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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그늘진 삶, 작은 빛이 된 사람들
    논술(설.문)독서도서詩소설수필연설 2009. 1. 22. 08:02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그늘진 삶, 작은 빛이 된 사람들



    '소외된 이웃’ 내일부터 연재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마지막 시리즈로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이 새롭게 선보인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은 ‘새 대통령에게 권하는 책 30선’으로 올해 첫 시작의 문을 열었던 기획 책 읽는 대한민국이 ‘인문과 자연의 경계를 넘어 30선’ ‘마음을 어루만지는 책 30선’ ‘여행길, 배낭 속 친구가 되어주는 책 30선’ ‘근대의 풍경 20선’ ‘음식의 재발견 30선’ 등에 이어 소개하는 일곱 번째 시리즈다.

    추운 겨울, 주위의 그늘진 삶을 돌아보자는 이 시리즈는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조영희 ‘에코의 서재’ 대표와 인터넷서점 ‘Yes24’의 도서담당 매니저의 조언을 토대로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이 선정했다.

    이 시리즈에는 힘들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이들을 조명하는 책이 많다.

     

    사회적 약자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밥퍼 운동’을 벌여온 최일도 목사의 ‘행복하소서’(위즈덤하우스)를 비롯해 소록도병원에 근무하며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한 정신보건의 김범석 씨의 ‘천국의 하모니카’(휴먼앤북스), 머나먼 땅 캄보디아에서 현지인을 돕는 이름 없는 자원봉사자들을 다룬 ‘언제나 써바이, 써바이’(웅진윙스) 등이다.


    또 다른 책들은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해준다.

     

    20여 년간 서울 용산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의 자활과 복지를 도와온 ‘막달레나공동체’가 성매매 여성들의 인터뷰를 실은 ‘붉은 벨벳 앨범 속의 여인들’(그린비), 장애의 아픔을 딛고 진정한 삶의 가치를 찾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의 경험을 담은 ‘사는 게 맛있다’(이끌리오) 등을 소개한다.


    해외에서 나온 책으로는 세계적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를 창시한 프랑스 출신 피에르 신부의 자전 에세이 ‘단순한 기쁨’(마음산책)과 저개발국에 어린이 도서관을 세우는 ‘룸투리드 재단’의 설립자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세종서적) 등을 선정했다.

     

    극빈자들에게 무담보, 무보증 융자를 벌이는 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을 세운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를 다룬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세상사람들의책) 등도 소개한다.


    피에르 신부는 “타인이 없는 삶은 지옥이며, 타인과 더불어 사는 그 ‘단순한 기쁨’을 맛보라”고 조언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은 ‘행복하소서’를 첫 권으로 9일 소개한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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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행복하소서


     


    ◇행복하소서/최일도 지음/위즈덤하우스

    《“이 땅에 밥 굶는 사람이 없도록 더 이상 배고픈 사람들이 눈물 흘리지 않도록 내가 가진 것을 조금씩 나누자는 것입니다. 작은 나눔이 큰 사랑의 기적을 만들어내듯이 작은 것부터, 할 수 있는 것부터 나누자는 것입니다…. 당신은 그 누군가를 위해 단 한 번이라도 정성을 다해 따뜻한 밥 한 그릇 지어드린 적 있나요?”》

    배고픈 이웃, 밥 퍼준 적 있소?

    노숙인과 무의탁 노인에게 무료 급식을 실천해 온 다일공동체의 ‘밥퍼’ 최일도 목사가 2007년 4월 8일∼2008년 4월 8일 다일공동체 회원들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책이다.

     

    사소한 일상과 일화에서 배어 나오는 나눔에 대한 생각, 이웃에 대한 사랑이 진솔하다.


    어느 날 누군가 최 목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목사님, 어떤 분들은 너무 뻔뻔한 것 같아요.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여기에 뭐 맡겨 놨대요? 툭하면 와서 소리 지르고, 뭐 내놓으라고 하고.”


    그 누군가가 다일천사병원을 찾아와 이것저것 요구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거슬렸던 모양이라고 최 목사는 말한다. 최 목사는 “그건 뻔뻔함이 아니라 당당함”이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천사병원은 그분들의 것이니까요.

     

    이 세상 가장 밑바닥에서 사시는 분들이 유일하게 주인처럼 행동할 수 있는 곳이니까요.”


    어떤 편지는 은행에서 나는 고약한 냄새 이야기로 시작하기도 한다.

    “은행 냄새는 지독하지만 껍질을 벗기고 나면 은행처럼 고소한 열매도 없습니다.

     

    냄새로 판단하고 가치를 결정할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고개를 돌리고 싶고 냄새 때문에 희망이 없을 것 같아도 그 안에 새로운 생명을 품고 있는 은행나무 열매처럼 냄새 속에서 보이지 않은 새 희망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의 이야기는 은행에서 노숙인으로 이어진다.

     

    노숙인 몸에서는 냄새가 나지만 냄새만으로 사람을 판단한다면 그 안에 숨은 희망과 꿈을 볼 수 없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책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나눔에 대한 그의 철학을 드러내기도 한다.

     

    최 목사는 책을 몇 권 갖고 있는지를 자랑처럼 여기던 때도 있음을 고백하지만 언젠가부터 책을 나눠주는 습관이 생겼다고 말한다.


    책은 “자랑거리도 아니요, 진열품이 아니라 필요한 사람은 꼭 봐야 하고 제대로 읽어야 양식이 된다”며 “내 책상 위엔 꼭 필요한 단출한 몇 권 책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책뿐 아니라 부()와 마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최 목사는 독자들에게 거듭 자신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임을 알지 못한 채 스스로 벽에 갇혀 소외된 이웃을 만나 보길 권한다.

     

    그는 우리와 함께하고 있지만 소외된 채 진가를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들을 “장롱 밑의 동전”이라고 표현한다. 장롱 밑 동전은 몇 주 몇 달 몇 년을 우리와 같은 공간에서 지냈지만 예고 없이 찾아질 때까지 보지 못한다. 최 목사는 “관심을 갖지 않았기에 우리가 동전을 보지 못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본다”며 “장롱 속 동전을 찾아 귀한 존재로 만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이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최 목사의 편지는 각기 자신의 목표를 향해 바삐 달려가는 현대인들에게 성찰의 기회를 준다.

     

    그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내가 무엇을 이루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사랑하느냐에 있다”며 “우리 삶의 나날이 더 기쁜 사랑으로 더 많은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그런 날이 되면 좋겠다”고 말한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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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2>단순한 기쁨


     


    《“희망을 소망과 혼동하지 말자. 우리는 온갖 종류의 수천 가지 소망을 가질 수 있지만 희망은 단 하나뿐이다. (…) 희망은 삶의 의미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만약 삶이 아무런 목적지도 없고, 그저 곧 썩어 없어질 보잘것없는 육신을 땅속으로 인도할 뿐이라면 살아서 무엇 하겠는가? 희망이란 삶에 의미가 있다고 믿는 것이다.”》

    희망은 하나뿐,더불어 사는 삶

    피에르 신부는 “20세기 프랑스가 낳은 세계 최고의 휴머니스트”라고 소설가 최인호 씨는 말한다.

     

    지난해 1월 96세로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가장 좋아하는 프랑스인’을 꼽을 때마다 늘 상위에 올랐다.

     

    이 책은 그가 1997년에 남긴 자전에세이집이다.


    프랑스인은 왜 그렇게 피에르 신부를 좋아했을까.

     

    그는 1912년 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19세에 유산을 포기하고 수도회에 몸을 던졌다.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레지스탕스로 활약했고 전쟁이 끝난 뒤엔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무엇보다 그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평생을 바쳤다.

     

    1949년 그가 파리 근교에 부랑자와 전쟁고아 등에게 안식처를 마련해준 것이 현재 44개국으로 퍼진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의 출발이 된다.


    에세이에서 신부가 전하고자 하는 말은 명확하다.

     

    ‘타인과 더불어 사는 기쁨, 그 단순한 기쁨’을 얘기하려 한다.

