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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간공실기(忠簡公實記) 익산시에 돌아왔다.여산삼기> 2008. 12. 8. 14:59
충간공실기(忠簡公實記) 익산시에 돌아왔다.
후손들의 노력으로 경매직전, 구입
원본과 목판본으로 사료적 가치 뛰어나
<충간공실기 최초본>
<허백정 홍귀달이 기록했음을 나타내 주는 내용>
<목판>
<충간공 이숭원 선생 영정>
<삼기면 기산리 현동사 가을 풍경>
충간공 이숭원(李崇元,1428~1491) 선생의 실기(實記) 원본과 목판이 후손들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달 3일 인터넷 경매 직전 대구에서 구입해 후손과 익산시민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는 충간공실기 필사원고본과 목판본 4장 등으로 문화재적 가치도 뛰어나데다 충간공 성균관사 후배, 홍귀달(洪貴達,1438~1504)이 대제학 시절인 성종 23년(1492년) 기록한 것으로 보여져 관심을 끌고 있다.
충간공은 '연안이씨'로 세종10년(1428)~성종22년(1491)까지 살았는데 문과 장원급제로 많은 관직을 거쳐 승정원 동부승지가 된 해 가선대부 연원군(延原君)에 봉했으며 도승지, 경상도관찰사, 한성부사, 형조판서, 대사헌, 평안도관찰사, 이조판서, 의정부좌참찬, 지경연 의금부사, 정조사, 우참찬, 형조판서를 거쳐 1491년 병조판서가 됐으나 질병으로 사퇴하니 ‘군(君)’으로 봉해졌다.
1979년 국가보물 제651호로 지정된 '익산연안이씨 종중문적'은 성종때 충간공에 내려진 좌리공신록과 8공신회맹록, 세종2년(1420)~명종원년(1546)까지 충간공과 충간공의 조부 이백겸, 부친 이보정, 손자 이계륜 등에 대한 교지 18매가 포함됐으며, 8공신회맹록은 당시 역사적 인물의 수결(싸인)이 있어 사료적 가치가 뛰어나다.
또한 보물은 아니지만 '익산연안이씨 종중문적'에는 선조.중종.인조.숙종대 공신회맹록 5책이 별도로 있었으며 익산 삼기면 기산리에는 후손들이 어서각.영당.부조묘 등을 세우고 홍살문, 하마비를 세워 '현동사(玄洞祠'라 편액을 붙였는데 1980년과 1999년 다시 복원했다.
그러나 1999년 9월19일 현동사 본관 우측문이 절단되고 금고안에 있던 공신록권과 공신회맹록 6책이 모두 도난 당해 현재까지 찾지 못해 애를 태워왔으며 익산시의 유물관 건립에도 알맹이가 빠진 것이 아닌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 익산연안이씨 종중문적 종친회장 이천인(42) 박사 등이 유물관 자료 확보에 동분서주하다 충간공실기가 국립박물관, 연세대박물관, 대구카톨릭대, 상좌원 서원 등에 나뉘어 보관 중임을 알고 구입의사를 표명했으나 "불가하다"는 말을 듣게 된다.
여기에 대전에 거주하는 연안이씨 종친 이모씨가 인터넷 검색 도중 충간공실기 등이 경매에 올려져있음을 알고, 익산의 종친회장 이천인씨에 연락해 이 박사는 이달 3일 경매에 올린 대구 K고서점에 전화로 구입의사와 경매중단을 요구한 후 당일 대구까지 전속력으로 차를 몰아 구입한 것.
현재 익산시 문화재 담당 등과 협의해 각 대학과 상좌원에 보관돼 온 실기 원본으로 추정돼 전문가에 감정을 의뢰키로 했는데 세계연보, 신도비, 충훈록, 유서 등 충간공의 업적을 기록한 중요자료인 '충간공실기 원고필사본'과 충간공실기 서문 등을 판각한 '목판' 등 희귀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충간공실기'는 경기도 양평 용문산 충간공 신도비문을 쓴 충간공 성균관사 후배 허백당(虛白堂) 홍귀달이 대제학 시절인 성종 23년(1492년) 3~4월경 쓴 것으로 추정돼 후손들은 전문가 감정이 나오기 전에 유통경로 등의 파악에 나서 다른 목판은 물론 '현동사 도난유물'을 되찾는데도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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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시 구성면 상좌원>
<연세대학교>
<국립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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