 가르침에 대한 반역이며, 온 세계를 전쟁의 공포로 몰아넣는 부시의 독트린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대로 남을 오히려 대접하라는 황금율의 가르침에 대한 정면도전이다.

    19세기 독일의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의 법과대 박사학위논문 주제가 예수의 산상수훈을 어떻게 정치에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세계적인 소극으로 끝났다. 재위 20년에 이르는 그의 정치역정은 산상수훈과 아무런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부시가 우리를 웃길 차례인가. "부시의 추모연설이 예수의 산상수훈을 연상시켰다고 한다"는 만물상의 한마디 말에 자극받아 이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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