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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이인호 선생, 문화장 수상에 붙여
    <칼럼사설수필> 2007. 4. 30. 12:08

     

     

     

     

    인도 이인호 선생, 문화장 수상에 붙여

     

    "사사로움이 개입되지 않도록 최대한 객관성을 유지했습니다. 토론 자체가 필요없다고 주장해 문화장 수상을 결정했습니다"
    미륵사지 참외축제 현장을 떠나는 이한수 시장에 "인도 이인호 선생 문화장 수여는 잘한 일이다"라고 말하자 그에 대한 답변이다.


    사실 토론 자체가 필요 없는 일이다.
    그런데 전임시장 시절 익산시민의 장, 특히 문화장을 둘러싼 비난과 의혹은 적지 않았다. 선생이 익산발전에 끼친 업적은 이 시장 언급처럼 '토론의 여지'가 없는데 수년간 수상자는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우선 금마면 동고도리 藝道苑에 거주하는 引導 이인호(72) 선생을 알아보자.
    1935년 금마면에서 여덟째 아들로 태어났는데 종손인 부친은 일곱 아들을 잃고 방황하고 모친이 선생을 낳고 신음 중인 것을 탁발 왔던 금산사 소진산 스님이 목격하고 "아이를 살리려면 부처님께 귀의시켜라"고 말해 일곱 살에 금산사에 들어간다.
    이후 불교의식, 단청, 조각, 승무, 법고 등 불교예술을 전수 받고 장단과 가락을 접목키 위해 故박초월에게 국악도 터득한다.
    1971년 단청문화재 164호로 지정되고 마곡사와 건봉사, 남산 팔각정, 대한문, 현충사 등 무수한 단청을 맡는다.
    조각, 승무, 바라춤은 물론 달마와 난을 그리는 등 1人10技, 80종목에 천재성을 보인 선생은 한국화, 불화, 단청 등 41회나 개인 및 단체전을 가졌는데 선이 굵고 대담하며 선명. 우아하다는 평을 받는다.
    불심과 회화성, 붓의 농담과 자비심이 조화를 이뤄 억센 힘이 솟구치는가 하면 머리카락보다 사실적이고 섬세해 달관의 경지다.
    한국미술작가협회와 국악협회이사도 역임했다.

     

    서울과 해외에서 더 유명한 선생은 首邱初心, 고향발전에 여생을 바친다며 92년 자택 '예도원'을 세우고 익산에서 본격 활동한다. 익산군과 통합 익산시 문화원장을 3대 12년을 역임했는데 당시 이리노인회관과 함열노인회관, 익산문화원 건립 등에 5500만원도 기부했다. 1984년 익산군민의 장, 공익장도 수상했다.
    법화사 단청을 그릴 때인 90년, 서귀포 전북도민회 사무실 마련을 위해 밤새 그린 그림을 판매해 3천만원을 기탁했고 추가금액까지 5천만원을 기증했다. 2004년 문화원장을 마친 선생은 고희를 맞아 5천만원이 넘는 소장작품을 제주 전북도민회관 건립을 위해 기증했다.
    사교로 얻은 것과 구입작품 등 50인 유명화가와 서예가 작품에다 선생의 작품 등 201점을 판매해 도민회관 건립자금에 보탰다.
    남농, 석전, 소암, 시경, 경보, 창해, 매천, 동천, 동포, 가산, 아석, 지남 등 명사의 서화다.


    “익산문화야, 세월에게 물어봐“로 시작되는 선생의 심정과 인생을 묘사한 듯한 시비가 세워진 금마면 자택은 석탑을 본떠 집 자체가 예술작품이다.
    그런데 2004년과 2005년 평생을 국악발전에 바친 문태현 익산국악원장과 선생을 후보로 올려놓고 아동문학과 수필집 등 책 몇권을 낸 학교장이 연거푸 문화장을 수상해 "문화장이 문학장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시민 상당수는 물론 필자도 당사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이름을 기억치 못한다. 작년에도 말이 많았다. 원로를 걸핏하면 후보로 올려놓고 망신을 주는 일이 반복됐는데 당시 전임시장은 물론 그 이전시장도 전화 한 통 없었다. 어르신들이 내색은 할 수 없고 몹시 마음 상했음은 不問可知다.

     
    국무총리상 등 많은 수상경력을 가진 문 원장이나 인도 선생에 문화장은 상이 아니라 지역발전에 헌신한 어르신에 대한 후진들의 보답일 뿐이다. 더욱 예술발전에 공이 커도 물질에 탐닉하는 것이 아닌 베푸는 자세를 견지한 어르신에 증정하는 '익산시민의 장'이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 민선4기 취임 후 '익산시민의 장' 핵심인 문화장이 어떻게 결정될지 궁금했다. 그런데 문화장 수상자가 결정된 지난달말, 이 시장은 "일찍 드려야 할 상을 너무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라고 선생에 직접 전화를 걸어 축하 겸 위로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객관적 시각을 갖고 잘한 것은 찬사를, 잘못한 것은 비판을 글로 써야 하는 것"이 언론인이라면 이한수 시장의 처신은 '젊은 시장'답게 정확했다. 추후 모든 상벌이 오해받지 않도록 공정성과 객관성을 잃지 말기를 기대한다. <2007. 05. 25. 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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