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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김제 ‘조용거’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대담기획인터뷰인물 2015. 7. 1. 15:52

     

     

     

    <특별기획> 김제 조용거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조용거 소아청소년과 원장>

     

     

     

     

     

     

     

     

     

     

     

     

     

     

     

     

     

     

     

     

     

     

     <진료 중인 조용거 원장>

     

     

     

     

    <대한 소아청소년과 개원의사회 연수강좌에서 좌장으로 앉아 있는 조용거 원장>

     

     

     

     

    <김제시 검산동, 홈플러스 옆 조용거 소아청소년과의원>

     

     

     

     

    <3백평 가량의 넓은 주차시설>

     

     

     

     <조용거 의원의 자랑인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수액실과  수유실‘ >

     

     

     

     

    <소아과 전문의 자격증>

     

     

     

     

     

     

     

     

     

    <특별기획> 김제 조용거 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

     

     

     

     

     

     

     

    - 작은 병원이나 매우 큰 거인 의사(Small hospital but great great Giant doctor)

    -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 간호사 등 한번 맺은 인연 수십년 바꾸지 않아.

    - ‘인간성 명의名醫입소문에 환자 쇄도

     

     

    -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수액실과 수유실엄마와 아이 넘쳐

    -처가와 친가에만 성형외과, 피부과, 외과,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10여 명이 의사

     

     

     

     

     

     

     

     

     

    <인간성 명의名醫입소문, 환자 및 고객 쇄도>

     

    김제시 검산동 홈플러스 옆, ‘조용거소아청소년과의원 원장을 만나러 가는 길은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

     

     

     

     

     

    언론에서 병원이나 의원 및 원장 소개는 잘 안하지만 개원 이래, 변치 않고 환자가 넘쳐나는 의원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한번 맺은 인연 수십년 바꾸지 않아>

     

     

    특히 조 원장은 수십년을 바뀌지 않는 간호사 등은 물론 사회에서도 한 번 맺은 인연을 소중히 하는 인간성 명의名醫로 알려져 호기심도 발동했다.

     

     

     

     

    더욱 조용거원장은 남몰래 사회봉사와 기부도 적극적이여 관심을 끌었다.

     

     

     

    조용거 원장은 임실군 성수면 출신이다.

     

     

    양조장을 운영하던 부모의 62녀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당시에는 방앗간과 양조장 운영을 했다면 유지로 통할 정도로 넉넉한 집안이다.

     

     

     

     

     

     

     

    <마음이 따뜻하고 편안한 ‘이웃집 아저씨‘>

     

     

    외삼촌이 소아과의사였기 때문인지, “어릴 적부터 부모나 주변으로부터 의사가 되라는 말을 자주 들어 당연히 의사가 되는 것으로 생각했다는 조 원장은 나이보다 훨씬 젊어 보이는 동안童顔으로 편안함과 따뜻함이 가득하다.

     

     

     

    성수초등을 졸업한 그는 부유한 가정의 영향에다 공부도 잘해 전주서중으로 유학온다.

     

     

    성고교를 거쳐 80년 중앙대의과대학 졸업후, 소아과를 전공한다.

     

     

    당시 중앙의대 소아과는 대학에서도 최고인기였고 성적도 최상위권만 갈 수 있는 인기학과였다.

     

     

     

     

    <공중보건의로 2년근무 경험으로 김제에서 개원>

     

     

    군대생활은 공중보건의로 신안 비금도에서 근무했다.

     

     

    군대에는 소아과 의사가 필요 없어 낙도오지 민간병원으로 가게 된 것.

     

     

    당시 50대 뱃사람이 배에 칼을 맞아 장출혈이 심해 혈압이 떨어지고 의식불명의 쇼크상태로 생명이 경각에 달했던 것을 살려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직원 중에 혈액형이 맞는 사람의 헌혈로 긴급수혈을 하고 외과와 소아과 의사 밖에 없고 마취의사가 없는 상황에 마취 없이 수술을 감행해 생명을 살린 경험은 잊지 못할 추억이라고.

     

     

     

    비금도에서 84년부터 일년간 지내다 김제종합병원(, 김제우석병원)에서 2년간 공중보건의를 한 인연이 김제에서 평생 소아과를 개원한 동기다.

     

     

    의사 수에 비해 환자가 많고 공중보건의 시절, 친해진 사람이 많은 김제에서 제대 후인 1987년 개원한다.

