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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펌] 사진으로 보는 월남전역사풍물전통 2006. 1. 11. 11:35
다른분의 블로그에서 퍼온 사진들입니다. 저도 낮익은 사진들이 많네요.
다만 설명이 부족하거나 약간 잘못된 부분은 제가 수정했습니다(파란색 주석부분)
남베트남 공군의 T-28기가 미군 파일럿을 따라서 베트콩 주둔지에 네이팜탄을 떨구고 있다. 1962년
베트콩의 은거지로 예상되는 지역에 네이팜탄이 떨궈졌다.
(베트남전사상 최고의 종군기자중 하나인 래리바로즈의 작품으로 미군이 본격적으로 참전하기시작한
65년 이전의 비밀작전"팜게이트"시절의 사진이다)
UH-1 휴이 헬리콥터가 사이공으로 부터 북쪽 30마일 떨어진 지점으로 이동하고 있다.
병사들을 내린 헬리콥터가 신속하게 이탈하고 있다.
병사들이 탑승한 M-113 장갑차가 이동하고 있다.
더운 날씨에 지친듯한 병사의 모습이다.
(이 사진은 비무장지대에서 북베트남군과 교전하던 미해병대의 모습이다. 예상치 못한 적의 매복으로
작전을 포기하고 지원포격의 엄호하에 철수하는 해병대원의 얼굴에는 피로와 공포가 서려있다)
" Hanoi hilton " 이라고 불리워진 하노이의 북베트남군 포로 수용소의 모습이다.
(북베트남군은 하노이 힐튼 이외에도 플랜테이션, 동물원 등의 이름으로 불린 포로수용소를 하노이 교외에
보유하고 있었으나 미군의 포로구출작전인 손타이 작전에 영향으로 모두 하노이 힐튼으로 보내졌다. 당시
격추된 조종사 출신 미군포로 대부분이 이곳에 수감되었고, 일부 남쪽에서 압송된 보병출신이나 통킹만에서
낙오된 수병도 있었다. 야만적인 고문과 학대로 많은 포로들이 사망했고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B-52 폭격기가 북베트남군의 활동지역에 " 폭탄의 비 " 를 퍼붓고 있다.
(정확히는 남부베트남의 캄보디아 접경 "구치일대"다. 괌에서 날아온 폭격기들은 열심히 폭탄을 퍼부었지만
성과는 이렇다 할것이 없었다. 물론 베트콩들도 타격은 있었지만 비용이 너무 비쌌다.
심지어 공중급유중이던 폭격기 2대가 공중충돌로 조종사 전원이 사망하는 사고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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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이 헬리콥터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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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군 병사들의 수색정찰 모습이다..
(호주와 뉴질랜드군이 참전하였고 호주군은 호주SAS와 보병대, 그리고 공군폭격기, 해군구축함을 파견하였고
이들에게 정기적인 보급을 위해 호주군의 항모가 보급임무를 수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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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격기 편대가 지나간 후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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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 베트남군 야전장교가 생포한 베트콩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
(이 사진은 남북의 서로간 증오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북베트남군은 협조를 얻기 위해
반항하는 자들은 가차없이 살해했다. 그것이 공무원이나 교사등 남베트남 정부관련자가
아니더라도... 악에 받친 남베트남군인들도 포로를 애시당초 포로대접할 생각은 없었다.
최근에 한겨레의 구수정씨는 한국군의 학살 어쩌구를 근거부족한 상태로 잡지에 실어
파장을 일으켰다. 하지만 북베트남군의 대학살은 훨씬 유명하다. 특히 구정공세중인 68년의
후에시 학살은 너무도 유명하다. 북베트남이 이긴 오늘 , 그들이 현정부인 북베트남에
항의할 수 있을까? 진실은 누구도 모른다. 그렇다고 한국군의 우발적인 사건이 없었던 것
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많치는 않을 것이다. 현정부의 당시
만행을 솔직히 고발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턱대고 우리가 했다고 하는 말 역시 믿을수 없다.
그중에 상당수는 우리에게 지원을 얻기위한 억지도 있을수 있으니까....
참고로 말하지만 남과 북의 갈등은 엄청나다. 호치민은 북에선 영웅이지만 남에선 최악의
대접을 받는게 현실이다. 드러내 놓고 하지 못할뿐... 그런데 우리의 구수정씨는 그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기 원하는대로 쓸뿐 진실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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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베트남군 병사가 벙커에서 저항하다 미군 1 기병연대 병사들에개 생포되어 끌려나오고 있다. 1966년.
