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휴대폰에 푹 빠진 사회~<칼럼사설수필> 2018. 3. 27. 11:59
<전주원동 배과수원>
<백매화>
<홍매화>
<앵두꽃>
<칼럼> 휴대폰에 푹 빠진 사회~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황진이·허난설헌과 함께 부안이 낳은 조선 3대 여류시인 이매창(1573-1610) 작품이다.
비처럼 뿌려지는 배꽃에서 추풍낙엽까지 화엽花葉이 봄부터 가을까지 떨어진다.
그 다음은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시간적 이별에 한양천리 공간을 넘어 꿈에라도 그리운 임, 유희경(1545-1636)에 가고픈 애절한 사랑가다.
매창과 유희경, 직소폭포는 부안삼절扶安三絶이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에 찬 자리여./생각나는 것이 임뿐이라./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중략)...”
변학도 수청 강요를 거부하다 곤장을 맞고 하옥된 남원골 춘향이가 신세를 한탄하며 이몽룡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춘향가 ‘쑥대머리’다.
숙종 재위(1674∼1720)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실존인물을 근거로 했다는 말도 있는데 매창보다 늦은 시기다.
매창과 춘향이가 요즘 태어났다면 그처럼 애절하고 목숨을 건 사랑이 가능했을까?
다름 아닌 휴대폰 때문이다.
국민 93%가 보유했다니 가히 ‘휴대폰 전성시대(?)’다.
정치나 사업가들이 대포폰을 별도 보유한 것을 합치면 국내에만 5천만대를 넘어선 것 같다.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직전에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가 유행한 적도 있다.
일반전화기로 호출하면 삐삐에 호출자 전화번호가 찍혀 삐삐 소지자는 가까운 공중전화에서 호출자에 전화를 걸어 용건과 상황을 아는 식이다.
한 때 유용했던 삐삐는 완전 퇴장했고, 이제 휴대폰이 모든 것을 대체했다.
공중전화는 물론 가정 전화기도 거의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얼마나 ‘휴대폰에 빠진 사회’인가를 알 수 있다.
휴대폰 없는 사람이 없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사람, 뉴스 보는 사람, 회화공부를 하는 사람, 드라마 등 동영상을 보는 사람, 게임에 빠진 학생, 카톡을 하는지 정신 나간 것처럼 혼자 실실 웃는 사람 등등 셀 수 없다.
잠자는지 눈만 감은지 모를 사람도 이어폰을 끼고 있다.
십여 년 전만해도 책이나 신문·잡지를 읽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찾아보려 해도 볼 수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뭔가 글을 보내는 듯 두 손으로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는 젊은이에 운전 중에 카톡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보험료가 크게 올랐다는 지인도 있다.
휴대폰을 보다가 맨홀에 빠졌다는 뉴스까지 나온다.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메시아가 출현한 듯 전 국민이 몰입돼 있다.
당연히 서적이나 신문은 안 팔리고 대학생 등 젊은 층의 하루 평균 휴대폰 이용시간이 세 시간이 넘는단다.
요술방망이처럼 기능도 무수하다.
카메라 수준의 촬영기능으로 맘껏 찍은 사진을 다른 사람 휴대폰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보낼 수 있다.
신문사 사진부 기자도 사라진다.
전문사진가 외에는 카메라도 필요 없다.
디지털 사진기로 사라진 필름도 물론 필요 없다.
휴대폰에 자체 저장해 보고 싶을 때 보거나 컴퓨터 블로그나 카페 등에 저장·활용할 수 있다.
사진관도, 사진 앨범도 거의 사라졌다.
녹음 등 무수한 기능을 다 활용치 못한다.
“카톡~ 카톡~” 소리가 경망스럽기도 해 안하던 ‘카톡’에 가입했다.
동창생 모임소식 때문이다.
퇴직을 할 나이어서인지 동기동창만 무려 180여 명이 가입했다.
세계 각국에 살거나 여행 중인 친구들과 대화나 각종 자료전송이 가능하고 집단토론도 할 수 있다.
‘아고라 광장agora plaza’이 손안으로 들어왔다.
전체 톡 뿐 아니다.
반톡과 개인끼리 통하는 개톡도 있다.
취미·문중·동호회·정당이나 지구당, 특정 후보 지지자 등에 따라 무수한 카톡방이 개설됐다.
새벽 다섯 시부터 노래와 동영상,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글 등 각종 자료 및 사진 등이 무수하게 올라온다.
한참 다른 일에 몰두할 때 “카톡~” 소리가 넌더리 날 때도 있어 진동으로 했더니 “윙윙~”거려 무음처리 했다.
노인들도 각종 야한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는다.
어쩌다 휴대폰을 분실하면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안절부절 해 처자식을 잃은 듯하다.
부부나 연인보다 더 다정한 듯 침대의 손으로 잡을 거리에 매일 나란히 누워 잔다.
1백 년 전에는 인구 90%가 태어난 군현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는데 매년 수천만 해외방문객과 함께 가히 ‘휴대폰에 중독된 사회’다.
