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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별기획> 신임 이희봉 이리로타리클럽 회장
    대담기획인터뷰인물 2015. 6. 17. 06:24

     

    <특별기획> 신임 이희봉 이리로타리클럽 회장

     

     

     

     

     

     

     

     

     

     

     

     

     

     

     

     

     

     

     

     

     

     

     

     

     

     

     

     

     

     

     

     

     

     

     

     

     

     

     

     

    <2013년 2월 1일, 신임 이희봉 익산시민경찰연합회장 취임장면>

     

     

     


    <특별기획> ‘이희봉(46)’ 이리로타리클럽 회장

    -전북 두 번째, 익산서 가장 오래된 로타리 클럽

    -“초아의 봉사 실천”에 한 몸 바칠 것




    ”인도적 봉사에 힘쓰며 모든 직업이 높은 인도적 기준을 지켜 나가도록 장려하고 세계친선과 평화의 확립에 기여할 것을 지향(목적)하는 실업인과 전문직업인이 세계적으로 결합한 단체“라는 로타리(Rotary) 목적에 걸맞게 ‘희생과 봉사’를 바탕으로 불우청소년과 결식아동 및 독거노인 등을 위해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지난 6월 13일 저녁 6시30분, 익산 OK웨딩홀에서 열린 이리로타리클럽 제51대 장진수 회장 이임식에 이어 새로 취임한 이희봉(46) 제52대 신임회장의 소감 및 포부다.

    익산시 영등동에서 1급 현대자동차정비공장을 운영하는 수완 이희봉(46) 대표는 전북에서 두 번째, 익산에서 가장 오래된 이리로타리클럽 제52대 회장에 취임했다.

    이날 이취임식은 국제로타리 3670지구 심전 윤운호 총재와 청산 남궁동 전 총재는 물론 이리로타리클럽과 자매결연을 맺은 서마산로타리클럽 대웅 이호선 회장을 비롯한 회원과 가족 및 지인 등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황리에 개최됐다.

    “MOU를 체결한 익산시청소년수련관과 힘을 합쳐 기초생활수급자인 청소년에 매달 한번씩  자장면 봉사를 하고, 익산제일고 인터렉트에 참여해 후원 및 지원을 강화해 이들이 미래의 로타리 인물로 성장해 봉사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역대회장에 해 왔던 대로 시온육아원에 청소는 물론 음식 및 물품봉사를 계속하고 지구 보조금사업인 다문화가정 해외 친정보내주기 등도 계속 하겠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계확과 포부를 갖은 이희봉 회장은 완주군 봉동읍에서 69년 태어났다. 2남4녀의 둘째 아들이자 다섯 번째 태어난 그는 완주 봉서초등과 완주중고를 거쳐 벽성대자동차학과를 졸업했다. 군복무 시절, 강원도 철원에서 수송부에 근무한 것이 평생 자동차 관련사업을 하게 동기다. 농업에 종사하던 부모님을 둔 농촌가정이 그랬듯 그의 어릴 적 생활은 마냥 풍족한 것만 아니었다.

    91년말 병장 제대한 이 회장은 오직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대전에서 2년, 익산에서 8년을 합친 10년을 자동차정비공업사에서 기술을 습득한다. 1995년에는 고교동창으로 오랜 연애 끝에 현재의 부인 송미선(46)씨와 결혼한다.

    97년부터 2천년까지는 국민일보 익산지국장으로 익산. 군산도심. 회현. 대야 등지의 신문배송을 맡으며 동시에 자동차 기술습득 및 99년 영등동에 개업한 D카센타를 운영한다.

    겸업을 하느라 지금은 장성한 2녀1남의 어린 자녀를 돌볼 틈은커녕 잘 시간도 부족할 정도로 밤낮없이 일에 몰두했다. 당시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부담감은 지금도 여전하다. 밤중에 익산역에서 신문을 받아 배송과 배달을 하고 하루 세 시간만 자며 부부가 눈물겹게 노력했다. 전단지를 신문에 끼우기 위해 졸린 눈을 비비며 노력했다. 신문사업도 비교적 잘됐으나 도저히 카센타와 함께 운영할 수 없어 2001년 신문업무를 접는다.