     

     

     

     

    ()부안삼거리에서 개원해 20121월말까지 25년을 한 곳에서 소아과를 운영한다.

     

     

    어머니를 따라 왔던 아이들이 결혼 후 자녀를 데리고 올만큼 많은 사랑도 받았다.

     

     

     

     

     

    어머니 품처럼 아늑한 수유실엄마와 아이 넘쳐

     

     

    2012, 젊은 세대가 몰리는 신시가지인 현재의 검산동 홈플러스 옆으로 이전했다.

     

     

    2층에 신경과 의원이 개업한 50평 규모의 1층에 조용거 소아청소년과 의원을 개원한 것.

     

     

    병원규모 크지는 않으나 신세대 주부와 아이 발길은 그치지 않는다.

     

     

    수액실은 물론 젊은 엄마가 편히 젖을 줄 수 있고 신생아에 감염우려를 차단하는 수유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독립된 공간으로 감염에서 환자와 엄마를 차단할 뿐 아니라 집보다 편안하고 안락한 시설과 디자인으로 엄마들이 아이와 함께 몇 시간씩 쉬기도 한다.

     

     

     

     

    가족 중 특히 의사가 많아 처가와 친가에만 성형외과, 피부과, 외과, 내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10여 명이 의사로 전국각지에 병원이나 의원을 개원했다.

     

     

     

     

     

    <28성실과 정성으로 한 건의 의료사고’도 없어>

     

     

    조 원장은 좁은 김제사회에서 강산이 세 번 변하는 28년을 성실과 정성으로 고객을 대해 의료사고는 물론 잡음에 휘말리는 일도 전혀 없었던 것을 자랑으로 여긴다.

     

     

     

     

    리듬감각을 익히려 드럼을 배우고, 11년째 클래식 기타도 배우며 여가를 보내는 조 원장의 기타 솜씨는 수준급이다.

     

     

     

     

    김제예술회관에서 열린 클래식 기타 콘서트에 초대받아 게스트연주도 한 그는 아이가 건강해 병. 의원을 안 오게 하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고, 찾아온 아이가 병을 이기고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게 하는 것은 의사의 바람이란다.

     

     

     

     

    사교 및 건강을 위해 등산과 골프도 즐겨한다.

     

     

     

    중앙대부속병원에서 인턴, 레지던트를 마치고 소아과전문의를 취득했으며 의학석사.박사도 중앙대학에서 취득했다.

     

     

     

    특이경력은 '소아청소년과' 전문의 취득 후, 88년 '가정의학과 ' 전문의도 취득해 전문의 자격증만 2개나 보유했다.

     

     

     

    개원 후, 김제시의사회장, 전북도소아청소년과 개원의사회장, 대한소아청소년과 개원의사회부회장과 고문을 역임했다.

     

     

     

    재 중앙대와 전북대의과대학 외래교수로 활동한다.

     

     

     

     

     

     작은 병원이지만 매우 큰 거인 의사’(Small hospital but great great Giant doctor)

     

    의사의 윤리등에 대한 선서문인 히포크라테스 선서(Hippocratic Oath)’를 외우던 시절부터 인술을 펼쳐 생명과 건강을 지켜주고 봉사도 하며 존경받는 의사로 한 평생을 살고 싶다던 그의 꿈도 차근차근 실현해 나갔다.

     

     

     

    무슬림 지역으로 치안이 불안한 필리핀 민다나오' 의료봉사는 겁도 났지만 소중한 봉사기회로 기억한다는 조 원장은 김제 만경면 노인복지시설에서의 예방접종과 배식봉사 및 목욕시켜주기, 다른 김제복지시설에 현금기부, 모교장학금 등 무수한 봉사와 기부를 남몰래 해 왔다.

     

     

     

    대한적십자사 전국여성봉사특별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남을 배려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부인 유영순님과 11녀를 훌륭하게 성장시킨 조 원장 부부는 인품 좋기로 소문나 인간성 명의名醫 부부그 남편에 그 부인이다고 정평이 나 있다.

     

     

     

     

    병원은 작지만 매우 큰 거인 의사’(Small hospital but great great Giant doctor).

     

     

     

     

    역지사지로 입장을 바꿔 생각하자. 남을 배려하고 이웃에 따뜻한 사랑을 주는 것이 가장 소중한 미덕이다는 인생관을 가진 조 원장에게서 푸근함과 따뜻함을 느끼며 아쉬운 발길을 재촉했다./고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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