가뜩이나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도 떨어졌는데 젊은이들이 TV나 휴대폰을 통해 하도 예쁜 처자와 잘난 남자를 많이 봐서인지 금방 만났다가 금방 헤어진다.
이매창과 성춘향의 애절한 사랑은 쉽게 만나지 못하던 시절, 한 번 만난 연인을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휴대폰으로 맘껏 연인을 볼 수 있거나 만날 수 있었다면 “이화우 흩날릴 제~“와 ‘쑥대머리‘가 나왔을지 모르겠다.
28세나 많은 나이에 아들을 6명이나 두었던 유희경이 매화나 배꽃 같은 매창의 몸과 마음에 불만 질러놓고 한양으로 훌쩍 떠나 버렸는데 요즘 같으면 ‘성매매 특별법’에 의해 처벌 받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유희경이 한양까지 찾아간 매창을 적당히 따돌린 것은 “이화우 흩날릴 제~”라는 애절한 사랑시를 받고도, “그대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으니 서로 사무쳐도 볼 수 없기에(중략)...”란 답시에서도 알 수 있다.
옛날 양반이나 작금의 유부남이 젊은 여자와 놀아난 후, 취하던 상투적인 수법이다.
처자식과 노후를 보내며 당시 드물게 92세까지 천수를 다한 유희경과 38세에 그에 대한 상사병으로 세상과 하직하면서도 애달픈 연정시를 남겼던 매창이나 암행어사가 돼 춘향을 끝까지 책임진 이몽룡과 어찌 같은 반열에 놓으리오.
요즘 같으면 변학도는 암행어사 이몽룡에 당하기 전에 춘향의 미투(#MeToo)에 꼼짝없이 봉고파직封庫罷職 되고 구속 당했을 것이다.
1921년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한 현진건도 요즘 시대를 봤다면 ’휴대폰에 푹 빠진 사회’라는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취재국장 고재홍>
-------------------------------
<칼럼> 휴대폰에 푹 빠진 사회~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추풍낙엽에 저도 날 생각하는가./천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노라.” 황진이·허난설헌과 함께 부안이 낳은 조선 3대 여류시인 이매창(1573-1610) 작품이다. 비처럼 뿌려지는 배꽃에서 추풍낙엽까지 화엽花葉이 봄부터 가을까지 떨어진다. 그 다음은 북풍한설 몰아치는 겨울이니 더 말할 것도 없다. 시간적 이별에 한양천리 공간을 넘어 꿈에라도 그리운 임, 유희경(1545-1636)에 가고픈 애절한 사랑가다. 매창과 유희경, 직소폭포는 부안삼절扶安三絶이다.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 옥방에 찬 자리여./생각나는 것이 임뿐이라./보고지고 보고지고 한양낭군 보고지고(중략)...” 변학도 수청 강요를 거부하다 곤장을 맞고 하옥된 남원골 춘향이가 신세를 한탄하며 이몽룡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춘향가 ‘쑥대머리’다. 숙종 재위(1674∼1720)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나 실존인물을 근거로 했다는 말도 있는데 매창보다 늦은 시기다.
매창과 춘향이가 요즘 태어났다면 그처럼 애절하고 목숨을 건 사랑이 가능했을까? 다름 아닌 휴대폰 때문이다. 국민 93%가 보유했다니 가히 ‘휴대폰 전성시대(?)’다. 정치나 사업가들이 대포폰을 별도 보유한 것을 합치면 국내에만 5천만대를 넘어선 것 같다. 휴대폰이 대중화되기 직전에 무선호출기, 일명 ‘삐삐’가 유행한 적도 있다. 일반전화기로 호출하면 삐삐에 호출자 전화번호가 찍혀 삐삐 소지자는 가까운 공중전화에서 호출자에 전화를 걸어 용건과 상황을 아는 식이다. 한 때 유용했던 삐삐는 완전 퇴장했고, 이제 휴대폰이 모든 것을 대체했다. 공중전화는 물론 가정 전화기도 거의 사라졌다. 휴대폰으로 무용지물이 됐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얼마나 ‘휴대폰에 빠진 사회’인가를 알 수 있다. 휴대폰 없는 사람이 없다.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는 사람, 뉴스 보는 사람, 회화공부를 하는 사람, 드라마 등 동영상을 보는 사람, 게임에 빠진 학생, 카톡을 하는지 정신 나간 것처럼 혼자 실실 웃는 사람 등등 셀 수 없다. 잠자는지 눈만 감은지 모를 사람도 이어폰을 끼고 있다. 십여 년 전만해도 책이나 신문·잡지를 읽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었으나 요즘은 찾아보려 해도 볼 수 없다. 횡단보도를 건너면서 뭔가 글을 보내는 듯 두 손으로 휴대폰 자판을 두드리는 젊은이에 운전 중에 카톡을 하다가 교통사고로 보험료가 크게 올랐다는 지인도 있다. 휴대폰이라는 새로운 메시아가 출현한 듯 전 국민이 몰입돼 있다. 당연히 서적이나 신문은 안 팔리고 대학생 등 젊은 층의 하루 평균 휴대폰 이용시간이 세 시간이 넘는단다.
