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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청색치마에 색동저고리 입은 지리산
    무진장임남순 2006. 3. 10. 13:12
    청색치마에 색동저고리 입은 지리산
    지리산 단풍을 카메라에 담아 봤습니다
     
    ▲ 지리산 천왕봉에서 내려다 본 산하. 알록달록 만산홍엽입니다.
    ⓒ2005 임윤수
    때 이른 눈 소식이 단풍소식을 전하기에 조금은 머쓱하게 만들지만 설악산에 내린 눈 소식은 말 그대로 '때 이른 눈'이니 지금쯤 단풍소식을 전하는 것도 전혀 엉뚱하지만은 않을 거란 생각입니다. 북에서 남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단풍이 백두대간의 종점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를 전하고 싶어 일요일인 23일 지리산 천왕봉엘 다녀왔습니다.

    ▲ 이런 산죽길이 아니더라도 아래쪽은 아직 푸른빛이 역력합니다.
    ⓒ2005 임윤수
    지리산 산색을 옷 색깔로 표현한다면 말 그대로 청색치마에 색동저고리를 입은 모양입니다. 해발 800m쯤 아래는 아직 푸른빛이 가시지 않은 여름빛깔의 강동한 치마를 입은 청색이 완연합니다. 붓으로 그 경계를 그린 듯 고지를 더해 위쪽으로 올라가면 색동저고리처럼 알록달록한 그런 단풍들이 정말 만산홍엽을 이루고 있습니다.

    ▲ 동글동글한 바윗길에도 가을단풍이 내려앉아 있으니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가을을 밟으며 오르는 길입니다.
    ⓒ2005 임윤수
    부지런한 사람들, 깜깜한 어둠 가르며 일출을 맞으러 천왕봉엘 올라갔던 사람들은 이미 하산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솟아오르는 태양이 무대의 조명처럼 측광을 만들어주니 산그늘이 만들어질 뿐 아니라 계곡과 능선에도 주연과 조연이 탄생합니다. 햇빛에 드러나는 능선과 계곡은 주인공처럼 그 화사함을 다 드러내지만 아직 햇빛에 드러나지 못한 단풍 숲은 무대의 조연처럼 그 화사함을 다 드러내지 못하고 어두운 표정으로 있을 뿐입니다.

    ▲ 기암괴석과 맑은 물 그리고 형형색색의 단풍이 어우러지니 정말 한 폭의 천연색 산수화입니다.
    ⓒ2005 임윤수
    쏟아지는 햇살은 색색의 단풍 이파리에 가려 은둔자처럼 제대로 보이지 않던 나뭇가지들과 바위들도 속살처럼 고스란히 다 드러내줍니다. 한가롭게 걸으며 중얼거리듯 부르는 콧노래로 들리지 않는 산새소리를 대신하기도 하지만 반쯤 이상은 가파르게 쏟아지는 계곡물소리를 흉내내듯 헉헉거리는 숨소리일 뿐입니다.

    ▲ 아침햇살이 비스듬하게 비추니 산과 계곡에도 주연과 조연이 형성됩니다. 햇살에 드러난 단풍이 훨씬 산뜻해 보입니다.
    ⓒ2005 임윤수
    푸른빛 가득한 산죽나뭇길을 지나 동글동글한 돌길을 걷고 출렁거리는 구름다리를 건너며 맞이하는 산색은 높이에 따라 조금씩 그 색깔이 달라집니다. 푸른빛에서 노란색 그리고 빨간색을 넘어 이미 색의 경지를 넘어, 색깔의 세계로부터 해탈의 경지에 이른 듯 외양의 화려함 모두 버리고 바스락거리는 낙엽 되어 탈색된 각양각색의 색감을 볼 수 있습니다.

    ▲ 하늘아래 첫 산사인 법계사는 지리산 산신할머니가 입은 색동저고리를 헤치고 젖이라도 먹는 듯합니다.
    ⓒ2005 임윤수
    중산리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길은 칼바위길과, 지리산 자연학습원에서 올라가는 두 갈래길이 있습니다. 자연학습원까지 자동차로 이동해 그곳에서부터 걸어 올라가든, 매표소를 막지나 왼쪽으로 접어드는 칼바위길로 가든 해발 1400m지점에 위치한 로타리대피소에서 합류하게 됩니다.