     

    하느님을 따르는 수도사 신분으로 종교나 복음에 관한 언급이 없을 리 없다.

     

    하지만 그는 그걸 강요할 생각은 전혀 없다.

     

    단지 인류라는 ‘상처 입는 독수리들’에게 자유와 존엄, 건강과 형제애를 전할 뿐이다.


    “한 가지 중요한 점을 밝히고 넘어가야겠다.

     

    오직 복음을 따르는 엠마우스 운동의 공동체들은 종파와는 절대적으로 무관하다.

     

    우리는 그 누구에게도 ‘신자세요? 교회에 다니십니까’라고 묻지 않는다.

     

    처음 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저 이렇게 물을 뿐이다. ‘배고프세요? 졸리십니까? 샤워를 하시겠습니까?’ 그리고 미사에 가건 아니면 다른 모임에 가건 그것은 전적으로 각자의 자유다.

     

    분명히 말하지만 그들 가운데 아주 적은 수만이 신앙생활을 한다.”


    사제라는 신분으로 레지스탕스에 가담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프랑스 독립이나 근시안적 민족주의 때문에 저항에 나선 게 아니었다.

     

    민족과 종교를 넘어 인류는 모두 한 형제라는 관점에서 ‘배타적 민족주의와 인종적 편견’이 짙게 깔린 세계대전은 그냥 보아 넘길 문제가 아니었다.

     

    쫓기는 유대인을 피신시키며 그들에게 신발을 벗어주고 험준한 피레네 산맥을 맨발로 넘기도 한다.

     

    “레지스탕스에 가담하면서 내 삶과 신앙에 새로운 한 장이 열리게 된다. 솔직히 말하건대 그 선택에는 정치적 동기라곤 없었다.”

     

    이런 그이기에 피에르 신부가 전하는 복음은 불가지론자나 타 종교인이라 해도 새겨들을 만하다.

     

    신부임에도 가톨릭을 감싸고도는 태도는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더 엄하게 꾸짖고 지적한다.

     

    심지어 교황마저도. 이 때문에 “인간은 밤바다를 항해하는 한 척의 배와 같다.

     

    복음과 교회는 바닷가에 있는 등대와 같다”는 그의 말도 불편하지 않다.

    ‘단순한 기쁨’의 한 줄 한 줄에는 평생 타인에게 헌신하며 살아온 이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있다.

     

    신부가 말하는 단순한 기쁨이 사실은 얼마나 숭고한 기쁨인지. 결코 단순하지 않은, 그 사랑의 기쁨이 충만하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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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3>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송경용 지음/생각의 나무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가난을 알려주고 예수께로 인도해준 사람들, 나눔의 집을 만들고 우리 사회를 저변에서부터 지탱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사람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가슴을 설레게 한다. 특히 가난하고 억울한 이웃들의 이야기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어떻게 살았다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발바닥의 사제’로 이끈 이웃들

    청소년, 노숙가정, 장애인 등 소외계층과 빈곤한 이웃들을 위해 빈민선교기관 ‘나눔의 집’ 사제로 일하며 20여 년간 사회복지, 빈곤계층을 위한 문화운동 등 다양한 봉사활동에 헌신해온 송경용 신부가 자신의 삶과 그를 이끌어 준 주변인들의 손길을 에세이로 풀어냈다.

     

    이웃을 위해 발로 뛰어다닌 그의 삶에도 고민과 방황 어린 젊은 날이 있었으며 영감을 불어넣어 주고 신념을 지킬 수 있게 모범이 돼 준 은사들과의 귀한 만남이 있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79년부터 서울 노원구 상계동 적십자청소년야학에서 봉사활동을 시작한 송경용 신부는 일생의 사명을 찾게 된 뒤 1986년 성공회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의 길을 걷게 된다.

     

    하지만 적십자청소년야학을 경험하기 전부터 그의 주변에는 잊혀지지 않는 인물들이 있었다.

     

    노동의 가치를 몸소 느끼게 해주고 어려운 가정형편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도록 격려해줬던 초등학교 은사, 정직한 장사가 무엇인지 보여줬던 시골 장터의 장사꾼, 대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가족들 몰래 룸살롱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많이 배우진 못했어도 누구보다 순박했던 이들이 그들이다.


    이런 사람들과 부대끼고 배우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던 송 신부는 상계동적십자청소년학교에서 20대를 보내며 비로소 ‘나눔’의 가치를 몸소 느끼게 된다.

     

    그곳에서 그는 자신의 등록금을 털어 중고교에 진학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을 뒷바라지해 주고, 공부할 시간이 없는 친구들을 위해 새벽 다섯 시부터 특별반을 운영하는 등 온몸으로 헌신하던 동료와 선배들의 열정에 감화된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하는 기로에서 그는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나눔의 집’을 꾸린 후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그에게 매번 새로운 깨달음과 아픔, 감동을 전해 준다.

     

    알코올 의존증에다 수집벽까지 있어 길가에 보이는 걸 모두 집에 들고 와 쌓아두는 남편 때문에 누군가 수시로 물건을 꺼내줘야 세 모녀가 겨우 잘 공간이 생겼던 정숙 정아 엄마. 본인도 중증 뇌성마비 여성으로 보통 사람도 살기 힘든 열악한 환경 속에서 가정을 꾸려가는 그녀는 그에게 잊혀지기 힘든 사람이 됐다.

     

    장기수들과의 만남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사상, 정치 문제를 떠나 이곳에서 도움과 의지가 필요한 약한 이들을 돕겠다는 종교적 사명감을 갖게 된 비전향장기수들이 선입견과 달리 동네 아이들을 좋아하고 고향을 그리워하며 부지런히 사는 평범한 동네 노인네들임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고 알게 됐다.

    박노해 시인은 가난한 삶의 현장을 종횡무진 누비는 그를 일컬어 ‘발바닥의 사제’라고 노래했다.

     

    주위의 소외된 이들의 가슴 찡한 삶과 그들을 위한 송 신부의 섬김을 지지하며 영적 귀감이 돼 주는 가족, 동료들의 이야기를 읽어 가다 보면 나눔의 가치, 사람과 사람 사이의 따스함을 충분히 느끼며 살고 있는지 새삼 질문해 보게 된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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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4>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


     


    ◇ 혼자만 잘살믄 무슨 재민겨/전우익 지음/현암사

    《“해마다 낙엽을 보며, 또 엄동에 까맣게 언 솔잎을 보며 느끼는 일입니다. 참삶이란 부단히 버리고 끝끝내 지키는 일의 통일처럼 느껴집니다. 신진대사가 순조롭게 이뤄져야 생명의 운행이 제대로 이뤄지는 이치와 같습니다. 가을의 낙엽에서는 버림, 청산을 결행하고 겨울의 얼어붙은 솔잎에서는 ‘극한의 역경에서도 끝내 지켜야 할 것은 지키라는 것을 온몸으로 가르침을 배운다’고 여기면서도 그게 쉽지 않고 버리기도 지키기도 힘들다는 점만을 알 따름입니다.”》

    농사꾼이 수확한 삶의 지혜

    일제강점기 경성제국대를 중퇴한 저자는 고향인 경북 봉화군으로 낙향한 뒤 2004년 세상을 뜰 때까지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다.

     

    그는 지인들에게 틈틈이 편지를 썼다.

     

    안부를 묻는 단순한 편지가 아니었다. 농촌의 애환, 노동에 대한 생각, 농사를 통해 터득한 자연의 이치, 그 이치를 토대로 본 세상사에 대한 생각을 허심탄회하게 털어놨다.

     

    이 책은 마치 철학자의 명상록과도 같은 그의 편지를 모은 책이다.


    그의 눈에 비친 농민의 삶은 자연의 조화에 순응하는 삶이다.

    “갈아엎은 땅에 골 짓고 망 지어 씨 뿌려 싹트면 매어 가꿉니다.

     

    이 과정에서 농민들은 곡식과 일심동체가 됩니다. 가뭄 타면 안타까워하고 병들면 울고 싶고, 싱싱하게 자라면 힘이 솟습니다.

     

    그러면 농민들은 농사에 열중하게 되어 더위도 잊고 비지땀 흘리며 일에 몰두합니다.

