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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수부首府‘ 기와, 백제멸망 후 당唐나라 제작<칼럼사설수필> 2020. 7. 6. 10:33
장방형(직사각형) 인곽(도장 둘레) 3번이 부여익산에서 발굴된 수부 명 기와 형태, 1.2번은 당 대명궁(서안) 기와
< 위, 익산토성 수부 명 기와>
<아래, 왕궁 수부 명 기와>
< 아래, 왕궁 수부 명 암키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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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곽이 원형인 미륵사지 발굴 인각와>
<인곽이 원형인 미륵사지 발굴 인각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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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ariul114&logNo=221043326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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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석사 발굴 오래 전부터 폐사지에 나뒹굴던 깨진 심초석으로 중간에 반쯤 깨진 사각형 사리공이 있어 사리 등 사리장엄이 봉안됐음을 알 수 있게 한다>
http://blog.daum.net/86464144/13266864 <클릭>
제석사지 발굴조사(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두 번 사찰을 세운 것으로 기록돼 현재 폐사지이므로 최소한 두 번 세우고 두 번 폐사됐다는 말이다.
<칼럼> ‘수부首府‘ 기와, 백제멸망 후 당唐나라 제작
익산이 백제수도·왕궁 근거로 일부 학계가 주장하는 “‘수부首府‘ 기와가 당唐나라가 제작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무왕 때 세운 미륵사지 인각와(도장무늬 기와)는 판이하다.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는 2017년 10월 ‘제11회 쟁점 백제사학술회의’를 개최했다. 당시 발행한 ‘백제, 한성에서 웅진으로’라는 책자에서 충남대 ‘박순발’ 교수가 기조 발제한 ‘백제의 정도定都와 천도遷都’ 중 관련내용을 쉽게 쓰자.
▶ (백제멸망 직후,) 사비도성에는 당唐 지배기구인 ‘웅진도독부‘ 관부가 새로 조영됐다. 관련 고고자료가 대당大唐 명 와당 등 당 기와다. 관북리 와요지 당 연화문 와당은 당 장인이 제작한 것이며, 백제와당과 형태가 다른 연화문 와당도 이 때 등장했다. ’首府 명‘ 인각와가 주목된다. 기존에 ’으뜸 관부’라는 뜻으로 ‘도성’으로 보았으나 근거가 없다. 首府가 문헌에 처음 등장은 1697년 ‘귀양통지‘에서고, 청대-지금까지 (지방 최고 행정단위인 성省 소재지, 자치주나 자치구 정부소재지, 속국이나 식민지 지배기구 소재지) 지칭 용어다. 수부 명 와의 인곽(도장 둘레)이 장방형長方形(직사각형)인 점은 백제 원곽圓郭(원 모양 둘레)과 차이가 분명하나 ’당 대명궁‘ 등지 출토된 인각와 인곽과 동일하다. 수부 의미를 생각하면 수부 명 기와는 백제 멸망 후, 당이 제작했다. 백제 멸망 후, 당의 건축행위가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정사正史는 한성(서울)백제와 웅진(공주)백제, 사비(부여)백제(538~660)만 인정한다. 그간 지역 사학계는 무왕(600~641)의 ‘익산천도(금마백제)’를 주장했다. ‘신앙 간증’인 ‘관세음응험기觀世音應驗記‘ 등이 근거다. 그러나 뒷부분 첨가(조작)설이 나도는 등 발견과정과 내용은 물론 사료로써 인정키 매우 어려운 고(괴)문서다.
‘김명환‘ 향토사학자는 “H교수가 도내 모 대학에 관계할 때 공개됐으며, 천도설은 1965년 왕궁리석탑 사리장엄이 나온 후인 마백연구소 학술지 등에 발표한 일본학자 마끼다 다이로 교수 연구서(1970)가 기초됐다.”는 것이다. 일본에서 응험기 최초 발견자와 국내 공개자 등이 이 대학 관계인물로 ‘역사왜곡·조작’이라 비판한다. H교수는 가짜 총통사건 국보심사도 했다는 보도다. 내용도 ‘조작설’에 기름을 붓는다. 앞13줄은 양무제 연호로 502~519년인 양梁 ‘천감天監‘인데, 뒤5줄은 당태종 연호인 '정관貞觀13년(639년)‘이어 최소 120년 차다. “두 사람 응험기인지, 첫 내용을 쓴 사람 예언인지?” 응험기 실물 공개검증이 절실하다.
‘首府’ 명 기와도 백제왕도(익산천도) 근거로 내세운다. 2017년 8월, “익산토성(오금산성=보덕성) 발굴에서 익산이 백제 무왕 대 수도였음을 증명할 首府 기와가 출토됐다.”는 보도자료가 배포됐다. “왕궁성은 백제왕궁, 쌍릉은 무왕·선화공주릉”임을 주장해 온 연구소가 발굴을 주도했다. “首府 기와는 수도 유물로 사비(부여) 관북리 6점과 부소산성 1점이 출토된 바 있는데 익산토성 首府명 기와는 왕궁출토 13점과 함께 백제수도首都 증명자료다.”는 것이다.
▶그러나 首府는 ‘중앙정부가 있는 도시‘를 뜻하지만 ’(감영 등이 있던) 주요도시’도 의미한다. 전주(충주·공주)도 전라(충청) 首府라 한다. 특히 금마·왕궁은 기준성과 함께 기준(무강왕)이 세운 후後 ‘마한’왕도이며, 신라가 고구려 유민 ‘안승’을 금마저金馬渚 왕으로 봉해 백제부흥운동을 잠재우는 ‘보덕국報德國(674-684년)’도 존재했다. 견훤 ‘후백제’ 완산주에도 포함됐다. ‘수부‘ 기와로 백제왕도(익산천도) 주장은 성급하다.▶는 것이 그간 필자 주장이다.
쌍릉은 무수한 사서에 후 마한 무강왕(기준)과 부인릉으로 기록됐다. 근년 대왕릉 인골도 연대측정이 정확치도 않고 순장 유골인지도 모르는데 무왕으로 단정했다. 무왕이 부여에 머물렀던 기록이 무수히 담긴 삼국사기 등 사서나 즉위 직후인 “602년 무왕이 출병시킨 백제 군사 4만 명이 몰살한 ‘아막성 전투’ 등을 근거해도 익산천도·백제왕도·신라 선화공주는 허구다.
‘국립익산박물관 개관 도록’ 195-97p 미륵사지 인각와는 전부 원곽圓郭이다. 백제왕도 등은 ‘짜 맞추기 서남공정(?)‘으로 마한왕도에서 역사후퇴다. 함부로 역사 재단은 금물이다./편집국장 고재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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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 미륵산성, 일명 기준성>
<이상 미륵산성, 일명 기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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