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ITALIA(11)] 시에나Siena
이제 이탈리아 중부의 토스카나Toscana주에 들어섰습니다. 토스카나는 이탈리아의 문화적 중심지라 할 만한 지역으로 특히 르네상스기에 전 유럽의 문화를 선도한 곳입니다. 토스카나에서 첫번째로 방문할 도시는 시에나입니다.
Club
AC Siena (Associazione Calcio
시에나는 1904년 창단된 팀으로 2004년에 백주년을 맞이했습니다. 하지만 긴 역사에 비해 리그에서의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해서
리그나 컵 우승이 한 번도 없는 팀이죠.
팀 로고를 보면 로마의
것과 비슷하게 쌍둥이에게 젖을 먹이는 늑대가 등장하는데 그것은 이 도시의 전설적 기원과 관계가 있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시에나는 레무스Remus, 즉 로마를 건국한 전설적 쌍둥이 형제 중 한 명의 아들들인 세니오Senio와 아스카니오Ascanio에 의해
세워졌다고 합니다. 역사적 근거는 희박하지만 말이죠.
어쨌든 이 팀은 2003년 거의 50년 만에 세리에A에 진입하는 감격을 맛봤고 이제 세 시즌째 1부 리그에서 플레이하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우승 보다는 강등되지 않으면서 중위권을 목표로 하는 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검은색과 흰색 저지를 입어서 비안코네리Bianconeri라는 별명을 갖고 있고 홈구장은 스타디오 코무날레 아르테미오 프란키Stadio Comunale Artemio Franchi입니다.
중부 토스카나에
자리잡고 있는 시에나는 원래 에트루리아인의 거주지였습니다. 앞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시에나는 세니오와 아스카니오가
건설했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지만 서기 30년경에 로마인들이 세나 율리아Sena Julia라는 도시를 건설한 것이 역사적 시초로 알려져
있습니다. 로마의 멸망 후에는 6세기에 롬바르드인들, 그리고 프랑크인들의 지배를 받았고 이 시기에 로마와 프랑스를 잇는 도로인 비아
프란치제나Via Francigena가 만들어졌습니다. 이 도로는 순례자와 여행자들의 교통로가 되면서 도시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시에나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면서 교회는 도시의 행정에 관여하기 시작했지만 시에나인들은 12세기의 그들의 자치권을
확인했습니다.
시에나의 경제력 확대는 필연적으로 피렌체와의 갈등을 불러 왔습니다. 지역의 패권을 차지하려는 두 공화국은 자주 충돌을 일으켰고 교황파, 즉 겔프Guelf당이 우세했던 피렌체와 황제파, 즉 기벨린Ghibelline당이 우세했던 시에나는 중세 동안 여러 전쟁을 치릅니다. 시에나는 1260년 피렌체와의 몬타페르티 전투에서 승리를 거둠으로써 전성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세기 중반까지 시에나의 중요한 건물들, 즉 두오모, 팔라초 푸블리코Palazzo Publico와 피아차 델 캄포Piazza del Campo등이 건설되고 화가 로렌체티Lorencetti가 ‘선한 정부의 알레고리’를 그려 자신들의 공화국을 찬양한 것도 이때였죠.
하지만 이탈리아 내에서의 교황 세력의 우세로 인한 경제적
쇠퇴에, 1348년 흑사병에 의한 피해를 입으면서 시에나의 황금기는 종말을 맞게 됩니다.
‘데카메론’에 등장하는 바로 그 흑사병은 시에나 인구의
60퍼센트를 죽음으로 몰아갔으며 이후 두 세기동안 시에나는 힘든 시기를 견뎌내야 했습니다. 경제적 어려움과 외부로부터의 압박은 시에나인들이
소중히 여기던 공화정 체제를 조금씩 붕괴시켰으며 외세 침입, 도시 내부의 가문들 간의 다툼으로 불안정한 세월을 보내던 시에나는 결국 16세기
중반 피렌체의 코시모 대공Cosimo I의 토스카나 대공국에 흡수되었고 1861년 이탈리아가 통일되면서 이탈리아 왕국에 통합되었습니다.