     

    때때로 농자금 모자라 빚도 지고, 허기도 지고, 농약 치다 병을 얻기도 하지만, 생산 과정에서는 나름대로의 재미와 보람을 느낍니다.”


    추수한 곡식을 제값에 팔지 못해 속상할 때도 많지만 “일률적이지 않기 때문에 농사는 재미있는 일”이라고 그는 말한다.

     

    그는 노동이 고역스러운 일이 돼선 안 되며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이 어우러져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역시 경독()의 일체화라고 여겨요.

     

    참된 경()은 독()을 필요로 하며 독()도 경()을 통해서 심화되고 제구실도 할 수 있겠지요.”


    그는 자연의 이치에서 세상사의 지혜를 찾아낸다.

     

    초겨울 쇠죽을 쑤려고 캔 쑥에 단단한 뿌리가 달려 있는 모습에서 자연의 생명력을 확인하고, 계절의 리듬을 타고 자연스럽게 자라는 나무를 보면서 억지와 경쟁이 난무하는 인간 사회의 고달픈 모습을 안타까워한다.


    그는 씨앗에서 얻은 교훈을 아는 스님에게 털어놓는다.

    “씨의 공통점은 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묻기 쉬우며 땅에도 별 부담감을 주지 않습니다.

     

    스님, 종교 교리와 민족 해방, 인간 해방이란 이론도 무슨 씨 비슷한 데가 있지 않습니까.

     

    그 씨를 사람들의 마음속에 심을 때 심어졌는지도 모르게 심어 그 사람이 씨를 싹틔워 키우고, 꽃피워 열매 맺게 한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러한 것이 진짜 같은데, 요사이 논의들은 큰 나무를 옮겨 심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커서 가슴에 심기보다는 짊어지고 다녀야 할 판입니다.”


    “그 무슨 민주주의란 간판을 건 단체에 들어가기만 하면 금방 완전무결한 민주주의자가 된 것같이 여기는 것이 우리 실정 같다”며 유행을 좇아 흉내만 낼 뿐 알맹이는 부족한 세상을 꼬집기도 한다.

     

     

    그는 투박한 사투리로 어울려 사는 삶을 강조한다.

    “혼자만 잘 살믄 별 재미가 없습니다.

     

    뭐든 여럿이 노나 갖고 모자란 곳을 두루 살피면서 채워 주는 것, 그게 재미난 삶 아니껴.”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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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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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6>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은행가


     


    가난사람들을 위한 은행가/무하마드 유누스 지음/세상사람들의책

    《“나는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모든 문제에 해답을 제공하는 경제학 이론을 가르치면서 보였던 그 열성을 기억한다. 나는 이론이 가진 아름다움이며 조화에 감탄하곤 했다. 그리고선 이 모든 이론에 환멸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길바닥에선 사람이 굶어 죽고 있는데, 도대체 경제학 이론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무담보 소액 대출의 기적

    이 책은 한 가지 질문에서 출발한다. “인간이 달까지 가는 세상에 어째서 가난은 사라지지 않는가?” 미국 유학을 마친 수재이자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대학 경제학과 교수이던 무하마드 유누스가 던진 질문이다. 1974년 치타공대 인근 조브라 마을에 몰아닥친 기아를 목격한 그는 그 어떤 경제학 이론도 사람들이 굶어 죽어가는 끔찍한 현장에서는 무의미하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이들이 처한 현실을 이해하고 해법을 제시할 수 있는 ‘진짜 경제’란 무엇인가. 다시 학생이 되기로 마음먹고 학교를 벗어나 현장으로 뛰어든 그는 가난의 수렁에서 이들을 끌어올리기 위해 필요한 것은 ‘소액 융자’라는 제도적 장치라는 점을 깨닫는다.

    이 책은 가난한 이들에게 무담보 소액 대출의 기회를 주는 그라민은행의 설립자이자 2006년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총재의 자서전이다. 금융 전문가들이 은행 체계와 맞지 않는 그의 노력에 대해 ‘결국 헛수고가 될 것’이라고 했는데도 그라민은행은 설립 26년 뒤 1170여 개의 지점과 240만 명의 회원을 거느릴 만큼 성장했다.

    은행가들은 담보 없는 융자(더욱이 가난한 사람들에게)에 동의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원금을 되돌려 받는데도 담보가 필요하다는 건 결국 부자들한테만 융자해주기 위한 규칙이라고 생각했다. 열두 시간씩 일해도 고리대금의 덫에서 허덕이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담보 없이 융자의 기회를 준다면, 그들은 그것을 바탕으로 생업에 매진하고 원금을 갚아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실제로 그라민은행에서 대출받은 이들의 상환비율은 통념을 깨고 98%에 달한다. 세계가 기존 관행을 깬 이 새로운 은행시스템의 성과에 주목하게 됐지만, 처음부터 쉬운 과정은 아니었다.

     

    방글라데시의 뿌리 깊은 성차별을 타파하기 위해 여성들의 경제적 자립이 중요하다고 본 그는 시골 마을을 찾아다니며 여성들을 설득했다. 돈 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극도로 꺼리는 이들에게 소액 융자의 필요성을 알리기 위해 몇 날 며칠이고 같은 곳을 찾아다녔다. 그 사이 미국 유학시절 결혼해 함께 방글라데시로 왔던 미국인 아내는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딸과 함께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내는 뉴저지에서 함께 살자고 했지만 그라민은행을 저버릴 수 없던 그는 이혼을 선택한다.

    개인적 아픔, 주변의 비관적 전망, 그라민은행의 자회사들이 수익을 창출하고 재정적으로 튼튼해지기까지 겪어야 했던 수많은 난관에도 불구하고 그라민 융자 프로그램은 세계 58개국에 전파됐으며 주택융자와 의료시스템 등 새로운 프로그램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책은 가난이 개인의 어리석음이나 게으름 때문이 아니라 재정 구조의 문제라는 신념과, 금융에 대한 창의적 발상으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시장 경제에 적응시켜 온 한 은행가의 헌신적인 도전기다. 아울러 지식과 부가 어떻게 사회에 환원될 수 있는지도 깨닫게 해준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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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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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8>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때로는 눈먼 이가 보는 이를 위로한다/김경환 지음/푸른나무

    《“화두를 깨쳤다고 해야 할까. 봉사하는 삶, 비로소 삶의 방향을 알 수 있었다. 오랜 좌절과 방황의 시간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이었다 … 마침내 그에게 살아가야 할 이유가 생긴 것이다…온몸에서 불끈불끈 힘이 솟았다.”》

    시각장애인의 눈부신 이웃사랑

    전북 김제시 남포리에 사는 1급 시각장애인의 삶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단지 시각장애인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이야기는 아니다. 이 시각장애인은 남포리에서 활발한 봉사활동으로 유명하다. 김제 남포리의 상록수라 불리는 오윤택(47) 씨.

    마을 사람들의 어려운 일에 어김없이 발 벗고 나서는 오 씨의 성품을 저자는 영화 ‘어디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틀림없이 나타난다 홍반장’(2004년)의 주인공에 비유했다.

    책 기획자인 저자는 그를 만나기 위해 김제시를 방문했을 때부터 그에 대한 주민들의 애정을 확인한다. 저자가 김제역에 도착했을 때 차로 저자를 마중 나온 목사는 “택시를 타도 되는데 폐를 끼쳐 죄송하다”는 저자의 말에 이렇게 말한다. “무슨 말씀을. 다른 일도 아니고 윤택이 일인데.” 그 뒤로도 저자는 여러 차례 그런 경험을 한다. 오 씨와 함께 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어디선가 택시가 나타나 “윤택이 어디 가는가?” 하고 멈춰 선다. 오 씨와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윤택이 왔는가?” 하는 목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밥값을 치르고 나갔다.