    이렇게 양 길로 올라온 사람들이 대피소 앞에서 만나게 되니 이곳에서부터 천왕봉까지는 줄서기라도 한 듯 사람들이 늘어서 걷게 됩니다. 먹이를 물어 나르는 개미의 무리처럼 한 줄로 늘어선 사람들이 또 다른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천왕봉을 종점으로 부챗살처럼 사방팔방으로 만들어진 등산로를 따라 전국 방방곡곡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지신밟기라도 하듯 한발 한발 내디디며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푸근하고 넉넉한 지리산 천왕봉길을 걷고 있습니다.

    ▲ 법계사 3층탑엔 부처님 진신사리만 모셔진 게 아닌 듯 낮달도 걸려있습니다.
    ⓒ2005 임윤수
    법계사 진신사리탑에는 대낮달도 걸려 있습니다. 달님은 무슨 걱정이 그리 많아 그토록 해쓱한 모습으로 탑에 걸렸나 모르겠습니다. 볼우물이 파인 듯 반쯤은 일그러진 달, 잠을 자고 있어야 할 그 달이 하늘을 배경으로 우뚝 솟은 탑에서 서성거리고 있습니다.

    옆에서 듣기가 민망할 정도로 헉헉거리는 거친 숨소리를 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몰아쉬는 숨소리가 자신을 부끄럽게 할 정도로 겨우 아장거리는 발걸음을 면한 듯 보이는 어린 꼬마의 씩씩한 모습도 보입니다. 천왕봉에 보물이 있는지 아니면 꿀단지라도 묻혀 있나 모르지만 다들 힘들다고 하면서 산길을 걷고 있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기꺼이 선택한 길이기에 힘들어하는 모습에도 여유가 있고 행복이 담겨 있습니다.

    ▲ 일찌감치 도착해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미 천왕봉엘 도착한 사람들이 부럽기만 합니다.
    ⓒ2005 임윤수
    외길이니 힘이 있다고 빨리 갈 수도 없지만 힘이 든다고 아무 곳에서나 털퍼덕 주저앉을 수도 없습니다. 자신은 물론 앞서거나 뒤에서 오르고 있는 사람들의 안전을 위해서는 차례를 지켜야 하고, 당장을 피해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을 공간을 찾는 여유를 가져야 합니다.

    걸어온 길 뒤돌아보며 자신들을 대견해 합니다. 걸어온 발아래 펼쳐지는 장관의 산하에 뿌듯함을 느끼고 땀의 대가를 보상받는 듯합니다. 깔딱고개, 바짝 붙어서 걷게 되면 머리로 앞사람의 엉덩이에 똥침을 놓을 만큼 가파른 그런 비탈길을 올라서면 준령산하는 물론 멀리 남해바다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천왕봉이 됩니다.

    ▲ 깔딱고개에서 바라보니 천왕봉 산신할머니는 아직 푸른빛 가득한 청색치마를 입고 계십니다.
    ⓒ2005 임윤수
    푯돌에서는 한바탕 기념사진을 찍기 위한 전쟁이 치러집니다. 힘들게 올라온 길, 지리산 천왕봉엘 다녀왔다는 걸 기념하고, 그 흔적을 누군가에게 자랑하기 위해 한방의 사진을 찍기 위해 푯돌을 중심으로 사람들이 벌떼처럼 모여듭니다. 자칫 실족이라도 하면 떨어질 수밖에 없는 그런 낭떠러지에 매달려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사진기를 들고 푯돌을 에워싼 사람들을 향해 셔터를 눌러댑니다.

    산하를 굽어보며 몇 분을 지나지 않아 한기가 느껴집니다. 등줄기를 흐르던 땀방울이 고드름처럼 얼어버렸나 이빨조차 덜덜 떨려옵니다. 하산 길을 서두릅니다. 청색치마에 색동저고리로 한껏 치장을 한 지리산, 어머니의 젖무덤처럼 푸근하고 넉넉하기만 한 천왕봉을 내려오니 다시금 청색치맛자락 중산리입니다.

    ▲ 멀리, 저 멀리 산하는 구름바다 속 용궁의 세계가 되어있습니다.
    ⓒ2005 임윤수
    가쁜 숨 헉헉거리던 사람들도 지리산 치맛자락, 아직은 푸른빛이 도는 청색 중산리에 도착하니 아가가 되고 젖먹이가 된 듯 평온하고 행복한 표정입니다. 사람들의 얼굴에도 사랑빛 기쁨단풍이 알록달록 물들어 있었습니다.

     
    출처 : 블로그 > 전원희망(田園希望) | 글쓴이 : 산정 山頂 [원문보기]
     

     
    출처 : 블로그 > 봄,여름,가을 | 글쓴이 : 보스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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