(기병연대라기보다는 제1기병사단예하 사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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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병연대의 의무병인 토마스 리치몬드의 부상당한 얼굴에서 흐르는 피가 그의 옷을 적시고 있다..
어린 베트콩 포로가 총소리를 듣고난후 울고 있다. 이 소년은 게릴라들의 연락병이였다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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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키 파파 ` 13 착륙지점에서 승무원장인 제임스 페널리가 그의 M-60 기관총을 조준하고 있다..
유명한 래리바로즈의 시리즈 연재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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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Khe Sanh`가 적의 공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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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Khe Sanh`의 공격이 있은직후 찍은 해병의 모습이다. 나중에 전사하였다.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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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 소속의 탄약 적재 트럭이 폭발하고 있다. 1968년 5월 18일.
케산인근의 미군 탄약고가 적의 포탄에 유폭을 일으킨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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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5월 16일, 미군에 의하여 사살당한 베트남인들이다. .
악명높은 미라이학살사건사진이다. 미군에서도 거칠기로 유명한 아메리칼 사단의
사건으로 관련장병들은 기소되었고 현장지휘관인 켈리중위가 기소되었다. 아메리칼
사단은 임시편성성격의 사단이었는데 이사건의 영향탓인지 전쟁중 사단은 해체되
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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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무대에서 부상당한 해병들이 헬기 착륙지점으로 이송되고 있다. 1966년..
북베트남과의 접경인 비무장지대에서의 전투사진이다. 오퍼레이션"프레리" 당시
사진으로 북베트남군은 미해병과의 전투에서 보병전에서는 대등한 실력을 보여주며
서로간에 엄청난 사상자를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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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 포로를 심문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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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리된 바주카와 로켓을 들고 있는 사수의 모습이다. .
울창한 코끼리풀 초원과 가슴까지 차오르는 수로가 가로지르는 비무장지대는
전투에 적합한 환경은 아니었지만 양측은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 사진의
해병대 포사수는 1주일후 교전중 전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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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베트남 인근의 벤 투이 발전소의 폭격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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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명의 북 베트남군이 지뢰를 매설하고 있다..
이처럼 탁트인 평지는 미군의 착륙장으로 사용되었으므로 이런지역에 대한 지뢰
설치는 랜딩하는 미군병력과 헬기에 상당히 위협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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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장교가 수첩에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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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육군 소대가 작전에 투입되었다. 1966년 일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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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가 남부 베트남으로 상륙하고 있다. 1966년..
미해병대의 상륙돌격장갑차로 아마 최북단의 해안지대에서 순찰작전중일 것이다.
이모델은 미해병대만이 사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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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튼 L. 쿡 일병이 그의 M-60 기관총으로 적의 저격수가 있을만한 지점으로 조준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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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기갑연대의 M48A3 전차가 켄로강의 남쪽을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 1968년..
전차는 이동식 포대역할을 하면서 맹활약하였다. 특히나 후에시 전투같은 시가전에서는 보병을
보호하며 지원사격으로 활로를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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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연대가 베트남의 탄안 지역으로 이동하던 도중에 찍힌 눈물을 흘리는 병사의 모습이다..
9연대가 아니라 패치로 보아 9사단이다. 9사단은 캄보디아 접경을 따라 배치되어 서쪽에서
침투하는 월맹군을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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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5 고지 전투후에 찍힌 좌절한듯한 무전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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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파괴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그린베레의 모습이다. 1968년..
주석이 잘못된 것같다. 남부 메콩델타의 실팀이거나 레인저로 보인다.
복장이나 모자가 그린베레가 아닌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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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꽝 스럽게 생긴 우산을 받쳐 들고 이동중인 장갑차 승무원의 모습이다..
구정공세당시 시가지 전투중인 미군장갑차의 승무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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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60 기관총을 배치하고 있는 사수의 모습이다. 1967년.
비무장지대의 어느 고지에서 남하하는 월맹군을 저지하는 작전중인 해병대원
남베트남 군인과 시민이 베트콩의 기습으로 사살되었다.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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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원들이 전차의 뒤로 엄폐를 취하고 있다. 1968년..