     

     

    그는 마을 어린이를 위해 도서관을 설립했다. 이제 도서관에는 1만5000여 권의 책이 가득하다. 컴퓨터 보급을 위해 마을에 정보화센터를 설립했다. 마을의 노인들을 속여 잇속을 챙기는 약장수와 싸워 몰아냈고, 마을 어민들이 잡은 갯지렁이를 1kg만 제값을 쳐주고 나머지는 헐값에 사려고 담합한 중간 상인들의 횡포를 해결했다. 쌀 무게가 적게 나가도록 조작한 농협의 비리를 들춰냈고 마을의 환경을 훼손하는 닭고기 가공업체의 유치 계획을 무산시켰다.

    이 모든 일을 1급 시각장애인이 해냈다.

    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갓 태어난 아이가 자꾸 눈을 비비는 게 이상했던 그의 어머니는 병원에 갔다가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다. 태어날 때부터 시력이 거의 없었다. 전국의 병원을 다녀도 고칠 수 없었다. 무면허 의사가 고칠 수 있다 해서 수술을 맡겼다. 어린 오 씨는 고통에 몸부림치며 울었다. 의사는 좋아질 것이라 말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붕대를 감은 아이의 눈가가 벌겋게 물들었다. 어머니의 등에 업힌 아이가 어머니의 등에 연방 눈을 비볐다. 아이의 피눈물에 어머니의 저고리가 물들었고 어머니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오 씨는 가난과 시각장애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했다. 버섯공장, 염전, 막노동판을 전전했다. 건설 현장에서 쇠뭉치가 무릎을 치는 바람에 평생 다리를 절고 살아야 했다. 스물네 살 무렵에는 허리를 심하게 다쳐 더는 일할 수 없었다. 고향으로 돌아왔다. 극심한 외로움에 시달렸다. 마을 뒷산에 올라가 텐트를 치고 두 달을 살았다. 그러고는 깨달았다. “돌이켜보면 늘 남의 신세만 지고 살지 않았는가. 힘겨운 삶이지만 혼자 힘만으로 살아온 것은 아니다. 내가 남들의 힘이 돼야겠구나.”

    이 책의 제목은 남에게서 도움만 받지 않고 이웃을 위해 한평생 봉사해온 오 씨를 은유한 것이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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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9>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박경철 지음/리더스 북

    《“나는 늘 행복하지 못한 사람들을 만난다. 내가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는 이상 그가 누구든 무엇을 하는 사람이든, 얼마를 가졌든 걱정거리를 털어놓는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 그리고 나는 그분들에게 행복과 불행을 전하는 전령사가 된다.” 저자 박경철은 온라인 증권사이트에서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글을 게재하다가 쓴 ‘시골의사의 부자 경제학’이 베스트셀러가 되며 유명세를 얻은 인물이다. 이 책은 경북 안동의 병원을 배경으로 그의 본업인 의사로서 살아가며 만난 이웃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았다.》

    시골의사가 만난 이웃의 고단한 삶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회 경제적 약자들이다. “세속적 기준의 성취를 이룬 분도 없고 오히려 그보다 못한 분들이 많지만 그럼에도 삶을 한순간도 허투루 여기지 않는 분들”이다.

    남편이 신장암으로 사망하자 인근 빌딩에서 청소 일을 시작한 한 여성이 빚 독촉에 시달리자 울면서 통사정을 하는 모습을 덤덤하게 묘사한다.

    “왼손에는 한 입 베어 문 열무김치 한 조각이 쥐어져 있었고 오른손에는 전화기가 들려 있었다. 색 바랜 양은도시락에 담긴 차가운 밥과 검정 비닐에 싼 열무김치, 그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서러운 식사를 하는 중에 빚 독촉 전화를 받은 모양이었다.”

     

     

    군에 입대한 아들이 귀에 종양이 생겼지만 형편이 좋지 않아 의병전역을 바라지 않는 아버지의 안타까운 심정, 조카들이 자신을 흉내 내며 놀리는 것이 속상해 술을 마시다 병이 생긴 정신지체장애인, 텔레비전을 보기 위해 병원 대기실을 찾는 할머니와 손자, 진료비를 깎아주자 생닭을 답례로 선물한 노부부 등 병원을 중심으로 사람들의 인생들이 하나하나 펼쳐진다.

    저자는 “이 책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은 우리 이웃들의 일상이다. 하지만 그들의 일상은 고단하고 치열하다. 그래서 나는 그분들을 ‘착한 인생’이라고 생각했다”며 제목에 대해 설명한다.

    그는 책에서 자신의 역할에 대해 “내 소중한 이웃들의 삶에서 결정적 순간들을 지켜본 ‘내레이터’의 입장이 될 뿐”이라고 말하지만 그는 순간순간 ‘내레이터’의 역할에서 뛰쳐나가고 만다.

    그는 내시경 검사 결과 ‘아데노 칼시노마’(선암)라는 결과가 나온 환자에게 간단한 처방만 해 주고 결과 전달은 추석 이후로 미룬다. 아내를 잃고 아들만 데리고 사는 환자가 추석 때 처가에 맡긴 딸을 데려와 함께 명절을 보내기로 한 사정을 알기 때문이다. 담관암을 앓고 있는 아내에게 희망을 달라는 남편의 청을 뿌리치지 못하고 담관암을 극복한 사람의 연락처를 알아봐주기도 한다.

    그는 의사로서 냉정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도 하지만 이런 인간적인 모습과 고뇌가 이 책의 매력이다.

    이전 책에서는 잘 드러내지 않았던 개인사도 소개된다. ‘일가친척마저 등을 돌린’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순간에 힘이 되어줬던 두 친구 중 하나는 같은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가 되었고, 다른 한 명은 아내가 되었다는 사연을 소개한다. 대학 때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년이 지나도록 가족 몰래 밤에 아버지 사진을 보며 대화를 나누던 일, 마흔이 넘어 얻은 딸에 대해서는 아내에게 ‘병’이라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지극한 사랑을 드러낸다.

    이 책에 담긴 40개의 이야기는 감정에 호소하는 미사여구 없이 담백하지만 가슴을 뭉클하게 하고 따뜻하게 해주는 힘은 그 어떤 소설이나 영화에 못지않다.

    유성운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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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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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1>붉은 벨벳 앨범 속의 여인들


     


    ◇ 붉은 벨벳 앨범 속의 여인들/김애령/원미혜 엮음

    《“성매집결지 여성들과의 만남은 성매매에 대한 사회적 이해가 선정적이거나 단편적이라는 반성적 질문에서 출발했다. ‘성매매 근절’이라는 당위는 확고해 보이지만, 그것이 대상으로 하는 그 ‘성매매가 이루어지는 공간’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추상적이며, ‘합법화’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라는 주장이 한편에서 제기되고 있지만, 그 공간을 살아가는 여성들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색안경 벗고 본 성매매여성들

    이 책은 서울 용산역 주변 성매매집결지에서 삶을 꾸려 온 아홉 명의 여성에 관한 이야기다. 성매매로 생계를 이어 가는 ‘아가씨’와 호객행위를 해 손님들을 데려오는 ‘펨푸’, 그들을 관리하는 업주들…. 이곳을 삶의 터전이자 근거지로 삼으며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인물들이 삶의 내력을 털어놓는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연구자와 인터뷰 대상자의 두세 차례에 걸친 만남(인터뷰)을 바탕으로 정리된 글은 선입견이나 편견 없이 성매매 여성들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한다.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으로서 그들이 성매매업소에 오게 되기까지의 과정과 나름의 삶의 방식을 살펴본다

    위법 혹은 타락이라는 색안경을 벗고 살피면 이들 역시 끈끈한 인간애와 정이 넘치는 평범한 인간이자 열악한 환경을 감수하고 억척같이 아이들을 공부시키고 자신의 삶을 찾아가기 위해 애쓴 주변의 이웃들이기도 하다.

     

    일을 처음 시작하고 난 뒤 아이들을 성매매집결지에서 키워야 했던 것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놓는 업주는 데리고 있던 ‘아가씨’들과 마주쳤던 이들을 통해 이곳 역시 어떻게든 삶을 꾸려 가려는 이들이 모인 공간임을 알려준다. 데리고 있던 아가씨에게 ‘다시는 이런 곳에 얼씬도 하지 말라’고 말해 주는 업주, 성매매업소를 소개해 준 친구를 원망하기보다 ‘살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알려준 것뿐’이라고 담담히 말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는 이들이 이곳에서 하루를 꾸리며 살고 있다.