    카센타는 직원이던 처남에 인계했고 2002년, 성모병원과 약촌오거리 중간에 현재의 익산시 영등동 1급현대자동차공업사를 지인과 동업으로 개업한다.

    2005년 독립하면서 동업자 지분을 빼주며 일시적 자금난에 봉착한다. 약간 저지대라 홍수시 침수피해를 막기 위한 공업사 리모델링과 장비교체 등으로 매달 5백만원을 갚아가는 사채로 무척이나 고생했단다.

    그러나 어릴 적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남에게 절대 피해를 주지 말라. 손해 본 듯 살며 이웃에 덕을 베풀면 ‘덕은 외롭지 않아 반드시 이웃이 생긴다”는 ’德不孤必有隣덕불고필유린‘을 생활철학으로 삼은 그에게 세상은 외면치 않았다.

    “적을 두지 않으면 성공한다. 손해 본 듯 살자. 약속은 생명이다”는 그의 마음가짐은 저절로 행동과 처신으로 나타났고 주변에서 한번 차를 맡긴 사람은 평생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로 그득해졌다.

    요즘, 최악의 불경기에도 그의 공업사는 고칠 차량으로 그득하다. 이제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해 익산에서는 이 회장 부부를 ‘성실근면’과 온후한 성품으로 사람과 돈을 함께 얻은 자수성가 인물로 평가한다.

    그러나 이들 부부의 남을 위한 삶은 생활이 어렵던 시절부터 지금까지 계속된다.

    1999년 영등동 자율방범대 회원에 가입하고 2002년 영등동자율방범대장도 역임한 그는 대장 임기 동안 칼을 든 강도를 회원들이 잡기도 하는 등 지역사회 안전과 봉사 등을 위해 솔선수범했다. 독거노인과 자식만 있고 찾지는 않아 사회안전망에서 소외된 노인과 결식아동을 비롯한 불우청소년을 위해 무수한 봉사활동을 펼친다.

    2013년부터 익산시민경찰연합회장을 역임한 그는 영등동자율방범대와 시민경찰연합회 고문에 익산소방서의용소방대원 및 익산시청소년수련관 방과후 아카데미 위원, 세팍타크로협회 전북지부 이사 등을 맡으며 봉사와 기부를 생활화한다.

    이리로타리클럽은 전북에서 전주로타리에 이어 두 번째 역사가 깊다. 2011년 노인을 위한 갈릴리복지관에 ‘사랑의 이동목욕차’를 기증해 지역을 놀라게 한 이리로타리클럽은 여시장을 휩쓴 홍수 피해복구사업에 회원가족들이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현재까지 장학금만 2100만원을 기부한 그는 3백만원씩 3번 만 더 하면 될 수 있는 ‘관명장학금’ 자격을 얻는 것이 소망이다. 자신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줄 수 있는 자격을 말하는데 어느덧 기부와 봉사가 생활목적이 돼 버렸다.

    등산과 골프가 취미인 그는 2014년 3월, 술과 담배, 사업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심장작동이 멈춘 급성 심근경색으로 원광대 응급실에서 전기충격기로 3번의 강한 충격을 주는 스텐스 시술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다.

    그 후, “시간 나는 대로 지리산 둘레길을 하루 5~6시간씩 15km를 걸어 23코스 중 2/3를 완주했다”는 이 회장은 “‘제2의 인생’을 사니 열심히 노력하되 돈만이 목적이 아닌 지역과 주변에 좋은 일을 많이 하며 사는 게 희망이다”고 말한다.

    자연 :“남에게 피해를 주지 말고 도움을 주도록 하라”고 가르친 2녀1남도 훌륭하게 성장했다.

    “사업에서는 성실근면, 부부와 가족애로 뭉친 이 회장이 이웃에 베풀며 살아가는 자세는 이제 몸에 배었다”는 느낌을 받으며 만나기 힘든 훌륭한 사람을 만났다는 느낌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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