요술방망이처럼 기능도 무수하다. 카메라 수준의 촬영기능으로 맘껏 찍은 사진을 다른 사람 휴대폰이나 이메일 등을 통해 보낼 수 있다. 신문사 사진부 기자도 사라진다. 전문사진가 외에는 카메라도 필요 없다. 디지털 사진기로 사라진 필름도 물론 필요 없다. 휴대폰에 자체 저장해 보고 싶을 때 보거나 컴퓨터 블로그나 카페 등에 저장·활용할 수 있다. 사진관도, 사진 앨범도 거의 사라졌다. 녹음 등 무수한 기능을 다 활용치 못한다.
“카톡~ 카톡~” 소리가 경망스럽기도 해 안하던 ‘카톡’에 가입했다. 동창생 모임소식 때문이다. 퇴직을 할 나이어서인지 동기동창만 무려 180여 명이 가입했다. 세계 각국에 살거나 여행 중인 친구들과 대화나 각종 자료전송이 가능하고 집단토론도 할 수 있다. ‘아고라 광장agora plaza’이 손안으로 들어왔다. 전체 톡 뿐 아니다. 반톡과 개인끼리 통하는 개톡도 있다. 취미·문중·동호회·정당이나 지구당, 특정 후보 지지자 등에 따라 무수한 카톡방이 개설됐다.
새벽 다섯 시부터 노래와 동영상, 인생에 도움이 되는 글 등 각종 자료 및 사진 등이 무수하게 올라온다. 한참 다른 일에 몰두할 때 “카톡~” 소리가 넌더리 날 때도 있어 진동으로 했더니 “윙윙~”거려 무음처리 했다. 노인들도 각종 야한 사진과 동영상을 주고받는다. 어쩌다 휴대폰을 분실하면 세상과 단절된 것처럼 안절부절 해 처자식을 잃은 듯하다. 부부나 연인보다 더 다정한 듯 침대의 손으로 잡을 거리에 매일 나란히 누워 잔다.
1백 년 전에는 인구 90%가 태어난 군현을 벗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는데 매년 수천만 해외방문객과 함께 가히 ‘휴대폰에 중독된 사회’다. 가뜩이나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율도 떨어졌는데 젊은이들이 TV나 휴대폰을 통해 하도 예쁜 처자와 잘난 남자를 많이 봐서인지 금방 만났다가 금방 헤어진다.
이매창과 성춘향의 애절한 사랑은 쉽게 만나지 못하던 시절, 한 번 만난 연인을 볼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휴대폰으로 맘껏 연인을 볼 수 있거나 만날 수 있었다면 “이화우 흩날릴 제~“와 ‘쑥대머리‘가 나왔을지 모르겠다. 28세나 많은 나이에 아들을 6명이나 두었던 유희경이 매화나 배꽃 같은 매창의 몸과 마음에 불만 질러놓고 한양으로 훌쩍 떠나 버렸는데 요즘 같으면 ‘성매매 특별법’에 의해 처벌 받을 가능성이 매우 짙다. 유희경이 한양까지 찾아간 매창을 적당히 따돌린 것은 “이화우 흩날릴 제~”라는 애절한 사랑시를 받고도, “그대 집은 부안에 있고 나의 집은 서울에 있으니 서로 사무쳐도 볼 수 없기에(중략)...”란 답시에서도 알 수 있다. 옛날 양반이나 작금의 유부남이 젊은 여자와 놀아난 후, 취하던 상투적인 수법이다. 처자식과 노후를 보내며 당시 드물게 92세까지 천수를 다한 유희경과 38세에 그에 대한 상사병으로 세상과 하직하면서도 애달픈 연정시를 남겼던 매창이나 암행어사가 돼 춘향을 끝까지 책임진 이몽룡과 어찌 같은 반열에 놓으리오. 요즘 같으면 변학도는 암행어사 이몽룡에 당하기 전에 춘향의 미투(#MeToo)에 꼼짝없이 봉고파직封庫罷職 되고 구속 당했을 것이다. 1921년 ’술 권하는 사회‘를 발표한 현진건도 요즘 시대를 봤다면 ’휴대폰에 푹 빠진 사회’라는 글을 남기지 않았을까?/취재국장 고재홍>
'<칼럼사설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칼럼> 국립익산박물관 기공식과 사택왕후! (0) 2018.04.06 <칼럼> 봉침사건, 지방선거 쟁점 부상! (0) 2018.04.04 <칼럼> 국립전주문화재연구소 설립해야! (0) 2018.03.18 <칼럼> 호남선거 축소판, 익산시장 선거! (0) 2018.03.16 <칼럼>6·13 지방선거 변수와 민심 동향 (0) 2018.0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