    성매매공간은 이들에겐 삶의 터전이자 직장이기도 하다. 어떤 여성들은 그 일을 엄연한 노동의 일종으로 받아들이고 생활을 이어 간다. 성매매 단속이 심해지고 집결지가 폐쇄돼 이 공간이 사라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직장의 파산’과도 같다. 이곳밖에는 일할 수 있는 곳이 없는 여성들도 있다. 배우지도 못했고 아는 것도 없기 때문에 한번 발 들인 곳으로 계속 가게 됐던 이들이다. 하지만 이들은 체념하지 않고 새로운 인생을 고민하거나 주어진 일상생활 속에서 활발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줌으로써 통념을 깨기도 한다.

    수용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했지만 무자비한 폭력에 시달리다 ‘자유’를 택하기 위해 다시 용산으로 돌아온 한 여성의 이야기는 이곳을 떠나 사회로 돌아가는 것이 때로 이들의 삶에 더 큰 폭력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책에 실린 인터뷰는 최대한 어투까지 살려서 녹취록과 흡사하게 옮겨 놓았다. 인터뷰는 2004년 성매매방지법 시행 이후 성 판매 여성들의 전업 문제 등 현안을 위해 이 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이해해 보자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특정한 주장이나 대안 제시는 없지만 성매매 여성들의 목소리를 고스란히 살린 글들은 이들에 대한 사회의 몰이해를 새삼 깨닫게 해준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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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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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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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4>샘에게 보내는 편지


     


    ◇샘에게 보내는 편지/대니얼 고틀립 지음/문학동네

    《“우리의 연약함은 마음을 열어주는 열쇠가 될 수 있다. 자신의 마음뿐만 아니라 타인의 마음도 열어준다. 내가 누군가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슬퍼할 때, 또 누군가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슬퍼해 줄 때, 가장 깊은 곳에서 우리의 마음이 열리고 변화하는 것이다. 내가 지금까지 살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자폐증 손자야, 마음의 빗장 풀어라

    샘은 저자의 외손자다. 저자는 정신의학 전문의로 수많은 사람을 상담했다. 마음을 꽁꽁 닫았던 사람들이 내면의 어둠을 직시하며 마음의 빗장을 열고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나도록 도움말을 줬다. 이 책은 그 할아버지가 외손자에게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와 지혜를 전하는 편지다. 비슷한 주제의 책이 많지만, 이 책은 저자의 경험이 그대로 담겨 있다는 점에서 상투적이지 않다.

    샘은 두 살도 되지 않았을 무렵 자폐 증세를 보였다. 자폐 진단을 받았을 당시 옹알이를 멈춰 벙어리나 다름없었고 1년 반이 넘도록 화가 나면 자기 머리를 바닥에 찧고 말을 건네면 악을 쓰며 소리를 질러댔다.

    저자는 샘의 엄마(저자의 딸)가 여섯 살일 때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쳐 전신마비가 됐다. 결혼 10주년 날 아내의 선물을 사러 가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사고가 있기 4년 전 아내 샌디는 암에 걸렸다. 사고가 일어난 뒤 젊은 부부는 함께 꿈꾸던 미래를 잃었고 사랑도 잃었다.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으로 버티던 나날은 아내 샌디가 이혼을 요구하며 끝났다. 몇 년 뒤 샌디는 다발성 경화증(뇌와 척수가 산발적으로 파괴되는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자신을 떠난 아내에 대한 저자의 분노는 연민과 그리움으로 변했다.

     

    샘에게 보내는 편지는 여느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건네는 얘기가 아니다. 고통과 외로움의 삶을 살아낸 한 어른이 고통과 외로움으로 삶을 살아갈지 모를 아이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저자는 샘에게 ‘다른 사람과 다르다’라는 것의 의미를 말해준다.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이 불행으로 느껴질 때가 있겠지만 그 속에 소중한 선물이 있다는 것과 슬픔을 느끼고 위로하는 법을 가르쳐준다. 그것은 저자 머리에서 나온 추상적인 이론이 아니라 저자가 매일 겪으면서 마음으로 깨달은 것들이다. 이 대목에서 저자가 겪은 경험들이 고요하지만 묵직한 성찰로 전해진다.

    저자는 샘과 함께 여름날 디즈니랜드에 갔을 때를 회상한다. 휠체어에 의지한 저자는 놀이기구도 탈 수 없고 수영장에도 갈 수 없으며 버스를 타고 내릴 때도 남들과 다르게 해야 한다. 디즈니랜드에는 휠체어 보조시설이 갖춰져 있고 버스마다 휠체어 승강기가 있었다. 승객들은 저자가 버스에 오를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 저자는 어느 순간 버스에 올라탈 동안 자신을 쳐다보며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식하게 됐다. 예전에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자신이 버스에 오르기를 기다리는 동안 사람들이 더위에 지칠 것이라고 의식하게 된 것이다.

    저자는 좌절감을 느꼈고 고통스러웠다. 전신마비는 예전과 다름없었지만 마음이 모든 걸 달라지게 했다. 저자는 그런 경험에서 깨달은 바를 샘에게 얘기한다.

    “네가 남과 다르고 나도 남과 다르다는 건 하나의 사실일 뿐이다.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사실은 고통일 수도 있고 그냥 있는 그대로 사실일 수도 있다. 명심해야 한다. 너 스스로 남과 다르다고 ‘생각’할수록 네가 더욱 외로워질 뿐이라는 걸.”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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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5>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조병준 지음/그린비

    《“다른 사람이 행복하고, 내가 행복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행복한 것만으로도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거기에 행복이 또 하나 더해집니다. 그 세 번째 행복의 주인공, ‘그분’의 이름을 하느님이라고 해도 좋고, 부처님이라 해도 좋고, 한울님이라고 해도 좋습니다. 그런 종교적 이름들이 싫다면 그저 사회가, 또는 세상이 행복해진다고 해도 좋을 겁니다.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행복은 그저 퍼져나가면 좋은 것이지요.”》

    콜카타의 이름없는 천사들

    저자는 1997년 인도 콜카타에 있는 ‘사랑의 선교회’ 산하 구호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중 먼저 와 있던 자원봉사자 안디를 만났다. 이 구호시설은 테레사 수녀가 콜카타 시청의 지원을 받아 설립한 곳이다.

    저자와 만났을 때 안디는 콜카타에 다섯 번째 체류 중이었다. 첫 번째는 일주일, 두 번째는 6개월, 세 번째는 1년, 네 번째는 4년…. 이런 식으로 봉사를 이어가던 안디는 평생 콜카타에서 보내기로 마음먹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삶을 선택하게 했을까. 안디는 저자에게 말한다.

    “헤이, 준, 그건 아주 간단해. 이 일을 하면 우선 내가 행복하거든. 그리고 내가 조금 도움을 주는 저 가난한 사람들도 아마 조금은 행복할 거야. 그러면 저 위에서 세상을 보고 계시는 그분께서도 행복해하시지 않겠어?”

     

    저자는 안디의 이런 생각에 ‘행복의 삼위일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인도를 여행하다 우연히 찾은 콜카타의 구호시설에서 봉사를 시작한 저자는 12개월을 자원봉사자로 지냈다. 이 책은 그 기간에 만난 ‘천사와 같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다.

    이탈리아에서 온 안젤로(Angelo)는 이탈리아어로 ‘천사’라는 뜻이다. 그는 처음 6개월 목표로 콜카타에 왔고 비행기표도 6개월 왕복표로 사서 왔다. 그러나 계획보다 더 오래 머물면서 비행기표는 날아가 버렸다. 그는 2년 반 동안 길에서 태어나고, 길에서 자고, 길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주며 살았다.

    프랑스 여성 로르는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했다. 파리의 직장 여러 군데서 입사 제의가 있었지만 로르는 ‘돈은 나중에 얼마든지 벌 수 있다.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을지도 모르는 어떤 일을 할 때’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로르는 1년짜리 비행기표를 들고 콜카타로 왔다.