유명한 후에시 전투다. 전차는 이렇듯 보병을 보호하며 적의 화기를 제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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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해병대원이 부상당한 동료병사를 돌보고 있다. 196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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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 포로가 미 25대대의 북쪽에서 생포되었다. 1969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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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베트콩의 시체를 곁에 두고 해병대원이 주위를 살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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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사들이 적의 포격을 피해 황급하게 벙커안으로 들어가고 있다. 1968년.
북쪽변경요새 케산의 해병들이다. 해병대기지는 구 프랑스군요새라 북베트남군이 훤히
알고있지만 북베트남군의 포대는 위장이 잘되어 찾기 쉽지않았다. 결국 해병들은 월맹군
의 포격에 시달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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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어린이들이 남베트남 공군이 떨어트리고간 네이팜탄의 불길을 피해 도망가고 있다..
이들의 마을은 삽시간에 불태워졌다. 197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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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병사가 베트콩 가족을 생포하였다. 196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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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 병사가 베트남 여인의 머리에 총을 겨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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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켙공격을 받은 사이공의 주민들이 대피하고 있다. 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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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한 101 공정사단 병사들이 착용하였던 전투화와 헬멧의 모습이다..
내가 알기론 173공수여단의 닥토전투 이후 추도식장면이다.닥토는
피아간에 너무도 끔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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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베트남군의 야전병원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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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 베트남군이 기관총 사격을 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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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 햄버거힐(고기언덕) " 이라고 불리워진 동압비아산의 미군병사의 모습이다..
이 전투에서 56명이 전사하고 420명이 부상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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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이 끝난후, 부상자를 옮기기 위해 헬리콥터가 착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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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미군 병사의 모습이다..
이아드랑 전투의 한 장면이다. 1단계 전투가 종료된후 수색정찰장면이다.
멜깁슨 영화의 후반부수색을 위한 돌격 장면에 해당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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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놈펜 시내에서 시신이 길가에 방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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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의 폭격으로 부상당한 민간인들의 모습이다..
한국군 소속의 맹호부대가 적의 초가를 향해 돌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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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피난민을 안전하게 보호하며 이동하고 있는 한국 맹호부대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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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군중, 목을 축이기 위해 수통의 물을 들이키고 있는 청룡부대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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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베트남군과 교전중인 청룡부대원의 모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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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의 거점으로 이동중인 청룡부대원이다. 조끼에 씌여진 실탄 통행 금지란 문구가 이채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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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룡부대원에 의해 생포된 베트콩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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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6호 작전에 참전중인 백마 부대원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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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베트남 어린이를 등에 업고 강을 도하중인 백마부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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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남 베트남 어린이를 등에 업고 있는 백마 무전병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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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수리 도깨비 6호 작전에서 적의 거점을 향하여 돌격하는 백마 부대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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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전중인 백마 부대 소속 병사들의 모습이다..
수색중 교전을 벌이고 있는 백마 부대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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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색작전중인 맹호부대원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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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콩의 근거지를 공격하는 혜산진 6호 작전을 수행중인 맹호 부대원들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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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년 7월 18일 파병을 시작하여 8년 8개월간 연인원 32만명이 참전하였던
국군은 1973년 철수와 동시에 고국으로 개선하면서
참전은 성공적으로 끝을 맺었다.
그러나 전쟁 기간 동안 5,000여명의 전사자와 16,000여명의 전상자
50,000여명의 고엽제피해자를 발생시켰다. .베트남에서 전사한 미군의 시신을 하노이 공항으로 운구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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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공할 제초제는 아무런 생각없이 남베트남의 전역에 살포되었고, 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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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엽제를 살포하는 미군기의 모습이다..
랜치핸드 작전을 불리는 고엽제살포는 베트남전역의 게릴라 은신추정지역에 뿌려졌다.
이 제초재의 독성에 대해 무관심했던 미군과 연합국들은 이후 그 후유증으로 고생하고 있다.
베트남민중은 말할것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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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보트피플의 모습이다. .
베트남전은 이미 종결되었다..
하지만 남은자들의 고통스러운 삶의 전쟁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 되고 있다..
그 누구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 그것이 바로 베트남전이 아닐까..
출처 : 한류열풍 사랑글쓴이 : 깝죽데기 원글보기메모 :'역사풍물전통'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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