위쪽에서 내려다본 시에나 시가지. 시에나 두오모와 시청 종탑인 토레 델 만자Torre
del Mangia가 가장 눈에 띕니다. 붉은 기와로 덮인 지붕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구불구불한 길을 이루는 성 안쪽과 그 바깥의 한적한 전원
풍경이 좋은 대조를 이루는데, 중세 도시의 전형적 모습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중세 후기에 전성기를 맞이한 도시인 만큼 시에나를 대표하는 건물들은 대부분 그 시기에 만들어져 도시는
중세의 분위기를 아직도 많이 간직하고 있습니다. 시에나의 중심부는 역시 캄포 광장(Piazza del
Campo)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른쪽 사진은 광장을 위에서 내려다본 것인데 이 아홉 칸으로 나뉘어진 부채꼴 모양의 광장은 시에나를 상징하는
것 중 하나입니다. 시에나 의회를 지배한 ‘9인 의회(Consiglio dei
Nove)’를 상징하기 위하여 아홉 칸으로 나뉘었고 부채꼴 모양은 성모의 망토 모양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광장의 서쪽에 시청사인 팔라초 푸블리코가 서 있습니다.
팔라초 푸블리코와 토레 델 만자. 고딕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톱니 모양의 성가퀴로 장식되어 요새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데도(전쟁이 많았던 그 시대를
생각하면 유사시엔 그런 역할도 했음이 틀림 없어 보입니다) 불구하고 무겁다기보다는 우아해 보입니다. 늘씬하게 하늘로 뻗은 종탑도 마찬가지죠. 이
탑은 높이가 102미터에 이르는데, 여기 있는 종은 유사시에 울려 시민들에게 미리 경고해주는 기능을 했습니다. 청사 위에 검은색과 흰색의 깃발이
보이는데 이것이 시에나의 기입니다. 도시국가의 오랜 전통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시에나의 두오모는 거대한 크기에 높은 곳에
있어 시 전체를 위압하는 건물입니다. 중세에 부를 쌓은 시에나는 자신들의 도시를 대표할 이 성당을 위해 야심찬
계획을 세웠지만 14세기의 페스트는 그 계획을 방해했습니다. 현재 일부가 두오모 박물관(Museo dell’Opera del Duomo)으로 쓰이는 본당 회중석은 결국
완성되지 못했고 정면 역시 원래 계획으로는 수랑이 되었어야 할 쪽에 만들어졌습니다. 그렇다고는 해도 여전히 이 건물은 거대하며 무척 아름답게
장식된 시에나의 자랑입니다.
두오모의 파사드와 종탑. 로마네스크 고딕
양식의 정면은 조각과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습니다. 현재 이 조각의 많은 부분이 복제품으로 대치되었으며 진품은 두오모 박물관에서 볼 수
있습니다. 파사드는 14세기에 지어진 것입니다.
교회 내부는 도시의 색인 검은색과 흰색
줄무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기둥과 벽을 장식한 줄무늬가
인상적이며 천장은 밤하늘과 같은 짙은 푸른색 바탕에 금빛 별이 그려져 있습니다.
두오모의 상감된 대리석 바닥.
여러 색깔의 대리석을 짜맞추어 세공한 이 아름다운 바닥은 성서에서 가져온 장면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시에나의 유명한 축제는 팔리오Palio라고 불리는 것으로 이것은 시에나 뿐 아니라 토스카나에서도 가장 유명한 축제입니다. 매년 7월 2일과 8월 16일에 피아차 델 캄포에서 열리는 이 축제는 안장 없이 말을 타는 경마 대회인데 시에나의 17개 교구(콘트라데Contrade)를 대표하는 기수들이 참가하여 각 교구별로 열띤 응원을 보냅니다. 축제는 경기가 시작하기 사흘 전부터 열리는데 퍼레이드를 비롯한 각종 행사들이 치러지고 말들을 축복하는 행사도 각 교구별로 있습니다. 경기는 90초 동안만 열리는데 우승자는 우승기(팔리오)를 수여받게 되죠.
전경에 올리브나무가 보이는 토스카나의
포도밭과 짚으로 싸인 키안티 병들
이탈리아 어디서나 정말 맛있는 커피를 만날 수 있습니다. 호텔에서 아침식사
때 주는 카페라떼Caffelatte(보통 에스프레소와 데운 우유를 같이 줍니다)도, 거리의 카페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도 모두 훌륭하죠. 거품낸
우유를 얹은 카푸치노Cappuccino(이 이름은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쓴 두건에서 유래했는데 커피가 우유 거품을 덮어쓴 모양이 카푸친 수도사를
연상시킨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가 부담 없지만 에스프레소Esspresso 또한 꼭 맛보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정말 진한데도 쓰지
않고 맛있거든요.
다음에는 토스카나의 항구도시, 리보르노Livorno로 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