    책에는 사연의 주인공들의 사진이 곁들여 있다. 환자들을 보살피는 그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환하고 선하다. 저자는 자원봉사자들뿐 아니라 환자와의 교감도 소개했다.

    모하메드 할아버지는 단어 한두 마디를 힘들게 중얼거릴 뿐 거의 말을 하지 못했다. 저자가 봉사를 잠시 중단하고 떠나던 날, 할아버지는 하염없이 손을 흔들었다.

    8개월 만에 돌아온 저자를 할아버지는 반갑게 맞았다. 할아버지는 저자를 불러 목욕을 시켜달라고 했고, 밥을 갖다 달라고 했다. 이틀 동안 다른 곳에서 볼일을 보고 온 저자에게 할아버지는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두또, 두또” 벵골지방 말로 ‘둘’이라는 뜻인데 이틀 동안 어디에 갔느냐고 물어보는 말이었다.

    “제가 안 보이자 또다시 떠난 줄 알았나 봅니다. 그 말을 듣고 콧등이 시큰해졌습니다. 누군가가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제가 그이에게 해주는 일은 고작 손 한번 잡아주고, 밥 한 그릇 날라다 주는 것에 불과한데도 여전히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루하루 날을 꼽아가며 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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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6>무지개 가게


     


    《“가난한 사람들은 빚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휠 정도로 고된 노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는 금융을 이용할 수 있는 권리 역시, 인간이 이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한 아주 기본적인 권리입니다.”》

    마이크크레디트로 재기하는 사람들

    2006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무하마드 유누스 씨는 소액대출제도로 가난한 사람들을 시장경제에 적응시켜 온 그라민 은행의 설립자이다. 마이크로 크레디트(무담보자립기금대출)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방글라데시에서 시작돼 세계 각국으로 전파됐다.

    사회연대은행은 우리나라에서 이 모델을 적용시켜 2002년 설립된 은행이다. 이곳에서 대출받은 자금으로 운영되는 가게에는 ‘무지개 가게’란 이름이 붙는다. 이 책은 갖은 역경을 딛고 주꾸미 전문점, 옷가게, 오리 요리 전문점, 꽃집 등 각자의 무지개 가게에서 일하며 삶을 꾸려 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엮어냈다.

    사연은 저마다 달라도 이들은 고난에 굴하지 않고 건강한 재기의 길을 택했다는 점에서 용기 있는 이웃들이다.

    횡단보도를 건너다 달려온 화물트럭에 치여 학창시절 척수장애 1급이 된 한 장애인은 경기 고양시 일산의 직업전문학교에서 무릎관절이 파손돼 운동장애 5급 판정을 받은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딸보다 장애가 심한 사위를 곱게 보지 않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힘겹게 결혼을 했지만 생활은 쉽지 않았다. 일산에서 세탁소를 차렸지만 이중계약 문제 등으로 권리금도 건지지 못한 채 쫓겨나고 장애 때문에 재취업도 여의치 않았다. 하지만 새로운 기회를 포기하지 않았던 그들은 현재 사회연대은행에서 대출받은 자본금 등으로 로또와 휴대전화를 판매하는 매장을 꾸리며 열심히 살고 있다.

    무심코 쓴 신용카드 대금이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 자신은 물론 여자친구까지 신용불량자가 되고 월급 압류 등으로 회사까지 그만두게 된 사연도 있다. 힘들 때 곁을 지켜준 여자친구와 결혼하고 사랑스러운 딸도 태어나지만 살림을 어떻게 꾸려갈지는 막막하기만 했다. 식품 유통업체, 대리운전, 건축자재 유통업 등을 전전하던 남편은 대출받은 자본금으로 건축·전자·산업용 실리콘 도매 유통을 시작했다. 일이 안정되면서 용기를 얻은 그는 자신의 가게를 사업으로까지 확장해 볼 희망도 품게 됐다.

    이들의 수기에서는 삶에서 닥치는 불의의 사고들과 뜻하지 않은 실패들을 심심치 않게 살펴볼 수 있다. 타고난 환경 자체가 불우한 경우도 적지 않다. 남편의 잦은 외도와 술주정, 뒤늦게 발견하게 된 아들의 희귀병, 하루아침에 정신장애 판정을 받게 된 남편 등 감당하기 힘든 상처들도 엿보인다.

     

     

    하지만 이들은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삶을 포기하는 대신 갱생의 길을 적극적으로 선택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꿋꿋이 미래를 일구는 이들의 사연은 감동과 숙연함을 전해줄 뿐 아니라 이들의 도전을 격려하고 힘을 보태줄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절감케 한다.

    지금까지 전국에는 총 495개의 무지개 가게가 생겼다. 빌린 돈을 모두 상환한 가게도 늘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다른 어려운 이웃을 후원하는 가게도 생겼다고 한다. 생활 속의 변화들이 기적을 만들어 내는 출발점임을 깨닫게 된다.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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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7>지금 이대로도 괜찮아


     


    ◇ 지금 이대로도 괜찮아/사이토 미치오 지음/삼인

    《“(베델의 집은) 절망하는 것이 원조를 받고, 병이라는 것이 긍정되며, 그대로도 괜찮다는 생활방식, 또는 그대로 있을 수밖에 없다는 생활방식이 제창된다. 그 생활방식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안고 있음에도 그 밖의 다른 어떤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들의 좋은 표정, 깊은 안도감, 생각지도 못한 풍요로움을 낳고 있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그런 생활방식이 지금 당장 이 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해도, 앞으로 200, 300년 후의 세계에서는 반드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가치가 있다고, 가만히 그 망상을 키우고 있다.”》

     



    정신장애인 공동체의 주체적 삶

    이 책은 일본 TBS 텔레비전 기자로 오랫동안 정신장애 문제를 취재해온 저자가 ‘베델의 집’이란 정신장애인 공동체를 소개한 르포다.

     

    이후 베델의 집에 소속된 이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풀어놓은 책 ‘베델의 집 사람들’(궁리)이 지난해 국내에도 소개됐지만, 그 이름을 널리 알린 건 이 책의 공이었다.


    베델의 집이란 일본 홋카이도 우라카와라는 작은 바닷가 동네에 있는 1만5000여 명의 공동 주거구역. 1979년 이 지역 적십자종합병원에서 일하던 무카이야치라는 사회복지사가 낡은 교회 건물을 구입했다.

     

    피해망상증이나 환각, 환청을 동반하는 ‘통합실조증’(일본은 2002년부터 ‘정신분열증’ 대신 이 정신병명을 쓴다)에 시달리는 이들이 이곳에 모여들며 공동생활이 시작됐다.


    정신장애인 공동체 베델의 집이 표방하는 것은 ‘장애인 스스로 주인공이 되자’다.

     

    베델의 집 사람들은 관리되거나 지배받지 않으며 이 사회에 신세지지 않고, 스스로 돈도 벌고 사회와 이웃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다는 신념으로 생활한다.

     

    처음엔 어려움도 많았다. 마을에서 나가달라는 원성도 들었다. 경찰 순찰차와 구급차가 쉴 새 없이 들락거렸다.

     

    많은 의사도 “무모하고, 상식과 동떨어진 행위”라고 비난했다. 복지와 행정의 틀 안에서 치료받고 통제받아야 할 ‘정신장애인’이 모든 것을 자기 의사대로 결정한다는 건 쉽게 이해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 무모한 도전은 놀랍게도 성공한다. 심지어 이들은 스스로 공동 주거와 작업장을 짓고 ‘유한회사 복지숍 베델’이란 회사도 만들어 지역 특산품 다시마를 비롯해 다양한 상품을 만들어 팔며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평범한 일반인들도 하기 힘든 공동생활과 자급자족을 장애인들이 이뤄낸 것이다.

     



    이들의 성공은 보통 사람들이 장애인을 대할 때 그들의 ‘장애성’에만 집중해 얼마나 고정관념을 갖고 바라보았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다.

