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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크랩] 조선왕조의 흥망
    역사풍물전통 2006. 1. 9. 19:54
     
    http://blog.naver.com/jms021261/60015729248
     
     

     

    1882년 8월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도중 영국인 선장의 도움을 받아 고안·제정하였고, 조선정부가 1883년 3월 6일 정식으로 태극기를 국기로 제정·반포하였다.



    고종부친. 1863년 고종이 즉위하자 섭정. 1873년 실각. 1882년 임오군란과 1894년 갑오경장 직후 일시 집권.
     
     


    맨위에서 시계방향으로 광화문, 영국 총영사관의 안마당, 한국인 여성과 아기, 서울의 골목길, 한국인여성들이며 가운데는 포졸.
     
    출처 : 영국 화보전문 주간지 '디 일러스트레이티드 런던뉴스' 1890년 5월 10일자(18~19쪽)
    공개 : 뉴욕 거주 동포 고문서 수집가가 영국의 고서점에서 화보를 입수해 미주한국일보에 기고
     
     
     
    1883.10 에 창간한 우리나라 최초신문 한성순보
     
     
    1886년 정부 주도하에 설립된 최초의 근대적 관학인 육영공원에서 사용했던 영어교재.
     
     
    독립협회는 독립정신을 고취하기 위해 영은문의 석조기둥을 제외한 나머지를 헐어버리고 바로 그 뒤에 독립문을 세웠다.
     
     
    독립신문을 창간한 서재필이 중심이 되어 건립을 추진한 지 1년만인 1897년 11월 20일 독립문이 완공되었다. 중국의 사신이 올 때에 왕이 직접 나가 맞이했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자주독립의 상징물이다.
     
     
     
    김옥균, 서광범, 박영효, 홍영식(왼쪽부터)

     
    구한말 러시아 군복차림을 한 조선군 장교와 사병
     
     
    황제에서 물러난 직후인 1907년 7월 말, 경운궁 돈덕전 2층에 선 고종(사진 가운데). 사진으로 볼 때 고종 왼쪽에 선 사람이 새 황제 순종이며, 가장 왼쪽에 내시들과 서 있는 소년이 영친왕이라는 사실 등 이 사진의 촬영 시기와 등장 인물도 일뤼스트라시옹의 사진 설명을 통해 확실하게 밝혀졌다.
     
     
    1907년 7월 20일 기관총 등 무장 병력의 엄중한 호위 아래 황제 양위식에 참석하기 위해 경운궁(현 덕수궁)으로 향하는 이토 히로부미(앞쪽 마차 탄 사람) 일행.
     


    1876년 2월 병자수호조약 체결을 강요하기 위해 강화도 부사영 열무당에 배치된 일본군과 대포.
     
     
    일뤼스트라시옹은 사진 설명을 통해 "이 부랑인들이 경찰이 풀어줄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고 적고 있어, 일본측에서 조선군인 진압에 부랑인들을 동원했음을 숨기려 했음을 엿볼 수 있다. 부랑인들은 총은 물론 죽창 등을 기모노 자락 밑에 감춘 채 군대 해산을 거부한 조선군을 찾는다며 조선인들의 물건을 강탈하거나 폭행을 가했다. 일뤼스트라시옹 기사에는 이들이 사람을 죽였을지도 모른다고 기록하고 있다. 사진에 변발을 한 사람도 부랑인 무리에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중국인 부랑자들도 일부 가담했을지 모른다고 이태진 서울대 교수는 지적했다.
     


    군대 해산 뒤 투쟁을 벌이다가 포로가 된 조선군 병사들
     


    군대 해산(1907년 8월 1일) 직후 조선군의 반란이 일어나자 조선군 병영을 습격해 점령한 일본 군인들. 군대 해산에 항거한 무력 항쟁으로 조선군측은 100여명의 전사자와 200여명의 부상자를 냈다고 일뤼스트라시옹은 기록했다.
     


    1907년 8월 초 서울 광희문은 시신으로 가득했다. 그해 8월 1일 있었던 군대 해산에 저항해 일본군과 대적했다가 숨진 병사들이었다. 이 병사들의 주검 앞에서 조선인 가족들은 물론 일본인들마저 경의를 표했다고 일뤼스트라시옹은 기록하고 있다. 이 사진은 지금까지 1909년 9월 이후 일제의 토벌작전으로 사망한 의병들의 사진으로 잘못 알려져 왔다.
     
    출처 : 1907.09.07일자 프랑스 일뤼스트라시옹지
     
     
    강화도 초지진포대를 점령한 미해군
     
     
    강화도 건진포대를 점령한 미해군
     
     
    미군포로가된 조선 군인들
     
     
    고종밀사 이준은 헤이그에서 열린 만국평화회의에 일본공사의 방해로 회의 참석이 좌절되자 순국했다.
     
     
     
    1903년 황제폐위음모에 가담한 죄목으로 투옥돼 5년 8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던 이승만.
     
     
    1903년 한성감옥에서 애국동지들과 함께 (왼쪽 죄수 복장이 이승만). 앞줄 오른쪽부터 김정식, 이상재, 유성준, 홍재기, 강원달. 뒷줄 오른쪽부터 부친 대신 복역했던 소년, 안국선, 김린, 유동근, 이승린(이상재 아들).
     
     
    1899.02.01 경무사 이근용이 법부대신 유기환에게 보낸 기소 보고서로 이승만과 함께 탈옥한 최정식, 서상대를 체포하기 위해 수사중이며, 이승만은 후에 기소한다는 내용이다.
     
     
    구한말 평민들...
    개화기에 들어온 안경과 삿갓이 대비를 이루고 있다.

     
    가져온 곳: [쪼매괜찮은놈]  글쓴이: 정 말 로 바로 가기
     

     
    출처 : 블로그 > 老後生活프로젝트 | 글쓴이 : 弄海 [원문보기]

     
    출처 : 블로그 > 봄,여름,가을 | 글쓴이 : 보스 [원문보기]
     

     
    출처 : 블로그 > 연구파 | 글쓴이 : 硏究派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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