     

    저자는 “정신장애인은 병이나 인간관계 등으로 엄청난 고생을 하면서도, 보호나 보살핌의 이름 아래 병원에 갇혀서, 고생에 직면하는 자유, ‘고민하는 힘’을 계속 빼앗겨 왔다”고 일갈한다. 베델의 집은 고민하는 힘을 가지고 더불어 살면, 장애인조차도 문제를 회피하지 않고 문제와 대면해 부딪치며 스스로 해결해 나간다는 걸 보여준다.

     



    베델의 집에는 독특한 캐치프레이즈가 많다. ‘올라가려는 삶을 버리고 아래로 내려가는 삶을 지향하자’ ‘이익이 없는 상황을 소중하게 생각하자’ ‘되도록 자신의 병을 자랑하자’ ‘안심하고 땡땡이칠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 등. 억지로 뭔가를 만들어내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 이들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냈다. 진정한 장애는 신체적 불편함이나 병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편협한 마음과 사고 자체에 있는 것이었다.

    정양환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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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8>행복한 고물상


     


    ◇행복한 고물상/이철환 지음/랜덤하우스

    《“아버지는 산동네에서 아주 조그만 고물상을 하셨습니다. 고물상 이름은 ‘행복한 고물상’이었지요. 이 책은 아버지가 ‘행복한 고물상’을 하시던 시절의 따스하고 눈물겹고 아름답고, 그래서 못 잊을 추억으로 남은 내 유년의 삽화들을 조각조각 모아놓은 것입니다. 바라건대 보잘것없는 나의 이야기가 여러분들의 가슴속에 작은 불씨로 남아 한밤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 데 춥지 않고 외롭지 않도록 길동무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합니다.”》

     

     

     

     


    가난하지만 따스했던 달동네 추억

    먹고사는 게 쉽지 않았던 시절, 산동네 사람들의 일상은 다양한 사연으로 가득했다.

     

    때로는 웃음을, 때로는 눈물과 감동을 자아내는 산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저자는 ‘행복한 고물상’을 중심으로 따스하게 그려냈다.

     



    고물상에는 손님들 말고도 껌을 파는 사람이나 동전을 구걸하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었다.

     

    정이 많은 아버지는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는 법이 없었다.

     

    어느 추운 겨울날 열 살 조금 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남동생과 함께 껌통을 들고 고물상 입구에 나타났다.

     

    아버지는 주저하는 아이들을 억지로 데리고 들어와 연탄불에 라면 한 그릇을 끓여 먹였다.

     

    아이들이 돌아간 뒤 아이들이 앉았던 방석 아래서 껌 세 통이 나왔다.

     

    겨울바람을 맞으며 몇 시간을 팔아야 할지도 모를 귀한 껌 세 통을 감사의 표시로 두고 간 것이었다.


    하루는 고물상에 세워둔 아버지의 소중한 자전거가 없어졌다.

     

    며칠 뒤 학교 후문에서 솜사탕을 파는 아저씨의 자전거가 저자의 눈에 들어왔다.

     

    안장에 녹이 슨 모양새며 오른쪽 페달 반쪽이 떨어져나간 것이 아버지의 자전거가 분명했다.

     

    아버지와 함께 확인하러 도착했을 때 솜사탕 아저씨는 아기를 업은 아주머니와 차가운 길바닥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아버지 자전거가 분명한데도 아버지는 “우리 자전거가 아니다”며 발길을 돌렸다.

     

    얼마 뒤 함박눈이 내리던 날, 아버지의 자전거가 고물상 마당에 돌아와 있었다. 뒷자리에는 비닐봉지에 담긴 사과가 놓여 있었다.

     

    하루는 군복을 걸치고, 한쪽 팔에 갈고리 손을 한 초라한 행색의 사내가 고물상에 들어왔다.

     

    베트남전에서 손을 다쳤다는 사내는 할머니에게 다짜고짜 밥을 내놓으라고 윽박질렀다.

     

    태연하게 밥을 내 주는 할머니. 두 그릇을 뚝딱 해치운 사내가 트림까지 해대며 대문 밖을 나설 때 할머니는 찐 고구마 봉지를 사내의 성한 손에 건넸다.

     

    그러고는 “내 막내아들도 월남에서 죽었다”고, “세상 그렇게 원망하며 살지 말라”고 당부한다.

     

    다음 날 저녁 고물상 나무 의자 위에 찐 옥수수 두 자루와 종이쪽지가 놓여 있었다. “할매, 어젠 정말 고마웠소.”

    해마다 12월이 되면 아버지는 고물상 마당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놀 만한 것들을 골라 세탁하고 손질했다.

     

    아버지는 손질한 장난감들을 국화빵 장사를 하는 할머니에게 한 달 내내 갖다 날랐다.

     

    할머니는 국화빵을 사러 오는 아이들에게 아버지가 갖다 준 장난감 비행기나 곰인형을 크리스마스 선물로 내줬다.

     

    가난한 산동네 아이들에게 아버지는 그런 식으로라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줬던 것이다.

    “사람들은 우리 동네를 달동네라고도 불렀다.

     

    엄마에게 혼난 뒤 골목길에 나와 울던 여자아이, 훌렁 벗은 아랫도리로 골목길을 뛰어다니던 사내아이들, 흘러간 노래를 구성지게 부르며 언덕길을 오르던 술 취한 아저씨들…,

     

    눈 감아도 눈시울 적시는 달동네의 그 따스했던 풍경들이 아슴아슴하다.”

    금동근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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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19>똥꽃


     


    《“줄곧 힘들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러면 너랑 어머니랑 바꿔서 살아볼래?’ 하는 소리가 들렸다. 옷에 똥을 누는 사람보다 그 똥을 치울 수 있는 사람이 몇 배는 행복한 줄 알라는 소리도 들려왔다. 똥을 쌌는지 된장이 끓는지도 모르는 사람보다 아직은 멀리서도 똥냄새를 맡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잊지 말라고도 했다.”》

     

     


    치매 어머니를 바꾼 시골생활

    귀농한 농부인 아들은 어느 날부터 가족 형제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전북 완주군의 시골에 집을 구했다.

     

    서울에 사는 치매 걸린 어머니와 함께 살 집이었다.

     

    아들은 평생을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의 정서에 맞는 집을 찾았다.


    그는 귀도 멀고 대소변도 잘 못 가리는 여든여섯 어머니가 계실 곳은 사시사철 밥도 받아먹고 대소변도 해결하는 두 평 남짓한 방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사시게 하는 건 어머니의 남은 인생을 가두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 책은 그렇게 해서 2006년 시작된 아들과 치매 걸린 어머니의 생활기다.

    저자는 오래된 빈집을 구해 지붕을 일으켜 세우고 화장실도 새로 만들었다. 자연과 순환하는 집을 짓되 집의 구조는 전적으로 늙으신 어머니가 기준이 됐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파란 하늘도 보여주고 바위와 나무, 비와 눈, 구름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철따라 피고 지는 꽃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계곡의 바람결도 느끼시게 하고 싶었다.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어머니는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로 위축돼서 이 책의 추천사를 쓴 요양보호사 전문강사인 이진희 씨가 ‘차라리 시설 좋고 숙련된 의료진과 간병 인력이 있는 노인병원이 낫겠다’고 생각할 정도였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날이 갈수록 어머니는 건강을 되찾았다. 얼굴이 환해지고 기억력이 또렷해졌다.

     

    일상 활동도 나아졌다.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3월, 펄펄 눈이 오는 밖을 내다보다가 어머니가 하는 말. “저기 눈 아이가? 눈이 다 내리네.

     

    이기 몇 년 마이고. 눈 맞네. 세상 참 좋아졌네.”

     

    아들은 “여러 해를 햇볕 한 줄기 들어오지 않고 잿빛 하늘을 손바닥만 한 창문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도시의 방 안에서 형광등 불빛만 의지해 사셨던 어머니 생각을 하면 이해가 되고도 남았다”고 말한다.

     



    날씨가 풀리면 어머니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봄나물을 옛말과 사투리로 일일이 말하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평생 시골에서 사신 어머니에게 시골의 모든 것은 가장 자신 있고 친숙했다. 도시의 세련된 집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것이다.

     

    저자는 혼자 마음대로 돌아다니다 길을 잃고 집을 찾지 못해 식구들을 안타깝게 만드는 치매 노인들을 일주일에 몇 번씩 식구들이 모시고 나들이를 시켜주면 그런 증세가 없어질 것이라 말한다.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을 하고 대소변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멀쩡한 사람을 감금해 두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은 것이 집을 못 찾는 치매 노인의 심리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언젠가부터 집안일도 하고 배추도 심고 수제비로 아들의 밥상을 차린다.

     

    그러고는 “요즘 나 밥값 하제?”라고 묻기까지 한다.

     

    배추 심으러 갔다가 어머니 바지가 축축해서 “어머니 오줌 누셨네요” 했더니 “뭐 어때. 어차피 집에 가서 씻을 낀데” 하는 여유도 되찾는다.

    아들은 일부러 양말을 찢어 방에 누운 어머니 쪽으로 발을 살그머니 밀어놓기도 한다.

     

    그걸 본 어머니는 “양말 그거 벗어 이리 줘라. 누가 보믄 지 에미도 없는 줄 알겄다”라며 양말을 깁는다.

    어머니를 환자가 아니라 어머니로 대하는 아들의 정성이 아름답다.

    윤완준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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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20>사는 게 맛있다


     


    ◇사는 게 맛있다/푸르메재단 엮음/이끌리오

    《“희망은 마치 바이러스처럼 퍼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조심스럽게 피워내는 희망은 작고 초라할지도 모르지만 그 희망이 옆 사람에게 전염되고 또 그 옆 사람에게 전파되면서 우리 사회 곳곳에 퍼진다면 이는 엄청난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불행한 삶에 퍼뜨린 ‘희망 바이러스’

     

     


    오토바이 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됐지만 휠체어를 타고 다시 무대에 오른 가수, 심한 화상으로 이전의 얼굴을 잃고도 자신보다 더 힘든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20대 여성, 전쟁으로 고통받는 아프리카 어린이들을 돌보는 탤런트….

     

    이 책은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사람 23명이 전하는 ‘희망 바이러스’다.

     

     


    댄스그룹 클론의 가수 강원래 씨는 갑자기 찾아온 불행에 분노하고 좌절하다가 현실을 수용하기까지의 경험담을 전한다.

     


    힘내라고 격려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퍼붓던 그는 죽음까지 생각했다.

     

    그러다 ‘휠체어 유럽여행’으로 알려진 박대운 씨를 만나고, 그를 통해 다른 장애인 친구들과 어울리며 현실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평생 휠체어를 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라는 박 씨의 충고가 가슴에 와 닿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휠체어댄스’로 무대에 복귀했다.

     

     

    이화여대 4학년 때 교통사고로 화상을 입은 후 가까스로 살아난 이지선 씨는 사고 이후 “삶이 더 맛있어졌다”고 말한다. 사고가 난 뒤 중환자실에서 고통에 떨던 그는 곁을 지켜준 오빠로부터 눈물 섞인 격려의 말을 들었다.

    “지선아, 그래! 이것보다 더 나빠질 수 있겠어?”

    그는 더 떨어질 바닥이 있겠느냐고 생각했다. 이후 “훨씬 더 맛있는 삶”을 얻었다.

     

    마디가 잘려나가 짧아진 손가락 여덟 개의 몫까지 해내는 엄지손가락에 감사했고, 이식한 피부를 뚫고 나온 눈썹 한 가닥에 감동했다.

     

    재활 치료를 마치고 병실을 나온 그는 남은 인생을 장애인 재활 지원에 쏟기 위해 미국 유학을 떠났다. 월드비전 친선대사로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를 다녀온 탤런트 김혜자 씨의 글에는 눈물이 담겨 있다.

     

     

    김 씨가 본 라이베리아는 14년의 내전으로 먹을 것도, 마실 물도, 약도 없는 나라였다.

     

     

    항생제 한 알이면 낫는 상처를 그대로 방치해 다리를 잘라야 했던 아홉 살 소녀, 마취약이 없어 곪은 부위의 생살을 도려내는데도 허기에 지쳐 축 늘어져 있는 젊은 여성….

    김 씨는 “우리의 도움을 구하는 이에게 복이 있나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필요한 존재가 되는 일이므로”라는 ‘장애인들을 위한 산상수훈’ 시 구절을 읊으며 도움을 주는 삶을 살자고 말한다.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인 김용해 신부(예수회)는 불행을 계기로 장애인 재활병원 설립에 나선 한 부부의 이야기를 전한다.

     

    1997년 김 신부가 독일에 체류할 때 독일 통일 문제를 공부하기 위해 뮌헨에 왔던 신문기자 백경학 씨와 아내 황혜경 씨의 사연이다.



    백 씨 부부는 1998년 여름 공부를 마치고 귀국하기 직전 유럽여행을 떠났다가 불행을 만났다.

     

     

    여행 중 교통사고로 아내 황 씨가 한쪽 다리를 잃은 것. 한국에 돌아온 부부는 스스로의 재활에 멈추지 않았다.

     

    사고 보상비 10억 원과 개인 재산을 들여 장애인 전문 재활병원 설립에 나서 2005년 3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병원 설립을 추진할 푸르메재단을 만들었다.

    김 신부는 “이들 부부는 오히려 다리를 잃고 나서 영원한 걸음걸이를 힘차게 내딛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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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끝>‘이웃을 위하여’를 마치며


     


    나눔-희망-사랑의 홀씨

    사회 구석구석 퍼지기를


    지난해 말부터 이어진 ‘2008 책 읽는 대한민국’의 일곱 번째 시리즈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이 7일 끝을 맺었다.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20선’은 지난해 12월 9일 노숙인과 무의탁 노인에게 무료 급식을 해온 다일공동체 ‘밥퍼’ 최일도 목사의 ‘행복하소서’(위즈덤하우스)를 소개하며 출발했다.

    불황으로 더 추운 겨울, 힘든 이웃을 돌아보자는 취지에서 마련한 책들은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와 조영희 ‘에코의 서재’ 대표, 인터넷서점 ‘Yes24’의 도서담당 매니저의 조언을 토대로 동아일보 문화부 출판팀이 선정했다.

    이 시리즈는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 인생을 바치는 이들을 조명한 책에 초점을 맞췄다.

     



    20여 년간 빈민선교기관 ‘나눔의 집’ 사제로 일해온 송경용 신부의 ‘사람과 사람’(생각의 나무), 소록도병원에서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한 공중보건의 김범석 씨의 ‘천국의 하모니카’(휴먼앤북스), 부산 달동네에서 가난한 환자들을 치료하는 의사 최충언 씨의 ‘달동네 병원에는 바다가 있다’(책으로 여는 세상) 등이다.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를 전하는 책들도 있다.

     

    경제평론가로 잘 알려진 ‘시골의사’ 박경철 씨가 경북 안동시의 병원에서 본업인 의사로 살아가며 만난 어려운 이웃들의 인생 이야기를 담은 ‘착한 인생, 당신에게 배웁니다’(리더스북), 막달레나공동체가 서울 용산역 주변 성매매집결지 여성들을 인터뷰해 그들의 아픔을 담은 ‘붉은 벨벳 앨범 속의 여인들’(그린비) 등이다.


    해외 책으로는 빈민구호 공동체 ‘엠마우스’를 창시한 프랑스 출신 피에르 신부의 자전 에세이 ‘단순한 기쁨’(마음산책)과 저개발국에 어린이도서관을 짓는 자선재단 ‘룸 투 리드(Room to Read)’를 설립한 존 우드의 ‘히말라야 도서관’(세종서적) 등을 소개했다.

     

     

     

    좌절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 절망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는 게 맛있다’(이끌리오)의 추천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은 이렇게 말한다.

    “나의 것을 여러 이웃에게 나누어 줄수록 사랑은 커집니다. 그렇게 커진 사랑이 상처를 아물게 하고, 그 자리에 희망의 싹을 틔웁니다.”

    황장석 기자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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